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모토노 요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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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源 賴家 (みなもと の よりいえ)'''
1. 개요
가마쿠라 막부의 제2대 쇼군. 부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를 롤모델로 삼아 강력한 쇼군 권력을 행사하려 하였으나, 유력 고케닌들의 반발에 부딪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1203년에 이르러 쇼군 자리에서 내쫓기고 슈젠사에 유폐되었다. 이듬해 외삼촌들이 보낸 자객들에게 암살됐다.
2. 생애
어린 시절부터 차기 쇼군으로서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요리이에는 시종일관 강력한 쇼군으로 군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180년대의 내란기를 거치며 잔뼈가 굵은 유력 고케닌[1] 들은 혈기왕성한 청년 쇼군의 독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호조 도키마사를 비롯한 유력 고케닌 13인은 요리이에가 가장권인 가독을 승계한 후 불과 몇개월 만에 쇼군의 독재를 부정하는 합의제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이를 '''13인의 합의제(十三人の合議制)'''라고 한다.
이에 대해 요리이에는 친위세력을 육성하며 대응하려 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1200년에는 유력 고케닌이자 심복이었던 카지와라 카게토키를 잃어 정치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제 요리이에의 권력을 지탱할 만한 우군은 외척 히키 가문 정도가 남은 상태였는데, 1203년에 이르러 그마저 몰락하게 된다. 그 빌미를 제공한 것은 다름 아닌 요리이에 자신이었다. 1203년, 요리이에는 돌연 중태에 빠지고 만다. 이에 막부 내에서는 쇼군 가문의 외척인 호조 가문과 히키 가문을 중심으로 쇼군 가독의 승계와 가산의 분배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히키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요리이에의 적자 이치만이 가독을 승계하고, 가산은 이치만, 그리고 요리이에의 친동생인 센만(훗날의 미나모토노 사네토모)이 양분하게 되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호조 도키마사는 히키 가문을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유력 고케닌과 막부 관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사실상 쿠데타를 일으켰다. 호조 가문의 쿠데타 소식을 접한 요리이에는 와다 요시모리 등에게 진압을 명하지만, 쇼군으로서의 권력과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진 상태. 요리이에는 쇼군직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으며, 이윽고 슈젠지(修禪寺)에 유폐되었다가 1204년 호조 가문에 의해 살해된다.
요리이에에게 후지와라노 요리츠네[2] 에게 시집간 딸 다케노 고쇼(竹御所)가 있었으나 기어코 난산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로써 승려로 출가했던 구교는 삼촌인 사네토모를 암살하는 사건을 일으키고 처형당했고(다른 아들들도 차례대로 제거되었다) 사네토모에게도 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사네토모를 끝으로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후손은 단절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