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한

 

성명
서상한(徐相漢)
본관
대구 서씨
생몰
1901년 ~ 1967년 8월 29일
출생지
경상북도 대구군 서상면
(현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사망지
일본 도쿄
매장지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추서
건국훈장 독립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서상한은 1901년 경상북도 대구군 서상면(현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에서 서봉기(徐鳳基)의 네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독립운동가이며 한국민주당 초대 총무를 지낸 서상일의 동생으로, 1914년 대구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재학하다가 1918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대학 전문부 경제과에서 공부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뒤 세이소쿠영어학교(正則英語學校)에 입학했다. 하지만 학비 조달이 어려워서 신문배달, 공원, 우체부 등으로 일하면서 고학했다.
1920년 1월, 서상한은 유진걸(柳震杰), 김낙준 등 동지들과 함께 동경노동동지회를 조직해 한인 교민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영친왕이방자가 4월 29일에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는 이 결혼이 장래 한국의 독립에 큰 장애가 될 거라고 판단하고 폭탄을 투척해 결혼식을 막고 이와 동시에 일본 내무성과 외무성, 경시청 등을 폭파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2월부터 동지 양주영(梁柱瑛), 일본인 학생 이마이 이쿠로(今井生郞), 우에무라 킨사쿠(上村欣作) 등과 함께 물고기를 잡는다는 핑계로 폭탄을 제조하고 왕자원(王子原)에서 실험했다. 이후 주오대학 학생 신모(申某)와 의논해 우체부로 가장하기로 결정하고 배달부 옷 한 벌을 구했다. 그러나 신모는 사실 일본의 밀정이었고, 그의 밀고로 모든 계획이 드러나 버렸다. 결국 서상한은 1920년 4월 11일에 체포되었고 그해 9월 22일 도쿄 공소원에서 금고 4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서상한은 출옥 후인 1922년 초에 유진걸 등과 함께 형설회(螢雪會)를 조직해 재일조선인의 노동운동에 진력했으며, 한편으로는 아나키즘 단체인 흑우회(黑友會) 및 동흥조선노동동맹(東興朝鮮勞動同盟)과 제휴했으며, 1936년에 자택을 동흥조선노동동맹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했다.
8.15 광복 후에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을 뒷바라지했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은 그는 1967년 8월 29일에 도쿄에서 사망했고, 재일교포사회는 사회장에 준하는 단체장의 예로써 장례식을 거행했다.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1975년 그의 유해를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으로 이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