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 애런
1.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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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브 루스의 통산 홈런 기록을 금지 약물 없이 정정당당하게 돌파한 유일한 선수이자 역사상 2번째로 많은 홈런인 '''755 홈런'''을 친 타자로,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한 명'''이다.[2] 그리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전설적인 강타자이자 부회장(Senior Vice President)으로 재직했던 야구인이다.
통산 성적은 타율 .305, 755홈런, 3771안타, 출루율 .374, 장타율 .555, OPS .928, 순장타율 .250, BB/K 1.01, wRC+ 153, 2297타점.
2. 선수 시절
어린 시절 독학으로 야구를 배웠는데, 그가 야구를 하게 된 동기는 열악했던 가정환경 때문이었다. 그는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앨라배마 주의 모빌 출신이었으며, 어찌나 집안이 극빈했냐면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하다못해 내부 욕실도 갖춰지지 않았던 정도였다. 그가 야구를 하기위해 고등학교를 포기하자 그의 어머니는 야구선수가 되지 못하면 복학하라고 엄포까지 받은 상황이었다.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니그로리그에서 뛰다가 메이저리그로 데뷔하게 되었다. 독학으로 야구를 배운 탓에 애런은 한동안 우타자이면서도 왼손이 오른손 위에 자리한 잘못된 방식으로 타격을 했다가 교정했는데, 세이버메트릭스의 대부인 빌 제임스는 애런의 놀라운 손목 힘은 이 잘못된 자세로 타격을 하기 위해서 길러진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팀은 밀워키 브레이브스. 여기서 선수 생활의 부분을 보내면서 무수한 기록을 쌓았다. 밀워키에서 1957년 월드시리즈 우승도 차지했는데, 그것이 에런의 유일한 메이저리그 우승이다. 아울러 니그로리그는 그가 떠난 후 흑인들의 메이저리그 진출의 길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는데, 이 때문에 애런은 마지막 현역 니그로리거로도 유명하다.
브레이브스에서 1954년부터 뛰면서 최고의 타자로서 맹활약했다. 화려하다기보다는 꾸준한 타입이고, 연고지였던 밀워키가 소도시라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은 적은 많지 않지만, 나름대로 명예의 전당급 이상의 커리어를 갖췄다 평가받는 치퍼 존스, 에디 매튜스, 데일 머피와도 진정 넘사벽의 격차가 있을 정도로 브레이브스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위대한 타자임에는 분명하다. 브레이브스 레전드들에 대해 실시한 조지아 주 내 팬들의 인기투표에서도 치퍼를 넘어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행크 애런이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1974년 베이브 루스의 714호 통산 기록을 깨뜨릴 때이다. 당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너같은 검둥이가 위대하신 루스님의 기록을 깬다면 너와 네 가족들을 모두 죽여버릴거야"따위의 협박 편지를 퍼붓는 상황이었다.[3] 이 때문에 베이브 루스의 아내인 클레어 매릿 루스(1897~1976)는 "남편은 이 기록이 깨지는 것을 바랄 것"이라며 애런을 응원할 정도였다. 행크 애런은 기어이 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깨뜨리면서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신화로 남았다. 참고로 이 당시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 때 관중 2명이 난입하는데, 애런의 가족들은 혹시 애런을 살해하려는 시도가 아닌가 해서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다행히 난입한 백인 관중 2명은 백인 우월주의자같은 것이 아니라 '''그냥 홈런 신기록에 흥분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해 난입한 야빠 아재들'''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우려한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당시 영상을 보면 에런은 기쁨을 감추며 묵묵히 베이스를 돌고 있는데 난입한 백인 청년들이 대신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3루를 도는 애런을 따라다니면서 축하해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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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을 끝으로 브레이브스를 떠났다. 이 때는 이미 브레이브스가 밀워키에서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옮겼을 때인데, 자신의 젊은 날을 대부분 보냈던 밀워키에 새로 자리한 밀워키 브루어스로 가서 지명타자로 두 시즌을 더 뛴 후 은퇴했다. 참고로 이 때 밀워키의 구단주가 나중에 메이저리그 사무국 커미셔너로 이름을 날린 버드 셀릭으로, 행크 애런의 오랜 팬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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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755홈런으로 오랫동안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자리를 지킨 타자라서 '스윙이 크고 삼진이 많은' 전형적인 거포 타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그는 '''단순한 거포가 아니다'''. 체구도 홈런왕 치고는 꽤 작은 편인 182cm-83kg에 불과했으나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무지막지한 손목 힘에서 나오는 빠른 스윙[4] 으로 장타를 생산한 타입. 게다가 홈런타자 중에서 삼진도 굉장히 적게 당한 선수로, 행크 애런은 22시즌 동안 총 13,941번의 타석에 들어왔으나 삼진은 고작 1,383개, 즉 10타석당 한 번 정도 비율의 삼진밖에 당하지 않았다. 홈런-삼진 비율 또한 1.83으로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10걸 중 1위[5] , 500홈런 이상의 타자들로 범위를 넓혀도 테드 윌리엄스와 멜 오트에 이은 3위에 해당하는 수치이다. 애런은 단순한 홈런타자가 아니라 정교함과 선구안, 파워에 나름의 스피드까지 갖춘 '''완성형 타자'''에 가까웠다.
