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고등학교
'''"백만 학도여, 피가 있거든 우리의 신성한 권리를 위하여 서슴지 말고 일어서라. 학도들의 붉은 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뛰놀고 있으며, 정의에 배반되는 불의를 쳐부수기 위해 이 목숨 다할 때까지 투쟁하는 것이 우리의 기백이며, 정의감에 입각한 이성의 호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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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민주화운동 결의문
[clearfix]'''"우리는 일치단결하여 피 끓는 학도로서 최후의 일각까지 부여된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싸우련다."'''
1. 개요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1동에 위치한 공립고등학교. 1899년 달성학교로 개교하고, 1916년 설립한 대구고등보통학교로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대구지역에서는 흔히 '''경고(慶高)'''라고 부른다.[3]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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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고등학교의 전신인 사립 달성학교는 '''영남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서 1899년 최극창, 윤필오 등 1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하고, 대구의 여러 유지들이 모금에 참여한 사립학교로 경상감영 자리에 문을 열었다. 심상과와 고등과를 둔 달성학교는 4년제 교육기관으로 뒤에 심상과는 대구공립소학교[4] 로 인계되었고, 고등과는 1907년 개교한 협성학교[5] 에 흡수되었다. 이후 일제는 협성학교를 관립 대구고등보통학교에 병합하고, 대구고등보통학교는 협성학교의 재학생과 물품을 인수하여 1916년 개교했다.[6] 그 뒤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1925), 경북공립중학교(1938), 대구고등학교(1950.5), 경북고등학교(1950.6), 대구고등학교(1951)을 교명으로 쓰다가 경북고등학교(1953.9)로 교명을 변경한 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2016년 2월 대구고보 기준으로 50765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2016년 3월 117회 입학생들이 입학했다.
경북고등학교는 경기고등학교[7] , [8] 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3번째로 설립된 공립고등학교(제3고)'''[9] 이며 이는 교표, 교복 소매의 삼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단 1899년 7월에 개교한 사립 달성학교가 전신이므로 학교역사는 경기고나 평양제이중보다 길다.
1919년 3.1 운동 당시(대구는 3월 8일) 대구고보 전교생 239명 중 200여 명이 참가하여 대구 만세운동을 주동한 데 이어 항일동맹휴학ㆍ월남망국사(越南亡國史) 발표사건ㆍ비밀결사사건 등 민족정기를 밝히는 항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외에도 여러 항일 운동에 앞장섰고, 확인된 항일투쟁가만 38명이다(서훈자 33명, 미서훈자 5명).관련 기사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나라를 지키기 위해 경북중 32~34회 학생들이 학도의용군에 지원하여, 안타깝게 전사한 학도병이 53명에 이른다. 특히 1945년에 입학한 32회는 동기생 20여 명을 잃었다. 이는 대구경북지역 중학교 중에서 가장 많은 희생이었고, 전국에서도 두 번째로 많은 학교로 꼽힌다. 이 학도병을 기리는 조형물이 2.28 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옆 호국동산이라는 이름의 공원에 세워져 있다.
1960년 '''2.28 학생민주의거의 발상지'''다. 당시 이대우 학생회장의 주도로 여러 학교와 연합하여 일으킨 이 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학생 자발적 운동이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민주의거를 기념하는 기념비와 기념 조형물이 교정에 세워져 있다.
2.1. 연혁
- 1899-07 : 경상 감영 북문 안 관아터에서 영남 최초의 근대학교인 달성학교로 개교 (초대 교장 김직현 경상도 관찰사)
- 1905-08-27 : 달성학교 심상과가 대구관립보통학교(현 대구초등학교)에 흡수
- 1906-02 : 대구향교 명륜당 내에 협성학교 설립
- 1909-04 : 달성학교 고등과가 협성학교에 흡수, 대구향교 명륜당으로 이전
- 1916-04-07 : 대구고등보통학교 개교 준비를 위한 최초 입학시험 실시, 1학년 58명, 2학년(협성학교 재학생) 63명 합격
- 1916-04-18 : 대구고등보통학교 수업 개시
- 1916-05-16 : 대구고등보통학교 관제 반포 관립고등보통학교로 정식 개교, 학교 위치를 대구부 동본동으로 정하고 구 협성학교이던 대구 향교 명륜당을 수리하여 개교식 거행(학생수 : 1, 2학년 121명)
- 1917-12-16 : 대봉동 신축 교사로 이전
- 1919년-03-08 : 서문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에 200여명 참가, 20여 명 처벌 받음
- 1920년 10월 : '강유문 사건'으로 동맹 휴학, 8명 퇴학
- 1925-04-01 : 교명을 ‘대구공립고등보통학교’로 개칭(관제 변경으로 학교운영이 경북도로 이관됨)
- 1928-09 : 교내외의 언론•집회의 자유, 교장 경질, 퇴학생 복교, 불량 일본인 교사 경질 등을 요구하여 동맹휴학. 52명 퇴학당함
- 1929-10 : 한글연구회 조직. 그러나 20여일만에 해산당함.
