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스톨 시티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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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톨 시티 FC'''
'''Bristol City F.C.'''[1]
'''정식 명칭'''
Bristol City Football Club
'''애칭'''
'''The Robins'''
'''창단'''
1894년
'''소속 리그'''
'''EFL 챔피언십 (EFL Championship)'''
'''연고지'''
사우스웨스트 잉글랜드 브리스톨 (Bristol)
'''홈구장'''
애쉬튼 게이트 스타디움 (Ashton Gate Stadium)
(27,000명 수용)
'''라이벌'''
'''브리스톨 로버스 FC - 브리스톨 더비'''
'''카디프 시티 FC - 세번사이드 더비'''
'''구단주'''
스티븐 랜스다운 (Stephen Lansdown)[2]
'''감독'''
나이젤 피어슨 (Nigel Pearson)
'''주장'''
베일리 라이트 (Bailey Wright)
'''공식 홈페이지와 소셜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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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 기록 '''
'''EFL 챔피언십 (2부)'''
(1회)

1905-06
'''EFL 리그 1 (3부)'''
(4회)

1922-23, 1926-27, 1954-55, 2014-15
'''클럽 기록 '''
'''최고 이적료 영입'''
파마라 디헤디후 (Famara Diedhiou)
(2017년, From 앙제 SCO, 530만 £)
'''최고 이적료 방출'''
아담 웹스터 (Adam Webster)
(2019년, To 브라이튼 앤 호브 알비온 FC, 2000만 £)
'''최다 출장'''
루이스 캐리 (Louis Carey) - 646경기 (1995-2004 / 2005-2014)
'''최다 득점'''
존 아티오 (John Atyeo) - 351골 (1951-1966)
1. 개요
2. 역사
2.1. 초창기 시절 (1894~1911년)
2.2. 긴 하부 리그 생활 이후 짧은 1부 리그 복귀 (1911~1980년)
2.3. 3번의 연속 강등, 클럽 최악의 재정 위기와 "The Ashton Gate Eight" (1980~1984년)
2.4. 부활 이후 요요(1984~2000년)
2.5. 2000년대 이후 프리미어 리그로의 도전(2000년~)
3. 라이벌
4. 레전드
4.1. The Ashton Gate Eight
5. 여담
6. 1군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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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ristol City Football Club. 잉글랜드 남서부의 에이번 강을 끼고 있는 브리스톨을 연고로 하는 프로 축구클럽이다. 120여년의 역사 동안 초창기 잠깐과 1970년대 후반 잠깐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기간을 2,3부 리그에서 활동했다. 홈구장은 애쉬튼 게이트.

2. 역사



2.1. 초창기 시절 (1894~1911년)


1894년 브리스톨 사우스 엔드 FC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3년 뒤 현재와 같은 브리스톨 시티 FC로 이름을 바꾸고 프로화 하면서 남부 리그에 참가하였다. 첫 감독으로는 당시 풋볼 리그의 2부 리그에 있던 울위치 아스널(현 아스널 FC)에서 코치진으로 있던 샘 홀리스를 데려왔다. 그가 맡은 첫 임무들 중 하나는 남부 리그에 참가하기 위한 스쿼드를 짜는 것이었는데 그 선수 영입 예산으로 당시 돈으로 40파운드를 받았다고 한다.
1900년에는 근처에 있던 베드민스터 FC를 흡수 합병했다. 여기서 재밌는 이야기가 있는데 1897년 부임하여 브리스톨 시티의 첫 감독이었던 샘 홀리스는 1899년 브리스톨 시티를 떠나 베드민스터의 감독이 되었는데 바로 다음해 베드민스터가 브리스톨 시티에 합병돼서 클럽이 사라지면서 실직했다가 1901년에 다시 브리스톨 시티의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즌에 팀을 남부 리그에서 풋볼 리그로 승격시켜 브리스톨 시티는 1901-02 시즌부터 풋볼 리그에서 뛰게 되어, 버밍엄 이남 지역에서는 울위치 아스널(현 아스널 FC)루튼 타운 FC에 이어 3번째로 풋볼 리그에 참가하는 클럽이 되었다. 역사적인 풋볼 리그 첫 경기의 상대는 9월 7일 치뤄진 블랙풀 FC와의 원정 경기였고 2-0으로 이겼다. 1900년 이후 세인트 존스 래인과 애쉬튼 게이트를 번갈아 홈구장으로 쓰다가 1904년부터 애쉬튼 게이트를 홈구장으로 정했으며 이곳은 현재까지도 브리스톨 시티의 홈구장이다.
1905-06 시즌에 2부 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1부로 승격하였다. 클럽의 첫 1부 리그 시즌인 1906-07 시즌에 리그 2위를 차지했다.[3] 그 후 1909년에 FA컵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선전하며 1부 리그에서 계속 활약하다가 1910-11 시즌에 첫 강등을 맛보며 2부 리그로 떨어졌다.