통산 타율이 0.305로 3할이 넘는데, 22년 선수 생활을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수치. 안타 개수도 3771개(메이저리그 통산 안타 3위[6] )로 '''500홈런과 3,000안타'''를 기록한 역사상 오직 여섯 선수 중의 하나다. 다른 다섯 명은 윌리 메이스, 에디 머레이, 라파엘 팔메이로, 알렉스 로드리게스, 알버트 푸홀스. 그리고 이 중 약쟁이를 제외하면 애런 본인을 포함해 메이스, 푸홀스, 머레이까지 넷 뿐이다.[7] 그리고 '''700홈런과 3,500안타'''를 동시에 해낸 유일무이한 선수이기도 하다.
아울러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최다 타점 기록'''은 아직도 애런의 몫이다. '''2,297타점'''으로 1위이다. 2위는 베이브 루스의 기록으로 2,213 타점이다.[8] 또한 행크 에런이 뛴 시절은 리그 평균 자책점이 2점대를 찍기도 한, 라이브볼 시대 이후 메이저리그 사상 최악의 투고타저의 시기라는 점에서 그의 기록은 더욱 높게 평가받고 있다.
'''통산 득점 기록''' 역시 '''2,174득점'''으로 베이브 루스와 함께 공동 4위인데, 타점과 득점 모두 2천점을 넘는 '''2000-2000'''의 기록 보유자는 메이저리그에서 아직까지 행크 애런, 베이브 루스, 알렉스 로드리게스[9] '''단 세 사람''' 뿐이다. 거기다가 3,000안타까지 포함하여 '''3000-2000-2000'''을 한 선수는 행크 에런과 알렉스 로드리게스 두 사람뿐이다.[10]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다.[11]
또한 '''통산 경기 출장 기록'''도 3,298경기로 메이저리그 통산 3위이다.[12]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3천 경기 출장'''은 매우 명예로운 기록으로 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는 행크 애런을 포함하여 피트 로즈, 칼 야스트렘스키, 리키 헨더슨, 타이 콥, 에디 머레이, 스탠 뮤지얼, 칼 립켄 주니어 이렇게 단 8명 뿐이다.[13][14]
그밖에 '''통산 최다 루타 1위'''(6,856루타), '''통산 순수 장타 수 1위'''[15] (1,477개) 역시 메이저리그 통산 1위 기록. 통산 고의사구는 293개로 3위다.[16]
통산 최다 홈런 기록을 달성한 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전형적인 거포 타입은 아니라서 한 시즌 50홈런을 친 시즌은 단 한 번도 없으며, 홈런왕에 오른 시즌도 겨우(?) 4번이었다.[17] 하지만 꾸준함과 성실함으로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17년 연속 150안타, 20년 연속 20홈런, 23년 연속 두 자리수 홈런'''. 특히 '''15번 30홈런'''을 친 것은 메이저리그 최다 기록. 발도 느린것도 아니여서 통산 270개나 되는 도루를 했다. 행크 애런의 도루 성공률은 76.677%로서, 윌리 메이스의 도루 성공률인 76.644%보다도 높다. 20-20을 5번했고 30-30도 한번 기록했다. 말그대로 호타준족이었다.
