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국가하천
한강'''
| Hangang River[1][2]

[image]
River Han이 한강이다.
'''발원지'''
[image]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하구'''
[image]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보구곶리
'''유입 해역'''
황해
'''길이'''
494km
'''유역'''
강원도 · 충청북도 · 경기도
서울특별시 · 인천광역시 · 경상북도
'''유역 면적'''
35,770km2
'''수계'''
한강 독립수계
1. 개요
2. 상세
4. 교량 건설 문제
5. 상수원보호
6. 개발 문제
7. 한강종합개발계획
8. 교통
9. 자살
10. 여담
11. 시설물
11.1. 한강의 다리
11.1.1. 남한강의 다리
11.1.2. 동강의 다리
11.1.3. 조양강의 다리
11.1.4. 골지천의 다리
11.3. 한강의 댐
11.4. 한강의 나루
11.5. 한강 자전거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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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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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를 가로지르는 한강 위의 대교마천루들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구도'''로도 유명하다.
서울특별시를 관통하는 이자 국가 1급 하천이다.
북한강[3]남한강[4]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만나 서울특별시를 통과하여 김포 반도에서 황해로 들어간다[5]. 북한강과 남한강의 폭이나 유역이 비등하지만, 강의 원류는 언제까지나 가장 긴 흐름을 기준으로 하므로 한강의 원류는 남한강이다.
한강의 발원지는 강원도 태백시로, 원류인 남한강은 태백산 서사면 일대에 내린 빗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형성되었다. 금대봉(1,418m) 고목나무샘과 제당굼샘, 대덕산(1,310m), 비단봉(1,281m) 자락의 수맥이 창죽동 검룡소 계곡에서 용출된 뒤, 영월군을 지나며 태화산(1,207m) 근처에서 동강과 합류하고, 다시 남하하여 충청북도 단양군을 지나 제천시 충주호로 모여든다. 이후 충북 일대에서 금강의 지류들과 만난 뒤 북상하여 경기도까지 올라간다.
경기도,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충청북도 북부, 강원도 영서 주민들은 이 강 또는 지류의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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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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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시 영월근린공원 마암에서 찍은 전경'''
길이로 보면 한반도 전체에서 네 번째로 길며[6] 대한민국 실효 지배 영토 한정으로도 두 번째로 길다. 유량으로 보면 한반도에서 가장 많고 유역면적[7]으로 봐도 한반도에서 가장 넓은[8] 매우 큰 이다.
수도권 지역 중에 한강 수계에서 미묘하게 벗어난 곳으로, 서해안 자체 유역인 인천광역시[9][10], 시흥시[11] 안산시, 화성시 서부 등과, 안성천 유역인 수원시, 화성시 동부, 평택시, 안성시, 용인시 기흥구(한강-탄천 유역인 수지구 대부분[12], 기흥구 구 구성읍 일대[13] 제외) 등 경기도 서남부 지역 등이 있다.[14]
의외로 경상북도 상주시 화북면 북쪽 일부가 한강 수계이기도 하다.
한강 수계지역 중에서도 서울 근교인 부천시, 과천시, 광명시, 안양시, 군포시, 의왕시, 성남시, 용인시, 하남시, 구리시, 남양주시, 고양시, 의정부시, 양주시, 김포시는 수도권 중에서도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반면에, 인천, 수원, 안산과 같이 한강 수계에서 벗어난 지역들은 전형적인 서울 통근권이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있는 지역들이다. 한강 수계의 지리적 범위와 서울 통근권의 지리적 범위는 큰 연관성이 있다는 것.
안양천, 중랑천, 탄천 등의 다양한 지류가 있으며, 서울특별시 관할 한강변에 공원을 지은 한강시민공원이 유명하다.
한강 본류는 구간에 따라서 명칭이 달라진다. 경기도 양평군에서 충청북도 단양군에 이르는 구간은 남한강, 강원도 영월군의 구간은 동강, 강원도 정선군의 구간은 조양강, 그보다 상류의 태백시 구간은 골지천 등으로 불린다.
한강의 서울 통과 구간은 김포시에 설치된 신곡 수중보 때문에 물이 찬 상태의 수위가 일정수준 이상으로 유지된다. 이때의 수위를 저(低)수위, 물이 찬 구간을 저(低)수로라고 한다. 이는 미관상의 목적 외에도 유람선을 띄우기 위한 목적도 있다. 사실 한강종합개발사업 이후 오랜 기간 동안 골재 채취가 이루어져 한강 바닥이 워낙 깊게 파헤쳐진 상태이다 보니 수중보가 없어도 유람선을 띄우기 위한 수심이 확보되기는 한다. 하지만 유람선의 정박 등을 위해서는, 선착장 부근을 추가로 준설하지 않는 이상 아직 수중보가 필요하다고 한다.
한강이라는 명칭은 우리말 '한가람'에서 비롯하였다. 옛말에서 '한'은 '큰', '한창인'을 뜻하는 말이며,[15] 가람은 강을 가리킨다. 즉 '큰 강'이라는 뜻. 그래서 한자 표기의 '漢'은 음차일 뿐 중국과는 관계가 없다[16]. 한강은 삼국시대 초기까지는 '대수(帶水)'[17]라 불리었고, 광개토대왕릉비에는 '아리수(阿利水)'라 기록되어 있다. 백제에서는 '욱리하(郁利河)'라 불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는 '한산하(漢山河)' 또는 '북독(北瀆)'이라 표기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강이라는 명칭이 붙게 된 시점은 백제가 중국의 동진과 교류하기 시작한 즈음인데, 그때부터 ‘한수(漢水)’ 또는 '한강(漢江)'이라 불렀다 전해진다.
삼국시대의 전성기는 누가 이 강의 중 ~ 하류를 차지했느냐에 따라 결정됐다.[18] 한강 유역의 농업 생산력과 수운으로 인한 교통로 확보, 중국과의 해상 교역로 확보 등 한강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대동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한반도를 흐르는 주요 하천과 서남해 해운을 한꺼번에 묶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한강 유역이었다. 삼국통일 후 신라는 한산하(한강)를 황산하(낙동강), 웅천하(금강), 토지하와 함께 전국의 4대강 사독(四瀆) 중 하나로 지정해[19] 정기적으로 중사(中祀) 제사를 국가에서 지낼 만큼 사상적으로 중요시되었으며, 수운이 중심이었던 조선시대까지 경기/충청/전라의 물물이 한양으로 유입되는 중요한 통로이기도 했다.
수도를 지나는 큰 강이기 때문에 삼국시대부터 현실적으로든 상징적으로든 중요한 곳이었다. 조선에서 기우제 등을 지내려고 명산대천에 제사를 지낼 때 한강은 꼭 포함되었다. 요즘도 한강에서 정월 대보름 등에 한강가에서 젯상을 차려놓고 기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
1953년 이후의 대한민국 경제의 급속한 성장을 이르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도 이 강에서 나왔다.
북한에서는 대동강이 비슷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 수계




