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1. 개요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1887 ~ 1948)가 1946년 지은 일본학 연구 도서.
일본학의 개념서로도 일컫어지며 일본학을 전공한다면 필수로 읽어보는 책으로 꼽힌다. 책 내용 자체에는 여러 비판점이 존재하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기에 사상적, 인류학적 배경지식을 쌓기에는 유용한 편이라 현재까지 읽혀지고 있다.
제목의 뜻은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꽃인 국화(菊花)와 반대로 일본인의 양면성을 상징하는 칼(刀)에서 따왔다. 또한 국화는 일본 천황의 상징으로 천황제를 일본인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기에 제목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칼은 사무라이 정신을 부르짖으며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고 왜장도(倭長刀)를 들게 된 무서운 성품이 있다는 이중성을 비유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이를 통해 일본과 일본인의 (일본 바깥 기준으로) 기묘한 문화체계를 저자의 전문적인 분석과 해부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루스 베네딕트는 이 책을 통해 전통적인 일본의 관습이나 사회체계부터 시작해 일본인들의 외적인 행동, 기본적인 사고방식, 생활 예절 및 풍습, 메이지 유신, 패전 후의 일본인 등을 다각도에 걸쳐 세세하게 나누고 심층적으로 연구하였다.
2. 저술배경
제2차 세계 대전 태평양 전쟁 종전 1년 전인 1944년에 미국 정부는 주적 일본에 대해 그동안 너무 무지했으며, 이 전쟁이 끝나더라도 일본을 비롯한 동양 전반에 대해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 위촉으로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인류학 분석을 목적으로 저술을 의뢰하였으며 종전 1년 후인 1946년, 미국에서 공식 발간되었다.
주로 일본과 일본인은 물론 일본 문화와 풍습 등을 다루었으며 이를 통해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해부적인 내용으로 저술해 나갔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일본과 전쟁 중이던 미국이 그나마 말이나 정서가 통하던 독일, 이탈리아군들과 달리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본군들의 정신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의뢰를 했고 그 이후 집필했다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1]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을 단 한번도 방문해본 적이 없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단편적으로 습득한 지식이 아닌 객관적 관찰대상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 저술 도중에 직접 방문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전시상태라 방문할 수 없었다고 베네딕트는 책에 밝히고 있다.
미국이 유독 독일이나 이탈리아 군인들과 달리 일본 군인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딱히 일본만이 별종이었다기보다는 애초에 독일이나 이탈리아는 미국과 비슷한 문화권이지만 일본은 전혀 다른 문화권인 점이 컸다. 물론 나치 독일하의 독일인들이나 일본 제국하의 일본인들이나 둘다 광기에 차 있었긴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극한의 전쟁 상황 속에서는 평범하고 겁에 질린 인간으로 돌아간 독일 군인들과 달리 끝까지 악에 받쳐 싸우던 일본 군인들이 더 충격적이긴 했을 것이다.
3. 판본
대한민국에서는 을유문화사에서 처음 한국어로 번역, 발행하였는데 작가 사후 저작권이 만료되어 다른 여러 출판사에서도 번역 출간되었다.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박규태[2] 번역본은 영어식 표현을 단어 단위로 직역해놓아 번역의 질이 좋지 않다. 각자 판단할 수 있도록 일부 문장을 비교해 둔다.
- 을유문화사본
- 문예출판사본
4. 내용
4.1. 각자의 알맞은 자리
각국이 알맞은 위치를 갖는 것, 만민이 안전과 평화 속에 살기 위한 과업은 가장 위대한 대업이다. 이것은 역사상 실현된 적이 없었다. 이런 목적의 달성은 아직도 요원하다.
국화와 칼, <1940년 일본이 독일, 이탈리아와 체결한 3국 동맹 관련 조서>
대일본제국정부, 독일국정부 및 이탈리아국정부는 전세계 국가들이 '각자의 자리'를 획득하는 것이 항구적인 평화의 필수 조건임을 인정함에 따라 대동아 및 유럽지역에서 각 지역 해당 민족간의 공존, 공영의 열매를 따지기에 충분한 신질서를 건설하고 이를 유지하는 것을 근본의(根本義)없이 우호 지역에서 이 취지에 부합하는 노력에 대해 상호제의하고 협력하기로 결의했으며, (후략)
大日本帝国政府、独逸国政府及び伊太利国政府は万邦をして各其の所を得しむるを以て恒久平和の先決要件なりと認めたるに依り大東亜および欧州の地域に於て各其の地域における当該民族の共存共栄の実をあぐるに足るべき新秩序を建設しかつこれを維持せんことを根本義となし右地域においてこの趣旨に拠れる努力に付き相互に提携しかつ協力することに決意せり、(後略)
루스 베네딕트는 책에서 제2차 세계 대전의 개전 원인을 서양과 일본이 각자 달리 보았다고 분석했으며, 일본 입장에서 태평양 전쟁은 일본이 중요시했던 가치인 '각자의 자리(各其の所)'를 찾는 것에서 유발했음을 꼽았다. 베네딕트는 일본의 이러한 행위를 분석하면서, 일본은 국가 내부는 신분제를 통해 다시 말해, 평민-사무라이-귀족-쇼군-덴노로 이어지는 '자리'의 확립을 통해 궁극적으로 일본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와(和)'를 실현하고자 했음을 언급했다. 따라서 서양의 봉건제나 중국의 관료제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도 적었다.동아시아의 안정을 보장하고 세계 평화를 도모함으로써 모든 국가가 세계에서 적절한 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본 정부의 불변의 정책이다.
It is the immutable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 to insure the stability of East Asia and to promote world peace and thereby to enable all nations to find each its proper place in the world.
