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1935

 

1. 제원
2. 개요
3. 상세
4. 탄약과 생산
5. 기타
6. 둘러보기


1. 제원


'''M1935'''
''Modèle 1935''

'''종류'''
자동권총
'''국가'''
[image] 프랑스
'''역사'''
'''개발'''
샤를 가브리엘 페테르
'''개발 년도'''
1935년
'''생산'''
SACM
'''생산 년도'''
1937년~1956년
'''생산 수'''
84,000정
'''사용 년도'''
1937년~1960년대
'''사용 국가'''
[image] 프랑스
[image] 나치 독일
'''사용된 전쟁'''
제2차 세계대전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
'''파생형'''
M1935A, M1935S
'''제원'''
'''구경'''
7.65mm
'''탄약'''
7.65×20mm Longue
'''급탄'''
8+1발짜리 박스탄창
'''중량'''
730g
'''전장'''
197mm
'''총열 길이'''
109mm
'''탄속'''
345m/s

2. 개요


[image]
[image]

3. 상세


프랑스의 샤를 페테르(Charles Petter)가 1935년에 개발하고 SACM(알자스 공업사)에서 생산하였다.
샤를 페테르의 디자인은 존 브라우닝M1911과 흡사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단점이 될 만한 부분은 제거를 하는등의 개량을 가했다.
개발 자체는 이름에도 써있는 1935년부터 시작됐지만 프랑스군에는 약 2년간의 시험을 거친 뒤 1937년부터 채용되었다. 이 마저도 채용연도가 1937년이지, 실질적으로 무기가 조달된 시기는 1939년부터였다고 한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기 전까지 약 10,700정의 모델 1935가 생산되어 프랑스군의 손에 쥐어졌고, 이후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은 모델 1935가 제법 쓸만한 권총이라고 생각하여 생산을 담당한 공장의 문을 닫지 않고 Pistole 625 (f)라는 제식명을 붙힌 뒤 생산을 재개했다.
이 독일 점령하에 생산된 모델 1935는 23,850정에 달했으며,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알게 모르게 독일군에 손에 쥐어져 쓰였다. SACM 사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모델 1950이 개발되기 전 까지 다시 생산을 시작했으며 6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약 50,400정이 만들어져 기나긴 시간동안 프랑스군에게 쓰였다.
이래저래 동세대의 권총들에 비해 살짝 처지는 성능을 가지기는 했지만, 후에 스위스의 SIG사에서 M47, M48이라는 이름으로 면허생산을 하고 나중에는 아예 모델 1935의 구조를 상당부분 참조한 P210을 개발했다.

4. 탄약과 생산


모델 1935는 권총 자체는 SACM 사에서 생산되었지만 탄약은 MAS(생-테티엔 조병창)에서 생산되었다.
그 이유는 프랑스 군부는 유럽에 흐르는 전운을 느끼고는 다시 있을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부무장을 뽑기 위한 테스트를 실시하는데 이 테스트에 참가한 회사 중 두 곳이 SACM과 MAS였고 권총의 생산권은 SACM가 따가게 된다. 하지만 군부는 SACM 사가 권총에 대한 모든 생산을 하는 것은 무리일거라 생각했고 탄약의 생산은 MAS가 담당하도록 하였다.
나중에는 개량형인 모델 1935S의 생산권 마저도 MAS에게 양도하게 된다. MAS 사는 모델 1935S를 1939년부터 생산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는 독일군 손에 넘어갔고, MAS 사의 제작자들은 독일군의 손에 자국의 권총이 쥐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공장의 열쇠를 숨겼고''' 결국 독일군은 SACM 사의 모델 1935A만 사용이 가능했다.
1944년, 프랑스가 다시 독일을 밀어내고 자유를 얻어내자, MAS 사는 생산을 재개했다. 그 이후부터 프랑스군은 대부분의 무기 생산을 MAS에게 맡겼고, MAS는 프랑스 내 최대 조병창이 된다. MAS는 전후에 약 6,000정의 모델 1935S를 생산했고 그 외에도 다른 회사도 판권을 사들여 많은 양을 생산해 최대 82,773정이 프랑스 내에서 생산되었다.

5. 기타


여담으로 대한민국의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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