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쓰비시 상사
1. 개요
일본 미쓰비시그룹의 종합상사. 일본 5대상사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최대규모이다. 5대상사란 미쓰비시상사, 미쓰이물산(三井物産), 이토추상사(伊藤忠商事), 스미토모상사(住友商事), 마루베니(丸紅)를 일컫는다. 더불어 미쓰비시은행, 미쓰비시 중공업과 더불어 미쓰비시그룹의 3대 중핵 회사.
오미야 사건 이후, 이와사키 야타로에 의해 인수된 츠쿠모상사가 분사되면서 생겨났다.[3] 미츠비시중공업과 미츠비시 자동차의 무역중개업을 메인으로 하였으나, 1970년대부터 자원 개발(천연가스, 석탄)을 시작하고, 1980년대에는 식품업(미츠비시식품) 체인에 진출하여 식품유통업도 하였고, 1990년대에는 편의점체인 로손을 통한 소매업에도 개척하는 등 수익 증대를 꾀하고 있다. 미츠비시금요회(Mitsubishi Friday Conference), 미츠비시공보위원회의 회원기업이다.
2019년 4월 1일 부로, 종래의 7개 사업그룹체제를 세분화하여 10개 사업그룹으로 재편되었다. 상세 그룹명은 하기 본사 항목을 참조.
2. 본사
본점 등기주소. 코퍼레이트 스태프부문, 천연가스그룹, 종합소재그룹, 금속자원그룹이 입주해 있으며, 사장단을 비롯한 각 그룹 임원(그룹CEO)들은 본 빌딩에 상주한다.
감사부, 석유・화학그룹, 산업인프라그룹, 자동차・모빌리티그룹, 식품산업그룹, 컨슈머산업그룹, 전력솔루션그룹, 복합도시개발그룹이 입주해 있다. 본 빌딩의 저층부는 일본제철이 입점해 있다.
3. 역사
츠쿠모상사 분사 이후에는 영업부로써, 제1차세계대전이라는 특수를 맞으면서, 취급하는 물화의 수를 비약적으로 다양화시키고, 이와사키 코야타가 확립한 미츠비시 그룹의 3대 경영 이념에 따라 발전을 거듭해 나간다. 그리고 1918년 완전 분사되어 미츠비시상사가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GHQ의 재벌 및 생산시설 해체에 따라, 미츠이물산과 함께 해체크리를 맞게 되어 174개의 회사로 조각이 난다. 이후 일본이 군정에서 벗어남에 따라, 구재벌계기업의 활동제한이 완화되어, 후지상사, 동경무역, 동서교역 3개사로 재집약에 성공하였다. 1954년에는 옛 미츠비시상사의 회계를 맡았던 광화실업이 사명을 다시 미츠비시상사로 바꾸고 3개사를 인수, 한국 중공업 중개라는 엄청난 수주를 따내면서 부활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다.
4. 한국과의 관계
'''미츠비시 그룹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대한민국 시장을 개척'''하고 있으며 현재 한국 지사는 100% 자회사로 운영하고 있다. 일단 한일기본조약 직후, 1967년 미츠비시은행(현 미츠비시 UFJ 은행) 서울지점을 최초의 일본계 은행으로서 중개 개설을 필두로 한다. 아래의 모든 일이 있기 전 미츠비시상사의 거래량은 1963년 기준 1조 엔 대에 불과했으나, 4 년만에 두배로 뻥튀기, 6 년만에 세 배, 1970년에는 4조 엔에 달했다. '''현대의 미츠비시상사는 한국 중공업 중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4.1. 서울지하철공사, 포항제철 수주 사업
박정희 정부 시절, 후지노 주지로 사장 시절에는 서울지하철공사 지하철 건설, 포항제철 건설 등에 협력하였으며, 한국의 경공업 상품을 사다가 해외에 팔아 주는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특히, 포항제철 지원 사업은 미츠비시 그룹내의 반대가 극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일본제철과의 지원 계약 등을 따 내어 기술을 제공했다.