4. 교량 건설 문제


전 세계적으로 강폭이 매우 넓고, 하상 계수[20]가 심각하게 높으며, 유역은 지나치게 좁은 강으로 유명하다. 파리나 런던 등 강을 끼고 있는 대도시는 많지만 대부분 한강에 비하면 강폭이 매우 좁아 다리 건설이 어렵지 않지만 한강은 그런 도시의 강들에 비해 폭이 매우 넓은 편이다. 강의 폭 자체가 넓은 데다가 홍수 때 불어나는 물의 양도 매우 많아서 그 옆에 올림픽대로강변북로를 건설하고도 남을 엄청난 규모의 둔치가 존재한다. 큰 비가 오면 그 넓은 둔치가 다 물에 잠길정도로 한강은 유량변화가 크다.[21] 강폭도 넓은 데다가 둔치까지 있으니 처음 방문한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라는 것이다. [22] 물론 조수간만의 차도 심해서 신곡 수중보를 건설하기 전에는 압구정에서도 밀물, 썰물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수위의 차이가 어느 정도 나타나기는 하나 수중보에 의해 썰물 때도 어느 정도 수위가 유지되는 데다, 수중보가 올라오는 함수(소금물)를 완벽히 차단하므로 그 차이를 확실히 느끼기는 어렵다. 바닷물은 민물보다 비중이 높아 아래로 가라앉으므로 수중보에 의해 차단되는 원리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전면적인 아치 형태의 교량 건설은 어렵고, 한강 교량들의 경우에는 아치를 사용하더라도 중앙부 일부에만 아치 형태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수 형태의 교량 또한 드물고, 그나마 1988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서 사장교올림픽대교를 세운 정도. 다만 기술의 발전과 아라뱃길 등 한강 수운을 염두에 둔 계획에 따라 새로 지어지는 교량들에는 교량 경간을 늘리기 위해 아치교현수교가 도입되는 추세이다. 월드컵대교가 특수 사장교 형태로 계획 중이다. 양화대교는 기존의 교량의 중간부분을 아치교로 바꾸었다.

5. 상수원보호


한강 상류는 서울특별시, 인천광역시, 경기도의 상수원이라 수질보호를 위해 한강 중류 지역인 북한강과 남한강 상류 일대는 개발이 금지되어 있으며, 경기도 대부분 지역은 광역상수도 설치 지역에 한하여 팔당호에 있는 팔당제1취수장, 팔당제2취수장 또는 팔당제3취수장의 물을 사용한다. 서울의 경우 팔당호와 잠실수중보의 사이에 있는 광암취수장, 강북취수장, 암사취수장, 풍납취수장 앞 한강물을 사용한다. 이 중 암사취수장과 풍납취수장은 구리시남양주시의 오/폐수가 유입되어 오염이 심각한 왕숙천보다 하류에 있기 때문에 이전 논의가 나오고 있다. 인천의 경우 풍납취수장, 팔당취수장의 물을, 성남시의 경우 풍납취수장 부근 성남 전용 취수장 앞 물을, 고양시의 경우 구 자양취수장의 약간 상류에 있는 취수장 앞 한강물을, 광명시의 경우 팔당취수장의 물을, 용인시광주시의 경우 경안천 하류의 용인/광주취수장 및 광주취수장 앞의 한강물을 정수하여 수돗물로 사용한다. 한강이라는 명칭이 정착하기 전에는 아리수, 아리물/아리내 등으로 칭했는데, 이는 현재 '''국내 최초 식용 수돗물'''인 서울특별시 수돗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리'는 크다는 뜻이다.
한때 인천광역시(당시 경기도 인천부)에서 노량진에 인천 관할의 노량진정수장, 취수장(1910년 건립)을 둔 적이 있었다. 영등포가 경성부로 편입된 이후에 그 시설이 서울특별시로 넘어간 적이 있다. 노량진정수장을 서울시한테 빼앗기자 인천시는 부평정수장을 자체 건립하였다.

