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크 축구 국가대표팀
1. 개요
1. 개요
바스크 지역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과거 스페인에서 독립된 역사를 갖고 있던 지역으로 독립에 대한 설이 끊이지 않는 지역이다. 이에 따라 지역 축구 대표팀도 발달하여 1910년대부터 지역의 대표팀을 만들고자 시도해왔다. 이 당시 최초의 시도는 북부 지역 대표팀을 만든 것이다. 당시 지리적으로 인접한 칸타브리아 지역과 함께 북부라고 불려왔기 때문에 스페인 지역을 크게 4개로 나누어 운영하려던 스페인 축구 협회의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당시 항구를 통해 잉글랜드와의 교류가 활발한 지역이던 이 북부 팀은 비슷한 해양 중심 지역이었던 카탈루냐 대표팀에 압도적인 승률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지역 최초의 축구 팀인 아틀레틱 클루브와 그 뒤를 잇는 팀인 레알 소시에다드와 데포르티보 알라베스, 레알 우니온, 아레나스 클루브, 오사수나, 바라칼도, 세스타오 등도 지역 대표팀을 만드려던 시도 끝에 만들어진 팀이다. 그러나, 이들 팀은 당시 빌바오, 산 세바스티안, 비토리아라는 중심 도시 혹은 이룬, 게초, 바라칼도, 세스타오, 에이바르 등 소도시를 대표하는 것으로 역할이 한정되어 왔다.
결국 이러한 시도는 스페인 내전의 격풍 속에서 더욱 활성화되어, 1930년 대표팀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들은 비슷한 시기 생겨난 칸타브리아 축구 국가 대표팀과 첫 번째 경기를 치르게 된다. 그러나 스페인 내전에서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군부가 게르니카 등 바스크 지역을 파괴하고 승리를 거두면서 바스크 팀은 명맥이 끊어지게 된다. 프랑코와 군부의 시대였던 30여년간 바스크 팀은 단 두 차례 소집된다. 이룬의 레알 우니온[1] 의 50주년 기념행사 때와 국제 심판이던 후아니토 가르데아사발의 헌정 경기였다.
1975년 독재자 프랑코 사후, 1978년부터 다시 바스크 대표팀이 소집되어 유럽 국가들과 친선경기를 치르기 시작했고, 바스크 대표팀의 복귀전이던 소련과의 경기에서 0-0으로 비기는 등 여전히 상당한 전력을 보여준더. 1980년 이후 다시 10년간 소집되지 않다가 1990년 루마니아와 다시 경기를 가졌고, 1993년부터는 이후 매년, 혹은 격년으로 정기적으로 소집되어 1경기씩 다른 나라 국가대표와 평가전을 치른다.
하지만 여전히 FIFA 미가맹 비승인 팀으로 남아 있다.[2] 협회에서는 영국처럼 지역별로 협회를 나누는 식으로 시도해보고 있는 모양인데, 스페인 축구협회는 반대하는 모양새. 사실 바스크 팀이 FIFA 가입 승인되면, 카탈루냐나 칸타브리아, 갈리시아, 안달루시아 등지에서도 축구 협회 분리를 시도할 것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도 요원해 보인다.
카탈루냐와 더불어 다른 나라 국가대표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카탈루냐가 바르셀로나 중심의 멤버라면, 여기는 빌바오와 소시에다드 중심 멤버에 레가네스 선수들이 일부 합류한 형태로, 기본적으로 그냥 멤버가 좋다. 1997년에는 유고슬라비아를 3-1로, 이듬해에는 우루과이를 5-1로 또 다음해에는 나이지리아를 5-1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줬고, 2010년대에는 초청하는 국대 네임밸류가 많이 약해지긴 했으나 그래도 튀니지를 3-1로, 베네수엘라를 4-2로 이기며 여전한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