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드

 



1. 개요
2. 상세
3.1. 문제점
4. 주요 사례
5. 관련 문서


1. 개요


스포츠에서 팀끼리 선수를 교환하는 것. 드래프트 제도가 있는 리그에서 운용되는 게 보통.

2. 상세


일반적으로 선수 이동에 보류조항이나 현금거래 제한이 있는 리그와 없는 리그의 양상이 다르다. 선수 이동에 제한 없이 현금을 쓸수 있는 축구리그 같은 경우는 선수 이적에 어떤 제한도 없기 때문에 선수를 돈으로 사온다는 이적료라는 개념이 미리 책정되어 있고 이 때문에 돈이 있으면 선수 거래가 자유롭기 때문에 돈 많은 명문팀이 돈 없는 팀의 선수를 일방적으로 사가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식의 완전 자유경쟁이 가능한 리그는 팀간 부익부 빈익빈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과제이다.
물론, 축구에서도 트레이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두 구단의 이해조건이 맞아떨어진다면 선수 교환도 가능하다. 문제는 구단들의 동의 외에도 선수들도 이적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 아래 미국 스포츠 시스템과의 차이점. 당연히 연봉협상도 이적하는 팀과 새로 해야 한다. 미국의 스포츠에서는 선수에게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는 한 원칙적으로 구단끼리 동의하면 자유롭게 트레이드 할 수 있으며, 연봉은 전 구단에서 받은 연봉을 그대로 승계한다는 것이 차이점. 축구에서는 양쪽 선수들도 이적에 동의해야 하기 때문에 그냥 이적료 주고 사오는 것보다 상당히 번거로우며 이런 점 때문에 실질적으로 축구에서 선수 교환이 일어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다.[1] 참고로 축구에서는 선수를 교환하는 것은 트레이드라는 말보다는 스왑(swap)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며, 대표적으로 유명한 스왑 거래로는 인터 밀란에서 뛰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FC 바르셀로나에서 뛰던 사무엘 에투(+현금 4000만 유로)간의 트레이드가 있다.
반대로 보류조항이나 현금거래 제한이 있는 리그의 경우는 미국식 폐쇄 리그 형식으로 미국의 4대 스포츠가 모두 해당된다. 이러한 리그는, 입단과 동시에 선수의 소유권을 구단이 일정기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수의 자율적인 입,퇴단이 자유롭지 못하며, 일단 한 리그에 속한 모든 팀이 빈부상황과 상관없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돈 많은 명문팀이 돈 없는 팀의 선수를 일방적으로 사가지 못하도록 선수의 이적에 현금을 일정 수준 이상 사용할수 없게 되어있다. NBA의 경우는 직접 현금은 3백만 달러, MLB의 경우는 100만달러 내에서만 직접적인 현금거래가 가능하다. 그래서 이러한 리그는 돈 못지 않게 선수의 미래 가치를 환산하는 방식으로 거래를 하게 되며 유망주가 이러한 미래 가치의 환산 수단으로 사용된다. 이런 과정에서 종종 빌리 빈 같은 사기꾼이나 빌 버베이시 같은 호구들이 판을 치게 된다. 또한 에이전트들 역시 계약 체결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선수의 트레이드 거부권을 요구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고액 계약을 체결해 줬는데 먹튀짓을 하는 어떤들은 구단에서 적극적으로 트레이드를 하려 노력하지만, 여러 이해관계 등으로 인한 문제로 실현은 거의 불가능하다. 위에 언급된 버논 웰스의 경우는 그분 데려가면 슈퍼 에이스 로이 할러데이를 덤으로 넘겨주겠다고까지 했을 정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의 유망주의 가치평가 대신 이미 확정된 선수의 연봉을 일부 대납하는 연봉보조라는 형식의 거래수단도 탄생했다. 이 경우는 사무국의 승인 절차가 있기 때문에 현금 거래보다 진행 속도가 느리고 상황에 따라 거부될수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1995년에 1라운드에 지명되어 1998년부터 2009년까지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로이 할러데이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넘긴 트레이드를 들 수 있다.
탬파베이 레이스 같은 경우는 2007년도 신인왕 델몬 영을 신인왕 수상 바로 다음 해에 미네소타 트윈스에 넘기고 맷 가르자, 제이슨 바틀렛을 받아와서 요긴하게 쓴 뒤 2011년을 앞두고 시카고 컵스에서 이학주 등의 유망주 4명과 빅리그 외야수 한명을 받아온 바 있고, 제이슨 바틀렛 역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좋은 유망주 4명을 받아왔다.
메이저리그에는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를 메이저 등록일 기준으로 6년간 보유할 수 있는 서비스 타임이 있고, 해당 서비스 타임이 만료되면 FA 자격을 획득한다. 팀이 해당 선수를 잡을 마음이 없는 경우[2] 서비스타임 5년차 중간이나 6년차 트레이드 마감시한까지의 기간동안 포스트 시즌 진출을 노리는 강팀에게 유망주들을 받고 파는 경우가 흔하다. 팀의 기둥이랄 수 있는 A~S급 선수들의 트레이드의 상당수는 이러한 서비스 타임 후반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폐쇄형 리그의 경우 트레이드 마감시한이 존재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메이저리그와 KBO 리그에서 7월 31일을 트레이드 마감시한으로 정하고 있다. 단, 메이저리그에서는 웨이버 공시를 이용하면 마감시한과 무관히 트레이드를 진행할 수 있으며, 이를 보통 '웨이버 트레이드'라고 부른다.[3] 다만 9월 이후에 트레이드 된 선수는 포스트시즌에 출전할 수 없어서 실질적인 웨이버 트레이드 마감 기한은 8월 31일로 본다.