6. 개발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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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산업화와 한강 개발이 착수되기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강의 수질은 깨끗한 편이었다. 모래톱들도 엄청나게 많아 둔치가 모래사장이었던 지라 '''피서철에 한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은 매우 일반적'''이었다. 1960년대 초까지 '''한강대교 인근 모래사장'''에서 수영을 즐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인구 유입이 계속되면서 각종 산업시설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섰기에 각종 공장에서 흘러나온 오폐수와 생활하수가 한강으로 유입되며 한강의 수질이 나빠졌고, 수영도 금지되었다.[23] 이후로 1980년대 후반에 대거 하수처리시설을 건설하면서 수질은 이때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물을 그대로 마시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이며[24] 하류지역으로 갈수록 수질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특이한 사실은 폭이 1 km가 넘는 강이 '''도시 한가운데를 관통한다'''는 점. 서울특별시가 확장되면서 이런 구조가 만들어진 것인데, 전세계적으로 이런 구조의 도시는 찾아보기 드물다. 비슷한 구조의 도시로는 장강이 관통하고 도시 내 최대 강폭만 2 km를 넘어가는 중국 우한시를 들 수 있으나 우한은 우창, 한커우, 한양 세 자연도시가 합쳐진 도시이며, 다뉴브강이 관통하는 부다페스트 역시 두세 개의 다른 도시가 합쳐진 형태다. 강 이편에 형성된 도시와 강 저편에 형성된 도시를 합쳐져서 큰 강이 관통되는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개발된 도시를 합친게 아닌, 주변 허허벌판을 잡아먹고 확장해 나가면서 성장한 도시가 단일시계로 이 정도로 큰 강을 끼고 있는 곳은 서울 외에는 그 예가 많지 않다. 이는 강북과 강남의 지리적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데 한 몫 한다.
비슷하게 강이 관통하는 도시는 뉴욕, 런던, 방콕, 바그다드, 브리즈번, 하노이등이 있다. 국내의 광역시대도시와 비교하자면 대구광역시부산광역시낙동강은 강이 외곽지역을 흐르므로 성격이 다소 다르고 울산광역시 시가지 중심부를 관통하는 태화강이 비슷하지만 한강보다는 규모가 작은 편이다. 대전광역시금강, 대구광역시금호강, 광주광역시영산강도 시가지를 양분하지만 본 시가지는 대전은 금강 남쪽, 대구는 금호강 남쪽, 광주는 영산강 동쪽에 집중되어 있고 반대편으로는 보다 작은 규모의 시가지가 확장된 것에 가까우며, 폭도 한강의 절반 이하이다.[25] 광주는 광주공항 때문에 시가지가 분리된 것도 있다.[26] 북한에서는 평양직할시대동강이 서울의 한강과 비슷한 역할을 하지만 한강보다는 폭이 좁은 편이다.
계획적인 정책을 내세워 개발했다는 이유로 서울 역시 큰 강을 끼고 형성된 자연도시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는 한가지 단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서울의 확장은 공백지에 억지로 건물을 짓고 인구를 배치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운 인구의 유입으로 인해 도시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확장을 결정하게 된 것이다. 안보상의 이유로 서울의 북부지역보다 남부지역을 확장하기로 확장방향을 정책적으로 잡은 것뿐. 즉, 도시의 확장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단지, 그 방향에 있어 정책이 개입한 것이지만 한 나라의 수도가 인구의 자연스런 유입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크던 적던 국가의 개입은 당연한 것이다. [27] 1963년의 시역 확장으로 현재 강남 지역 대부분이 서울 시계에 포함되기 이전까지 서울의 중심은 어디까지나 '강북 지역'이었다. 그나마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 한남대교경부고속도로가 완성되기 이전까지 강남 지역의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즉, 서울 도심은 자연스럽게 강을 끼고 확장됐다기보다는, 인구의 자연스럽고 급속한 팽창으로 인하여 자연스러운 도시의 확장이 필요해진 상태에서 합리적인 근거를 들어 정책적으로 확장 방향을 강남 지역으로 개발하여 도시화된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한강 이남에서도 구로나 영등포는 일제시대부터 도시화가 진행되었다는 것도 서울이 남쪽으로 확장되는데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미 어느 정도 개발이 진행되어있는 남쪽을 확장해서 개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인 것이다. 이 지역은 서울의 외항 역할을 하는 인천과의 연계성 때문에 도시화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영등포가 1936년에 경성부로 편입된 이유는, 인천권의 경성부 편입을 (살짝) 염두에 둔 대경성부계획의 일환이다. 요컨대, 현재의 부유한 강남, 서초, 송파구나 금천[28], 관악구 지역은 정책적 의도에 의한 개발이 추진되기 이전까지는 딱히 도시화 동력이 없고 도시라고 불리기도 민망한 상태였다는 것.
이러한 개발정책이 추진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중에서 주된 이유를 하나 꼽자면 우선 북한의 군사적 위협 때문이다. 서울이 현재보다 더 북쪽으로 확장된다면, 사실상 수도가 최전방과 밀착하는 형태가 된다. 강남과 과천이 개발된 이유 중의 하나가 안보적 고려였다. 간단한 예시로, 동대문-성북구 부도심과 평탄한 지형으로 연결되어 개발에 유리한 입장인 의정부를 생각해 보자. 분단과 군사적 긴장 상황만 아니라면 충분히 서울에 편입될 만한 입지지만, 실상은 휴전선 인근 부대에 병력을 공급하기 위한 군사적 거점인 306보충대가 있는 군사도시 역할에 그친다. 만약 현재 상황에서 의정부가 서울에 편입된다면? 최전방 군사도시인 포천이 서울과 인접하게 된다.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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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자연지형