- 1938-04-01 : 교명을 ‘경북공립중학교’로 개칭
- 1943-04-01 : 수업 연한 4년으로 단축(일제 징병제 실시)
- 1946-09-01 : 학제 변경으로 수업 연한 6년으로 됨
- 1946-12-01 : 경북 도립 사범과 부설, 교가 제정
- 1947-07-20 : 부설 사범과 졸업과 동시 폐지
- 1950-05-30 : 교명을 ‘대구고등학교’로 개칭하고 경북중학교와 분립
- 1950-06-24 : 대구고등학교 개교식 거행, 조귀순 교장이 대구고등학교 교장 겸임
- 1950-06-25 : 교명 ‘대구고등학교’를 ‘경북고등학교’로 개칭
- 1950-07 : 한국전쟁 종군지원학생 송별식 거행. 학교는 미국 제5공군에 징발되었고 전교생은 임시 휴교
- 1950-10 : 중단되었던 수업 재개
- 1951-04-01 : 교명 ‘경북고등학교’를 ‘대구고등학교’로 변경
- 1951-07-13 : 학제 변경으로 중학 6, 4, 3년생이 동시 졸업
- 1951-09-01 : ‘경북중학교’를 ‘대구제일중학교’로 변경(수업 연한 6년제를 3년제로 변경)
- 1951-09-17 : 조귀순 대구고등학교 초대 교장 취임
- 1953-09-04 : 교명 ‘대구고등학교’를 ‘경북고등학교’로 변경
- 1954-06-05 : 고등학교는 대명동의 현 대구고등학교의 위치로 교사 신축 이전
- 1954-07-01 : 교지 ‘경맥’ 창간호 발간
- 1959-04-10 : 경북중학교 교사(대봉동 소재지)로 입교.[10] 경북중학교와 합교식 거행.
- 1960-02-28 : 2.28 학생민주의거
- 1967-05-02 : 제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우승(본교 야구부의 황금기 개막)
- 1972-02-29 : 경북중학교 최종 제3학년 졸업(중학교 평균화 조치로 경북중학교 폐교[11] )
- 1975-04-05 : 경북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개교
- 1982-08-02 : 대붕기쟁탈 전국 고교야구대회 우승
- 1984-12-20 : 신축 교사 준공
- 1985-01-15 : 신축 교사(수성구 황금동 9번지)로 이전
- 1985-10-15 : 제66회 전국체육대회 야구부 우승
- 1986-01-25 : 전천후 야구 연습장 준공(130평)
- 1986-10-15 : 제67회 전국체육대회 야구부 우승
- 1993-06-12 : 제48회 청룡기쟁탈 전국 고교야구대회 우승
- 2001-11-15 : 야구부 합숙소 개관식
- 2002-11-15 : 제83회 전국체전 남자 고등부 양궁 단체전 금메달 획득
- 2003-05-11 : 역사관 개관
- 2006-10-01 : 제87회 전국체육대회 검도 단체부 우승 및 양궁부 2관왕
- 2015-04-28 : 제43회 봉황대기 전국 고교 야구대회 우승
- 2019-02-08 : 제100회 졸업식 거행(501명)
- 2019-05-16 : 경북중고등학교 제120주년 개교기념식
- 2019-12-20 : 제101회 졸업식 거행(402명, 졸업생 누계 52,687명)
3. 상징
3.1. 교표
3.2. 교훈
知(지) 아는 사람, 思(사) 생각하는 사람, 行(행) 행하는 사람
3.3. 교목
느티나무[12] : 느티나무를 교목으로 삼은 뜻은 느티나무의 강인하고 넉넉하고 단정한 모습처럼 큰 기상과 조화로운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의 전당이라는 의미이다.
3.4. 교화
목련: 목련을 교목으로 삼은 뜻은 목련꽃의 맑고 깨끗한 모습처럼 순수한 이상을 지니고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여 남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라는 뜻이다.
