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천

 

盤浦川
서울특별시 서초구 우면산에서 발원하여 서울 한강 수역 중심부인 동작역 부근에서 한강과 합류하는 하천. 현재 공식적인 시점은 강남 뉴욕제과 사거리 일대로, 지금의 신논현역 중앙차로 버스 정류장 근처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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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천 복개구간
우면산으로부터 우성아파트 사거리까지는 하천의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는데, 이 구간은 하천의 규모가 작아서 기존 하천 선형을 무시하고 골목길을 따라 큰 우수관을 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성아파트 사거리 구간부터 하천 복개도로의 모양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성아파트 사거리부터 강남역 사거리까지의 강남대로 뒤편의 좀 더 넓은 배후도로가 바로 반포천 복개도로다.
그러다가 강남역을 지나 구 뉴욕제과 뒤편의 사거리에 이르러서 갑자기 서쪽으로 좌회전을 한다. 지도에서 보면 이쪽 사거리의 선형이 조금 기형적인 것을 볼 수 있는데, 반포천이 갑자기 좌회전을 하기 때문. 이후 서초초등학교와 서일중학교 옆을 지나간 뒤 서일중학교에서 명달공원쪽으로 꺾어서 경부고속도로를 비스듬히 횡단한다. 이후 고무래로를 따라 반포고등학교와 서원초등학교 앞을 지나가는데, 여기서부터는 확실히 하천의 선형이 나온다. 이후 서초중앙로를 횡단한 뒤 다시 북쪽으로 꺾어서 서초중앙로와 나란히 지나간 뒤, 사평로로 나와 다시 서쪽으로 꺾어서 사평로를 따라간다. 이후 서울성모병원 사거리를 지나면 복개구간이 끝나고, 사평로 옆을 나란히 따라간다.
반포본동 이수교 근처에서 방배천과 합류한 이후에는 동작대로의 일부로써 동작구서초구, 크게 보면 '''영등포강남'''이라는 서울 속 커다란 경계를 구성한다. 양재천과 더불어 서초구를 횡단하는 하천 중 하나.
순 우리말로는 '서릿개'라고 불렸고 이 때문에 서울 지하철 9호선921번 역 이름을 '''서릿개역'''으로 정하고자 했으나 반포동(구반포)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역사가 있다[1].
현재는 발원지부터 센트럴시티까지의 구간이 복개되어 있으나, 바둑판식으로 짜여진 강남 지역의 도로망 특성상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사거리와 철판들을 통해 해당 구간에 하천이 지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경부고속도로 서울시 관리구간에서도 '반포천교'가 존재했으며, 지금도 해당 구간의 받침돌은 주변 받침돌과의 위화감이 상당하기에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리고 해당 하천을 거의 완벽하게 따라가는 사평로의 경우는 복개 구간에 '''30t 중량제한 복개도로'''라는 표지판까지 있기 때문에 말이 필요없다. 또한 경부고속도로 밑을 지나가는 서초동의 지하보도 역시 반포천과 상당히 붙어서 가기 때문에 물이 쉽게 고이는 편.

복개되지 않고 지금도 하천으로 남아있는 하류 구간은 한때 반포동 생활하수와 맞물려 심각한 악취로 몸살을 앓았으나 서초구의 지속적인 정화 사업으로 지금은 대표적인 운동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리고 서울 지하철 9호선서울 지하철 7호선이 하천 근처를 지나가면서 방출하는 지하수 덕분에 수질도 제법 향상되었다. 다만 청계천과 마찬가지로 한강물을 끌어올려 도로 흘리는 구조로 유량을 늘리는 시도도 있다는 것이 한계. #
지류인 방배천과 더불어 2011년 강남대홍수 사태의 주 원인이기도 하다. 사실 강남역 뒤편의 진흥아파트 사거리는 물에 잠기는 빈도가 높은 편인데, 이쪽 지형이 강남역과 교대역 쪽보다 더 낮다. 비가 많이 내리면 역삼역 쪽에서 흘러온 물이 강남역을 거쳐 진흥아파트 사거리에 고이고, 반대로 서초역쪽에서 흘러온 물도 교대역을 지나 여기에 다 고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강남역 쪽에 큰 지하저수장을 만드는 공사를 하고 있다.

[1]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인 맥락을 따져봐야 하는데, 현 구반포역이 위치한 반포본동(구반포)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포촌리(浦村里)'''라 불리던 지역이었다. 이후 일제시대에 동작리로 합쳐져 이름이 동작동 등으로 변하다가 강남구(이후 서초구가 분구됨)에 편입되면서 반포동으로 이름이 붙게 된 지역인데 조선시대부터 이미 반포로 불리기 시작한 반포 1, 2, 4동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조선 후기부터 이미 서릿개(蟠浦)란 이름이 사라지고 훈이 변한 현재의 반포(盤浦)가 이름으로 굳은 것이 확인되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서릿개란 이름이 쓰인 적이 없다는 반발이 충분히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