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심리학
1. 개요
''Cultural psychology''
문화 간의 심리학적 차이 및 문화 특정적(culture-specific)인 주제를 연구하는 학문. 기존의 심리학이 지나치게 서구 백인 중심적인 관점에서 연구가 진행되었으며 비서구 문화권에서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보편적인 현상처럼 여겨지는 부분들이 많을 수 있다는 자성이 일어나면서 1970년대경 대두되었다.
문화심리학을 접하는 심리학도들은 생경하거나 내지는 신선한 충격을 받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문화심리학이 거시세계를 다루는 데다 후천적 요인들 및 사회문화적 요인을 강조하기 때문에 인지나 신경 같은 생물심리학적인 주제나 진화론적 조망을 취하는 것을 상당히 안 좋게 보기 때문이다.[1] 이들은 호르몬이나 신경수준의 기작만으로는 방대하고 복잡한 인간의 심리와 문화의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의외로 사회 구성주의적 관점에도 상당히 호의적이다. 전세계 각지의 문화를 파헤치다 보면 경험의 상대성과 주관성에 대해서 뼈저리게 통감하게 되기 때문인 듯.
이 주제로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헤이즐 마커스(H.Markus)란 학자가 인지도가 있으며 남가주 대학교의 다프나 오이저맨(D.Oyserman) 역시 유명한 중진 학자이다. 또한 주요 연구자들 중에 일본인들이 상당히 많은 것이 특징인데 미시건 대학교의 키타야마 시노부(S.Kitayama)가 이 바닥에서 매우 유명하고, 멜버른 대학교의 카시마 요시히사(Y.Kashima), 교토대학의 우치다 유키코(Y.Uchida) 등이 최근 몇 년 사이 잘 나가고 있다. 일본어를 배워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도 이 바닥에선 의외로 나쁜 선택은 아니겠으나, 일반적인 심리학도들처럼 영어권 국가들로 유학을 가더라도 어차피 현지에서 일본인 교수와 영어로 대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차를 다루는 주요 저널로서 《Journal of Cross-Cultural Psychology》(JCCP), 《International Journal of Intercultural Relations》, 《Cross-Cultural Research》, 《Culture & Psychology》 등이 있다. 그 외에 Asian~, International~ 같은 식으로 시작하는 저널들은 토속심리학도 함께 포괄하는데, 아직까지 토속심리학은 주로 내수용(?) 논문거리로 취급되는 듯.
한편 번역서로는 데이빗 마츠모토(D.Matsumoto)의 《문화와 심리학》 도 있는데 이는 학제간 연구의 관점에서 문화심리학의 가치를 조망한 책이다. 그 외에도 국내 역서 중 리처드 니즈벳(R.E.Nisbett)의 《생각의 지도: 동양과 서양, 세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 은 여러 심리학 논문들에서도 적극 인용할 만큼 잘 검증된 학술서이므로 완독의 가치가 있다.
2. 주제
이쪽으로는 일본이 전통적으로 굉장히 많이 연구되어 왔고,[2] 자체적으로도 많이 연구하고 있다. 아마에(甘え)[3] 나 네마와시(根回し),[4]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て前)[5] 등이 대표적인 연구 대상들이었다.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한 토착심리학 연구들도 있으며, 이 주제는 따로 '''한국인 심리학'''이라고도 불린다. 고려대학교 허태균 교수의 《어쩌다 한국인》 같은 문헌들이 대표적. 이쪽에서 연구되는 주제들을 보면 엄청나게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6] 이쯤되면 소위 서구에서 말하는 "보편적인 사람들" 이란 사실상 WEIRD한 유럽계 미국인들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봐도 될 정도.
전통적인 "집단주의 대 개인주의"(IND-COL) 구분법[7] 도 연구하고 있지만, 미국 및 서구권에서 뭔가가 새로 발견되고 이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건 너네 코쟁이들 얘기고!" 라고 반응하거나, 서구에서 "우리 서구와 동아시아 사이에는 이러이러한 차이점이 있다..." 라는 연구를 내도 자기들끼리 "야, 한국인끼리니까 말이지만, 쟤네가 우릴 제대로 이해한 것 같냐?" 라고 쑥덕거리며 까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한중일 3국 사이에도 집단주의 문화는 엄청난 차이가 있고, 미국에서도 의외로 집단주의가 많이 발견되기에[8] 현대에는 상당히 극복이 이루어진 상태이며,[9] 기계적으로 IND-COL 관점을 적용하려 들었다간 오히려 욕먹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에는 명예 문화와 존엄성 문화 및 체면 문화(honor culture, dignity culture & face culture), 단단한 문화와 느슨한 문화(tight culture & loose culture), 고맥락 문화와 저맥락 문화(high-context culture & low-context culture) 등등도 많이 연구되는 중이다.