3.5. 교가 및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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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가는 1학년 음악시간에 외우며, 간단한 가창 평가를 교가로 하기도 한다. 반면에 응원가는 특이하게도 체육시간에 배운다. 물론 교가를 자주 부르지만 응원가도 꽤 자주 부르게 되는데, 큰 야구경기가 있을 때 단체로 야구장으로 응원가서 응원가를 부른다[13] . 또 징계 받을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상점을 받기 위해 주말리그를 응원하러 가는데, 그 때 부르기도 한다.
교가는 1학년 음악시간에 외우며, 간단한 가창 평가를 교가로 하기도 한다. 반면에 응원가는 특이하게도 체육시간에 배운다. 물론 교가를 자주 부르지만 응원가도 꽤 자주 부르게 되는데, 큰 야구경기가 있을 때 단체로 야구장으로 응원가서 응원가를 부른다[13] . 또 징계 받을 위험에 처한 아이들이 상점을 받기 위해 주말리그를 응원하러 가는데, 그 때 부르기도 한다.
4. 교복
4.1. 교복 자율화 실시 전
현재 교복처럼 백삼선이 눈에 띈다. 1983년 교복 자율화가 실시 된 후 더 이상 이 교복을 입지 않았다.
4.2. 교복 자율화 폐지 후
교복자율화가 폐지된 뒤로 교복이 한 번도 바뀌지 았았으며, 학생들도 만족(???)해서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듯하다. 참고로 동복 소매에 저 삼선이 낡아서 떨어질 쯤이 졸업할 때다.
동복은 남색 자켓의 소매에 학교의 상징인 삼백선이 새겨져 있다. 대체로 무난한 교복이지만 자켓 핏이 정장처럼 나와 대체로 이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90년대 말에는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강요당했기 때문에 귀찮은 문제도 있었다.
하복은 흰색과 비둘기색으로 배색했으며 흰색 상의 포켓에 삼선이 그어져 있다. 하의는 비둘기색 면바지.
체육복 동복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죄수복... 촌스러운 연파랑색 세트다. 하복은 카라티에 동복색과 같은 반바지. 하복은 그래도 봐줄 만하다. 단 학교 체육복을 무조건 입어야 한다는 분위기는 없으며, 그래서 반 유니폼을 입고 체육하는 학생들도 많다. 96회 한정으로 체육복을 살 필요가 없다고 한 적도 있다.
2016년부터 생활복도 나왔는데, 타 학교의 디자인에 비함 정말 촌스럽다. 얼핏보면 배드민턴 운동복 같이 생겼다. 생활복 디자인 공모전도 있었는데 수상자의 디자인을 사용한것이 아니라, 공모전 참여자 모두의 공동 디자인으로 생활복이 디자인되었다. 바지의 소재가 상당히 특이한데 물이 묻어도 흡수되지 않고 방울째 굴러 떨어진다.
5. 학교 시설
학교 부지가 굉장히 넓다.[14]
건물과 학교 부대 시설도 나쁘지 않다.[15] 1990년대까지는 매우 좋은 편에 속했으며, 예로 들어 그 당시 대부분의 공립학교들이 선풍기만 갖추고 있을 때 교실에 에어콘을 비치해 두고 있었다.
2016년 기준으로 황금동 교사를 지은 지 약 30년밖에 되지 않아 그렇게 낡지는 않았지만, 석면 천장, 냉난방, 화장실 변기 등의 노후설비가 남아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개선 공사와 관련해 대구교육청에서 공고를 냈다.
2017년 1월 겨울방학 중 석면제거 공사를 진행하여 석면제거를 완료했고, 2017년 여름방학 이후에 노후화된 화장실을 보수공사하였다. 여기에 시청각실도 리모델링되었으며, 1학년 전 교실과 2학년 5반 교실에 최신형 TV가 설치되었다. [16] .
자세한 시설은 경북고등학교/시설 항목으로.
6. 행사
6.1. 체육대회
대체적으로 5월 스승의 날 전후에 체육대회를 한다. 토너먼트 대회는 체육대회 당일 전에 결승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치룬다. 1학년 종목은 축구, 2학년 종목은 농구다. 공통적으로는 이어달리기, 피구 등을 하며 경북고 특성(특성이라기 보다는 전형적인 남초 집단의 특성)인지는 모르겠지만 반티를 맞추는 반은 많지 않으며, 반유니폼(의 역사를 90회 졸업생들이 2학년일 때, 완전 정립되었다고 카더라.)을 반티대용으로 입기도 한다. 그리고 이 날 급식 메뉴는 화려한 편으로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특별식을 제공한다. 한편 3학년은 체육대회 하는 날에 졸업사진을 찍으러 간다.