3. 대한민국·일본에서


대한민국이나 일본에서는 트레이드를 부정적으로 보는 면도 없잖아 있다.[4]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기업 문화가 한 직장에 충성하는 것을 요구하며 팬들도 구단의 성적과 별개로 정과 의리를 중시하고, 리그의 규모도 작아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많으며 선수들이 구단 이적으로 생활 환경이 바뀌는 것을 좋아하지 않다보니[5] 팀 구성의 이익/손해를 따져가며 트레이드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6] 팀의 전력 보강과는 무관하게, 특히 옛날에는 감독과 구단 수뇌부가 맘에 안 드는 선수를 전력 손실을 감수하고 다른 팀에 넘겨 버리든지, 혹은 선수협 사건[7]처럼 프로야구 관계자들에게 눈 밖에 나는 행동 때문에 벌어지는 이상한 트레이드가 많이 일어났었다.
2008년 히어로즈가 프로야구에 뛰어들면서 이장석, 조태룡 콤비가 벌이는 트레이드질의 경우는 팀의 재정을 위해 선수를 팔아넘기고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를 데려오는 메이저리그의 마이애미 말린스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 트레이드지만, 선수 공급의 풀이 워낙 좁은 국내에서는 이를 선수를 버리는 행위이자 선수 장사라 하여 좋게 평가하지 않는다.[8]
아래는 트레이드가 일어나는 조건으로, 키움 히어로즈의 상황을 대입해 이해하기 쉽도록 서술하였다.
  1. 고액연봉을 먹는 노장들을 우선 팔아넘긴다.
: 이렇게 해야 팀의 페이롤도 낮출 수 있고, 리빌딩을 염두에 둔 팀이라면 잠재력 있는 젊은 유망주들을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실제로 2008년에는 이호준이 부진하자 대체 1루수 자원을 찾던 SK에 이숭용을 팔아버리려 한 적이 있었고, 송지만을 LG로 보내는 트레이드도 일어날 뻔했다. 좀 어거지로 예를 들자면 김병현KIA 타이거즈 이적을 들 수 있겠다.
  1. 연봉 조정 협상에서 선수들의 연봉을 최대한 짜게 먹인다.
: 대표적으로 히어로즈 초창기에 최고참인 정민태, 전준호송지만[9]의 연봉이 엄청나게 후려쳐졌다.
  1. 대한민국 한정으로 FA는 보상금 제도가 있기 때문에 FA 거액 계약이 예상되는 선수는 FA 전 마지막 해에 연봉을 많이 먹이면서 나중에 연봉의 최대 3배를 타팀에서 보상금으로 받아먹는다.
: 정성훈이 대표적이고, 이건 성공했다.
  1. 유망주들을 보호하여 기량이 검증될 때까지 키우고, 성장한 선수의 몸값이 상종가를 칠 때까지 기다렸다 팔아넘긴다.
: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바로 강정호. 넥센 마켓에서 끝끝내 살아남아 2012 시즌 이후의 넥센의 전성기를 이끈 주축으로 활약했으며, 결국 2014~15 오프시즌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피츠버그 파이리츠포스팅 시스템으로 이적을 했다. 2015-16 오프 시즌에 박병호가 포스팅 시스템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박병호도 또 하나의 성공 사례가 되었다.
  1. 선수를 팔더라도 대체 자원은 마련해두고 팔아넘긴다.
: 2012 시즌 이후 넥센은 타자 부문은 대체 자원을 많이 확보해 둔 상태에서 트레이드를 진행하고 있다. 오히려 대체 자원으로 데려온 김민성이나 윤석민이 대박을 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트레이드가 없으면 선수들이 팀에 자리가 없어서 기회조차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자주 생긴다. 예를 들어, '''LG 트윈스의 좌타 외야수'''[10]들과 '''두산 베어스의 야수'''[11]들이 있다. LG 트윈스중앙대 포수 조윤준을 지명하였는데, 잉금님이 노익장을 떨치며 조윤준이 30대가 될 때까지 주전 자리를 유지한다면조윤준의 선수생활은 어쩔 것인가? 구단이 다른 팀으로 보내 줄 것도 아니고 주전으로 뛰지도 못하는데? 만약 박병호LG를 떠나지 않았다면 1군에서 재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었을까? 사실 한국프로야구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 사례[12]인, 서정환(1982~83 오프시즌, 삼성 라이온즈해태 타이거즈)의 경우는 큰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에서 밀려서 주전이 되지 못했지만 해태에서 붙박이로 주전 내야수로 뛰고 1989년에 은퇴했다. 그리고 '대구 출신이며 해태에서 우승 경험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삼성의 감독이 될 수도 있었고, 해태에서 오랫동안 뛰었기에 기아의 감독도 했다.