단, 서울이 한강을 끼고 확장된 이유에 군사적인 위협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접근방식이다. 북한의 위협도 핵심적인 이유 중 하나이긴 하지만, 북한의 안보위협을 제외하고 지형적 조건을 보더라도 구도심의 북부 확장보다 한강 이남으로의 확장이 훨씬 용이하다는건 명확히 알 수 있다. 서울과 경기도의 북쪽 접경지역은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이 꽉 막고 있어 시가지 확장이 대단히 어렵다. 평지는 서쪽의 고양시 방면, 북쪽의 의정부 방면, 동쪽의 구리-남양주 방면 정도밖에 없다. 의정부가 서울 부도심과 연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 폭은 1 km 남짓한 매우 좁은 지형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한강 이북만의 시가지확장을 추진했으면 삼지창 모양이나 동서 혹은 남북으로 길쭉한 도시구조가 형성되는데, 당연히 자연스럽지 못한 모양새다. 반면 한강 이남은 관악산, 청계산, 남한산이 남쪽으로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에 개발이 용이한 평지가 넓게 펼쳐진 지역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한강을 버리고 서울시를 확장한다면 V자 형태의 독특한 모양을 띤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부도심 사이에는 서로 교류가 어려워지게 되고 비대한 도시의 기능이 분산되기는커녕 사대문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현재도 은평구와 도봉구는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대중교통으로 이 둘 사이를 왕래하려면 도심을 거쳐가야 하며, 자동차로 가기도 꽤 불편하며 오래 걸린다. 그런데 북쪽으로 도시를 확장하면 V자의 중심 축을 이루는 현 지하철 3, 4호선 구간과 양쪽을 이어주는 구기터널, 내부순환로, 그리고 일영-장흥 일대는 시시때때로 헬게이트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금정산 때문에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는 부산광역시의 교통 상황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으리라. 지금도 악명이 높은데 서울(+위성도시)의 인구는 부산의 2배 이상인 점까지 고려하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서울은 평야지대인 서쪽과는 달리 동북쪽으로는 경원선이 지나는 추가령 구조곡의 좁은 지대를 제외하면 대부분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므로 확장에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도시 기능의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강 이북 지역을 이상한 모양으로 편입시키면 비효율적일 수 있다. 사실 생활권 분절이나 도심 확장의 용이성 측면에서는 '''강보다 산맥이 더 까다로운 장애물'''이다. 교량을 놓는 편이 터널을 뚫기보다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보행자 이동성을 확보 가능한 교량과는 달리 터널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도 강북과 강남을 오갈 때 차량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론상 교량을 보행이나 자전거로 통과하는 것도 가능한데, 산맥은 이게 아예 안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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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대경성계획(大京城計劃)'
실제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란 개념 자체가 없던 남북 분단 이전인 일제강점기부터도 서울의 확장은 한강 이남이 고려되었다. '''한강 건너편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된 것을 필두로 일제는 경인선 지역을 따라 인천시(1981년 승격 당시의 인천직할시 영역)[30], 부천군 육지부(지금의 부천시, 시흥시 북부, 계양구 북부, 구로구 서부), 김포군 일부(지금의 강서구, 양천구), 시흥군 일부(지금의 금천구, 관악구, 광명시)를 경성부로 한꺼번에 편입하여, 도쿄 도심권에 버금가는 '''대경성권'''을 만들 계획을 가지기도 했었다.[31] 1963년 서울 대확장 당시에 강남 방향으로 확장된 것과 이후에 강남(+과천)이 본격 개발된 것은 남북분단에 의한 안보적인 이유[32]가 고려되었기 때문인데, 남북분단이 아니었으면 '''서울의 외항인 인천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해''' 경인통합 방향으로 서울이 확장되었으리라는 논리다. 일제강점기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된 이유 중에는 서울-인천 간 연계를 강화한단 것이 있었다.
반대로, 만약 분단과 남북한 군사대치 상황이 아니었다면 현재의 서울의 한강 이남지역 중 강서구, 양천구, 구로구, 영등포구, 금천구 지역과 경기도의 부천시, 광명시, 시흥시 북부 일대가 인천광역시에 편입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33], 강남 지역 대신 의정부, 남양주, 구리, 고양시 지역이 서울시로 편입되었으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입장의 주된 근거가 바로 '''한강'''이다. 사실 한강은 도시 내부를 흐르기에는 지나치게 폭이 넓은 강이다. 안양천, 탄천, 중랑천은 물론이고 영국의 템즈 강보다도 넓다. 넓은 정도가 아니라, 템즈강보다 평균 폭 2배 이상, 3배까지도 이르며, 심지어 지류인 중랑천조차 파리시내를 흐르는 센강과 강폭이 큰 차이가 없다 넓은 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장강의 무한 시내구간과 비교해도 강폭이 비슷할 정도이다. 현재의 서울을 보더라도 강남 지역과 강북 지역을 같은 시역으로 유지하기 위해 서울 시계 내에만 다리 20여 개를 건설해야 했다.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는 이야기지만, 이렇게까지 고밀도로 다리를 박아넣은 경우 역시 세계적으로 드물다. 만약 강남 지역의 지형상 개발에 유리하다는 장점이 없었다면, 한강이라는 자연적 경계까지 무시하면서 서울로 편입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서울은 대규모 인구를 수용하기에 편한 도시가 아니다. 한강이 도심 한가운데에 있기에 바람직한 하천이 아님에도, 다른 선택지를 고려하면 그나마 차악이었기 때문에 한강을 끼고 발전하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 아무튼 서울이 1963년에 한강 이남으로 대폭 확장되어 현재의 지리교과서는 서울을 분지형 도시로 소개한다.