2.2. 긴 하부 리그 생활 이후 짧은 1부 리그 복귀 (1911~1980년)


이후 오랜기간 2부와 3부 리그에서 머물다가 1967년에 앨런 딕스가 감독으로 취임한 뒤 전력을 점차 강화하여 1971년 리그컵 4강, 1974년 FA컵 8강에 올랐고, 제프 메릭, 클리프 화이트헤드, 게리 가우, 트레버 테인턴, 톰 리치, 지미 맨을 축으로 하여 1975-76 시즌에는 1부 리그로 승격에 성공하였다. 이는 66년만의 1부 리그 무대였다. 1978년에는 앵글로-스코티시 컵 결승에서 세인트 미렌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였다.

2.3. 3번의 연속 강등, 클럽 최악의 재정 위기와 "The Ashton Gate Eight" (1980~1984년)


팀의 가장 중요 선수였던 개리 콜리어를 계약 상의 문제로 1979년에 원래 가치보다 훨씬 헐값에 보내버리게 된 뒤 다시 같은 상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팀의 주요 선수들과 10여년의 장기 계약을 맺게 된다. 문제는 스타 플레이어들과 그런 장기계약을 맺기 위해선 엄청난 자금이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당시 브리스톨 시티는 대부분의 수입을 1부 리그와 입장권 수입에 의존해 있던 상황이었다는 점이다. 그 와중에 1979-80시즌에 2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그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탑은 결국 무너지고 만다. 사실 강등되기 전부터 클럽은 재정적으로 가라앉고 있었는데 2부 리그로의 강등이 그 상황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1980-81시즌엔 2부 리그에서도 강등되었고 앨런 딕스는 경질되었다. 3부 리그에서 맞이하게 된 1981-82시즌엔 클럽 재정 상태가 갈수록 나빠져 최악의 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엄청난 빚과 적자에 눌려 파산 직전이었던 클럽의 보드진은 당시 팀에서 가장 높은 급여를 받는 8명의 선수들을 불러 "당신들이 현재의 계약을 파기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면 이 클럽은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라고 얘기하며 현 계약의 파기를 요청했다. 나중에 결국 그 8명은 계약 파기를 받아들였고 브리스톨 시티는 간발의 차로 문을 닫는 것을 면했다. PFA(잉글랜드 프로 축구 선수 협회)에서 해당 선수들이 옮겨갈 새 클럽들을 알아봐 주었다. 하지만 그 8명은 당시 기레기들에 의해 "클럽의 어려움을 외면한 채 으리으리한 집에 살면서 호의호식하는 악당들"이라는 식으로 부당한 보도의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4] 거기에 낚인 사람들에게 협박을 받기도 했으며, 계약 파기의 여파로 개인 커리어적으로나 재정적으로 큰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희생을 하며 브리스톨 시티를 살린 이 8명은 "The Ashton Gate Eight"로 불리며 현재 팬들에게 클럽의 진정한 영웅들로 여겨지고 있다. 그 후 클럽은 팬들 사이에 클럽 살리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어린 선수들 위주로 팀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값이 나갈만한 선수들은 계속 팔아서 빚을 갚는데 썼다. 그러던 중 새로운 구단주가 들어오고 구단주는 클럽을 새로운 기업으로 개편시키며 새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해당 시즌은 이미 돌이키기엔 너무 늦었고 결국 클럽 역사상 처음으로 4부 리그로 강등되고 만다. 1부 리그에서 4부 리그까지 3시즌 연속 강등이었다. 그러나 다음 시즌인 1982-83시즌부터 상황은 서서히 반등하기 시작하여 1983-84시즌에 3부 리그로 승격에 성공하였다. 기사1,기사2,기사3

2.4. 부활 이후 요요(1984~2000년)


1990년에는 2부 리그로 다시 승격했다가 1995년에 3부 리그로 떨어진 후 1998년에 다시 2부 리그로 올라갔다가 1999년에 다시 3부로 떨어지며 2,3부 리그 사이에 승격과 강등을 반복하였다.

2.5. 2000년대 이후 프리미어 리그로의 도전(2000년~)


요빌 타운 감독이었던 개리 존슨이 2005년에 새 감독으로 부임했고, 3부로 떨어진지 8년만인 2006-07시즌에 리그 2위를 차지하며 다시 2부로 승격하는데 성공했다.

