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방사우
1. 개요
'''문방사우'''(文房四友)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의 4가지 친구, 즉 곁에 늘 두게 되는 문구들이다. 글을 쓸 때의 네 가지의 보물이라 하여서 '문방사보', 혹은 황제를 보필하던 제후에 빗대어 '문방사후'라고 부르기도 한다. 4가지 문구에 해당하는 한자들을 나열하여 지필묵연(紙筆墨硯)이라고도 한다. 이걸 자주 쓰던 것은 물론 지금이 아닌, 조선시대 선비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지만 말이다.[1]
2. 종류
자세한 설명은 각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3. 역사
중국 사람들은 문인들이 책을 읽는 곳 혹은 쓰는 도구들을 문방이라고 부르면서 특별하게 대우해 왔다. 문방이라는 표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라는 표현은 남당의 이욱(李煜) 황제가 만들게 한 이정규묵, 남당관연, 징심당지, 오백현[2] 의 문구들을 통틀어서 '''남당사보'''(남당의 네 가지 보물)라고 부르고 애지중지한 것이 유래였다. 문인들의 나라라고 불리는 송나라가 세워진 뒤에는 이 문방사우를 아끼는 정도가 더 깊어졌다.[3]
4. 내용
예나 지금이나 글을 쓰는 행위는 인간 사회의 가장 필수적인 것이었고, 컴퓨터는 커녕 잉크조차 없었던 당시 동아시아에서 글쓰기에 가장 효율적인 물건은 먹과 붓이었다. 특히 양반 등 지배계층은 그 특성상 각종 기록들을 많이 남겨야했기 때문에, 자연히 문방사우는 이들의 최상위 중요 아이템이 되었다. 요즘에도 글씨는 사람 성격을 나타낸다 는 말이 있는데, 예전에는 더 심하면 심했을 것이다.[4] 이러다 보니 나중에는 글씨가 아니라 누가누가 더 좋은 문방사우를 가졌나 가지고 쓸데없는 사치나 부리는 폐단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쨌든 이렇듯 항상 글을 쓰는 등의 생활을 하는 것을 보니 친구라 불러도 무리가 없었을 듯하다.
참고로 연적#s-1과 서진은 문방사우에 들어가지 않는다. 있으면 좋고 없더도 그만인 옵션(?) 물품.
[1] 무인버전으로는 무반사호(武班四好)가 있다.[2] 순서대로 먹, 벼루, 종이, 붓이다[3] 이 때는 문방구의 종류도 벼루와 같이 쓰는 물 담는 그릇인 연적, 먹 같은 것이 묻은 붓을 빠는 그릇인 필세, 문진, 낙관 등의 40여 가지가 넘었다. 송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문구류를 사랑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4] 이를 서여기인(書如其人)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