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상신도시 계획

 

1. 개요
2. 상세
3. 사업 백지화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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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감도

1. 개요


부산광역시의 토지 면적을 늘리고 1998년 만국박람회의 개최를 위해서 제안된 신도시 계획. 참고

2. 상세


부산광역시는 지형 특성상 평지가 많이 없어서 시가지 개발에 제약이 따랐기 때문에 1989년에 해결책으로 당시 부산시장과 도시계획국장이 남항 앞바다, 그러니까 영도와 송도 사이의 바다에 인공섬을 만들어 토지를 확장할 계획을 수립해 제1차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안)을 제출해 건설부의 승인을 받았다. 면적은 185만 평 정도로, 상주인구 4만명과 유동인구 24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인공섬 조성에 필요한 토석은 영도와 송도 일원에서 채취하려고 했다.[1][2] 규모가 규모인 만큼 만국박람회 개최를 위한 시설과 주거시설을 비롯해 각종 공공기관[3]과 관광시설[4], 상업시설[5], 항만시설 등등, 사실상 '''일개 광역시 급의 인프라'''를 조성하려고 했다.[6]
교통시설로는 남항대교를 통해 육지와 연결하며, 버스 터미널도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다. 또한 도시철도 3호선[7][8]을 통해 부산역이나 자갈치시장 일대와 영주동, 대청동, 남포동 일대를 순환하는 형태로 연결할 계획도 있었다.
부족한 토지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이며, 경전철을 통해 육지와 연결한다는 점을 봤을 때는 아무래도 옆동네의 오다이바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오다이바는 덕후들의 성지로 유명한데, 부산 해상신도시도 컨벤션 센터를 비롯한 상업시설이 여럿 들어설 계획이었던 만큼 계획대로 지어졌더라면 성지로 등극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계획대로 지어졌더라면...'''

3. 사업 백지화


그러나 바다를 매립하는 것에 대해 환경 전문가들의 비판도 줄줄이 이어졌는데, 그 보다 더 큰 문제는 역시 '''돈'''이었다. 조 단위의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착공 4개월 전 까지도 재원 조달 방안이 또렷이 없었던지라 사업 추진도 어려워졌고, 1994년 '''무기한 연기'''라고 보도된 이후로 해상신도시에 대한 소식은 자취를 감췄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비수를 제대로 꽂은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 인공섬을 연결하기 위해 계획된 남항대교는 급하게 설계변경을 하느라 부산항대교보다 밋밋한 형태가 되었고, 도시철도 3호선 계획도 붕 떠버리는 바람에 대저~수영+반송~미남구간으로 계획된 4호선과 가덕도를 연결하는 5호선은 노선 번호가 하나씩 앞당겨졌다.[9]
위에서 언급한 도시철도 계획 외에도 1987년 부산 도시철도 기본노선망 대안 II에 의하면 해상신도시를 거쳐 부산 동서를 잇는 노선도 계획중이었는데, 그 도시철도 계획은 백지화 21년 후 1011번이라는 버스노선으로 탄생했다. 이것도 부산항대교 개통 후 1년 반이 지난 뒤였다.[10]
이 문서의 기반이 된 블로그 글의 저자는 외환위기 터지기 전에 진작에 나가리 돼서 다행이라는 의견을 내비쳤는데, 절대 틀린 말은 아니다. 사실 이 계획과 비교했던 오다이바의 경우에도 성공한거라고 보기엔 애매한게, 버블경제의 호황에 힘입어 실컷 땅을 매립해놨더니 땅값이 어마무시하게 오른데다 거품이 꺼지고 경제 불황이 장기화 되며 반쪽짜리 해상 시가지로 남아있다가 겨우 살려낸 것이며, 아직도 손도 못 대고 주차장 등의 용도로 쓰이는 부지가 차고 넘친다.
한국 보다 경제력이 빵빵한 일본 조차도 크게 성공하지 못한 사업인 마당에, 부산 해상신도시계획도 94년도에 정상적으로 착공했다 한들, 얼마 안가 터진 외환위기에 가로막혀 골칫거리로 전락했을 공산이 매우 크다. 경제적 의미의 도시계획, 개발은 1차적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것이 아닌 기존 산업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키는데 목적이 있다. 상술된 규모로 해상신도시를 조성했다면 IMF 와중에 정부 재정 부담 뿐만 아니라, 외자 유치까지 했다면 고환율 상태에서 상환 부담까지 가중되었을 것이다. 물론 개발 이후 기업 이전이나[11] 역내 소비 증대 등으로 비용을 메울만한 수익이 창출될 가능성도 낮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운의 계획이다.
이후 2000년, 부산시에서 제2차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안)을 제출하며 재추진이 시도되는 듯 하였으나#, 2001년 해양수산부는 수용하지 않았고 확실히 무산되었다. # 2020년 11월 23일 결국 20년만에 같은 의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하지만 해양생태계 파괴 및 경제성 논란과 엄청난 사업비를 어떻게 충족시킬지 의문이다. 부산일보 기사

4. 여담


  • 군산에도 해상도시 계획이 있었고 실제로 매립까지 했으나 현재 방치상태로 있다.
  • 조감도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 해상신도시가 지어졌으면, 부산항대교가 지금보다 남쪽에 지어져 용호동에서 한국해양대학교 앞으로 지나갔을 것이다. 그러면 이름도 부산항대교가 아니었을듯.

5. 관련 문서



[1] 조감도를 보면 영도의 중리산과 송도의 진정산, 장군산이 평지의 아파트단지로 바뀌어 있다. 여기서 나온 흙으로 매립하려던 계획으로 보인다. 허나 송도의 진정산과 장군산은 서구예비군훈련장과 군부대가 위치한 곳이라 군부대가 이전하지 않는 한 섣불리 개발도 못한다. 결국 페이퍼 플랜에 가까웠던 셈.[2] 또한 감천항동편부두와 서편부두를 잇는 다리도 건설할 계획이었던 듯 하다.[3] 경찰서, 소방서, 우체국, 복지회관 등[4] 박물관, 수족관, 문화회관 등[5] 백화점, 쇼핑몰, 호텔, 상가, 오피스텔, 은행, 증권거래소, 금융센터, 전산센터 등[6] 면적 까지 감안하면 영도구나 서구가 아닌 별도의 자치구로 분리되었을 가능성이 높다.[7] 현재의 대저동~수영을 잇는 그 노선과 헷갈리면 곤란하다. 규격은 애초부터 경전철이었다.[8] 실제로 90년대 초에 발표된 부산 도시철도 계획에 따르면 현재의 대저~수영+반송~미남 노선이 통째로 '''4호선'''이었다.[9] 그러다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반송~미남 노선은 별도의 경전철로 분리되며 4호선으로 밀렸고, 가덕도를 잇는 노선 또한 5호선이라는 번호를 다시금 부여받았다.[10] 해상신도시와 관련 없는 노선이 되었지만 부산의 항만도로를 이용하여 동서를 이어주는 특성상 장거리 승객이 대다수이며, 가축수송을 한다.[11] 한국 경제 전체가 얼어 붙은 상황에서 이것도 대단히 무리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