어쨌든 예전에 비해 넥센 히어로즈NC 다이노스처럼 트레이드를 주도하는 구단들이 하나 둘 나오고 있는 실정이고, 2015 시즌 들어서는 신생팀 kt wiz가 트레이드의 주축이 되어 예전보다 트레이드 빈도가 높아지긴 했다. KBO 팬들 역시 트레이드를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또한, 널리 알려진 오해는 KBO 단일리그라서 트레이드가 잘 일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2010년대 중반 이후 단일리그인 KBO는 양대리그인 일본프로야구보다 트레이드가 빈번하다.''' 일본보다 2팀 적은 10팀으로 이루어진 단일리그인 KBO가 12팀으로 이루어진 양대리그인 NPB보다 트레이드가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만 봐도 단일리그, 양대리그 차이가 트레이드 빈도에 가장 큰 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KBO리그에서는 2015년 29명, 2016년 11명, 2017년 31명, 2018년 20명의 선수가 트레이드로 팀을 옮겼다. 자세한 내용은 트레이드/KBO리그/2010년대 참고. 반면 NPB는 2015년 5명, 2016년 11명, 2017년 9명, 2018년 21명의 선수가 트레이드로 팀을 옮겼다.[13] 자세한 내용은 NPB 홈페이지 트레이드 공시 참고. 일본 프로야구에서는 센트럴 리그-퍼시픽 리그 간의 트레이드가 대부분이고, 동 리그간 트레이드는 드물지만, 전혀 없지는 않다. 17-18시즌 소프트뱅크의 야마시타 아야쓰구와 라쿠텐 니시다 데쓰로 간의 트레이드처럼 동리그간 트레이드도 있기는 하다. NPB는 양대리그라 자기팀 선수가 타팀에 이적해서 활약한다해도 부메랑 효과를 거의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보다도 트레이드가 드문 이유는 역시 문화 차이다. 일본은 한국 이상으로 한 직장에 몸담는 것을 선호하는 기업 문화가 있으며, 팬들 역시 마찬가지라 트레이드를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
트레이드 빈도는 야구 문화와 시스템 차이에 더 가깝다. NPB도 KBO도 대부분의 팀이 광고효과 등을 노리는 모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MLB처럼 주전선수를 내주고 유망주를 받아오는 식의 진정한 의미의 리빌딩이 없다. 당장 성적이 나쁘면 물주인 모기업이 싫어하기 때문이다. 또, 2군이 마이너에서 별도의 계약으로 관리되지 않고 구단 마음대로 올렸다내렸다 할 수 있기 때문에 트레이드같이 선수를 자원으로 보고 조금이라도 자원을 덜 소모하고 더 큰 가치를 얻기 위해 선수의 미래가치까지 계산해서 거래하는, 귀찮고 복잡한 절차를 밟을 필요가 없다. 정말 보강이 필요하면 그냥 시즌 끝난 후 FA로 돈 주고 사오면 되니까. KBO에선 팀이 선수 연봉을 감당 못해서 1선발을 팔아치워야 할 일도, 당장 로스터를 비워야 하는데 선수가 마이너거부권을 사용해서 버티는 경우도 없다. 당장 급한 불은 보통 KBO에서 트레이드 자원으로 여겨지는 B급 자원과 2군 유망주만 가지고도 충분한 것이다. 이것이 KBO에서는 트레이드가 잘 안 일어나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다. 또한 이런 배경이 트레이드 되는 선수들이 버려진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KBO에서 단일리그라는 점이 전혀 영향없다는 것은 아니다. 특히 주전 선수의 트레이드가 자주 일어나지 않는 것은 타팀 가서 잘하면 자신에게 비수가 되어 되어서 돌아오는 영향이 없지는 않다. 또, KBO팬은 MLB팬보다 트레이드 실패로 인한 비난이 큰 경향이 있어서 상대방에게 유리한 트레이드는 가능한 피하게 되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초대형 트레이드 역시 이루어 지기 힘들다. 초창기에 비해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트레이드를 '나를 버린다'로 인식하는 것도 사라지지는 않았으며 한 팀에서 오래 뛴 선수를 라이벌 팀에 트레이드 했다가 팬덤에서 들고 일어나는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KBO의 트레이드는 주전-주전급의 빅딜이나 유망주 패키지 받고 1선발 판매, FA앞둔 선수 반년렌탈 등의 미국식 트레이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편이며, 유망주 내지는 B급 자원들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부메랑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차후 순위싸움을 벌일 가능성이 있는 팀과는 잘 하지 않는 편. 주로 서로 크게 경쟁관계가 아닌 상위권과 하위권 순위 팀간에 트레이드를 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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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축구인 K리그의 경우 주전-주전간 1대1 트레이드는 물론 주전1-후보# 등 1대 다수 트레이드, 주전1-후보#+현금 등 현금 포함 트레이드도 흔한 편인데, 2021년 겨울 이적시장에서는 무려 '''5각 트레이드'''가 성사되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3.1. 문제점


