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융
傅肜
(? ~ 222)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한의 신하로 의양군 출신이며, 부첨의 아버지.
융(肜)을 동(彤)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각종 판본에서 부동으로 기록하자 많은 사람들이 부동으로 착각했다.[1] 작은 글씨로 보면 솔직히 두 글자가 같게 보이기 때문에 좀 더 크게 보면 비교가 가능하다.
융肜 동彤
222년에 이릉대전에서 별독으로 참전했지만 육손의 계책에 패해 퇴각할 때 뒤를 맡아 적의 추격을 끊으면서 싸우다가 휘하의 병사들 전원이 전멸했는데, 이에 오나라 장수가 항복을 하라고 하자
후에 아들 부첨도 촉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했다. 촉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부첨의 아들인 부저(傅著), 부모(傅募) 등은 죄인의 자식으로서 종이 되었다. 하지만 서진이 건국되고 269년 사마염이 조서를 내려 부융, 부첨 2대에 걸친 충의를 칭찬하여 그 죄를 면해줬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익과 함께 중군호위로 임명되어 이릉대전에서 참전하며, 뒤를 막다가 여덟 면으로 포위되어 정봉#s-1이 "서천의 군사는 헤아릴 수 없고 항복한 자가 매우 많다. 지금 너는 힘이 다하고 세력이 외로워졌는데, 어찌하여 어서 항복하지 않느냐?"라고 묻자 "나는 한의 장수다. 어찌 오나라의 개들에게 항복하겠느냐!"라고 외치면서 창을 비껴 잡고 오군을 향해 달려 백여 차례 부딪쳤다. 끝내 포위를 풀지 못하자 그는 "오늘로 나도 끝이로구나"라고 탄식하다가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오군의 무리 속에서 전사한다.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평범한 C급 무장으로 등장한다. 아들인 부첨이 쓸모가 많다는 데에 의의를 두자. 이름은 부동으로 잘못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 2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67/무력 72/지력 42/정치력 41의 능력치에 분투, 돌파, 매도를 가지고 있다. 아들보다 낮은 능력치지만 게임 시스템상 부장으로는 충분히 활용가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72/지력 46/정치력 47/매력 63의 C급 무장에 특기도 기술, 저지, 기합뿐. 아들인 부첨은 유용하지만 문제는 부융은 이릉전투 이후 전사하는데, 아들인 부첨은 출사표 시나리오까지 가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둘이 겹치려야 겹칠 수가 없다. 참고로 부첨의 등장년도는 230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부융이 안 죽기를 바라야 할 판.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72/지력 46/정치력 42/매력 63. 특기는 연전이다. 주장이었다는 풍습, 장남에게도 특기가 없는데 C급 무장인 부융은 특기를 달고 나왔다. 신야에서 재야무장으로 있어서 신장을 가진 관우에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정작 유비의 신하로 있어야 할 유비입촉 시나리오에서는 여전히 신야의 재야무장으로 있다가 십중팔구 조조에게 등용된다. 의리도 최고로 설정 돼 있어 상성이 맞는 유비 진영에서도 재등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최고의 의리를 유비에 바쳐야 되는데 조조에게 바치는 상황인 것이다. 친애무장이 유비로 되어 있으면 모를까, 고증이 매우 잘못된 사례. 영웅집결에서는 아들과 같이 매우 좋은 재야가 된다.
삼국지 12에서는 아들 부첨도 살아남고 풍습#s-2도 살아남았는데 자신은 짤렸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72/지력 46/정치력 42며, 중신특성도 없고 특기도 훈련 (1)과 견수 (2)밖에 없는 평범한 C급 무관이다. 전수특기는 견수이며 전법은 기방강화. 일러스트는 창을 든 채 이릉대전에서 투항을 권유하는 오나라 장수에게 거절하는 모습이다.
삼국지 14에서 일러스트는 전작 삼국지 13을 그대로 쓴다.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72/지력 46/정치력 42/매력 63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일심, 후위, 진화가 있고, 주의는 할거, 정책은 학익강화 Lv 3, 진형은 어린, 학익이 있고, 전법은 격려, 철벽을 가지고 있다. 친애무장은 보광, 혐오무장은 없다.
삼국전투기에서도 부동이라 나왔으며 이릉 전투 10편에 짧게 등장하였다.
(? ~ 222)
1. 소개
후한 말과 삼국시대 촉한의 신하로 의양군 출신이며, 부첨의 아버지.