아론이 얼마나 꾸준한 타자였는지는 WAR로 보면 더 쉽게 증명 가능한데, 데뷔 3년차였던 1956년부터 무려 14년 연속 fWAR이 6.8을 넘겼다.
흑인 야구선수들에 대해 논할 때 약물 의혹이 있는 배리 본즈를 제외한다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흑인 야수(Fielder)는 윌리 메이스로 인정받지만, 타격으로만 보면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흑인 '''타자'''(Hitter)는 행크 애런으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타격으로 한정해도 윌리 메이스가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많이 있다. 워낙 탁월한 수비로 최고의 외야수로 꼽히기 때문에 공격력이 가려지는 경향도 있지만 메이스는 가장 완벽한 5툴 플레이어라는 평가답게 타격도 당대 최고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비율 기록을 보면 메이스의 OPS가 애런보다 0.013이 더 높지만(에런이 타율은 3리 더 높다.), 그 외의 홈런이나 타점, 안타 등 누적 타격 성적에서는 애런이 많이 강하다.
상술한 대로 메이스와 애런 두 선수가 모두 포함된 500홈런-3000안타 클럽 선수 중에서도 행크 에런의 안타, 홈런, 타점 등 누적 기록이 모두 압도적 1위인데, 애런이 메이스보다 홈런 개수는 95개, 안타는 488개, 타점은 394타점이나 더 많다. 물론 두 선수 모두 선수로 생활한 나이와 기간, 기본 포지션(외야수) 등은 거의 같고 활동한 시기도 비슷하지만[18] 메이스는 20대 초반에 한국전쟁 때문에 군복무로 약 2시즌을 보내서[19] 선수생활 기간이 행크 에런보다 2시즌 부족하고, 데뷔 때부터 은퇴 전까지 외야수 출장을 많이 소화하여 수비로 인한 체력 부담이 있어 말년에 시즌 중 많은 경기와 타석에 서지 못한 메이스에 비해[20] 행크 애런은 말년에 외야수보다 수비로 인한 체력 부담이 적은 1루수 위주로 출전한 시즌도 있는 데다가, 은퇴 전 2년간은 아메리칸 리그팀으로 옮겨 아예 수비 부담이 없는 지명타자로 활동하여[21] 윌리 메이스보다 더 꾸준히 훨씬 많은 타석에서 비교적 타격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것이 타격 누적 기록을 더 많이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였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22]
정리하자면 선수로서의 업적은 메이스가 더 높지만[23] 타자로서의 누적 성적은 애런 쪽으로 조금 더 기우는 상황에서[24] 메이스의 타자 업적 또한 만만치 않기에[25] 메이스의 우위를 주장하는 의견 또한 일리는 있다.
그의 메이저리그 통산 최상위권 주요기록을 정리하자면,
- 통산 타점 1위 (2297타점)
- 통산 루타 1위 (6856루타)
- 통산 순수 장타 개수 1위
- 통산 타수 2위 (12,364타수)
- 통산 홈런 2위 (755홈런)
- 통산 고의4구 3위
- 통산 경기 출장 3위 (3298경기)
- 통산 안타 3위 (3771안타)
- 통산 타석 수 3위 (13,940타석)
- 통산 득점 4위 (2174득점)
- 통산 희생플라이 4위 (121회)
3.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 JAWS - Right Field (2nd)
4. 은퇴 후
은퇴 후 1982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97.83%'''라는 '''역대 9위'''의 높은 득표율로 헌액되는 영광을 얻었다.[26]
배리 본즈가 그의 통산 홈런 기록을 깨려고 할 때, 처음에는 그를 지지했지만 BALCO 스캔들이 터진 후에는 지지를 철회했다. 홈런이 기록이 깨질 때도 현장에 있지 않고, 영상으로만 축하메시지를 보냈다.[27]
은퇴 후에는 한동안 별 자리를 맡지 못하다가 테드 터너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구단주가 된 후인 197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고문 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구단 경영에 참여했고, 1980년부터 구단이 터너의 손을 떠난 지금까지도 구단 부회장 자리를 맡고 있다. 테드 터너의 방송국인 TBS에서도 부회장이자 이사로 등재되어 있으며 개인 사업으로는 조지아 주에서 여러 개의 자동차 딜러를 운영하고 있다.