드래프트와 마찬가지로 선수들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선수 커리어를 꼬이게 할 수 있다. 과거 KBO 리그에서는 해태-KIA로 트레이드되던 선수들이 이적을 거부했던 건 이유가 있었다. 해태-KIA는 똥군기에서 비롯된 인권 유린이 심각했던 팀이었기 때문. 해태 타이거즈#s-3.3 시절 김성한 구타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1986년 한대화는 OB 베어스에서 기아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당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최초로 임의탈퇴 당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던 양준혁은 1998년에 해태로 트레이드 당하자, 은퇴를 시도했다. 2000년 3월, 손혁은 두산 베어스에서 뛰던 중 해태로 트레이드 당하자 양쪽 구단에 은퇴 의사를 밝혔다. 해태-KIA가 어떤 팀이었는지 궁금하다면 박충식과 박동희의 https://m.blog.naver.com/chesare7/50042504048인터뷰를 읽어볼 것. 기아 타이거즈 시절에도 과거의 흔적이 있는 모양이다.
V리그 2020-2021 시즌 중, 대한항공 팀은 2020년 11월 11일(vs 현대캐피탈)에 신영석 센터를 상대했는데, 다음 경기에서 신영석을 또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한항공의 로베르토 산틸리 감독은 V리그의 트레이드 제도에 문제를 제기했다.