2012년 : 1학년 축구에서 최약체 중 하나로 평가 받던 8반이 우승해서 파장이 일어났었다! 준수한 스트라이커+활동량 좋은 미드필더의 조합덕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준우승은 6반이 차지했다.
2013년 : 2학년 농구에서 미국 농구 국가대표팀급 넘사벽이던 1반이 우승했고, 달리기도 1반이 우승하였다. 그 결과로 2학년 1등은 1반이였다. 한편 특별경기로 사제간의 축구경기[17] 를 하기도 했다.
2019년 : 1학년 3반이 체육대회에서 다른 반을 압도적으로 제치고 우승을 했다!! 이미 사기가 높았던터라 지면 분위기가 이상해졌을 것이 분명하다.
6.2. 경맥제(慶脈祭)(在)
경북고등학교 재학생 축제로, 총동창회 체육대회랑 이름만 같을뿐 다른 행사다. 보통 수능이 끝난 11월 말에 하지만 2016년에는 9월에 했다. 첫쨋날은 동아리 부스를, 둘쨋날은 가요제를 한다. 단 가요제는 2012~2013년은 외부에서 열려 많은 학생들이 가지 않았고 또 외부인도 적었다.
주변 고등학교들에게서 인기있는 편이다. 딴 학교랑 큰 차별성있는 축제는 아니지만 축제의 인기는 이상하리만큼 높다. 심지어 수성구뿐만 아니라 중구, 남구, 동구에 있는 학교 학생들까지 꽤 많이 온다.
2012년 : 11월에 열렸으며, 첫쨋날은 강당에서 동아리 부스를, 둘쨋날은 수성대학교에서 가요제를 했다. 수성대학교 강당에서 축제를 진행했는데 본교 강당보다도 좁은 좌석수로 많은 학생이 공연을 보지 못했으며, 학생들 사이에서는 왜 강당에서 안하고 여기서 가요제를 진행하냐고 말들이 많았다.
2013년 : 11월에 열렸으며, 전 해와 같은 일정으로 진행되었다. 동아리 부스에서 특색있었던 것이 있다면 스피드건으로 구속을 재는 부스가 있었다. 축제를 구경 온 야구부원도 구속을 재고 갔었다. 한편 가요제는 어린이회관 꾀꼬리 극장에서 열렸는데, 작년의 악몽을 기억하는 2학년들은 대부분 가지 않고 혜화여고 가요제로 갔다.
2016년 : 평소와 다르게 9월 6일~7일에 열렸다.
2019년 : 12월 17~18일로 타 학교들보다 늦은 시기에 열렸다.
6.3. 경맥제(慶脈祭)(卒)
1970년대부터 총동창회가 주관하는 졸업생 축제 및 체육대회다. 매년 경맥제를 할 때 마다 전•현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장 등 정재계 인사들이 오며 그 때문에 기자들까지 경맥제에 오기도 한다.
다만 이 행사를 지역 사회에서는 좋게 보지 않는데, 그 이유는 황금동으로 교사를 옮긴 뒤 바로 길 건너에 있는 캐슬골드파크 아파트(재개발 전에는 황금아파트)에 많은 피해를 끼치기 때문이다. 스피커를 무진장 세게 틀어 소음 공해를 내고 차를 길가에 대서 교통혼잡을 일으키는 등 상당수 주민들이 싫어한다. 경찰에 신고했을 때 이미 민원이 들어와 소리를 줄여 달라고 했다고도 했지만 소리는 전혀 작아지지 않았다.
학교 운동장에서 열리는 대회와 별개로 가을마다 서울에서 '경맥가을축제'가 열린다. 2016년 기준으로 48회를 맞았다. 서울 성북중에서 야구 대회로 시작되어 22회부터 잠실 경기장을 빌려 본격적인 축제로 발전했다. 2016년 축제는 개교 100주년 기념으로 국회의사당 운동장에서 진행되었다. 38회부터 96회에 이르는 기수들이 참여했다. 직장이 바로 옆인(...) 국회의원들도 많이 참가했다.
7. 운동부
1920년에 창단한 야구부는 전국대회 최다 우승학교(21회)이자, 국민타자 이승엽을 비롯한 김성래, 류중일, 김상수 등 삼성 라이온즈의 기둥을 배출했다. 1971년 경북고등학교를 역대 최고의 야구부로 꼽는 야구인들이 많으며,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70주년 기념 OB All-Star 선정된 10명 중 3명이 경북고 출신이다[18] .
