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시민 촛불
1. 개요
민중총궐기 페이스북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시위는 항상 과격하고 충돌하고 때로는 유혈사태를 부르면서 시작하고 끝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열렸던 한국인들의 집회를 보면서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집회가 이렇게 평화롭고 무혈로 시작하고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에 의외를 느껴보았다.
- 광화문 촛불집회를 취재하던 외신기자
[image]이번 한국의 집회를 보면서 한국의 집회문화가 평화롭고 즐기면서 한편으로는 고위층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느껴보았다.
- 외신기자
2016년 10월 29일 오후 6시에 일어난 첫 번째 촛불집회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벌어지며 촉발된 집회이며,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집회다. 촛불집회에는 갓난아이부터 시작하여 80대 어르신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참가하였고, 한때 박근혜를 지지했었던 일부 사람들까지 퇴진을 외치는 등 지지 정당에 구애받지 않았다.
주최는 2015년과 2016년 민중총궐기를 주최했던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와 그 하위단체이다. 다만, 주최 측에선 이번 집회를 정치색에 부담이 없이 이번 사태에 분노하는 사람이라면, 보수 정당 지지자든 진보 정당 지지자든 어떤 정치색을 가지든 상관 없이 부담없이 참가해달라는 사전지침을 게시하였다. #
2. 상세
유튜브 팩트tv / 오마이tv에서 생중계했다. 이 외에도 아프리카 TV에서 생중계했으며, 종합편성채널인 TV조선과 채널A[1] 에서도 뉴스시간 내내 실시간 화면을 오버레이로 올리고 방송을 진행하였다.
전북버스노동조합도 박근혜 퇴진에 동의하는 뜻으로 1987년 6월 항쟁 당시와 마찬가지로 3분간 경적 시위를 했다. 기사
주최 측 추산 30,000명, 경찰 추산 12,000명이 참여했다.
10월28일(금) 29일(토) 박근혜 하야 및 퇴진 촛구 잡회 일정
3. 전개
- 발언 1: 백남기투쟁본부 공동 대표 정현찬
- 발언 2: 27일 국회 기습시위 참여 대학생
- 발언 3: ?
- 발언 4: 김영훈 전국철도노동조합 위원장[2]
- 발언 5: 국회의원 노회찬(정의당, 창원 성산)
- 발언 6: 국회의원 김종훈(무소속, 울산 동)
- 발언 7: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 발언 영상
- 공연 1: 학생공연
- 공연 2: 가수 이수진
- 발언 8: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
- 발언 9: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
YTN은 경찰이 공평동에서 종각역 방면으로 진행을 막았고 시위자들이 방향을 틀어 광화문 사거리로 바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시위대 선두 대열에서 몇몇 시민들이 폭언과 욕설을 퍼부으며 경찰관들의 방패와 방석모를 강탈하고 대열에서 끌어냈으며, 후방에 있던 시민들은 대열이 이탈당한 경찰의 길을 터주고 '수고했다' 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시위자들은 '평화시위 보장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경찰과 싸워야 한다는 의견과 평화시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하였고, 폭력시위를 우려한 앞쪽 시민들이 자리에 앉았다.
22시경 경찰과 시위진영이 충돌 중, 구석에서 구경하던 한 중년 남성이 철봉 울타리가 있는 돌담에서 그 앞의 돌의자 사이로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혀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한 시위자 한 명이 연행됐다.
경찰들조차 시위대에 해산하라는 소리보다 합법집회를 호소할 정도였다.
10시쯤 투쟁본부 측에서 행진 종료를 공식 선언한 뒤 대부분의 시위대는 큰 충돌없이 해산했다.
자정을 넘긴 30일 0시 15분경에도 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시위자들은 앉아 자유발언과 함께 "평화시위", "비폭력"을 외치고 있고, 경찰 측도 안정화된 시위군중을 예의주시만 하면서 충돌없이 부동자세로 대치만 하고 있다.
새벽 5시경까지도 시위자들은 자유발언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오전 5시 20분쯤 언론들이 모두 생중계를 중단하였다.
고 백남기 씨가 물대포를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던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1주년을 앞둔 주말인 11월 12일에 민중총궐기 집회가 다시 서울에서 열렸으며, 이때는 공무원 노조와 전교조도 같이 합류해서 더 많은 수의 인원이 서울로 이동해 시위 규모가 더욱 확대됐다.
4. 논란
4.1. 효용성 논란
당시 여러 사이트에서 촛불 평화 시위의 효용성에 의문을 가지는 목소리가 나왔다. 상대가 모든 법을 어기는데 촛불만 키고 앉아있는다고 해서 효과가 있겠냐거나, 최순실의 평소 행실로 보아 상대방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는데 존중이나 하겠냐는 것.