이는 대한민국 중공업계를 일본의 하청화하여 대미 수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함[4] 임이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한국 정부와는 민선 박정희 당선 선거자금, 한일기본조약, 서울지하철공사 사업, 포항제철 사업 등에 모종의 뒷거래가 있음을 미국 CIA 에서도 발표하였다. 한일기본조약이 타결되기 전부터 미츠비시상사는 한국 군부에 정치자금을 계속해서 제공해 왔다. 이는 전 영진홍산 사장 박제욱의 중개로 가능했던 일로, “1963년 대선을 앞두고 미츠비시로부터 100만달러를 빌려 대선자금으로 사용했다” 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때 빌린 차관은 후일 당안리 발전소 프로젝트를 미츠비시상사에 수주해 주는 걸로 갚았다고 한다. 실제 선거도 1.5퍼 차이의 박빙이었고. 이는 일본 정계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되어, 1977년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츠비시상사에 대한 추궁이 들어갔다. 서울지하철 공사가 엔으로 환산하면 185억엔에 육박할 정도이니, 여기서 떼 먹는 리베이트의 액수만 해도 상당할 듯. 실제 당시 사장 타나베 분이치로는 7%의 중개료 중 실제 중개로로 챙긴 건 2%에 불과하며 나머지 5%는 한국 군부에 대한 정치자금이었다고 위원회에서 소환되어 발언했었다.
이 모든 것은 박 전 대통령과 후지노 전 사장의 개인적인 친분에서 비롯된 일이며 이 모든 친목을 도모한 사람은 전 영진홍산의 사장 박제욱[5] 이다.
4.2. 현대자동차, 미츠비시 자동차 기술제휴 중개 사업
4.3. 당안리 발전소 사업
4.4. 대한 청구권 관련
현재 미츠비시상사는 제국주의 시절 조선 거주자들의 미츠비시중공업에의 징용 중개는 이미 한일기본조약에서의 청구권 협정으로 보상이 완료되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중이다.
5. 한국 이외의 사업
5.1. 필리핀 병원진출 중개
5.2. 멕시코 만 해저유전개발
닛폰유센, 로열 더치 쉘 과 합작.
6. 주요 자회사
이상 8개사. (2015년 3월 31일)
7. 관계사
- 마스다제분소(2008)
- 칸로(2216)
- 롯코버터(2266)
- 이토햄(2284)
- 카도야제유(2612)
- 시그마크시스(6088)
- 치요다화공건설(6366)
- 히말라야(7514)
- 후루야금속(7826)
- 카녹스(8076)
- 명화산업(8103)
- 라이프 코퍼레이션(8194)
- 마루이치산업(8228)
- 미츠비시UFJ리스(8593)
- AGP(9377)
7.1. 미츠비시상사가 대주주인 출자회사
7.2. 미츠비시상사가 주요 주주인 출자회사
- WOWOW
- 동경산업(東京産業)
- 북월제련(北海製罐/トーモクグループ)
- 세기토큐공업(世紀東急工業)
- JX홀딩즈(구 신일본석유)
- 미츠비시광석운송(三菱鉱石輸送)
- 대일본도료(大日本塗料)
- RF라디오(アール・エフ・ラジオ日本)
- 닛세이식품(日清食品ホールディングス)
- 이로짓(イー・ロジット)
- 제트스타 재팬(ジェットスター・ジャパン)
- 일본 타타(日本タタ・コンサルタンシー・サービシズ)
- 일본레지본(日本レヂボン)
- 염수항제당(塩水港精糖)
- 서니메이즈(サニーメイズ)
- 메모리테크(メモリーテック)
8. 여담
- 2019년에 실시한 한 앙케이트에 의하면, 도쿄대학 및 교토대학 학부생이 입사하기를 희망하는 기업 랭킹에 골드만삭스나 맥킨지 등의 쟁쟁한 외자계 금융을 제치고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상세 랭킹은 하기 참조.
1위 미쓰비시상사 (종합상사)
2위 골드만삭스 (투자은행)
3위 맥킨지 (컨설팅)
4위 덴쓰 (광고대행사)
5위 이토츄상사 (종합상사)
교토대
1위 미쓰비시상사 (종합상사)
2위 리크루트 (인재관련)
3위 미쓰이물산 (종합상사)
4위 보스톤 컨설팅 (컨설팅)
5위 맥킨지 (컨설팅)
- 엄청난 양의 출장 비중에 알맞게도, 일본내 기업 임직원 급여 평균이 가장 높은 회사였던 적이 있다. 한국 지사 대졸 초임은 2013년 기준 4천만 원이라고 알린 바 있다.
- 평균급여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이며, 사회적 인식, 명망 또한 높은 업계이다. 2019년 현재 5대 종합상사의 평균급여는 다음과 같다. 미쓰비시상사 1,607만엔, 이토추상사 1,520만엔, 미쓰이물산 1,430만엔, 마루베니 1,389만엔, 스미토모상사 1,389만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