- 검도부
1980년에 창단한 검도부는 1992년 제9회 전국 추계 고교검도대회 우승 이후 2009년 제38회 문화체육부장관배 815 전국학생 검도대회도 우승하였다.
- 양궁부
1985년에 창단한 양궁부는 1987년 양궁시범학교로 지정되면서 1991년 제 36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폴란드) 단체 우승 및 개인 3위의 성과를 거두었고, 1992년 8월에는 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양궁 개인(정재헌) 은메달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2007년 5월 양궁종별 선수권대회 종합우승을 하였다.
8. 주변 환경
학교 주변에 놀거리가 매우 없다. 일단 가장 가까이 있는 PC방은 도보 15분 거리에 있다. 그래서 보충수업을 째고 PC방 가는 학생들은 버스 타고 수성대 주변 PC방이나, 지산, 범물로 가기도 한다. 또 주변에 음식점도 매우 적다. 또 있던 음식점들도 다 망했다. 닭강정 가게, 햄버거 가게, 분식점 등등... 이런 원인을 생각해보면 일단 경북고 학생들이 밖에서 잘 사먹지를 않는다... 한편 인근 우방 2차에 중국집 2개가 있어서 급식이 맛없을 땐 학교를 몰래 탈출할 뒤 거기서 점심을 해결하는 학생이 있기도 한다.
9. 총동창회
학교 동문과 관련된 굵직한 행사를 진행하며, 학교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상당히 강하다. 경북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자동으로 총동창회원이 된다.
주관하는 행사 중에 큰 행사로는 '''경맥제(대구)'''와 '''경맥 가을 축제(재경)'''이 있다. 그 외에도 경맥기념춘추 출간이나 각종 동문 행사를 주관하며 경맥OB합창단, 경맥 산악회, 경맥 문학회, 수경회 등의 동창 모임도 활발하다.
10. 동문
동문이 많아 문서화했다. 더 많은 동문을 알고 싶다면 경북고등학교/동문으로.
행정수반 대통령(노태우-32회)을 비롯해 국회의장(이효상[20] -4회, 박준규-25회, 김수한-29회), 대법원장(김용철-26회) 등 3부(府) 수뇌를 배출했다. 전국에서 3부 요인을 모두 배출한 학교는 경북고와 경기고, 경남고 3곳뿐이다.
역대 국회에 진출한 동문 수는 제헌국회부터 이번 20대 국회 6명을 포함해 모두 186명에 이른다. 행정부에서도 많은 동문들이 각 부처에서 중요한 관직을 맡았고 그중에서도 부총리가 6명, 장관이 36명에 이른다. 신현확(20회) 동문은 후에 국무총리에 올랐다.
동문 법조인 수는 380여 명에 이른다. 현직 판•검사가 110여 명, 200여 명이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대법관이 14명, 검찰총장 7명을 배출했다. 군과 경찰계에서 활약한 동문을 보면 합참의장(최세창-34회)을 비롯해 육군 참모총장이 3명, 공군 참모총장이 4명에 이른다.
의료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문은 그 수가 매우 많은데, 상당수가 경북대, 서울대 의대 출신이다. 지역의 대학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의 유수한 의과대학 등에서 진료와 연구를 통하여 최고의 엘리트로 평가받고 있다. 최규완(36회) 동문이 고교 선배인 노태우 대통령의 주치의를, 신현대(47회) 동문은 노무현 대통령의 주치의를 맡았다.
한편 경제•경영분야에도 동문들이 많다. 2012년 CEO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등학교 랭킹에 경북고등학교가 4위를 차지했다(32명). 삼천리 한준호 회장, 현대상선 이석희 사장, 두산 이재경 부회장, 현대중공업 김외현 대표, 푸르밀의 대표이사 남우식 등이 대표적이다.
스포츠계에는 야구부 덕분에 이승엽, 배영수, 류중일, 김성래, 등등 많은 스타가 있다. 그 외 92년 올림픽 양궁 은메달리스트 정재헌 선수도 경북고 출신이다.
연예계에도 동문이 있는데, 명배우로 통했던 강신성일, 너는 내 운명, 우리 결혼했어요[21] 에 출연했던 박재정 등이 있다.
고등학교 개교일이 1916년이라 빠른년생을 제외하고 대다수 학생들의 생년이 기수와 일치하기에 외우기가 쉽다. 1899년 달성학교 기준으로 17년의 역사가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기수에 17 더하는 데 동문들의 반응은 역사 자체에 대한 축하와는 별개로 영 시큰둥하고, 공식 행사에서도 100주년 쪽에 훨씬 의미를 많이 두고 있다. 당장 2016년 동창회에서 새 학교장이 17년 역사 발굴 이야기를 치적이랍시고 했으나 동창들 반응은 뭔 호들갑이냐는 식이었고 아주 깔끔하게 무시당했다. 2000년대 이후 출생한 학생들이 동문회 주도권을 잡는 아주 먼 미래가 아닌 이상 대구고보 기준 기수가 오랫동안 쓰일듯.
