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주의

 

1. 개요
2. 관련 항목


1. 개요


White Australia Policy.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연방이 형성된 1900년대 초반부터 1970년대까지 백인 이외의 인종(특히 동양인)의 이민을 배척하고 백인 사회의 동질성을 유지하겠다는 명목으로 만들어진 호주의 인종 차별적인 이민 정책을 일컫는 용어이다. '백인호주(豪)를 추구하는 주의'라는 뜻에서 백호주의(白豪主義)로 번역되었으며, 백호주주의(白豪洲主義)라고도 부른다. 백인을 선호한다(白好主義)는 용어가 아닌만큼, 백호주의라는 말을 호주 이외의 다른 나라의 상황에 사용하는 것은 오류이다.
1851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에 대량의 광이 발견되자 골드러시가 일어났고, 이 과정에서 중국인 노무자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었다. 이들은 낮은 임금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들끼리 고립되어 살았기 때문에, 임금 저하의 원인이 되는 이들의 이민을 제한하자는 주장이 일어났다. 바로 이것이 백호주의의 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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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협회 (Australian Natives' Association)'에서 발행한 배지. 이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협회의 구성원들 중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애버리지니 aborigine)은 단 한 명도 없고 전부 백인이었다.
동양인의 이민을 제한하는 방법으로는 어학 시험 등이 있었다. 물론 백인에게는 면제였고, 영어를 아는 동양인에게는 그리스어(!) 시험을 치르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동양인의 오스트레일리아 이민을 차단했다. 그리고 원주민들에게 가혹하게 대해서 1920년대에 들어와서야 원주민 인구 감소가 멈추었고 그 이후에도 상당수 원주민들의 자녀들을 백인 집안에 강제 입양하는 만행을 저질렀고, 고유의 문화를 지키던 원주민들을 "자연유산"으로 간주하며 투표권도 주지 않았다. 그 결과 1930년대 말에는 오스트레일리아 인구의 98%가 영국-아일랜드계였다.
백호주의 정책은 197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다가 철폐되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 난민들이 백호주의가 사라진 뒤로 오스트레일리아에 처음으로 온 이민자였다. 철폐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백호주의가 아시아 나라들의 반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츰 다른 아시아 나라들 경제 사정이 좋아지면서 점차 호주 측은 무역이나 외교에서 아시아 나라들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물론 원네이션 파티같이 여전히 백호주의를 주장하는 정당이나 세력은 있다.
백호주의처럼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옆나라 뉴질랜드에서도 백뉴주의가 있었다. 이는 1975년 폐지되었다.
백호주의가 없어졌지만 사실 백호주의 사상과 개념을 아직도 가진 오스트레일리아계 백인들이 많기 때문에 특히 퀸즐랜드 쪽이나 시내를 벗어나면 더욱 그런 성향을 볼 수 있다. 백호주의의 시대와 영향을 받은 세대가 아직 남아있는 결과이기 때문에 자연스럽다고 볼 수도 있고 특히 한국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벌어지는 인종차별 사건을 비롯해서 오스트레일리아가 비판받는 요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인구의 12%(혼혈 포함)가 아시아계라고 하고 그 수치는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같은 대도시 지역은 아시아계 인구가 비율적으로 훨씬 많기 때문에 밀도상으로 보면 아시아계가 정말 많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유명한 오스트레일리아 내 대학교를 가면 아시아인들이 백인들보다 더 많은 현상을 볼 수도 있다.
이 정책은 인도네시아에서의 호주에 대한 반감을 가져오는 원인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인도네시아와 호주는 보르네오 섬 전쟁하고[1] 동티모르 문제등으로 갈등을 빚어왔다. 요즘 들어서는 그나마 나아진 편이다.

2. 관련 항목



[1] 호주 측에서 말레이시아를 지원해줬다.[2] 백호주의자들이 SJW로 보일 정도로 지독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 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