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국

 


1. 개요
2. 역사
3. 상국 일람
3.1. 춘추전국시대
3.2. 한대 이후


1. 개요


'''相國'''
중국 전통 관료제에서 신하의 몸으로 올라갈 수 있는 합법적인 최고의 지위. 그래서 황제의 옆에서도 칼을 들고 무장을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한나라 이전에는 상방(相邦)으로 불렸는데 한 고제 유방(劉邦)의 이름을 피휘하느라 상국으로 바뀌었다.
황제 다음으로 황태자와 동급이란 의견도 있으니, 이 경우는 제후국의 국왕보다 높은 것이다. 너무 전설급으로 높은 직책이라서 사실상 영구결번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올라갔다는 사람이 몇 명 없다. 그러니 서진(西晉)이나 오호십육국시대 같은 혼란기에 임명된 상국의 진정성은 의심해 봐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으로 비교하자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실질적인 국정을 이끌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은 실세 부통령국무총리 정도의 직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국의 힘이 행정권에만 미쳤을 리는 없으니 훨씬 더 높은 관직이라고 봐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대통령제 국가의 대통령 권한대행이나 사회주의 국가에선 총리겸 서기장이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의원내각제 국가의 총리와 이원집정부제 동거정부의 다수당의 총리 또는 내각 총리 겸 외무부 겸 내무부 겸 국방부 겸 재무부 장관이라 할 수있다.
승상은 본래 상국(상방)의 비서관 정도의 지위[1]였으나, 상국의 권위가 너무 높아 상국을 임명하지 않고 승상이 권한을 대행하면서 실질적으로 승상=상국이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최강의 상방이었던 여불위 이후 2세황제를 등극시키고 집권한 조고도 상방이 아니라 중승상 지위인 걸 생각해보면 아주 신빙성이 없는 주장은 아니다.
앞뒤를 뒤집으면 국상(國相)이 되는데, 이 역시 군국제에서 제후국의 총리격인 위치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오히려 실권이 없는 제후를 대신해서 태수와 동격의 대우와 권한을 누렸다. 오초칠국의 난 이후 상(相)으로 격하되었다.
한국사에서는 고구려 초기 최고 관직에 국상이 있었다. 후대에 상국은 재상을 역임한 신하에게 붙여지기도 했는데 고려 이규보의 문집 이름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인 것도 그 때문이다. 무신정권의 최고 집권자 중 하나였던 최충헌은 은문상국(恩門相國), 최이는 청하상국(淸河相國)으로 불렸다.

2. 역사


본래 전국시대에 진(秦) 등의 국가에 있었던 관직인데, 이 당시는 상방(相邦)이라고 불렸다. 유방이 황제가 되면서 방(邦)을 피휘하게 되고 이에 따라 상국으로 개칭된다. 소하, 조참, 여산 이후로 거의 영구결번 취급으로 변하면서 지위를 얻은 사례가 드물다. 한나라 이후에는 금기는 없어졌지만, 그래도 개국공신 가운데서도 필두가 될 정도로 아주 엄청난 공적이 있거나, 자기가 개국왕이 될 정도의 권력이 있어야만 얻을 수 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동탁헌제를 협박하여 이 지위를 누렸고, 촉한의 소열제 유비가 유언으로 제갈량에게 상국의 지위를 주었고,[2] 제갈량 사후 상국은 물론 승상의 자리 역시 영구결번 취급을 받게 되었다. 또한 사마소사마염도 이 자리를 거쳤는데, 제갈량을 제외하면 모두 권신으로서 황제를 위협하여 얻어낸 자리다. 그래서 황제가 임명한 상국은 사실상 소하, 조참, 제갈량, 왕도 정도다. 이들 모두가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굉장한 개국공신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에서는 태정대신의 별칭으로 쓰였다. 에도 시대에는 쇼군생전에 태정대신에 취임하거나[3] 사후 태정대신으로 추증된 경우가 많아 쇼군의 별칭으로도 사용됐다.
한국사에서 비슷한 것으로는 고구려 초기의 국상, 말기의 대막리지(大莫離支)와 신라태대각간(太大角干)이 있다. 고려최충헌도 스스로를 은문상국(恩門相國)이라 칭했다. 그야말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절대권력이다. [4]

3. 상국 일람



3.1. 춘추전국시대


이 시기는 상방이다. 이 시기에는 특별한 지위가 아닌 그냥 국가의 재상을 뜻했으며, 초(楚)는 타국의 상방에 대응하는 영윤이란 지위가 따로 있었다.
  • (秦)나라
  • 제나라
  • 조나라
  • (韓)나라
    • 신불해
    • 장개지[5]
    • 장평[6]

3.2. 한대 이후


    • 한신: 한신이 조(趙)나라를 멸망시키고 연(燕)나라를 항복시켰을 때, 유방에 의해 한나라 좌승상에서 조나라 상국으로 직책이 옮겨진 적이 있었다.
[1] 승(丞)이 '돕는다'는 뜻이다.[2] 정사 삼국지에 의하면 진수의 평으로 상국(相國)이 되어 나라를 다스렸다고 되어 있다. 계한보신찬에는 제갈량이 선제(유비)의 유명을 받아 재상이 되었다고 나오는데, 제갈량은 이미 유비 생전에 승상이었으므로 상국은 이때 부여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제갈량 같은 경우에는 소하나 조참과 달리 유비가 상국의 지위를 내렸다는 부분 이외에는 기록에서 거의 승상으로 불리기 때문에, 상국이라는 것이 딱히 구체적인 것보다는 그만큼 군주의 신뢰를 얻었다는 상징적인 지위일 가능성도 있다.[3] 다만 쇼군직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오고쇼(大御所)가 된 후 취임한 것이다. [4] 이말년이 삼국지 강의를 하면서 한 설명. 상국은 박평식 평론가의 10점 만점 평점처럼 당대 최고의 자리지만 관례적으로 비워두고 승상이 실질적으로 최고 권력자 역할을 한 것에 비유된다.[5] 장량의 조부.[6] 장량의 부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