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시아

 



1. 개요
2. 역사
2.1. 고대~서고트 왕국
2.3. 갈리시아 왕국~카스티야 왕국 시대
3. 행정 구역
4. 스포츠
5. 산업
6. 언어
7. 정치
8. 분리주의

갈리시아 (스페인)
Galicia


'''면적'''
29,574km²
'''인구'''
2,698,875명
'''인구밀도'''
91명/km²
[image]
갈리시아의 주기. 갈리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성인 중 하나인 성 사도 안드레아스의 십자가인 파란 대각선이 그려져 있고, 간략화한 주기에는 안의 문장이 없고 대각선만 그어놓은 경우도 있다. 안의 문장은 성작 위의 성체를 나타내고 주변에는 7개의 은색 십자가가 나타나 있는 형태. 13세기부터 갈리시아의 국기에는 성작이 나와 있는데 중세 스페인어로 성작의 Calice라는 발음이 갈리시아의 Galice와 발음이 유사해서 상징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1. 개요


스페인 서북부의 자치 지방. 남쪽은 포르투갈과의 국경에 맞닿아 있고 동쪽에는 아스투리아스, 카스티야 이 레온과 맞닿아 있다. 해안선이 포르투갈보다는 구불구불한 편인데, 리아스(Rías)식 해안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유래했다.
칸타브리아, 아스투리아스와 함께 스페인에서 가장 서늘하고 습한 지역으로, 최대 도시인 비고(Vigo)는 연 강수량 1,909mm에 12월 강수량만 300mm에 달하지만 눈이 오는 경우는 드물다. 연교차도 적고 타 지방보다 전체적으로 서늘한 편인데 일평균기온이 7~8월에 19~21도로 시원하지만, 1~2월에도 10~12도로 온난하다.
8월 최고 평균 기온 23도, 2월 최저 평균 기온 4.3도이기에, 이슬람 세력이 이 지역까지 치고 올라오지 못했고 그 결과 레콩키스타를 일으키는 지역들 중 하나가 된 이유 가운데 하나를 여기에서 찾기도 한다.
[image]
옥수수를 저장하는 '오레오(Hórreo)'라는 건물이 이 지역의 상징 중 하나인데, 건물을 높이 지은 것은 쥐가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습기로 인해 옥수수가 썩는 것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돌 기둥 몇 개로 띄운 구조이기 때문에 크기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성인 한 사람이 겨우 들락날락 하는 정도이나, 수가 많아서 가는 곳마다 볼 수 있다. 지붕에는 십자가를 붙이는 관습이 있어서 조그마한 성당으로 착각하기 쉬운데, 지역의 특색으로 밀고 있는지 관광지의 기념품 샵에서는 모형도 판다.
스페인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프랑코 정권의 온건 인사들이 창립한 인민당의 전 당수 마누엘 프라가, 쿠바피델 카스트로의 가족도 갈리시아 출신이며, 현지에서는 워낙 촌동네라 스페인과 세계의 주목을 받고 싶어서 예비 독재자들을 키운다는 농담을 하기도 한다.

2. 역사



2.1. 고대~서고트 왕국


히스파니아를 정벌한 카르타고의 하밀카르 바르카에 의해 복속되었지만 포에니 전쟁으로 히스파니아가 로마 제국의 세력권에 들어온 이후 오랫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할 무렵 수에비족에게 점령되어 수에비 왕국의 근거지가 되었고, 수에비 왕국이 히스파니아에서 영향력을 확장시키는 데 탄탄한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수에비 왕국은 다시 서고트 왕국에게 멸망당했으며, 이 무렵 기존의 아리우스파 그리스도교가 몰락하고 가톨릭이 전파되는 한편 잉글랜드, 웨일스 지방의 켈트 족이 앵글로 색슨 족으로부터 피해 갈리시아 북부에 상륙하기도 했다. 이후 서고트 왕국의 신하국으로서 갈리시아 왕국이 잠시 부활하기도 한다.

2.2. 아스투리아스 왕국~레온 왕국




서고트 왕국이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멸망한 뒤 무슬림에게서 가톨릭 세력을 수호하려는 운동인 레콩키스타가 일어나게 되고, 갈리시아는 이 운동의 중심이 된 아스투리아스 왕국에 편입된다. 알폰소 3세 대왕의 세 아들에게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레온을 분할 상속하는 과정에서 독립된 왕국이 되기도 하지만 오르도뇨 2세부터 알폰소 4세까지의 20여년에 그쳤고 이후 갈리시아를 기반으로 베르무도 2세에 의해서 잠시 독립국이 되기도 하지만 베르무도 2세 자신이 갈리시아, 아스투리아스, 레온을 통합하자 다시 레온 왕국을 유지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에 큰 의미는 없다.

