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니아 트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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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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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의 싱어송라이터로 '''컨트리 음악의 여왕'''으로 불리는 전설적인 인물.
가스 브룩스가 1980년대에 컨트리 음악의 대중성을 널리 알려서 공헌을 했다면 샤니아 트웨인은 1990년대를 장악하여 보수적인 컨트리 음악에서 여성이 슈퍼스타로 돋아날 계기를 마련함과 동시에 팝과 컨트리를 접목시킨 크로스 오버 장르로 선구적인 성과를 일으켰다. 특히 ‘The Woman In Me’[4] , ‘Come On Over’[5] , ‘Up!’[6] 이 세 앨범은 연이어 미국 판매량 1천만 장을 돌파하는 괴력을 발휘했는데, 특히 ‘You're Still The One’으로 유명한 앨범 ‘Come On Over’는 2019년 현재 휘트니 휴스턴의 보디가드 사운드트랙 앨범보다도 2백만 장 더 많은 2천만 장 판매고를 돌파하여 여성 솔로 가수 앨범 판매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외모 면에서도 테일러 스위프트 이전엔 이 사람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넘사벽의 미모를 자랑한다.[7]
2. 출생과 어린 시절
클래런스 에드워즈와 샤론 에드워즈의 딸로 태어난다. 2살 때 부모가 이혼하여 어머니와 가족들과 함께 티민스로 이주하였고 그 곳에서 어머니는 오지브와족 인디언인 제리 트웨인과 재혼한다. 이후 성은 트웨인으로 바뀌게 된다.
어려운 경제 사정으로 일찌기 사냥과 벌목을 배웠고 가족 부양을 위해 맥도날드 아르바이트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벌었다. 10살 때부터 이미 작사를 시작했을 정도. 1987년 어머니와 양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남은 이복형제들을 부양하기 위해 온타리오 주 허츠빌로 이주하여 그 곳의 리조트 근처에서 노래를 부르며 돈을 번다.
3. 데뷔
가족들이 독립을 한후 1993년 데모테이프를 머큐리 내쉬빌 레코드사에 보내 계약을 맺는다. 이 시기에 이름을 "샤니아"[8] 로 개명한 후 북미에서 데뷔 앨범을 발매하는데 이는 캐나다까지 관심을 갖게 된다. 성적은 미국 컨트리 앨범 차트에서 67위에 그쳤지만 평론가들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으며 유럽에선 더 큰 인기를 얻는다. 이후 Country Music Television Europe의 올해의 뜨는 비디오 스타 상(Rising Video Star of the Year Award)을 받는다.
4. 디스코그래피
4.1. 앨범
4.2. 싱글
5. 수상
- 제38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컨트리 앨범상
- 제41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컨트리 노래상
- 제41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
- 제42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컨트리 노래상
- 제42회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여성 컨트리 보컬상
6. 뮤직비디오
You’re still the one (1998년 호주 멜버른 라이브)
Honey, I’m home (1999년 마이애미 라이브)
Up! (2003년 시카고 라이브)
Man! I feel like a woman! (2003년 시카고 라이브)
정규 앨범 Come on Over에 수록된 곡. 가사 내용 중에 브래드 피트가 들어가 있단 이유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는데 가사 내용은 "당신이 브래드 피트라고? 그래서 어쩌라는건지." 대략 이런 의미이다.
7. 가정사
안 그래도 소녀가장으로 시작한 샤니아 트웨인이었고 부양 가족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해외투어를 잘 하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무렵 데뷔 시기부터 함께한 프로듀서이자 남편이었던 17세 연상의 로버트 존 머트 랭과 2008년 별거에 들어갔음이 샤니아 트웨인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된다.
이전까지 남편 로버트는 대중 앞에 잘 나서지 않는 은둔 성향의 인물로 유명했고[9] 잉꼬부부로서의 애정을 과시했지만[10] 남편 로버트는 불륜을 하게 되는데 하필이면 불륜 상대가 샤니아 트웨인의 절친인 마리 앤 티보였던 것이다. 충격을 받은 샤니아는 이후 poor me라는 곡으로 자신의 심경을 담은 곡을 내보이면서 이 후 2년 동안 절망에 빠져 지낸다. 2010년 결국 둘은 이혼하여 15년의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리고 샤니아 트웨인은 남편을 빼앗은 친구 마리 앤 티보의 전 남편인 프레데릭 티보와 2011년 재혼한다.
8. 기타
- 아일랜드계와 북아일랜드&잉글랜드계, 프랑스계, 포르투갈계, 스위스-독일계 캐나다인, 와이언도트 캐나다 원주민 조상이 있다.[11]
- 2018년 양아버지로부터 10살 이후부터 성추행을 당했음을 밝혔다. 구체적인 성추행 상황에 대한 언급은 거부했다. 발언의 의도는 비록 가까운 지인에게 성추행을 당하였더라도 이렇게 살아남아 잘 살아갈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 2018년 가디언지와의 인터뷰 중 다음 발언으로 반 트럼프 팬들로부터 비난을 받은 후 사과했다. "저[12] 라면 트럼프에게 투표했을거에요. 그 사람은 공격적이긴 하지만 솔직해 보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은 솔직한 것과 예의바른 것 중 무얼 원하세요? 둘 중 하나만 골라야만 한다면? 제가 투표한다면 저는 허튼소리들은 원치않아요. 저라면 투명하게 느껴지는 쪽에 투표했었을거에요. 그리고 정치라는게 투명하지 못하다는 평판을 갖고 있죠, 그렇지 않나요?"("I would have voted for him because, even though he was offensive, he seemed honest. Do you want straight or polite? Not that you shouldn't be able to have both. If I were voting, I just don't want bullshit. I would have voted for a feeling that it was transparent. And politics has a reputation of not being that, right?")
[1] 1967년~1992년까지는 예명을 아일린 트웨인으로 썼다.[2] 미국 표준 발음은 "샤나야(샤나이아)"인데, Shania를 "샤니아"로 발음하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영어에는 발음이 두 개 이상으로 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Shania도 그런 경우 중 하나이다.[3] 전남편 로버트의 아들이다.[4] 1,200만 장[5] '''2,000만 장'''[6] 1,100만 장[7] 10대 티가 물씬 나는 테일러와 달리, 샤니아는 섹시함의 그 자체이다.[8] 오지브와족 말로 "나의 길을 간다"라는 의미이다[9] 인도의 금욕적 밀교를 따른 삶을 사는 인물이었으며 금주를 철저히 따르는 신조에 따라 샤니아 트웨인과의 결혼식에서도 샴페인 조차 들이지 않았다.[10] 남편 로버트는 샤니아와의 결혼식에서 브라이언 아담스과 같이 만든 곡인 (Everything I Do) I Do It For You(브라이언 아담스의 1991년 6집 앨범에 실려 미국과 영국에서 수주동안 1위를 하였고 같은 해 개봉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영화 '로빈 후드' OST에도 실렸다)를 불렀고, 샤니아는 자신과 남편 이야기를 토대로 You Are Still The One을 썼다.[11] 출처: EthniCelebs Shania Twain.[12] 그녀는 캐나다 국적이므로 미국 대선 투표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