7. 한강종합개발계획


지금의 서울특별시의 한강 및 주변 모습은 1980년대 전두환 정부가 추진한 한강종합개발계획에 따른 것이 많다. 당시 한강은 난개발로 환경오염이 심했다. 1980년대가 되면서 서서히 수도의 환경을 신경을 쓸 만한 경제적인 여력이 생기고 서울 올림픽 개최권을 얻으면서 더욱 환경 개선의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사대문을 중심으로 한 중심지에 몰린 위락 시설을 분산하고 확대하고 도로 등 도시 인프라 확충 역시 이 시기에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단순한 환경 개선이라면 수질 개선 대책만으로 충분하지만, 여기에 도시 인프라의 확충이 끼면서 한강 주변의 둔치를 활용할 필요가 생기면서 한강종합개발계획이 태어났다. 이 계획은 크게 한강의 준설, 하수관 정비, 수중보의 건설, 한강 둔치의 정비, 한강 둔치의 강남 구간을 따라가는 고속화도로 건설로 나뉘는데 그 결과물의 상당수는 나름대로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되었다.
한강의 준설은 한강의 수심을 2.5 m까지 깊게 파고, 파낸 모래를 팔아 한강종합개발 과정의 비용을 일부 충당하도록 했다. 명분은 홍수조절이지만, 실상은 이 구간에 유람선을 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며 그 결과물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한강 유람선이다. 여기에 더해 잠실수중보신곡수중보를 세워 유량을 일정하게 유지하게 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밀물과 썰물의 영향을 받던 한강 서울시 구간은 흐름이 매우 잔잔하게 바뀌게 되었다.
다른 강과 마찬가지로 모래톱이 그대로 남아 있던 한강 둔치는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로 오염된 상태였는데, 오염을 눈에 띄지 않게 하고 강변의 높이를 높여 홍수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둔치에 제방을 쌓아 높이를 높이고 그 위에 공원을 조성했다. 그것이 일명 한강고수부지, 지금의 한강공원이다. 당시 서울에는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공원형 위락시설이 많지 않아 시민의 여가생활은 주로 시내 중심부에서 이뤄졌는데, 그것을 분산하는 목적이 있었다.
강남지역의 한강 둔치를 활용한 도로는 바로 지금의 올림픽대로다. 당시 한강변을 따라가는 서울시의 도로는 강변북로 하나뿐이었다. 당시에는 강변1로~강변5로 나뉜 것을 억지로 이어 붙인 형태였다. 왕복 2차로 구간도 있었으며 선형도 좋지 않아 완전한 고속화도로로 부르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현재는 한강 북단 둔치를 활용하여 꾸준히 확장 공사를 하였으며, 지금의 강변북로는 과거의 강변1로~강변5로 시절과 많이 다르다. 올림픽대로의 개통은 서울의 교통에 지금까지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사업은 1982년부터 시작하여 1986년에 끝났으며, 사업 종료를 기념하여 '한강시리즈' 공익광고가 여러 편 방영되었다. 한강시리즈 공익광고 1탄 아울러 한강종합개발 사업 완료를 기념하는 기념탑을 탄천 합류지점 부근에 세웠다.
한강종합개발계획은 지금의 서울에서 '한강'하면 떠오르는 많은 것을 만들어준 프로젝트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당시 공론화가 어려웠던 여러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가 나오게 되었다. 먼저 두 개의 한강 수중보는 서울시 한강 구간의 수량을 풍부하게 만들었지만, 강의 자연적인 흐름을 막아 토사나 모래의 퇴적을 막는 부작용을 낳았다. 또한 수중보는 물고기의 이동을 막아 정상적인 생태계 구축을 막는 원흉으로 환경보호론자들의 꾸준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콘크리트 제방으로 도배한 한강변 역시 환경파괴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콘크리트 제방은 일부 구간에 대해 환경 복원 차원에서 습지 지대로 복원을 시도하였다.

8. 교통


6.25 전쟁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운의 이용이 가능하였지만, 한국전쟁 이후 한강 하구 북단의 황해도 연백군, 경기도 개풍군 등을 북한에 내주게 되어 수운 기능을 이용하기 힘들어졌다.[34] 남북통일이 요원한 정황상 '''경인 아라뱃길'''이 만들어졌다. 다만 하구에 농업용수를 이용하기 위해 하구둑이 설치된 낙동강, 금강, 영산강이나, 하구에 대규모 공업 단지(광양제철소)가 있는 섬진강에 비하면 한강 하구는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방치되어 거대한 규모의 갯벌이 형성되고 해마다 철새가 찾아오는 생명의 보고가 되었다. 비무장지대와 함께 인간이 손을 대지 않으면 자연 스스로 회복되는 모습을 보여준 예이기도 하다.
물론 통일이 되어도 좁은 수로와 흘수의 제약으로 인해 대형 상선이 들어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경인 아라뱃길을 포함한 한강 수운 기능의 부활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9. 자살



한강에서 투신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불법이며 성공 확률도 적고 119 구조대원을 고생시키는 일이다.
한강에서 자살을 시도하면 구조된 후 벌금 200만 원이 나온다. 어차피 죽을 거 벌금따위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2018년 기준으로 한강 교량 투신 '''생존률은 96.7%'''에 달하고, 2014년 이후 생존 구조율이 95% 이하로 떨어진 적은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100명이 투신을 시도했을 때 97명은 살았다는 소리다. 또한 한강이 그렇게 깊지도 않다. '''한강 수위가 7M를 넘어가면 심각한 상황이다.''' 보통 한강 수위는 5M이며 겨울에는 4M까지 떨어지고 여름에는 6M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공무원들과 직원들이 눈을 떼지 않고 교대 근무를 해가며 CCTV를 확인하고 119가 항시 대기중이다. 여러 경험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의미없이 다리 위를 서성거리면 경찰차가 와서 경위를 묻는다. 투신을 하려고 난간에 올라가는 순간 112와 119가 온다. 빚만 더 늘리고 싶지 않다면 절대 뛰어내리지 말자.
한국 문화에서는 "한강 간다"는 표현이 '자살하러 간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한강에 자살 기도자가 나올 경우 십중팔구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이 뛰어간다. 2012년 기준 경찰과 같이 가는 것이 공식화되었지만, 검문소 인원이 인원인지라 거의 군사경찰이 달려가는게 일상이다. 참고로 자살기도자를 말려서 당시 대대장이 2박 3일 휴가증을 준 적이 있다.
한강에서 한 해 발견되는 시체만 수백 명 된다고 한다. SBS스페셜에서 방영된 바에 따르면 1년에 전국적으로 2,400여 구가 발견되며 3분의 1 정도는 신원확인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물론 다 자살은 아니다. 때문에 경찰과 119 구조대가 엄청나게 고생한다.
이계로 가는 입구가 주로 열리는 곳이라고도 불린다. 따지고 보면 한강을 통해 이계로 가는 이고깽 양판소는 이제 와선 찾기 어렵지만... 비슷한 의미로 한강 바닥에는 인생 리셋 버튼이 있어서 그걸 누르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슬픈 농담이 있다.
한강 물 온도를 확인할 수 있는 퐁당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존재한다. 용도는 한강에서 낚시나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사이트로 된 한강의 수온이 궁금하다면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 여담