이에 대해서 평화적 시위의 반대 방법을 생각해보자. 지금 한국 사회에서 독일의 바더 마인호프처럼 중동에서 테러리즘을 배워와서 백화점을 불태우고 정부 요인을 납치감금하는 등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할 주체가 있을까? 또 주체가 있다 한들 그러한 방식의 투쟁 방식이 대중들의 장기적인 참여와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한국 사회는 쏠림 현상이 심해서 항상 착각하기 쉽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와 권위주의에 대한 지지가 팽팽하게 맞서는 사회다. 그 사이의 중간층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서 사회 권력의 향배가 결정되는데 권위주의 세력의 경우 강압적인 방법을 사용한다 한들 그것이 권위주의의 속성이기에 쉽게 용인이 되는 반면 민주주의 세력이 폭력적인 방법을 사용할 경우 민주주의의 속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대중이 반감을 가지고 급속히 이탈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폭력시위를 주장하는 세력은 마치 폭력시위로 본때를 보여주거나 시위대가 청와대로 진출해 청와대를 포위하면 단번에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폭력시위로 본때를 보여주면 일반 대중은 폭력시위에 거부감을 가지고 대열에서 이탈할 것이고 청와대를 포위한다 한들 대통령은 헬리콥터를 타고 탈출하면 그만이다. 폭력시위를 사용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폭력으로 진압할 명분을 주는 것일 뿐이다. 폭력 대 폭력으로 맞서면 지휘체제랄 것이 없는 시위대 보다 상하관계가 명확하고 무기 , 교전 전략과 훈련이 우월한 공권력이 압도적으로 강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 역사를 봐도 조선왕조가 망해갈 때조차 반란군이 관군을 이긴 적이 없다. 범위를 넓혀 세계사를 봐도 군부세력이나 용병집단과 같은 전투요원들이 주도하거나 가담한 반란이나 성공한 사례가 있지, 비전투요원인 평민만으로 구성된 반란은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러나 평화적인 시위로 진행되면서 촛불집회의 참가자 수는 계속 늘었고, '''단 6번 만인 2016년 12월 3일 집회에서 230만을 넘겼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 후, 91일간의 변론과 증인 심문이 이어졌다.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마침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만장일치'''로 인용하여 대통령직에서 파면시켰다. 이로써 평화적인 시위로도 국민의 뜻을 정치권에 충분히 반영시킬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보여주었다.
4.2. 경찰에 대한 논란
경찰이 시위대가 신고한 원래의 '정해진 루트를 막았다'고 주장하는 보도가 있다.# 또한, 집회 참가자들은 청계광장→광교→종각→종로2가→인사동→북인사마당까지 1.8㎞를 행진한 뒤 집회를 마무리할 방침이었지만 경찰의 차벽에 막히자 광화문광장으로 우회해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경찰과 3시간여 동안 대치하게 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경찰은 상황상 해산 방송을 지속함에 있어 신속한 시위대 해산을 도모하여아 하는 입장은 상식적일 수 있으나 현 국정전반에 대한 전대미문의 사태로 인해 분노하여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향하여 '캡사이신 사용'을 하겠다거나, 살수차를 배치하고, 경찰 중대병력을 시위대 바로 앞에서 연이어 증강배치 하는 등의 위압적인 상황을 연출하여 시위대가 자극받아 불필요하게 흥분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으며, 다행히 시민들의 폭력시위 자제 움직임과 더불어 경찰의 살수차 배치가 시위대 시야에서 먼 곳에 이루어지고 버스차벽을 세우지는 않는 결정으로 유혈폭력사태로의 악화는 가까스로 막았다고 보여진다.#
이때 해산 방송의 멘트.
또한 폭력적인 '진압'은 없었으나 '질서'와 '도로교통' 확보를 위하여 상당히 거칠게 시위대를 인도로 밀어내는 행위를 하여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었으며, 경찰과 마주보며 시위하는 시민들을 촬영하는 '채증' 행위로 시민에 대하여 일신상의 위협을 가하였다.# 이런 행위들로 미루어 보아 경찰은 향후 하야 집회에 대하여 폭력 시위로 악화시킬 빌미를 준비하는 듯한 모습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종로경찰서장입니다.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도로를 점거하거나 병력을 밀치는 행위는 평화적인 시위의 모습이 아닙니다. 나라를 걱정하는 만큼 시위 집회에 있어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주실 것을 당부합니다.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이런 때일수록 경찰의 안내에 따라 더욱 이성적으로 행동해 주셔야 합니다. 도로 점거를 중단해주실 것을 거듭 당부드립니다.'''[3]
다만 경찰은 시위 다음 날 이례적으로 ‘시위대에 감사드린다’는 입장의 보도자료를 내었고, 현장에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만큼 집회시위에 있어서도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달라”라고 방송하거나 한겨레 기자에게 저지선이 뚫린 것에 대하여 “우리도 사람인데 당연하지 않나”란 말을 했다는 점을 보면 경찰 내부에서도 적어도 10월 30일 시위에 대해선 온건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속마음은 동감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5. 평가
이번 촛불집회에 대한 평가로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태로 인하여 대통령에게 분노한 국민들의 하야 여론이 반영된 것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평생 첫 집회 참가"…거리로 나온 '대통령 하야' 여론 노력하면 성공하는 나라, 그 믿음이 깨졌다
2004년에는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촛불을 들었고 2016년에는 대통령의 하야를 위해 촛불을 들었다.
촛불 집회 당시 SNS에서 많은 이들이 촛불 집회에 참여하겠다며 호응을 보였다. 이날 낮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1위에 '청계광장'이 올랐고, '다음' 실시간 이슈에서는 '촛불집회'가 3위였다. 이를 두고 박근혜 하야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평가도 있다. #
주최측은 매일 촛불을 열면서 11월 5일 11월 5일 하야 촉구 촛불 집회와 11월 12일 11월 12일 민중총궐기를 대규모 촛불집회로 열겠다고 밝혔다.
6. 틀 둘러보기
[1] 둘 다 본사가 광화문에 있다.[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 이전부터 2016년 한국철도공사 전국철도노동조합 총파업으로 관련이 있기에 참여.[3] 그리고 경찰은 캡사이신을 쏘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