11. 이용 가능한 대중교통
11.1. 버스
학교 뒷편 청수로 쪽에는 234번과 425번이 버스 종점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종점에서 학교로 통하는 직통 통로가 없는 관계로 이곳에서 경북고까지 가려면 무려 최소 15분 이상이나 걸어야 한다. 만촌3동 쪽에서 234, 425번을 타고 통학하는 경북고 학생들은 해당 종점 대신 차라리 기사님께 부탁드려서 황금고가차도 하단에 있는 미인가 정류소에서 하차하자.
11.2. 도시철도
참고로 황금역에서 학교까지는 거리가 꽤 머니 헬로TV대구방송건너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로 환승할 것을 권장한다. 단 수성4번, 순환3-1번은 황금우방1차 정류장 하차 후 도보로 이동해야 하며, 청도 0번은 환승할인이 적용되지 않으니 주의.
12. 기타
여기서부터 나오는 경북고등학교의 문제점들은 고교평준화에 따른 문제점들이라 보면 될 것이다.
고교평준화 이전과 이후의 경북고를 모두 겪어본 교사들은 경북고 쇠락의 원인으로 고교평준화로 학생의 질이 떨어진 것도 크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고교평준화 이후 교사들의 질적하락이라고 말한다. 실제 70년대 고교평준화 이후로도 한동안 명문고등학교들에는 우수한 1급 교사들만 돌아가며 배치되는 시절이 있었고 그로인해 한동안 경북고등학교도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교직원들에 대해서도 완전 평준화가 진행되었고 결과는 '''오늘날과 같다'''
12.1. 1985~2000
- 90년대 초중반 당시, 주변에 있는 고등학교들에 비하면 공부를 거의 시키지 않는 수준이었다. 주변에 있던 다른 고등학교들은 경쟁적으로 공부를 시켰는데, 각 학과별 숙제 외에 담임이 그냥 매일 기본으로 내주는 숙제가 있고, 거기다 주말마다 해서 바쳐야 하는 숙제가 영단어/숙어 깜지 10장, 수학문제 풀이 50개 뭐 이런 식으로 있었다. 반면에 경고에는 그런 게 없다시피 했다. 오죽하면 중학생 때보다 숙제가 없었다. 문과반은 일체 없었으나, 이과반은 어땠는지 모른다. 그러나 공부는 할놈할이어서 당시까지 학교 서열의 지표였던 서울대 합격자수는 1위인 경신에 비해서도 그리 뒤쳐지지 않았다. 90년대 중후반 문과 졸업생 기준으로 반에서 20등 정도면 수능(인문계) 상위 10프로 정도 수준이었다.
- 수능을 치고 나면 사물함에 문제지를 채워서 고청원 연못에 빠트리는 또라이들이 있었다. 사실 이 시절 이런 또라이들이 나타난 데는 이 당시 툭하면 프린트지나 문제지를 배부하며 성의없이 수업을 하던 교사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
- 다른 학교도 그랬겠지만, 교과서 잊어먹고(때론 귀찮아서) 가져오지 않은 학생들은 다른 반 친구들에게 빌려서 썼다. 이런 불량한(?) 학습 태도를 근절시키기 위해 수업 전에 학생 본인의 교과서가 맞는지, 수업할 부분에 이미 필기가 되어 있진 않은지 시시콜콜하게 검사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교과서에 필기할 게 많았던 문학 교과 교사가 특히 검열에 철저했다. 아울러 교과서 낙서나 튜닝이 지나친 경우 꽤 많이 혼났다.
- 탁구부는 없는데 강당에 탁구대는 많아서 점심시간 마다 애들이 거기서 탁구를 치며 놀았다. 교사들은 막지 않고 오히려 권장을 했는데, 딴짓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여겼기 때문. 청소하다 비품 창고에서 과거 교련 수업 때 쓴 것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목총이나 교련복이 잔뜩 발굴(...)되기도 했다.
- 90년대 말 수학여행 코스가 비범했다. 첫날에 대구에서 광주까지 갔다가 다음날 독립기념관을 들린 후 서울로 북상, 3일째 오전에는 강원도 울산바위 찍고 대구로 귀환했다.(...)