사회심리학과 함께 이주자 문제 및 문화적응 문제도 연구하고 있으며,[10] 또 다른 고전적인 구분법으로 "고맥락 문화 대 저맥락 문화" 구분법 같은 것도 모두 이 영역이다. 인류학과도 접점이 매우 가까운데, 문화심리학은 그런 문화차에 대해서 심리학의 관점에서 접근한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 정도? 그 외에도 다문화사회에 접어들면서 외국인 노동자 문제나 외국인 교환학생, 이민자들의 문화충격, 국제결혼 및 다문화가정 등도 다루며, 성심리학과 함께 성 소수자 이슈도 다룰 수 있다.
하인츠 딜레마[11] 의 경우 비서구 문화권에 비해 서구 문화권에서, 여성에 비해 남성에게서 훨씬 높은 비율로 최상의 도덕발달 수준에 도달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구체적인 실제 존재하는 타인(concrete other)의 관점에서 벗어나 일반화된 타인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이 서구에서의 도덕원리인데 이는 문화특수적인 현상이다. [12][13]
3. 한국에서
문화심리학만을 자체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실은 국내에 흔치 않다. 국내에 이 분야로 대표적인 권위자로는 2011년에 작고한 중앙대학교 소속의 최상진 교수가 있었으며, 《한국인의 심리학》 은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심리학 분야의 국내 명저 중 하나다. 또한, 인하대학교 김의철 교수는 아시아만의 문화적 배경에 입각한 "토착심리학" 을 주창한 바 있고, 전남대학교의 한규석 교수도 "이제는 남의 빛을 비춰주는 달빛 학문이 아닌, 우리만의 빛을 비추는 햇빛 학문을 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한편 고려대학교의 한성열 교수 등이 저술한 《문화심리학 : 동양인, 서양인, 한국인의 마음》 은 교양서와 전공서의 중간쯤에서 문화심리학이라는 분야 자체를 소개하는 딱딱한 책에 가깝지만, 이 역시 추천할 만한 매우 좋은 책. 우송대학교 한민 교수 또한 각종 한국인만의 구성 개념들을 연구중이다.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로는 베를린자유대학교의 김정운 교수가 있다.
[1]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럴싸하긴 한데, 그걸로 얼마나 많이 설명이 되겠냐?" 같은 냉소에 가깝다. 사회심리학 쪽에도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학자들도 꽤 있다.[2] 이런 연구의 첫 효시로 거론되는 책이 저 유명한 《국화와 칼》 이다.[3] 어리광부리기, 응석부리기, 아양떨기 등의 우호적인 의존성을 지칭.[4] 집단적 의사결정에 있어 사전에 비공식적인 루트로 미리 각자의 의중을 확인해 두는 사전 교섭 단계를 지칭.[5] 각각 실제 속마음과 대외적인 겉마음을 지칭.[6] 예를 들면 "인정"(人情)이나 "울화", "신명", "체면", "팔자", "효심" 같은 것들. 느낌이 딱 오겠지만, 이런 것들은 서구의 주류심리학적 설명으로 풀어내기가 엄청나게 힘들다. 팔자 같은 것은 이를테면 "자기생애사 조망" 같은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좀 캐쥬얼한 예시지만 "귀여움" 도 한국과 일본에서는 엄연히 하나의 문화 특정적인 연구주제가 될 수 있다.[7] 문화인류학자 기어트 호프스테드(G.Hofstede)가 제안하고 문화심리학자 해리 트리안디스(H.C.Triandis)에 의해 심화된 구분법이며, 실제로 이들은 문화심리학의 최종보스 급으로 취급받고 있다.[8] 특히 아프리카계 이주자들이나 히스패닉 쪽 사람들이 그렇다. 이들은 권위적 대가족제를 유지하며 나보다는 우리를 최우선으로 중시하기 때문.[9] e.g., Taras, Sarala, Muchinsky, Kemmelmeier, et al., 2014.[10] Berry의 문화적응 모형이 유명하다.[11] Kohlberg, 1984. '도덕성 발달 이론'[12] Benhabib, 1992[13] 최상진, 한규석, 문화심리학적 연구방법론, <한국심리학회지: 사회 및 성격> 제14권 제2호, 2000.07, 123-144을 참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