4. 주요 사례



5. 관련 문서



[1] 가끔 트레이드가 일어나긴 하지만, 축구에선 실질적으로 트레이드라 할지라도 별개의 이적으로 포장(?)해 준다. 가령, 구단이 공식 발표를 할 때, 'A구단의 B선수를 우리 팀의 C선수+€20M와 트레이드했다.'가 아니라 'A구단의 B선수를 €30M에 영입했다.','A구단이 우리 팀의 C선수를 €10M에 영입해갔다,'라고 따로 발표한다.[2] 팀이 리빌딩 중이라 고액의 FA선수가 필요 없다거나 해당 선수를 잡을 계약을 제시할 수 없는 재정이 빈약한 스몰마켓팀일 경우.[3] 반대로 웨이버 공시를 거치지 않는 일반적인 트레이드를 이와 구분하기 위해 '논웨이버 트레이드'라고 부르기도 한다.[4] 참고로 2014년 7월 28일 LG VS 롯데와의 경기 6회초 전준우 타석 때 민훈기 기자가 밝히기로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도 같은 소속 리그끼리는 트레이드를 잘 하지 않는다"고 한다.[5] 특히나 고향팀에서 오랫동안 뛰다가 별안간 다른 지역의 팀으로 이적해야 하는 선수의 경우 "나는 고향팀에 충성을 다했는데 고향팀이 나를 버렸다"면서 의욕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기웅.[6] 대한민국의 경우 프로 초창기에 비해 '새로운 기회를 얻었다'는 식으로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트레이드를 '나를 버린다'라고 생각하는 현상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트레이드 자체가 팀을 떠난다기보다 팀이 나를 버렸다라고 생각이 강하던 터라 트레이드 등한 선수들이 심적으로 우울해저 있거나 은퇴선언 등등 트레이드를 좋게 보는 건 드물었다. 2010년 이후에도 트레이드된 선배가 떠나 팀 분위기가 가라앉는 사례가 종종 있는 편.[7] 1988년, 2000년 두 차례의 선수협 사건 모두 포함된다. 특히 1차 선수협 사건 때 삼성-롯데 간의 대형 트레이드는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8] 솔직히 외국인 선수 외에는 신인 드래프트신고선수 외의 선수 영입 방법이 딱히 없는게 현실이다.[9] 2005시즌 끝나고 FA가 됐는데 4년 28억원 계약이었고 2년간은 받았지만 나머지 2년치 연봉은 못 받았다.[10] 대표적인 예가 황선일, 이병규, 양영동.[11] 2009년 고교 졸업자 신인인 고교 5대 유격수 중 안치홍, 오지환, 김상수, 이학주는 모두 프로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거나 앞날이 촉망받는 메이저리그 최고 유망주로 대접받았다. 나머지 한 명인 허경민은 경찰청 입대 전까지 두산 베어스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2013 시즌에 주전급 내야수로 연착륙했다. 그리고 2015년 후반기에 3할4푼대 타격을 선보였음에도 2016시즌 주전을 보장받지 못하고 주전경쟁을 하는 박건우나 그런 박건우와 주전경쟁을 펼치는 국해성,이우성,김재환도 있다. 포수자원들도 치열하게 1군 경쟁중인 타격 좋은 '''좌타'''포수인 박세혁이 있으며, 한화로 이적해 주전 포수로 자리매김한 최재훈이 있다.[12] 선수 간 맞교환 1호는 정영기-차동열 간 트레이드[13] 일본 프로야구는 공식적으로는 FA로 인한 인적보상도 트레이드로 분류하지만, 일본내에서도 일반적으로는 FA보상선수와 트레이드 이적을 구분하며 본 문서의 설명대상과도 안 맞으므로 제외. 참고로 NPB팀들은 FA보상선수보다 보상금을 선호하기 때문에 보상선수를 포함해도, 2015년 0명, 2016년 2명, 2017년 2명, 2018년 3명 추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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