- 90년대 말, 체육대회 경기 종목이 현재보다 더 많았다. 그리고 종목에서 성적을 거두는 것보다 응원전 성적이 더 높았기 때문에 아예 작정하고 응원에 몰빵하는 경우도 있었다.
- 학교 뒤편에 도로가 새로 생기기 전에는 산에서 가끔 야생동물들이 내려오기도 했다. 다람쥐가 복도에 들어온 적이 있으며, 뱀이 발견된 적도 있다.
- 2000년 6월 16일 방송된 38회 "도전 골든벨 : 경북고등학교 편"에서 당시 학생회장이던 권보원 학생이 13번째로 골든벨을 울렸다.
- 그 뒤 2000년 12월 29일에 방송된 도전 골든벨 2000년 왕중왕전이 열렸었는데, 거기서 권보원 학생이 왕중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12.2. 2001~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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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대 말까지 교문에서 복장•두발•지각 등의 사유가 있을 때 위 사진과 같은 진풍경을 볼 수 있었으며, 또한 분수대를 중심으로 엎드려 뻗치는 체벌을 받았다. 이 장면을 찍은 사진이 한때 유명했다. 사실 2010년 이전에는 동네가 동네인지라(대구 수성구) 주변에 다른 사립 학교에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이 갔던 관계로... 유독 당시 (수성구 학군에 속하는)학생들 기준으로 비교적 머리카락이 더 길거나(민경훈의 영향이 크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비교적 주변 학교보다 많다 보니 당연히 교사들은 잡을 수밖에 없다.
- 2009, 2010년에 몇몇 교사들의 주도로 1, 2학년 1인 1책 쓰기 운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자율이 아니라 수행평가로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의 고통으로 내신 점수를 날리면서까지 포기하는 학생들이 속출했다. 학생들이 정성 들여 쓴 책들도 있었으나, 결정적으로 공립학교인 탓에 활동을 주도하신 특정 교사가 다른 학교로 가면서 11년부터 그냥 없던 일처럼 되어버렸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절정에 달했던 입학사정관제 대세에 편승하는 좋은 전략이었으나 학생들의 역량을 너무 과대평가했고, 교사들이 그다지 많이 도와주지도 않았던 실패한 프로젝트.
- 이명박 정부 들어 모의대회가 스펙으로 각광받던 시점에 무료 외부활동의 패러다임을 선도했다. HADMUN은 대구에서 꽤나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뒤이어 DAMT가 생겼다. 지방 학교에서 이런 커다란 외부 활동을 둘이나 주최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고무적이다. 학생들의 창의적인 시도와 공립학교라 여러 가지 미친 아이디어를 허용해 주는 학교 덕도 크다.
- 2011년부터 '자랑스러운 경고인'을 뽑는다. 학교 생활에 모범이 되거나 잘 한 일이 있으면 이 상을 부여한다. 상위권 학생의 스펙 쌓기용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꼭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받는게 아니라 학교 생활을 성실히 한 학생도 받을 수 있다. 어떤 고3 반에는 원점수 200이 안되는 친구가 받기도 했다. 한편 부상은 경북고등학교 샤프 와 경북고등학교 USB다. 빨간 바탕에 경고 마크가 붙은 배지도 받는다.
2017년 기준으로 '자랑스러운 경고인'이 '경맥인'으로 바뀌었다. 이것이 명칭만 바뀐게 아니라 상을 주는 기준도 달라졌다. '자랑스러운 경고인'이 성실한 학교 생활로 받는 다면 '경맥인'은 마일리지제도에 따라서 상을 주는데 마일리지 제도는 학교 교훈인 지•사•행으로 3가지로 나누어지고 마일리지를 쌓는 방법은 야간 자율학습 참여도와 방과후학교 참여도이다... 즉 야간학습 많이 하는 순서로 결정한다고 한다.
- 현재 두발규정은 파마, 염색, 장발, 스크래치 등을 제외하고 모두 가능할 정도로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지만 2012년까지만 해도 두발규정으로 인해 아침을 팔굽혀펴기로 시작하는 학생들이 많았다.[22][23]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발표되자 경신고를 비롯한 근처의 악명 높은 사립고들은 인권은 무슨... 하는 식으로 의논 자체를 차단했지만, 공립학교 특성상 인권조례를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도 없어서 학교에서 두발 자유에 관한 온라인 토론방이 열렸다. 당연히 두발 자율화에 반대하는 학생이 있을 리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오프라인 두발 자율화 토론회를 열었고, 보충수업을 받는 3학년을 제외한 1, 2학년 전체가 9월 어느 날 오후에 강당에 모여 토론회를 참관했다. 두발자유 토론방은 아직도 경북고 홈페이지 안에 남아 있으나 글들은 모두 지워졌다.#
- 2012년 야구장에 인조잔디가 깔릴 때 관중석과 야구장 사이에도 인조잔디를 같이 깔았는데, 그 덕에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만 되면 그 곳에서 원바운드를 하는 학생이 넘쳐 난다. 가끔 불펜에서 캐치볼을 하는 학생의 공이 원바운드를 하는 학생을 맞추어 다치기도 한다.
