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원제

 


'''북위 제2대 황제
太宗 明元皇帝 | 태종 명원황제 '''
'''묘호'''
'''태종(太宗)'''
'''시호'''
명원황제(明元皇帝)
'''연호'''
영흥(永興, 409년 ~ 413년)
신서(神瑞, 414년 ~ 416년)
태상(泰常, 416년 ~ 423년)
'''생몰 기간'''
392년 ~ 423년 (31세)
'''재위 기간'''
'''북위의 황제'''
409년 ~ 423년 (14년)
'''능호'''
운중금릉(雲中金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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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C143C> ''''''
탁발(拓跋)
''''''
사(嗣)
'''부모'''
부황 태조 도무제 탁발규
모후 도무선목황후 유씨
'''황후'''
명원소애황후 유씨, 명원밀황후 두씨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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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 북위의 제2대 황제. 묘호는 태종(太宗), 시호는 명원제(明元帝). 휘는 탁발사(拓跋嗣). 북위를 건국한 탁발규의 아들로, 이복동생인 탁발소가 탁발규를 살해하고 황위찬탈을 시도하자 이를 진압하여 탁발소를 죽이고 제위에 올랐다.

2. 생애


탁발사는 북위를 건국한 초대황제인 도무제 탁발규와 황후 유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황제 즉위 전에는 제왕(濟王)이라는 작위에 봉해졌다가 상국(相國)에 임명되기도 했다. 이후 아버지인 탁발규가 한식산 중독으로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던 중, 자신이 죽고 나서 외척이 발호할 것을 염려하여 탁발사의 어머니인 황후 유씨를 죽이자 이에 충격을 받고 아버지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출궁하고 말았다.
409년 10월, 결국 미쳐버린 탁발규가 또 다른 부인인 하란비마저 죽이려다가 그의 소생인 탁발소(拓跋紹)에 의해 목숨을 잃자, 환궁하여 탁발소와 하란비 등을 제거한 후 마침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북위의 황제로 즉위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는 18세에 불과했다.
422년 남조 유송의 황제 유유가 졸했다는 소식을 듣고 남조를 공격해 많은 성을 함락시키는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다음해 성을 축조하여 방어에 전념하였다.

423년 11월, 향년 31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북위 초기의 황제들 중에서는 드물게도 병사했지만 장수하지 못했다. 묘호는 태종(太宗), 시호는 명원황제(明元皇帝)로, 오늘날에는 흔히 북위 명원제라 불린다.
기이하게도 탁발사는 외척의 발호를 막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인 황후 유씨를 죽여버린 아버지에게 반발하여 궁에서 가출한 전적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자신이 황제가 된 후에는 아버지와 같은 고민을 하다가 결국 마찬가지로 자신의 태자를 낳아준 황후의 목숨을 스스로 끊고야 말았다. 이후로 태자의 생모에게 죽음을 내리는 일은 한동안 북위 황실의 관습으로 굳어지게 된다. 이를 오늘날에는 자귀모사(子貴母死) 제도라고도 부른다.[1]

3. 둘러보기(계보)


북위의 역대 황제
1대 태조 도무제 탁발규

2대 태종 명원제 탁발사

3대 세조 태무제 탁발도



[1] 이 관습은 한무제가 늘그막에 어린 태자의 어머니를 죽인 일에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