일본의 계급신분제는 계층의 이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한 항구적인 지위나 다름없었다. 관직의 인사이동, 봉토의 이동에 따라 얼마든지 위, 아래가 뒤바뀔 수 있거나 다른 상사를 모실 수 있었던 관료제 혹은 서양 봉건제와 달리 일본의 봉건제는 주군에게 철저하게 예속되어 있는 형태였고 이는 일본인에게 있어서 '자리'란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 영구적인 신분이자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받아들여져 왔다는게 베네딕트의 분석이다. 그리고 모든 일본인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 비로소 '와(和)'가 실현된다고 보는 것이 일본의 기초 사상이라는 말 또한 덧붙였다.
베네딕트는 천황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사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천황은 실권을 잃고 허수아비로 전락하지만, 밑의 사람이 이 '자리'를 침범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막부와 쇼군 제도는 이 자리를 지키면서 현실적인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일본만의 방침이라고 분석했다.
따라서 일본은 기존 동양의 조공-책봉 체계 아래에서는 절대 넘볼 수 없는 중화의 질서에 순응하였지만, 개화기 이후 기존 자신이 머물던 세계의 질서가 개편되자 '일본'이 '신질서'에 걸맞는 지위를 차지하고자 하였으며 그것을 행동으로 표출한 것이 바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이라고 보았다.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에 먼저 편승한 일본은 아시아에서 '형'의 대접을 받고자 했다는게 베네딕트의 주장이다. 일본 입장에서 '자리'란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필사적으로 그 위치를 차지하고자 했으며, 일제의 식민 통치가 다른 서양 열강의 제국주의 아래의 식민지와 성격이 달랐던 것은 일본 스스로가 식민지 지배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도 있지만 이러한 사상에 기초한 것이 더 크다고 베네딕트는 보았다.일본은 그들의 형이며, 그들은 일본의 아우이다. 이 사실을 점령 지역의 주민에게 철저히 인지시켜야 한다. 주민을 지나치게 배려하면, 그들이 일본의 친절에 편승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통치에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
국화와 칼, 일본의 식민통치방침을 인용하면서
5. 평가
이 책의 저자인 루스 베네딕트는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일본을 직접 방문했다는 기록이 없다'''. 대신 미국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이나 일본에 대해 정보통을 갖고 있다는 미국인들의 증언과 일화, 문헌조사 등을 토대로 책을 저술했으며, 일본을 직접 방문해서 일본의 내막을 알기보다는 일본에 가지 않고 간접적으로 목격하는 것이 더 엄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시켜 주고 있다.[3] 시대적 한계와 간접 체험으로만 이루어진 조사 방법으로 인해 현대에는 여러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본 문화에 대한 훌륭한 연구서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인들에게도 꽤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을 정도이다.
5.1. 비판
물론 다음과 같은 비판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4] 우선 역사적 시각이 결여되어 있는데 에도 시대나 메이지 시대에 통용되었지만 쇼와 시대에는 일본 사회에서 통용되지 않았던 가치관이나 규범이 많은데 국화와 칼은 이를 고려하지 않으며 예를 들어 기리스테고멘(切り捨て御免)이 메이지 시대 이후 사라졌다는 언급이 없다.
직업, 신분, 세대에 상관없이 일본인들을 모두 동질적인 존재로 엮어 일반화하고, 밥 먹고 잠자는 습관 개인의 다양한 습관일 수도 있는 것들을 함부로 일반화하여 결국 서양인과 다른 '이상한' 일본인을 강조하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즉, 전형적인 '외집단 동질성 편향'을 범하고 있다는 것. 사실 국화와 칼은 별다른 통계 수치를 제시하지 않고 단순히 '사례'들만 열거하는 식으로 일본인을 해설하고 있다. 이러한 베네딕트의 방식대로면 미국인은 전부 총기를 좋아하고 진취적이고 개척자 정신을 품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고, 한국인은 음주가무를 즐기고 컴퓨터 게임을 잘하며 자기주장이 강한 민족으로 만들 수 있다. 이게 단순히 가십거리에 그친다면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정식으로 이론을 펼치고 있는 학문서라는 점이 문제다. 게다가 한국의 일부 역사학계는 이걸 정설로 수용하는 주장이 있어 서양이 동양에 가지는 환상처럼 허구의 이미지를 확인사살한다. 일본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싶다면 일본에서 오래 산 사람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책이 국화와 칼보다 더 정확한 고증을 기반으로 한다
책 자체가 이제는 구식이라는 비판도 있다. 일단 국화와 칼은 저술된지 70년이 넘은 책이고 쇼와 시대와 일제 군부 통치시기를 관통하던 시기에 저술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루스 베네딕트가 바라보던 당시의 일본은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자국민조차 '비국민' 취급을 하고 군부에 의한 강압과 독재가 이어지던 시기였다. 헤이세이 시대의 '일본인'과 레이와 시대의 '일본인'은 또 다르며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고 유지되는 점도 있겠지만 달라진 점 또한 분명 존재한다. 그게 없다면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 수많은 나라들의 세대갈등 같은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5]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당대 일본의 사상을 이해하고 그때와 지금은 무엇이 달라졌나 교차검증하는 용도로 쓰는게 좋다는 주장도 있다.
6. 여담
이원복이 월간중앙에 연재했던 현대문명진단에 '고전 만해(漫解)' 시리즈 중 두번째로 이 국화와 칼이 다루어지기도 했으며, 단행본으로 이 책을 다룬 학습만화로는 예림당의 Why? 인문고전 시리즈가 있다.
SBS에서 1995년 광복절 50주년 기념 특집 방영된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데, 이 책과 관련이 있다.링크
뒷면에 이광규 명예교수가 쓴 소개문이 있는데 책내용과 전혀 맞지 않은것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