그의 등번호 44번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밀워키 브루어스의 영구 결번이며, 애런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매년 가장 뛰어난 성적을 올린 타자에게는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 행크 애런 상을 수여하고 있다.
보다 자세한 애런의 이야기를 한글로 읽고 싶으신 분들은 김형준 기자의 레전드 스토리를 참고하시길.
한편 1982년에 한국프로야구가 창설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선발 팀을 이끌고 시카고 컵스의 레전드 어니 뱅크스, 빌리 윌리엄스 등과 함께 내한해서 친선 경기를 벌인 적이 있다. 이 때 경기 전 행크 애런이 이만수, 김우열 등 대한민국의 대표 홈런타자들과 홈런 더비를 했는데, 나이 50살을 바라보는 행크 애런의 타구 비거리와 질은 이만수같은 대한민국 슬러거를 압도할 정도로 차원이 다른 수준을 자랑했다. 참고로 스파이크를 안 신은 상태에서 저런 타구를 쳐낸 것이다. 그를 만났던 이만수는 그야말로 센세이션이었다고 말했다.
내한 당시 받은 초청비 중 일부를 주한미군을 위해 써 달라고 기탁했는데, 6.25 전쟁 당시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를 비롯한 몇몇 미국 야구선수들이 파병을 가는 모습을 본 것을 떠올려서 기부했다고 한다.
5. 사망
현지 시각 2021년 1월 22일, 메이저리그 야구계에 행크 애런이 사망했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향년 86세. 사인은 노화로 인한 자연사로 밝혀졌으며, 자신이 몸담아 왔던 애틀랜타에서 숨을 거두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등, 건강한 모습을 보여 왔기에 팬들이 안타까워했다. 특히 토미 라소다 전 다저스 감독이 타계한지 얼마 안된 시기에 다시금 야구계의 거인이 떠났다는 소식에 슬픔은 더욱 컸다.
6. 기타
유명 힙합 가수 MC 해머와 외모가 비슷한데, MC 해머의 예명부터가 행크 애런의 별명에서 나왔다.
논문 다작으로 유명한 헝가리 출신 수학자 에르되시 팔과 같은 기념구에 사인을 한 적이 있어 많은 직업 수학자들도 갖지 못한 에르되시 번호 1을 갖고 있다고 반 농담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자세한 사항은 에르되시 팔 항목 참고.
ESPN의 기자인 데이비드 숀필드는 MLB 사상 최고타자 순위에서 행크 애런을 베이브 루스보다 앞에 두기도.##
미첼 리포트 이후로 미국에서는 본즈 대신 행크 애런을 사상 최고의 홈런왕으로 둬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며, 실제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도 성적만 보면 첫 턴 만장일치가 나오는게 오히려 정상으로 보일 정도인 본즈는 9수째까지도 명전은 어림도 없는 상황이다.[28][29]
행크 콩거는 할아버지가 그에게 행크 애런같은 명 타자가 되라는 뜻에서 행크라는 등록명을 제안하여 쓰게 됐다고 한다.
