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라망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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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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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살라망카 옛 시가지
영어
Old City of Salamanca
스페인어
Ciudad vieja de Salamanca
프랑스어
Vieille ville de Salamanque
국가·위치
스페인 카스티야이레온 살라망카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88년
등재기준
(i)[1], (ii)[2], (iv)[3]
지정번호
381
살라망카 (카스티야이레온)
Salamanca


살라망카 (살라망카)
Salamanca


살라망카
Salamanca
국가
스페인

살라망카 주
시간대
UTC+1 (서머타임 준수)
한국과의 시차
-8시간
인구
143,000명(2019)
1. 개요
2. 교통
3. 교육
3.1. 대학
3.2. 어학원
4. 여담


1. 개요


'''Salamanca'''.
살라망카는 스페인 북서부 카스티야 지방 내에 위치한 도시로서 마드리드와는 200여km 정도 떨어져 있고 도시 인구의 상당수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살라망카는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의 살라망카 주의 주도고 이베리카 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캄포 데 살라망카(Campo de Salamanca)에 위치해 있다. 스페인 국립 통계청(INE)에 의하면 148,000명이 거주하고 있고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서 바야돌리드레온의 뒤를 이어 3번째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다.
도시의 역사는 2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철기시대에 최초의 거주민들은 지금 살라망카의 San Vicente라는 곳에 정착했고 도시는 다양한 민족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도시의 모습은 11세기 레온의 알폰소 6세의 사위인 라이문도 데 보르고냐(Raimundo de Borgoña)에 의해 시작되었다.
또한 이 도시는 교육으로 스페인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데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자 알폰소 9세에 의해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교가 있다.

2. 교통


살라망카로 오는 방법은 시외버스(Avanza Bus) 혹은 기차(Renfe)를 타는 것이다. 두 교통편 모두 자주 운행하고 마드리드에서 살라망카까지는 약 두세시간 정도 소요된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에는 마드리드 바라하스 국제공항에서 살라망카행 직행버스를 타거나 혹은 멘데스 알바로(Méndez Álvaro)역 근처에 있는 남부터미널에서 살라망카행 버스를 타면 된다.
기차의 경우에는 차마르틴(Chamartín)역으로 가면 되는데 기차 종류가 2가지가 있다. 일반 MD 기차와 최근에 생긴 알비아(Alvia)라는 기차인데 시간을 절약하고 싶다면 알비아를 타는게 낫다. 한시간이나 빨리 도착하기 때문.
살라망카 내에서는 도보로 모든 곳을 갈 수 있다. 살라망카를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이지만 버스 역시 이용 가능. 버스 요금은 1유로고 버스 카드를 사용하면 더 낮은 금액에 이용할 수 있다. 버스카드는 Plaza Mayor 옆에 위치한 Plaza del Mercado 혹은 Gran Via의 Salamanca Transporte 사무소에서 구매 가능.

3. 교육



3.1. 대학


'''Universidad de Salamanca''': 공립대학. 살라망카 대학교 항목 참조.[4]
'''Universidad Pontificia de Salamanca''': 교황청립 대학. 본래 살라망카 대학교의 신학부였으나, 1854년 세속화의 영향으로 해체된 것을 1940년 교황 비오 12세가 복원하면서 지금에 이른다.[5]
여담으로 현재 교황청립 대학의 소재지인 구시가지의 17세기 지은 구 예수회 신학교 건물 겸 클레레시아 교회에는 안습한 얘기가 있는데, 살라망카 대학은 전통적으로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과 학풍을 이은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꽉 잡고 있던 기관으로, 15세기 말-16세기 들어서 스페인에도 영향을 끼친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은 예수회와 스페인 가톨릭교회 내에서 영향력과 유명인 아웃풋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던 라이벌 관계였다.[6] 이탈리아 다음으로 남유럽에서 가장 유서 깊은 대학도시였던 살라망카는 동시에 스페인 도미니코회의 본진이기도 했던 만큼 예수회는 오랫동안 살라망카에 관련 교회나 기관 하나 새우는게 염원이었고, 1617년 이 신학교 설립 허가를 받으면서 이를 이루는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 후원자들과 건축가, 예수회 당국의 이권 문제나 역병 창궐, 대금 지불 같은 이런 저런 문제로 공사가 제대로 진척이 안 돼서 적진 한복판에 있던 예수회 수도자, 학생들은 임시 가건물에서나 공부하다 100년이 훌쩍 넘긴 1754년에야 겨우 완공이 되었다.
그리고 삐까뻔쩍하고, 무엇보다 적들의 수도(...)인 살라망카 시가지 한복판에 존재감 넘치는 신학교 건물[7]을 지었다고 신나하던 예수회는 1767년 스페인과 유럽 전반에서 예수회 추방령이 떨어지면서 겨우 13년만에 집비우게 되었다(...). 이후 한동안 그 미워하던 살라망카 현지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이 중심인 성직자 복지회(Clerecía) 건물로 사용되다가 1940년 교황청립 대학이 생기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3.2. 어학원