과거에는 철갑상어도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철갑상어는 개체수가 많지 않지만 발견된다. 다만 이 철갑상어는 양식장에서 탈출한 녀석이거나 인위적으로 방류한 녀석일 가능성을 더 높게 보는 중이다.
사람들의 인식으로서 군사적인 전방후방을 가르는 기준이 한강이다. 흔히 대한민국 육군 기준으로 전방부대를 한강 이북, 후방부대를 한강 이남이라고 일컫는 이유도 이 때문.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퇴소한 육군 신병들을 태운 열차가 한강철교를 지나가는 순간에 그들의 표정은 굳어가기 시작한다(...). 이와 같은 인식엔 6.25 전쟁 때 정부가 한강다리를 폭파하여 서울(강북)에 있던 주민들이 피난가지 못한 데서 비롯된 트라우마가 작용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이 강의 하구는 강화도와 그 부속 도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위의 이미지를 보다시피 '''북한과 매우 가깝다'''.전투수영으로 1시간도 안 돼서 북한에서 닿을 수 있는 지역도 있다. 한강 하구에서 강안 경계를 하면서 TOD 등으로 관측을 하다 보면 둔전(..)을 하거나 야외에서 정신교육을 받는 조선인민군 육군 병력들을 볼 수 있다. 흠좀무.
삼국시대에는 한강을 어느 나라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그 나라의 강약이 결정되었다. 한강을 차지함에 따라 나라의 '''전성기'''가 정해질 정도. 학교에서 삼국시대를 가르칠 때도 알려주는 내용이다. 처음에는 백제가, 그 다음에는 고구려가, 그리고 나중에는 신라가 차지하였다.[35] 차례대로 전성기가 오는데 전성기인 나라 외 두 나라는 꼭 동맹을 맺어 세력의 균형을 맞췄다. 전성기인 나라가 바뀌어도 이 구도는 삼국시대 내내 계속된다. 물론 한강을 차지했기 때문에 전성기를 맞이했다기보다는 그냥 당시 국력이 강하니까 한강 근방까지 진출한 것에 가깝다.
현재도 한강이 보이는 집은 매우 높은 가격을 자랑한다. 강남과 강북의 최고급 아파트, 오피스텔 등의 주택 매매가 상위권에 들어가는 곳은 한강이 잘 보이며, 부동산에서도 이를 매우 강조한다. 특히 강남의 한강뷰 아파트는 기본 수십 억 이상이다. 특히 야경 덕분에 인기가 많은 듯. 밤에 다리가 빛나는 모습은 상당히 아름답다.
하지만 한강변 아파트에 실제로 살아본 사람들 중에서는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강변북로올림픽대로에서 소음과 미세먼지가 많이 발생해 창문을 열기 어려울 뿐더러, 여름에는 빛이 한강에 반사되어 엄청 덥고 겨울에는 강한 강바람 때문에 엄청 춥다고 한다. 또 한강공원 나들이객들이 소음과 음식물 악취를 유발하는 경우도 잦다.
2015년에 1 m짜리 초어가 발견된 적이 있다.#
[image]
정전협정 체결 이후 65년 만인 2018년 한강 하구를 남북이 처음으로 공동조사하였다. 11월 5일에 시작해서 12월 9일에 완료되었다.

11. 시설물



11.1. 한강의 다리



한강다리 총 31개 (대교:27, 철교:4)
네이버에서는 팔당대교로 시작해 일산대교로 끝난다. 각각의 한강다리는 토목수출을 위해 서로 다른 종류로 지어졌다는 속설이 있다한강교량 현황 남한 구간에서 일산대교와 임진강 합류점 사이에 파주대교하성대교가 계획중이며 남북통일이 되면 개성시-김포시, 개풍군-강화군, 연안군-교동도 구간에 적어도 한개씩의 다리가 추가로 건설될 예정이다.
◇: 유료도로
☆: 자전거 도로가 있는 서울의 한강 다리

11.1.1. 남한강의 다리


  • (남한강 상류 측) - 여기서부터는 동강으로 이어진다.
  • 팔홍교
  • 각동교 - 595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 북벽교 - 595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 영춘교 - 522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 군간교 - 59번 국도가 지나간다.
  • 가대교 - 519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 덕천교
  • 고수교 - 59번 국도가 지나간다.
  • 상진대교 - 5/59번 국도가 지나간다.
  • 단양철교 - 중앙선 도담역단양역 사이에 있는 철교이다.
  • 단양대교 -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간다.
  • 적성대교
  • 옥순대교
  • 청풍대교 - 82번 국지도가 지나간다.
  • 충원교
  • 남한강철교 - 충북선 목행역동량역 사이에 있는 철교. 동량철교로 알려져 있다.
  • 목행대교 - 19번 국도가 지나가며, 구교와 신교가 가까이 있다.
  • 조정지댐 공도교
  • 남한강대교 - 평택제천고속도로상에 있는 다리이다.
  • 목계대교 - 38번 국도가 지나간다.
  • 목계교
  • 남한강대교 - 49번 국지도가 지나간다.
  • 남한강교 - 영동고속도로상에 있는 다리이다. 구교와 신교가 나란히 있다.
  • 이호대교 - 42번 국도가 지나간다.
  • 여주대교 - 345번 지방도가 지나간다.
  • 세종대교 - 37번 국도가 지나간다.
  • 남한강대교 - 광주원주고속도로상에 있는 다리이다.
  • 이포대교 - 70번 국지도가 지나간다.
  • 양평교 - 98번 국지도가 지나간다. 원래 양평대교였는데 1997년에 양근대교가 세워지면서 양평교로 격하되었다.
  • 양근대교
  • 양평대교
  • (남한강 하류 측)