7. 연도별 주요 성적
8. 관련 문서
[1] 1966년에 애틀랜타로 연고지를 이전했다.[2] 다만 행크 애런이 투고타저 시기에 뛰어서 그런지 저평가되는 경향도 있는데, 755홈런을 기록한 것 치고는 OPS가 낮은 편이라서 그렇다. 그럼에도 그는 3,000안타-700홈런을 기록한 유일한 야구선수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메이저리그 역사상 정상급의 대타자다. 타격 성적만으로 그를 이길 선수는 베이브 루스, 타이 콥, 테드 윌리엄스, 배리 본즈밖에 없다. 다시 말해서 어떤 식으로 평가하든지, 그는 역대 최고의 타자 7위 이내에 꼭 들어간다는 뜻이다. 나머지 6명은 베이브 루스, 타이 콥, 윌리 메이스, 테드 윌리엄스, 루 게릭, 로저스 혼스비의 몫. 간혹 스탠 뮤지얼, 호너스 와그너, 트리스 스피커도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3] 행크 애런은 훗날 자신의 회고에서 전혀 동요를 하지 않았으며 이들 역시 홈런 신기록의 일부분으로 남을것이라고 했다.[4] 본인 스스로가 '''"선수 시절 내내 항상 변화구만 노렸다. 나를 통과하는 빠른 공은 있을 수 없다"'''("I looked for the same pitch my whole career, a breaking ball. All of the time. I never worried about the fastball. They couldn't throw it past me, none of them.")고 자랑할만큼 가공할만한 속구 대응력을 갖추었다. 출처 Baseball Almanac[5] 2위는 1.86의 베이브 루스, 3위는 1.87의 알버트 푸홀스.[6] 1위는 피트 로즈, 2위는 타이 콥으로 이 두 사람은 4천안타를 넘겼다.[7] 합법 약물 운운하며 “루스 애런도 암튼 깨끗하진 않거든요 빼애액”을 시전하는 헛소리가 전 버전에 써 있었는데, 이걸 좀 이해하기 쉽게 바꿔 말하면 나중에 언젠가 카페인이 그 유해성으로 인해 금지 약물로 지정되게 되면 에너지 드링크, 콜라, 홍차, 커피를 마신 적이 있던 선수들은 모두 약쟁이라고 해도 된다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암페타민이라느니 양 고환 추출물이라느니 하는 식으로 본질을 호도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노력을 했던 선수들을 모독하는 짓거리인 것이다.[8] 실제로 수십년 간 애런과 루스, 단 둘 외에는 2,000타점을 기록한 선수는 없었으나 알렉스 로드리게스와 알버트 푸홀스가 각각 2015년, 2019년 달성했다.[9] 2014년에 1년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지만 아직 소속 구단과 계약 기간이 3년 남은 상태로 은퇴하지 않았던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2015년에 복귀한 뒤 3천안타와 2천타점, 2천득점을 달성하여, 행크 애런에 이은 메이저리그 제2의 3000-2000-2000 기록 보유자가 되었다. 물론 이 기록이 미국 야구사에서 손에 꼽을 대기록이긴 하지만, 그의 약물 의혹으로 메이저리그 내부나 외부에서 행크 애런 수준의 선수로 인정해 줄 가능성은 없다. 그렇기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 또한 별로 없다.[10] 베이브 루스는 신인 시절 투수로 몇 시즌을 보내서 3,000안타를 기록하지 못했다.[11] 그 외 선수 가운데 배리 본즈가 2227득점-1996타점으로 달성할 가능성이 높았으나 4타점 차이로 달성하지 못한 선수이고, 스탠 뮤지얼 역시 1951타점-1949득점으로 아깝게 2000-2000을 달성하지 못했다. 타이 콥과 윌리 메이스 역시 2000득점을 기록하였으나 1900점대의 타점을 기록하여 2000-2000에 미치지 못했다.[12] 1위 피트 로즈, 2위 칼 야스트렘스키[13] 그리고 이들 중 은퇴 후 감독 생활 중에 스포츠 도박 파문으로 제명당한 피트 로즈를 제외한 나머지 7명이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그들은 각각 모두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전설 중 하나로 인정받는 선수들이다.[14] 참고로 '통산 3천 경기 출장' 을 기록한 8명 모두 '통산 3천 안타' 도 성공했다.[15] 1루타를 제외한 2루타, 3루타, 홈런의 개수[16] 1위는 역시 배리 본즈로 688개. 14시즌이 종료될 때 까지만 해도 아론이 2위였으나, 15시즌 중 알버트 푸홀스가 역대 2위로 올라 섰다. 15시즌 종료 시점 기준 푸홀스의 통산 고의사구는 296개.