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장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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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동부의 도시. 디종에서 동남쪽으로 60km, 낭시에서 남쪽으로 90km 떨어져 있다. 도시에서 동남쪽으로 40여 km만 가면 스위스 국경이 나오고 10km 정도 더 가면 뇌샤텔에 도착한다. 시가지는 쥐라 산맥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여 있는데, 인구는 13만 6천명으로 부르고뉴프랑슈콩테 레지옹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다.[1] 역사적으로 프랑슈콩테 지방의 중심지였으며, 현재도 주 의회가 위치하여 있다. 프랑스의 작가 빅토르 위고와 사상가 F.M.C.푸리에, 뤼미에르 형제 [2] 의 고향이며, 1948년부터 매년 열리는 국제 음악회로도 유명하다. 도시를 두른 성벽은 세바스티앙 르 프레스트르 드 보방의 성형 요새 중 하나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2. 역사
원래 갈리아 인의 도시였고 하이두이 족과 세콰니 족간의 경계 도시였으나 카이사르에게 점령되었다. (기원전 58년) 로마 시대 이름은 베손티오 (Vesontio)였다. 중세 시대에 들어 부르고뉴 공국에 속하게 된 브장송은 신성로마제국에 편입되었고 대주교구가 설치된 후 자유 도시로 승격되었다. (1184년) 이후 1519년에 부르고뉴 공국이 카를 5세에게 상속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영토가 되었고 1526년에 브장송은 동전 주조권을 얻었다.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브장송과 프랑슈콩테 지역은 신성로마제국에서 벗어나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조)의 지배 하에 들어갔고 자유 도시 지위를 상실하였다. 한편 루이 14세는 프랑슈콩테가 프랑스에 편입된 부르고뉴 공국의 옛 영토였던 곳을 주장하며 1667년에 귀속 전쟁 (War of Devolution)을 일으켰고, 1668년에 프랑스군이 도시에 입성하였다. 하지만 그해에 아헨 조약으로 포기했던 프랑스는 불란 전쟁과 아헨 조약으로 1674년에 기어코 재점령, 프랑슈콩테 주의 주도로 삼았다.
3. 랜드마크
4. 교통
도시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돌 쥐라 공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