융(肜)을 동(彤)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각종 판본에서 부동으로 기록하자 많은 사람들이 부동으로 착각했다.[1] 작은 글씨로 보면 솔직히 두 글자가 같게 보이기 때문에 좀 더 크게 보면 비교가 가능하다.
융肜 동彤
222년에 이릉대전에서 별독으로 참전했지만 육손의 계책에 패해 퇴각할 때 뒤를 맡아 적의 추격을 끊으면서 싸우다가 휘하의 병사들 전원이 전멸했는데, 이에 오나라 장수가 항복을 하라고 하자
라고 욕하면서 싸우다가 전사했다.오(吳)나라 개들아! 한(漢)나라 장군으로 항복하는 자가 어찌 있겠는가!
후에 아들 부첨도 촉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했다. 촉나라가 멸망한 이후에는 부첨의 아들인 부저(傅著), 부모(傅募) 등은 죄인의 자식으로서 종이 되었다. 하지만 서진이 건국되고 269년 사마염이 조서를 내려 부융, 부첨 2대에 걸친 충의를 칭찬하여 그 죄를 면해줬다고 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장익과 함께 중군호위로 임명되어 이릉대전에서 참전하며, 뒤를 막다가 여덟 면으로 포위되어 정봉#s-1이 "서천의 군사는 헤아릴 수 없고 항복한 자가 매우 많다. 지금 너는 힘이 다하고 세력이 외로워졌는데, 어찌하여 어서 항복하지 않느냐?"라고 묻자 "나는 한의 장수다. 어찌 오나라의 개들에게 항복하겠느냐!"라고 외치면서 창을 비껴 잡고 오군을 향해 달려 백여 차례 부딪쳤다. 끝내 포위를 풀지 못하자 그는 "오늘로 나도 끝이로구나"라고 탄식하다가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 오군의 무리 속에서 전사한다.
2. 미디어 믹스
삼국지 시리즈에서도 평범한 C급 무장으로 등장한다. 아들인 부첨이 쓸모가 많다는 데에 의의를 두자. 이름은 부동으로 잘못 나오는 경우가 많다. 삼국지 2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67/무력 72/지력 42/정치력 41의 능력치에 분투, 돌파, 매도를 가지고 있다. 아들보다 낮은 능력치지만 게임 시스템상 부장으로는 충분히 활용가하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72/지력 46/정치력 47/매력 63의 C급 무장에 특기도 기술, 저지, 기합뿐. 아들인 부첨은 유용하지만 문제는 부융은 이릉전투 이후 전사하는데, 아들인 부첨은 출사표 시나리오까지 가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둘이 겹치려야 겹칠 수가 없다. 참고로 부첨의 등장년도는 230년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부융이 안 죽기를 바라야 할 판.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72/지력 46/정치력 42/매력 63. 특기는 연전이다. 주장이었다는 풍습, 장남에게도 특기가 없는데 C급 무장인 부융은 특기를 달고 나왔다. 신야에서 재야무장으로 있어서 신장을 가진 관우에게는 매우 좋다. 그러나 정작 유비의 신하로 있어야 할 유비입촉 시나리오에서는 여전히 신야의 재야무장으로 있다가 십중팔구 조조에게 등용된다. 의리도 최고로 설정 돼 있어 상성이 맞는 유비 진영에서도 재등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최고의 의리를 유비에 바쳐야 되는데 조조에게 바치는 상황인 것이다. 친애무장이 유비로 되어 있으면 모를까, 고증이 매우 잘못된 사례. 영웅집결에서는 아들과 같이 매우 좋은 재야가 된다.
삼국지 12에서는 아들 부첨도 살아남고 풍습#s-2도 살아남았는데 자신은 짤렸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6/무력 72/지력 46/정치력 42며, 중신특성도 없고 특기도 훈련 (1)과 견수 (2)밖에 없는 평범한 C급 무관이다. 전수특기는 견수이며 전법은 기방강화. 일러스트는 창을 든 채 이릉대전에서 투항을 권유하는 오나라 장수에게 거절하는 모습이다.
삼국지 14에서 일러스트는 전작 삼국지 13을 그대로 쓴다. 능력치는 통솔력 65/무력 72/지력 46/정치력 42/매력 63으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 하락했다.. 개성은 일심, 후위, 진화가 있고, 주의는 할거, 정책은 학익강화 Lv 3, 진형은 어린, 학익이 있고, 전법은 격려, 철벽을 가지고 있다. 친애무장은 보광, 혐오무장은 없다.
삼국전투기에서도 부동이라 나왔으며 이릉 전투 10편에 짧게 등장하였다.
[1] 국내에서는 가장 많이 읽혔으리라 생각되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도 부동이라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