[17] 통산 홈런 수 1위인 배리 본즈는 홈런왕을 2번 기록했고 통산 홈런 수 3위인 베이브 루스는 홈런왕을 12번 기록했다.[18] 윌리 메이스가 메이저리그 데뷔 3년 선배다. 나이 차이도 정확히 3살. 은퇴 나이도 둘 다 42세다. 그러니 선수 생활한 나이가 똑같은 셈이다.[19] 첫 시즌은 시즌초 1개월 조금 넘게 활동하다가 바로 입대했고 다음 시즌은 아예 활동하지 못했다. 2시즌이라 봐도 무방하다.[20] 참고로 메이스는 전성기 선수생활 중에도 골드글러브가 생긴 첫해부터 12년 연속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가질 정도로 외야 수비의 최고봉이었고, 그만큼 선수생활 말년이 된 이후에도 수비에 대한 기대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어서 외야 수비에 많은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었던 선수다.[21] 윌리 메이스는 은퇴할 때까지 지명타자가 없는 내셔널 리그에서만 활동했고, 내야수로 출장했던 경력은 3천경기에 육박하는 그의 선수생활을 통틀어 90경기도 안 된다. 이에 반해 행크 애런은 전성기에도 종종 내야수로 출전한 경력이 있고 통산 260경기를 내야수로 출장했다. 거기다가 지명타자 경력까지 합치면 400경기가 훌쩍 넘는다. 물론 둘다 내야수 출장은 주로 1루수로 했다.[22] 3천경기를 훌쩍 넘게 출장한 에런과 달리 메이스는 2992경기로 선수생활을 마감하여 안타깝게 3천경기 출장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300경기 이상의 출장횟수 차이가 난다. 그리하여 두 선수의 타석 수도 1400타석 이상 차이가 난다.[23] 메이스 통산 fWAR 149.9(3위, 약쟁이 제외 2위), bWAR 156.4(5위, 약쟁이 제외 4위). 애런 통산 fWAR 136.3(6위, 약쟁이 제외 5위), bWAR 143(7위, 약쟁이 제외 6위) [24] 총루타, 타점, 장타 1위, 약쟁이 제외 홈런 1위 등 누적에서 메이스보다 꽤 우위.[25] 출루율, 장타율, oWAR, woBA, OPS+등 비율에서 애런보다 근소하게 우위.[26] 당연하겠지만 첫턴 입성이기도 하다. 참고로 역대 명예의 전당 헌액자 득표율 1위는 마리아노 리베라(100%), 2위는 데릭 지터(99.7%), 3위는 켄 그리피 주니어(99.32%), 4위는 톰 시버(98.84%), 5위는 놀란 라이언(98.79%), 6위는 칼 립켄 주니어(98.53%), 7위는 타이 콥(98.23%), 8위는 조지 브렛(98.19%)이다. 10위는 토니 그윈(97.61%), 11위는 랜디 존슨(97.27%), 12위는 그렉 매덕스(97.19%)이다.[27] 그런데 한편으로 보면 당연한 노릇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본즈라도 홈런 못치는 날도 있는데, 윌리 메이스처럼 대자-대부 같은 사적인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행크 에런 본인은 본즈가 활동한 자이언츠 프랜차이즈와 겹치는 속성이 전혀 없기도 하니... 홈런 칠 때까지 매경기 쫓아다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오히려 타이밍이 안 맞아서 본즈가 원정경기에서 756홈런을 쳤더라면 에런의 그 영상 메시지조차 방송되지 못할 뻔 했다.[28] 암페타민 복용을 했다느니 어떻다느니 하는 식으로 행크 애런도 은근히 폄하를 하려 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암페타민이 금지 약물인 건 철저히 현재의 일이다. 금지약물로 지정되지 않은 암페타민을 맞은 것은, 몸 상태가 안 좋을 때에 링거 주사를 맞거나 수마를 이겨내기 위해 커피를 마시는 것과 본질적으로 완전하게 동일한 행동 방식이다.[29] 예를 들어, 먼 미래에 카페인이 금지 약물로 지정됐다고 가정을 해보자. 그럼 커피 광으로 유명한 김진욱 감독은 현역 시절부터 감독으로 부임한 뒤까지 덕아웃에서 대놓고 약을 빤 악질 약쟁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듯, 암페타민이 금지약물이 아니던 시절에 암페타민을 복용했던 애런에게 약쟁이 이미지를 덮어 씌우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영웅만이 추악하게 추락하는 것이 싫은 약쟁이들의 악성 빠돌이거나 사고 능력이 어딘가 좀 많이 모자란 경우 둘 중 하나라고밖에 볼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