도시 규모 치고는 스페인의 타 도시에 비해 어학원이 많은 편. 아래에 있는 어학원은 그 중 일부로 비용은 각 학원마다 차이가 크니 홈페이지에서 참고할 것.
  • Academia Berceo[8]
  • ISLA[9]
  • Salmínter[10]
  • Enforex[11]
  • Colegio Delibes[12]
  • 살라망카 대학교 부설 Cursos Internacionales[13]
  • Tía Tula[14]
  • Mester[15]
  • DILE[16]
  • Colegio De España[17]
  • Salmínter[18]
  • Don Quijote[19]
  • Hispano Continental[20]

4. 여담


스페인에서 가장 정확한 스페인어를 구사한다고 알려져 있고[21] 스페인어 시험인 DELE 주최 기관이 이 도시에 있다 보니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몰린다. 물론 한국인들도 많지만 사는 사람들은 몇 명도 채 안 되는 편으로 나머지는 모두 다 학생이다. 한식당은 2년 전에 자그마하게 한인 교회 목사 자제가 하던 카페가 있었지만 지금은 교회가 마드리드로 이사를 가서 없다(...). 하지만 식재료같은 것들은 충분히 인터넷에서 시키지 않아도 중국 마트 같은 곳에서 조달이 가능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한 루트인 은의 길(Via de la Plata)의 주요 지점 중 한곳이다. 역사적으로도 순례길의 종착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시와 연관이 많았으며 살라망카 교구는 오랫동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관구 산하에 있어왔다.[22] 구시가지 곳곳에도 순례길의 이정표인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문양을 볼 수 있고, 외벽의 가리비 장식 패턴으로 유명한 살라망카 공립 도서관(Biblioteca publica 또는 Casa de las conchas) 역시 순례길을 수호하던 산티아고 기사단의 단원이 거주하건 저택이다.

[1]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2]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4] #[5] #[6] 신학적으로도 대립 관계였다. 은총론에 있어서 몰리나(Louis de Molina, 1535~1600)를 중심으로 한 예수회 학파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했다면, 바녜스(Domingo Bañez, 1528~1604)를 대표로 한 도미니코 학파는 하느님의 '값 없는' 은총을 강조했다. 몰리나주의의 경우는 칼뱅주의로부터 가톨릭 신앙을 방어하기 위해 "인간이 지옥에 떨어지면 그건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 하느님 탓이 아니다"를 강조하고 싶어했다면, 바녜스주의의 경우는 "인간이 천국에 가면 하느님의 값 없는 은총 덕분이지 인간이 잘나서가 아니다"를 강조하고 싶어했다고 할 수 있겠다. 몰리나주의와 바녜스주의는 둘 다 가톨릭교회에서 단죄되지 않았다.[7] 실제로 살라망카 구시가지 풍경을 높은 건물이나 시외 언덕, 토르메스 강 건너서 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주교좌성당의 거대한 위용이고, 그 바로 동쪽으로 프란시스코 비토리아 같은 유명한 도미니코회 학자들이 공부했던 산 에스떼반 수도원, 그리고 서쪽으로 이 구 예수회 신학교의 첨탑이다.[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스페인어(카스티야어)의 발원지인 구 카스티야 지방에선 죄다 너나 나나 주장하는 애향심에 따른 발언이다.[22] 현재는 바야돌리드 교구가 대교구로 승격되면서 바야돌리드 관구 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