2007년 8년만의 2부 복귀 확정에 경기 종료 직후 기뻐하며 피치로 뛰어드는 관중들
2007-08 시즌엔 리그 후반인 3월 초까지만해도 리그 1위를 하며 자동승격이 유력해 보였지만 이후 부진하여 순위가 좀 떨어졌으나 다행히 리그 4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하며 2연속 승격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가는듯 싶었다. 플레이오프 첫 경기를 크리스탈 팰리스에게 4-2로 승리하였지만 플레이오프 두 번째 경기에서 헐 시티에게 지며 프리미어 리그 승격이 좌절됐다. 2008-09 시즌은 중위권으로 마친 후, 2009-10 시즌 초반에 선전하다가 라이벌인 카디프 시티에게 6-0으로 대패하고 돈캐스터 로버스에게도 5-2로 지는 등 부진 끝에 개리 존슨은 시즌 도중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여러 감독들을 거쳤으나 부진 끝에 2013년에 다시 3부 리그로 떨어졌다.[5] 2013년말 스티브 코터릴이 부임했고 2014-15 시즌에 승점 99점이라는 클럽 레코드로 3부 리그 우승을 차지하고 2부 리그로 다시 돌아왔다. 챔피언십 승격 이후 강등권을 맴돌던 2016년 초에 스티브 코터릴은 경질되었다. 처음엔 보드진에서 스티브 코터릴이 팀을 프리미어 리그까지 이끌 수 있는 감독이라 생각했었지만 챔피언십에서 계속 부진하자 아마 그의 능력은 여기까지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스티브 코터릴 경질 이후 리 존슨이 새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는 전 브리스톨 시티 선수이기도 했고 전 감독이었던 개리 존슨의 아들이기도 했다. 리 존슨 부임 후 팀은 강등권에서 벗어나 챔피언십 18위로 2015-16시즌을 마무리했다.
2017-18 시즌 리그컵에서 프리미어 리그 팀들인 왓포드(3-2 승), 스토크 시티(2-0 승), 크리스탈 팰리스(4-1 승)를 연달아 꺾으며 8강에 진출하더니 8강에선 맨유까지 2-1로 꺾어버리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경기 종료 직후엔 온 관중들이 피치에 뛰어들어 선수들을 끌어안으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4강에서 맨시티에게 비록 지긴 했으나 1,2차전 모두 선전하며 박수를 받았다. 맨유와의 8강전을 치르기 전 인터뷰에서 리 존슨 감독은 무리뉴와의 만남을 학수고대하며 경기 후 그와 짧은 대화라도 나누며 축구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 위해 무리뉴가 좋아한다는 450파운드짜리(약 67만원) 2004년산 바르카 벨하 와인까지 포르투갈로부터 주문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맨유가 패배한 후 무리뉴가 바로 경기장을 빠져 나가버리는 바람에 함께 와인을 마시진 못했다고 한다.

2.6. 역대 시즌




3.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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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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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톨 시티 FC
Bristol City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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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톨 로버스 FC
Bristol Rovers F.C.
'''

같은 브리스톨에 위치한 최대 라이벌이다.
하지만 2000-01시즌을 마지막으로 서로 같은 리그에서 뛴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거의 만난일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브리스톨 더비
[image]
'''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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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톨 시티 FC
Bristol City F.C.
'''

'''카디프 시티 FC
Cardiff City F.C.
'''

브리스톨 해협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브리스톨 시티는 잉글랜드 팀이고 카디프 시티는 웨일스 팀이기에 이 더비는 영국 리그에서 몇 안되는 국제 더비다.
자세한 내용은 세번사이드 더비

4. 레전드


  • 존 아티오(John Atyeo) - 1951년부터 1966년까지 15년간 브리스톨 시티에서 공격수로 뛰며 351골을 넣었으며 지금까지도 브리스톨 시티의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있다. 1955년에서 1957년까지 잉글랜드 국가대표팀으로도 활약해 6경기에 출장했으며 총 5골을 넣었다. 브리스톨 시티에서 활약하던 중에 첼시 FC, 리버풀 FC, 토트넘, AC 밀란에서도 이적 제의가 왔지만 그는 계속 브리스톨 시티에서 뛰는걸 선택했다. 1966년에 은퇴한 후에는 고향의 학교에서 수학 교사가 되어 여생을 보냈다. 애쉬튼 게이트에 그의 이름을 딴 '아티오 스탠드'가 있으며 구장 입구엔 동상도 세워져 있다.

4.1. The Ashton Gate Eight


1982년 브리스톨 시티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브리스톨 시티를 살린 이 8명을 현재 팬들은 클럽의 영웅들로 여기고 있으며 그라운드에 이들의 현판도 제작되어 있다.
  • 게리 스위니(Gerry Sweeney)
  • 데이브 로저스(Dave Rodgers)
  • 피터 아이킨(Peter Aitken)
  • 크리스 가랜드(Chris Garland)
  • 트레버 테인튼(Trevor Tainton)
  • 지미 맨(Jimmy Mann)
  • 줄리안 마샬(Julian Marshall)
  • 조프 메릭(Geoff Merrick)

5. 여담


  • 영국 풋볼 리그 역사상 한 시즌에 리그 30승을 달성한 최초의 클럽이다.

6. 1군 선수단




[1] /ˈbrɪstᵊl ˈsɪtɪ/[2] 2002년부터 구단주를 하고 있다.[3] 이 때의 1부 리그 2위가 현재까지도 브리스톨 시티의 리그 최고 성적이다.[4] 아무리 1부 리그 시절부터 있던 선수라도 당시 축구 시장자체가 요즘 프리미어 리거들이 받는 돈과는 비교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괜찮은 연봉을 받았을진 몰라도 남은 인생을 먹고 살만큼 돈을 많이 벌진 않았다. 결국 한 명은 이후 개인 파산에 이르기도 했다.[5] 2010년 개리 존슨 사임 이후 3년동안 무려 4명의 감독이 부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