명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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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1. 개요


명도전은 춘추전국시대 그중에서도 전국시대 때, 동아시아에서 통용되던 화폐이다. 통상 연나라의 화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한반도와 요동에서도 많이 발견되어 고조선의 화폐라는 설도 있다. 손칼모양의 청동화폐로 ‘明’자가 장식되어 ‘명도전(明刀錢)’이라 부른다.[1]

2. 내용


과거 국정교과서에서 명도전의 이미지는 명도전 한 개를 확대해놓은 흑백사진이었기에 자칫 명도전이 처럼 커보여서 '''살상용 무기'''처럼 보이기도 했다.[2] 하지만 위 사진처럼 모양만 낸 것으로 그렇게 날카롭지도 않고 사실은 작은 화폐이다. 명도전 하나의 무게가 현재의 100원 동전 3개 정도된다.
명도전의 기원은 산융족이 사용하던 칼인 첨수도다. 연나라가 그 지방을 정복한 뒤 첨수도가 변화하여 명도전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통설이다. 이후 명도전은 여러 차례 형태가 변화했는데 모양 및 시기에 따라 갑형, 을형, 병형으로 구분된다. 명도전은 기원전 4세기 중반에서 기원전 3세기 후반에 주조된 것으로 파악된다. 명도전의 길이는 13~14.4cm 정도다.
명도전은 형태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칼등이 활 모양으로 곡선을 그리고, 뒷면에 지명 혹은 숫자가 장식되어 있는 것 [3] 둘째, 첫째와 비슷하게 등이 활모양으로 휘고, 숫자 이외에 좌우(左右)자 등이 장식된 것[4] 셋째, 등이 각을 이룬 것으로 뒷면에 좌우(左右)·외(外) 등의 문자가 있고 분포지역은 둘째와 비슷하다.
인터넷 상에서는 명도전이 대부분 요동과 한반도에서 주로 발견되고 연나라의 중심지였던 하북성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고 알려져있다. 그래서 명도전이 연나라 화폐가 아니라 고조선의 화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명도전은 연나라의 중심지였던 북경과 하북성에서 아주 많이 출토됐다. 요동과 한반도에서 발견된 명도전의 숫자를 다 합쳐도 북경과 하북성에서 발견된 명도전의 숫자의 절반도 안 된다.[5]
주요 출토지는 북경과 하북성, 요동 지역, 한반도 서북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명도전은 일본에서도 발견되었다. 그 중 일부는 심지어 오키나와 지역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것을 통해 명도전은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일본에서 광범위하게 유통된 국제적 화폐였음을 알 수 있다.
요동한반도지역에서의 명도전 출토지는 대략 60개소로 기원전 3 ~ 2세기경으로 추정되는 연화보-세죽리유형의 문화가 분포하는 요동-서북한 지역에 집중 분포된다. 이들 명도전 유물의 연대를 기원전 3세기대로 예측한다면, 이 지방이 연나라의 영향권에 있을 당시, 기원전 2세기대이면 진(통일왕조)전한교체기나 또는 위만조선 당시 이 지역에 거주하던 주민이 매납한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50 ~ 수천 개가 한꺼번에 출토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중에는 50개씩 묶어 2,000여 개를 상자나 단지 속에 매납한 사례가 많다.[6]
명도전과 비슷한 모양의 화폐로 제명도가 있다. 제명도는 제나라 땅이었던 산둥 지역에서 주로 출토되는데 형태가 명도전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학계에서는 연나라가 제나라의 수도를 임시 점령 했을 때 제명도가 주조됐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중국의 다른 화폐로 반량전, 오수전이 있다.

[1] 이 글자를 '명'(明)이 아니라 '언'(甗)으로 보기도 하는데 명으로 볼 경우에는 조나라나 연나라의 지명으로 해석되고 '언'으로 보는 경우는 연나라의 다른 이름으로 해석된다. [2] 한국사 수업시간마다 칼을 어떻게 돈으로 썼냐는 질문이 쏟아졌었다.[3] 조나라, 제나라 지역인 산동성, 하북성 일부에 분포한다.[4] 연나라와 인접한 지역인 하북성, 내몽골, 요령(遼寧)지역, 그리고 한반도 서북부 지역에 분포한다.[5] 북경과 하북성 일대에서 발견된 명도전의 수는 6만 매가 넘는다. 반면 요동에서 발견된 것은 3천 매가 좀 넘는 수준이고, 한반도 서북부에서는 2만 매가 넘는 양이 발견됐다.[6] 그 대표적인 예가 평북 영변 세죽리와 전천군 전천읍 출토 명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