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공석

 


'''수말당초 군웅
輔公祏 | 보공석
'''
'''묘호'''
<colbgcolor=#fff> 없음
'''시호'''
없음
'''연호'''
천명(天明, 623년 ~ 624년)
''''''
보(輔)
''''''
공석(公祏)
''''''
행만(行滿)
'''생몰 기간'''
? ~ 624년
'''재위 기간'''
623년 ~ 624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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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수말당초의 군웅으로 단명정권인 보송(輔宋)의 유일한 군주이다.

2. 생애


보공석은 제주(齊州) 임제현(臨濟縣) 출신으로, 수나라 말에 두복위를 따라 도적이 되어 회남 일대를 약탈하였다. 두복위가 총관을 자칭할 때, 또다른 수말당초의 군웅이었던 이자통심법흥을 물리쳤다. 두복위는 곧 보공석에게 이자통의 토벌을 명령하였다. 보공석은 수천 명의 병사를 이끌고 결사대를 편성하여 이자통에게 돌격하였고, 이자통을 완전히 격파하였다.
이자통을 격파한 뒤, 보공석과 두복위는 당나라 조정에 귀순하였고, 보공석은 회남도행대(淮南道行台) 상서좌복야(尚書左僕射)로 임명되었으며 서국공(舒國公)으로 책봉되었다. 처음 보공석은 두복위와 어릴 적부터 친한 관계였는데, 보공석이 형이라 두복위가 보공석을 형처럼 섬겼다. 물론 겉으로는 이러하였지만, 두복위는 보공석을 시기하여, 자신의 양자인 감릉(闞棱)을 좌장군(左將軍)으로 삼고, 왕웅탄(王雄誕)을 우장군(右將軍)으로 삼고 보공석을 복야로 추대하였다. 두복위는 겉으로는 보공석을 존경하는 척 하면서, 사실은 몰래 보공석의 병권을 빼앗았다.
보공석은 두복위의 의도를 알고 매우 불평하여, 두복위로부터 자신을 숨겼다. 한편 두복위는 당나라 조정에 입조하면서, 자신의 부하인 왕웅탄에게 보공석의 보좌를 명하는 한편 보공석이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였다. 하지만 왕웅탄이 병에 걸리는 바람에, 보공석은 왕웅탄이 병으로 누운 틈을 타 왕웅탄의 군대를 빼앗고, 서신으로 두복위가 강남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꾸며, 군대를 일으킬 준비를 한다. 보공석은 이후 남조의 수도였던 건강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송제(宋帝)를 칭하고 궁궐을 지었다.
한편 보공석이 반란을 일으키자, 당나라 조정에서는 이효공을 파견하여 보공석을 공격하였다. 보공석은 이효공에게 패배하여, 회계로 달아나려고 하였지만, 도중에 붙잡혀 이효공에게 압송되었고 결국 참수되었다. 이때가 624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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