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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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백거이(白居易)[1]
'''자'''
낙천(樂天)
'''호'''
취음선생(醉吟先生) · 향산거사(香山居士)
'''생몰년도'''
772년 ~ 846년
중국 나라 때 시인. 자는 낙천(樂天)으로 백낙천(白樂天)이라고도 많이 불린다.
중국 문학을 말할 때 따로 당시(唐詩)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당나라 때에 시문학이 황금기를 구가했다. 이태백두보가 바로 당시로 유명한데, 백거이는 왕유, 한유, 두목과 더불어 위의 두 사람 못지 않게 유명한 시인이다.
흔히 당시(唐詩)는 초당(初唐) 성당(盛唐) 중당(中唐) 만당(晩唐)의 네 시기로 구분하는데, 이백과 두보는 성당기 시인, 백거이는 중당기 시인으로 분류한다. 같은 중당기 시인인 한유와 함께 네 사람을 한데 묶어 ''''이두한백(李杜韓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늘날 백거이의 시가 3800여 수 전하는데, 대표작으로는 장한가(長恨歌)와 비파행(琵琶行), 유오진사시(遊悟眞寺詩) 등이 있다.
원래 당현종의 인생이 그야말로 드라마였기 때문에 시인들의 주된 표적(?)이 되었는데, 자연 이를 다룬 작품도 무지 많다. 개중 백거이의 장한가는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과 아쉬움을 주제로 상상을 가미하여 만든 명시이다. 장한가의 구절 중 재지원위연리지(在地願爲連理枝)를 보면 뭐 땅 위에서는 연리지가 되고~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연리지를 사랑의 비유로 시를 쓴 인물이 바로 백거이였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널리 쓰인다.
글쓰기에서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퇴고'''인데, 여기에 얽힌 백거이의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2] 백거이는 매번 시를 짓고 나서 동네 노파에게 들려주고는 '''노파가 알아듣지 못하면 알아들을 때까지 글을 뜯어고쳤다'''. 백거이 같은 시대를 뛰어넘는 거물 시인도 이렇게 치열한 어휘 구사를 위해 노력했는다는 일화이다.
생전에 작품들이 널리 퍼져, 많이 배우신 분들은 물론이거니와 저잣거리 목동들까지 애송할 정도였다니 그 인기와 백거이가 구사한 언어의 힘을 짐작할 만하다.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같은 시기인 통일신라나라시대 일본에서도 무척 인기가 좋아서 신작을 하나 내면 거의 실시간이나 다름없이(...) 들어왔다고 한다. 일본에서 유명한 단어, 雪月花(설월화)를 처음 사용한 사람 역시 바로 백거이. 또한 훗날 헤이안 시대 중기의 인물인 무라사키 시키부 역시 백거이의 영향을 받아, 장한가를 인용해 겐지모노가타리의 첫장을 썼다.
명나라 때 편찬한 당시선(唐詩選)은 당시 입문서로 바이블이나 다름없는 책이지만, 정작 백거이의 시는 통속적이란 이유로 빼놓았다.

[1] 병음: Bái Jūyì (바이 쥐이).[2] 퇴고의 고사는 가도(賈島)와 한유(韓愈)의 고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