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석(독립운동가)

 


1. 구미시 출신 독립운동가, 朴順石
2. 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朴舜錫


1. 구미시 출신 독립운동가, 朴順石


성명
박순석(朴順石)
본관
밀양 박씨
생몰
1895년 6월 29일 ~ 1958년 5월 28일[1]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 진평동
(현 경상북도 구미시 진평동)[2]
추서
대통령표창
박순석(朴順石)은 1895년 6월 29일 경상북도 대구부 인동군 읍내면(현 구미시) 진평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2일 칠곡군 인동면 진평리에서 이상백·이내성 등과 함께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만들어 독립만세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한 후 3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을 하고, 2차로 3월 14일에는 약목면 장날에 2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다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조용히 지내다가 8.15 광복을 맞았으며, 1958년 5월 28일 별세했다.
199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2. 무산군 출신 독립운동가, 朴舜錫


성명
박순석(朴舜錫)
본관
밀양 박씨
생몰
? ~ ?
출생지
함경북도 무산군 동면 강선동[3][4]
추서
대통령표창
박순석(朴舜錫)은 함경북도 무산군 동면 강선동 출신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한 생년월일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이후 간도로 이주하여 화룡현(현 지린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허룽시) 부숭(敷崇)에 살았다.
그는 1920년 음력 2월 길림성 화룡현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고, 같은 해 4월 20일경 조선독립단 단원 한창준 등과 함께 무산군 서하면에 거주하는 박제남의 집을 방문하여 서하면 면민들에게 7월 10일까지 군자금 제공을 권유하였다가 이 사실이 발각되어 일제 관헌에 체포되었다.
1921년 1월 2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혐의로 징역 6개월형을 언도받고 곧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3월 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취하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201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다.
[1] 5월 8일에 별세했다는 기록도 있다.#[2] 인근의 옥계동과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김성윤·박근술·박명언·박명출·박봉술·박삼봉·이내성·이범성·이상백·이영래·이윤약도 이 마을 출신이다.[3] 구한말 무산군 하동면 일동·이동·삼동·사동·오동·육동·칠동·팔동·구동 → 1914년 무산군 동면 강선동 → 1949년 무산군 동면 강선리 →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무산군 강선리 → 1977년 11월 청진직할시 무산군 강선리 → 1979년 청진직할시 무산군 강선로동자구 → 1985년 7월 함경북도 무산군 강선로동자구.[4] 인근의 풍산리·차유리와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