11.1.2. 동강의 다리


  • (동강 상류 측) - 여기부터는 조양강으로 이어진다.
  • 정선제1교
  • 용탄대교
  • 광하교
  • 귤암교
  • 북대교
  • 문산교
  • 거운교
  • 삼옥교
  • 봉래2교
  • 영월대교
  • 동강대교
  • 동강철교 - 태백선 청령포역영월역 사이를 연결하는 철교.
  • (동강 하류 측)

11.1.3. 조양강의 다리


  • (조양강 상류 측) - 여기부터는 골지천으로 이어진다.
  • 문곡교
  • 덕송교
  • 조양강철교 - 정선선 정선역나전역 사이를 연결하는 철교.
  • 정선제2교
  • (조양강 하류 측)

11.1.4. 골지천의 다리


  • (검룡소: 한강 발원지)
  • 검룡3교
  • 검룡2교
  • 검룡1교
  • 창죽교
  • 원동교
  • 상사미교
  • 상사미1교
  • 상사미2교
  • 무사교
  • 천포교
  • 하사미교
  • 숙암2교
  • 광동댐 공도교
  • 광동교
  • 양지교
  • 양지2교
  • 장전교
  • 갈밭교
  • 갈전교
  • 소두교
  • 토산교
  • 은치교
  • 골지교
  • 용산2교
  • 월탄교
  • 협천교
  • 낙천교
  • 암내교
  • 가랭이교
  • 사을기교
  • 개병교
  • 반천대교
  • 반천1교
  • 봉정교
  • 새치교
  • 여랑철교
  • 아우라지교
  • 골지천철교
  • 장열철교 - 정선선 나전역아우라지역 사이를 연결하는 철교.
  • 장열교
  • 나전철교 - 정선선 나전역아우라지역 사이를 연결하는 철교.
  • 북평교
  • 남평대교
  • (골지천 하류 측)

11.2. 한강공원


한강공원 문서로.

11.3. 한강의 댐



11.4. 한강의 나루



11.5. 한강 자전거 도로


한강의 자전거도로는 아라뱃길 합류점부터 충주댐까지 있으며 주로 국토종주하는 사람들이 많이 다닌다. 특히 성산대교 남단 바로 아래에 있는 도로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36] 북단 자전거도로와 남단 자전거도로가 있다. 가장 쉽게 넘어가는 부분은 잠수교이며 통행량이 전국적으로 많다.
소위 '지나가요!'로 대표되는 한강라이더들과 주행 중 한 팔로 셀프 인증샷을 촬영하는 따릉이들로 가득하니 조심해야 한다. 특히 자전거도로 우측에 붙어서 주행하는 게 좋은데, 한강라이더들은 안전의식이 없어서 속도를 줄이지 않고 추월하기 때문이다.[37] 같은 이유로 좌회전을 하는 경우도 조심해야 하는데, 한강라이더들은 브레이크를 잡느니 충돌해 버린다.[38] 다행히 2열로 떼빙하는 동호회와 음주라이더들은 단속으로 감소한 편이다.

