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버크너
1. 소개
메이저리그의 전 1루수, 외야수. 1969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소속으로 빅리그에 데뷔한 이후 그저그런 활약상을 보여준 이후 시카고 컵스로 이적, 컵스의 암흑기 당시 팀의 주축 타자로 활약하였으며, 이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한 뒤에도 짧은 기간동안 메이저리거로서 전성기를 보여준 후 1990년을 끝으로 은퇴하였다.
한차례 타격왕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통산 OPS .729에서 볼 수 있듯 당대 메이저리그를 대표할 정도의 스타 선수라고 하기는 어렵다.[1] 그보다는 1986년 월드 시리즈에서 6차전에서 보여준 '''끝내기 실책'''으로 '''레드삭스의 우승을 좌절시킨 원흉'''으로 오명을 쓰고 보스턴 팬들에게 천하의 역적으로 남게 된 것으로 유명하다.[2]
2. 데뷔 이전
버크너는 고교시절 캘리포니아 주에서 미식축구와 야구를 병행하였는데, 야구선수로서는 2학년때 .667, 3학년때 .527이라는 고타율을 기록하였으며, 미식축구에서는 와이드 리시버로 뛰며 리시빙 야드와 관련된 지역 기록을 모두 갈아치우며 올 아메리칸 2회에 선정 될 정도로 뛰어난 유망주였다.
풋볼 선수로서의 재능을 높게 산 스탠포드 대학교와 USC에서 앞다투어 그를 영입하려 하였으나 그는 이를 모두 거절하고 1968년 MLB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 2라운드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지명을 받고 프로야구선수가 되었다
3. 선수 시절
버크너는 1969년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데뷔전을 치르기도 하였으나 대부분의 시간을 마이너 리그에서 보냈고, 1971년부터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거로 뛰기 시작했다.
이 당시 주 포지션은 외야수로 1974년 4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경기에서는 좌익수로 행크 애런의 홈런성 타구를 근소한 차이로 잡는데에 실패했는데, 이 홈런이 베이브 루스의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깨는 '''715번째 홈런'''이었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수비력은 리그에서 상당히 준수한 편이었다.
타격에 있어서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빠지는 볼도 적극적으로 받아치는 배드볼 히터의 성향으로 이로 인해 출루율이 높은 편은 아니었으나 1976년에는 193안타로 200안타에 근접하는 기록을 세우는 등 많은 수의 안타를 만들어냈다.
1976년 시즌 이후에는 시카고 컵스로 3대2 트레이드로 이적, 컵스에서 실력을 발휘하며 주전으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3.1. 1986년 월드 시리즈
6차전 10회말 5:5 동점 상황에서 뉴욕 메츠의 무키 윌슨의 평범한 땅볼을 뒤로 빠뜨리면서 포구에 실패, 타구가 우익선상으로 흘러가는 것과 동시에 2루에 있던 레이 나이트가 홈으로 쇄도하여 경기가 종료되어 팀의 우승을 저지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밤비노의 저주'''라는 말이 나온 것이 바로 이 월드 시리즈 패배 이후이다.
당시 버크너는 시카고 컵스의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밤비노의 저주+염소의 저주가 동시 발동되어 보스턴의 우승이 좌절되었다는 말이 정설로 받아들어지기도 했었다.
3.2. 이후
이후에 빌 버크너는 한 번 트레이드되었지만, 은퇴는 레드삭스에서 하였다. 은퇴 이후에도 보스턴에서 살았지만, 온갖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버크너의 집에 쓰레기를 버리던가, 바에서 버크너를 알아본 보스턴 시민이 과일을 굴려서 잡아 보라고 한 적도 있었고, 버크너의 자녀들마저도 학교에서 왕따를 당했다고 한다.
4. 은퇴 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첫해 2.1%로의 투표를 얻는데 그치고 첫선에서 탈락한다.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가 2019년에 6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5. 기타등등
6. 관련 문서
[1] 통산 BWAR도 15.1,FWAR도 18.8에 불과하다.[2] 레드삭스 팬덤은 2004년 월드 시리즈에서 86년만에 우승할 때 까지 버크너에게 수많은 비난을 퍼부었다. 예를 들자면, 보스턴의 어느 바에서 버크너를 알아보고 누군가가 과일을 굴려서 버크너한테 잡아 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