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박태규
朴泰圭'''

[image]
<color=#fff><colbgcolor=#0047a0> '''출생'''
1897년 4월 8일
경상도 고성현 춘원면 동문동
(현 경상남도 통영시 태평동)[1]
<color=#fff> '''사망'''
1948년 8월 3일
경상남도 통영군
<color=#fff> '''본관'''
밀양 박씨
<color=#fff>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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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0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태규는 1897년 4월 8일 경상도 고성현 춘원면 동문동](현 경상남도 통영시 태평동)에서 태어났다. 1926년과 1927년 경상남도 평의원인 김기정(金淇正)이 각도 평의원회 석상에서 한국인 교육의 폐지와 우리말 통역의 철폐를 주장했다. 이 소식을 접한 김원석(金元錫)은 1927년 3월 매족상습범(賣族常習犯) 김기정을 징토하여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내용의 선전전단 500매를 인쇄하여 경남 통영읍(統營邑)의 주민들에게 배포하였다.
이에 호응한 박태규는 박봉삼, 박태근 등이 3월 25일 소집한 조사보고회에 참여해 기정의 좌상을 성토, 징계하는 시민대회의 개최를 결의하였다. 이후 그는 집행위원 선정을 위한 전형위원(銓衡委員)에 선정되었다.
이 일로 체포된 그는 1년여의 옥고를 치른 끝에 1928년 5월 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4월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이후 통영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8년 8월 3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박태규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1] 인근의 도천동·동호동·문화동·명정동·정량동과 함께 밀양 박씨 집성촌이다. 시인 박경리의 본적이 이 마을이며, 독립유공자 박영근·박성일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