[1]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제5조: "1. 국문 명칭 전체를 로마자로 표기하고 후부 요소의 의미역을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때, 의미역의 첫 글자는 대문자로 쓴다. 예) 한강 Hangang River …… "[2] Han River 혹은 The Han 등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로마자 표기 'Hangang'이나 영문 표기 'Hangang River'로 지칭함이 바람직하다. 한강의 올바른 영문 표기는 무엇일까요? [3] 강원도 회양군.[4] 강원도 태백시.[5] 이때 거의 하구에서 임진강과 만난다. 임진강 수계지역을 한강 수계에 포함시키느냐 마느냐에 대한 이견이 있기는 하다. 임진강 합류 이후 구간을 조강(祖江)이라고도 한다.[6] 압록강, 두만강, 낙동강, 한강 순.[7] 강줄기가 펼쳐진 면적[8] 잠실대교 부분의 폭이 870미터, 하류의 오두산성 부근의 폭이 2100미터정도로, 강이 워낙 크다 보니 강폭의 편차가 크다. 서울시를 관통하는 부분은 거의 다 1킬로미터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분수계 지도를 보면 남한 지역은 한강이 1/3, 낙동강이 1/3, 나머지 강이 1/3정도 유역을 차지하고 있는 걸 볼 수 있다.[9] 단, 한강의 지류인 굴포천 유역인 부평구(십정동 제외), 계양구는 제외.[10] 부천시도 대부분 굴포천 유역(역곡동, 괴안동, 범박동은 목감천-안양천 유역)이므로, 부천시도 당연히 한강 수계에 포함된다.[11] 한강-안양천의 지류인 목감천 유역인 과림동과 목감동 일부 제외.[12] 상현동 일부지역에 신대저수지-원천리천-황구지천-안성천으로 흘러가는 가산천이 지난다.[13] 정확히는 구 구성읍 지역 중 동백동 일부, 청덕동, 언남동, 마북동, 보정동 일대에 탄천이 지나간다. 기흥읍 지역은 오산천이 지난다.[14] 흔히 용인시내라 부르는 처인구 중심지는 기흥구 중심지보다 위도상으로 남쪽에 있는데도 의외로(?) 한강 수계에 속한다.[15] 예를 들어, 대전(大田)시는 옛 명칭 '한밭'의 한자 표기에서 비롯되었다.[16]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漢을 韓으로 바꾸라며 태클을 걸기도 한다. '韓國에 웬 漢江이냐, 韓江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 韓江도 중국에 있다는 건 함정이다. # 굳이 명칭을 韓江으로 변경하려면 하천법 제7조에 따라 국가하천인 한강은 국토교통부장관이 그 명칭을 지정할 수 있다고 한다. 해당 기사[17] 눈썰미가 좋은 사람은 눈치 챘겠지만, 여기에서의 한자 '대(帶)' 자는 대방군의 그 '대'자가 맞는다. [18] 단, 근초고왕 이전 시기나 삼국시대 말기에는 그렇게 구분하지는 않는 게 대부분이다.[19] 본래 중국에서 장강, 황하, 회하, 제수(濟水)를 4독으로 지정해 신성시했는데, 중국과 대등하다는 자존의식에 따라 한반도만의 4독을 지정한 것이다.[20] 하천의 흐르는 유량의 기준값 최소량과 최대량의 비율. 쉽게 말해 하상 계수가 높을수록 1년중 강물이 가장 적은 시기:가장 물이 불어난 시기의 차이가 큰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한강의 경우에는 장마 때 폭우가 오게되면 잠수교가 잠기듯 유량과 수위가 쉽게 변하는 걸 알 수 있다. 장마철에 강수량이 집중되는 한국의 기후 특성상 국내의 큰 하천들은 하상 계수가 높은 편이다.[21] 반대로 갈수기인 겨울에는 강폭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22] 실제 영국 런던의 템즈강 프랑스 파리의 센강 등 유명도시의 강에 비해 폭이 상당히 넓어서 사전지식없이 한강을 처음 본 외국인들이 많이 놀라곤 한다. [23] 다만 이벤트성으로 수영할 수 있게 하는 경우는 있다.[24] 팔당댐에서 퍼온 원수도 불순물이 많다. 수도권 지역 정수장에 견학해보면 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25] 대전은 정확히는 금강보다는 갑천이 시가지 한가운데를 관통한다고 보는게 옳다. 사실 갑천조차도 원래는 시가지 외곽을 흐르는 하천이었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계속된 유성구 개발로 대전 구 시가지 및 둔산신도시만큼 세가 커져서 갑천 북서측이 전부 시가지가 되어버렸고, 둔산신도시 개발과 함께 둔치 정비도 함께 진행되어 서울 한강과 꽤나 비슷한 경치가 되었다.[26] 공항이 없었다면 대전과 함께 서울과 꽤 비슷한 모습을 연출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광주는 도시가 동에서 서로 확장하는 모양인데, 중간의 공항으로 인해 공항 이착륙 항로상으로는 별다른 개발을 못하고 건너뛰어버렸다. 만약 공항이 없었다면 차례대로 확장했을 가능성이 높기에 강의 동서로 시가지가 들어섰을 것이다. 다만 공항이 이전한 뒤 이 지역들을 개발할 예정인지라 미래에는 비슷한 모습이 전개될 수 있겠다. 현재는 광주천이 시가지를 남북으로 양분한 형상이지만, 광주천의 폭이 50~100 m 내외라 규모가 많이 작다.[27] 가령, 한 지역에이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상점들도 들어오고 새로운 상권이 개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지 아무런 계획없이 노점상들만 따닥따닥 들어서 있는 모습을 보고 그것만을 자연스럽다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28] 다만 금천구 시흥동은 시흥군의 옛 중심지라서 소읍 정도의 규모였다.[29] 사실 서울 자체도 외국인 시선에서는 전방에 있는 대도시다. 선진국들 중 당장 전쟁나도 이상하지 않을 국가 코앞에 수도를 박아두고 있는 국가는 이스라엘대한민국 뿐이다. 그것도 이스라엘은 한국보다도 더욱 작고 길쭉한 국토 때문에 어느 곳에 도시가 있던 최전방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한국은 그보다는 공간이 있는데도 휴전선 바로 앞에 수도가 있는 형상을 보면 외국인들은 기절초풍할 지경.[30] 인천시 전역이 서울특별시로 병합되거나 원인천 지역은 위성도시 '인천시'로 존치하고 부평권은 서울로 편입.[31]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이라는 책에 따르면 1960년대 초 정부가 서울 확장을 검토하겠다고 할 때, 일제가 추진했던 방식대로 경인선을 기준으로 서울이 확장될 것을 많은 사람들이 예상했지만 정작 실제 서울 대확장안은 당시 깡촌이었던 강남 쪽으로 뻗어가는 걸로 나와 충공깽을 선사(...). 이 때문에 서울 편입대상에서 제외된 부천군 소사읍 서부지역의 주민들이 울상이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32] 전시 강북주민들의 한강 도하문제, 휴전선과의 거리 등.[33] 그러나 영등포 권역이 인천에 편입되는 시나리오는 인천이 경기 서부권의 확고한 종주도시이고 중앙정부가 서울의 확장, 개발을 확실하게 억제하고자 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34] 한강 하구로 통행하고 싶으면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한다.[35] 공교롭게도, 이 순서는 각 삼국의 멸망 순서와도 같다.[36] 양쪽이 벽으로 막혀 바닷바람이 오기 때문이다.[37] 억울하겠지만 속도에 미친 라이더들이 너무 많다보니, 안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심지어 사람이 몰리는 한강공원에서도 감속따위 하지 않는 패기를 보여준다.[38] 브레이크를 잡으면 죽는 병에 걸려서 항의를 해도 '어쩌라고!'를 외치면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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