2.3. 갈리시아 왕국~카스티야 왕국 시대


레온 왕국은 페르난도 1세 이후 카스티야와 사실상 합쳐졌으며, 페르난도 1세의 상속 과정에서 포르투갈과 함께 가르시아 2세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페르난도 1세가 죽자 포르투갈 공작 누누 멘데스가 갈리시아의 왕을 칭하며 반란을 일으킨다. 이 반란은 진압되었지만 이 과정에서 국력을 소진한 갈리시아는 가르시아 2세의 큰형인 카스티야 왕 산초 2세에게 공격을 받아 카스티야에 흡수당한다. 이 때 카스티야 측에서 활약한 영웅이 엘 시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산초 2세가 암살당하고 원래 레온의 왕이었던 둘째 알폰소 6세가 즉위하게 된다.
그러나 이 전후에 포르투갈의 독립 여론은 점점 강해져 갔고 결국 알폰소 6세 사후 포르투갈은 갈리시아에서 떨어져 나가 반란을 일으켜 독립하게 된다. 이후 갈리시아는 카스티야 왕국의 일부로 확정되었고, 갈리시아 왕 작위는 카스티야 왕에게 대대로 계승되는 명예직에 가까운 왕위가 되었다가 1833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3. 행정 구역


크게 네 지역으로 나뉘는데 서북의 라 코루냐, 동북의 루고, 동남의 오렌세, 서남의 폰테베드라가 그것이다. 지역의 주도는 갈리시아 왕국 시대의 중심 도시였던 라 코루냐의 산티아고이며, 가장 큰 도시는 폰테베드라의 비고다. 인구의 대다수는 서부의 라 코루냐와 폰테베드라에 몰려 있는 편이며, 특히 라 코루냐와 비고는 가장 큰 도시로 서로 경쟁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민자들이 많은 것도 특징인데, 아르헨티나 출신이 상당히 많은 편.

4. 스포츠


가장 유명한 것은 축구로, 라 코루냐의 RC 데포르티보 데 라 코루냐와 비고의 RC 셀타 데 비고는 서로 간에 경쟁이 매우 강렬하여 갈리시아 더비라고 불린다. 산티아고의 SD 콤포스텔라와 라 코루냐의 페롤을 연고지로 두는 라싱 데 페롤 팀도 지역 인기 구단이었지만 현재는 4부 리그까지 추락한 상태이며, 최근에는 세군다 리가에서 성장한 CD 루고가 저 둘을 잇는 3번째 팀으로 지지를 얻고 있다. 카탈루냐나 바스크 지역과 더불어 갈리시아에도 지역 협회가 있어서 지역 대표팀을 선발한다.
라 코루냐가 연고지인 롤러 하키팀 HC Liceo도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데, 특히 코루냐의 축구 클럽 데포르티보가 암흑기에 빠져 있었던 1980년대에는 전통적으로 롤러 하키의 강호였던 카탈루냐를 누르고 스페인 컵, 스페인 리그에서 우승한 것은 물론 유럽 선수권, 세계 선수권까지 석권했다.

5. 산업


프란시스코 프랑코독재 기간 동안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 프랑코 사후부터 자동차 산업이 조금씩 발달했으며, 비고는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자동차가 많이 생산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이외에는 목재, 어업 등이 주요 산업.
주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엘 카미노 데 산티아고 순례의 종착지로 유명하며, 순례길의 최종 구간이 모두 갈리시아 지방에 속해 있어 자치 지방 정부 차원에서 관광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이를 홍보하기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되고 있다.

6. 언어


스페인어갈리시아어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고대에는 켈트어의 일종인 갈라이키아어(Gallaecian language)도 쓰였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는 동안 라틴어로 대체되었으며, 갈리시아어는 라틴어의 후계 언어다. 몇몇 범켈트주의자들은 갈리시아를 켈트 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보기도 하지만 범켈트주의 국제 단체인 켈트 연맹(Celtic League)에서는 현재 켈트계 언어가 사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다.

7. 정치



대표적인 인민당의 텃밭이다. 그래도 사회노동당도 힘을 쓰는 편이다.

8. 분리주의


스페인은 각지의 분리주의 경향이 꽤나 강한 나라이며, 이곳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일각에서는 포르투갈어갈리시아어가 한 계통임을 근거로 갈리시아를 스페인에서 떼어내어 포르투갈리시아(포르투갈+갈리시아)의 새로운 국가를 만들자는 주장(reintegracionismo)도 있으며, 2000년대에 활동한 분리주의단체 레시스텐시아 갈레가가 정부나 금융기관을 노려서 산발적으로 활동한 적도 있었다.[1]
그러나 지방 민족주의가 강력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카탈루냐나 바스크 지방과 달리 갈리시아는 독자적인 언어, 문화 공동체로서의 집단 정체성은 강하지만 정치적 분리주의는 미약한 편이다. 저 두 지방의 지역주의는 탄탄한 공업에 자유주의적, 국민주의적 지식인들을 토대로 발전해 온 반면 이쪽은 예나 지금이나 목가적인 어촌 중심에 개발도 별로 안 되었고 산티아고 순례지가 위치한 곳으로 정치적 근대주의와 소원한 지방이기 때문. 또 스페인 중앙 국민주의자들이 추종하는 국민가톨릭주의(nacionalcatolicismo) 사관 내에 산티아고 마타모로스 신앙과 성지 같은 종교적 커넥션이 있어서 갈리시아 지방의 지분이 어느 정도 보장이 되니 토착 엘리트들로서는 굳이 독자적 지방 국민주의를 주장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