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르트르

 




'''Chartres'''
1. 개요
2. 샤르트르 대성당


1. 개요


프랑스 중부 상트르발드루아르 레지옹의 외르에루아르 주에 위치해 있는 도시. 고대에는 아우틀쿰이라 불리었으며, 샤르트르의 어원이 돠는 카르누트족의 도시였다. 12세기에는 2차 십자군이 일어난 곳이다. 루앙과 마찬가지로 고딕 양식의 건축물이 많으며, 그 중 샤르트르 대성당이 가장 유명하다. 지리적으로 베르사유 궁전하고 가까운 위치에 있으며 교통편으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2. 샤르트르 대성당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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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샤르트르 대성당
영어
Chartres Cathedral
프랑스어
Cathédrale de Chartres
국가·위치
프랑스 상트르발드루아르 샤르트르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79년[1]
등재기준
(i)[2], (ii)[3], (iv)[4]
지정번호
81
[image]
샤르트르의 명소이자 고딕 양식을 집대성하여 전성기 고딕 양식을 시작했다고 평가받는 중요한 대성당. 이후 지어진 많은 고딕 양식의 성당들이 샤르트르 대성당을 참고했을 정도로 고딕 양식 건축물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비대칭의 서로 다른 두 첨탑과 크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 장식이 특징이다. 특히 '샤르트르 블루'(Chartres Blue)라고 불리우는 파란색이 인상적이다. 또한 성모 마리아예수를 낳을 때 입었던 옷이 보관되어 있는 성지이기도 하다.
이렇듯 섬세하고 예술적 가치를 지닌 성당이지만 건축 과정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화재로 인해 예수의 옷과 기존의 대성당이 전소되자 지역에 오던 순례객들이 급감하여 지역경제가 침체된다. 그러나 르노 주교는 불타버린 줄 알았던 예수의 옷이 기적적으로 대피되었었다며 이를 공개했고, 그의 주도로 새 성당이 1145년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새 성당은 기존의 발달하던 고딕 양식을 집대성한 야심작이었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으로 인한 세금 인상 등이 문제가 되어 건축 과정에서 폭동과 화재가 3차례 발생하여 건축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었다. 결국 프랑스 국왕까지 개입하여 르노 주교에게 힘을 실어주었고, 1260년이 되어서야 완공되었다. 그러나 르노 주교는 이 성당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도중 선종하였다. 이 새로운 성당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도 신상이 알려지지 않았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샤르트르 성당의 볼트(천장)을 보며 "무신론자도 불편함을 느낄 것이다(Un athée serait mal ici"라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샤르트르 대성당의 실내에 들어서면 저절로 하느님이 있다고 생각될 정도로 압도된다는 의미. 아미앵 대성당에도 같은 얘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한편 이 성당이 속한 샤르트르 교구에서 1696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창설되었다.

[1] 2009년 부분수정[2] 인간의 창의성으로 빚어진 걸작을 대표할 것[3]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4]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