- 2013년 1학기에 2학년을 대상으로 2학년 전교부회장배 축구 토너먼트를 열었다. 초반에는 학생부 소속 교사가 심판을 봐줄 정도로 학교에서 큰 간섭을 하지 않았지만, 경기에서 뛴 학생들이 경기 뒤 급식 먹고 온다고 수업을 늦게 들어간 사건이 발생한 뒤 학교에서 대회를 진행하는데 간섭하여 진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2학기에는 체육실배 축구 토너먼트를 했는데, 중상급 팀이라 평가받던 6반이 우승하였다.
- 2013년까지만 해도 쉬는 시간에 학교 급식실 뒤에 가면 담배피는 학생이 매우 많았다[24] . 다만 2014년부터는 학생부 교사들이이 매 시간마다 급식실 뒤에 잡으러 가서 그 뒤로는 급식실 뒤뿐 아니라 교내에서 담배를 잘 피지 않는다.
-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경북고의 8,9교시 보충수업은 학생들(1•2학년 한정, 3학년은 고정되어 있다.)이 들을 과목을 신청할 수 있으며, 실제로 선택의 폭도 넓다. 국영수 기본 과목부터 사탐 및 과탐도 있고, 심지어 이재철 교장 취임 전까지는 배드민턴, 탁구, 축구도 보충수업 과목이었다. 그 덕에 인기있는 과목들은 3초컷이므로 빨리빨리 신청해야 한다. 한편 간단한 부모님 동의가 있으면 이 보충수업도 들을 필요가 없다. 이 때문에 4시 반만 되면 인근 중학생들과 같은 시각에 하교하는 모습이 자주 보이기도 한다. 또한 1,2학년 야자는 자율이다. 3학년만 의무.
- 2016년을 시작으로 갑자기 코미디식 졸업사진이 폭발등장했다. 하루동안 대구 어린이회관에서 야외촬영을 했는데 그날 광경이 텔레토비에 맥크리에 농부에 수영장 파티 그레이브즈까지 참 장관이였다. 이과보다는 문과쪽에서 병맛컨셉 졸업사진이 많았던 편. 2017년 졸업사진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려진 바가 있다.
- 2017년 실시된 2018수능에서 자연계 만점자가 나왔다.
- 2018년 실시된 2019수능에서 대구 수석을 배출했다. 전과목에서 3개 틀렸으며,
- 2019년 실시된 2020수능에서 대구 자연계 수석이 나왔다.
12.3. 그 외
- 꽤 옛날부터 대구지역에서는 경북고를 줄여서 경고라고 부른다. 그러나 경○고라 부르는 학교가 생각보다 많은 만큼, 가끔 혼동이 있기도 한다.
- 명찰은 탈부착이 불가능하며, 초록색 - 하늘색 - 군청색의 순서로 순환한다. 예를 들어 군청색을 사용하는 3학년이 졸업하면 다음 해 1학년이 군청색을 사용하고, 초록색을 사용하던 1학년은 2학년이 되고, 하늘색을 사용하던 2학년은 3학년이 된다.
- 1972년 폐교한 경북중학교의 후신 경운중학교(1970년 개교)와 교복이 상당히 비슷하다. 동복의 삼백선은 포켓에 있으며 하복은 깃부분의 디테일을 제외하면 완전히 똑같다! 경운중 출신 학생[25] 이 경북고 하복을 사고 않고 경운중 하복을 입고 그대로 등교하기도 했다.
- 교내에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많다. 선배들 중에 높으신 분들이 많아서 그렇다. 특히 봄이 되면 큰 벚꽃나무에 벚꽃이 피면서 매우 이쁘다. 또한 교문 앞에 조경용으로 강당 높이만한 나무 두 그루를 2013년, 2016년에 심었다.
[1] 단 2016년이 대구고보 100주년임을 감안하여 2017년부터 달성학교 기준으로 개교일을 잡음[2] 사립달성학교의 교육목표[3] 경복고등학교와 헷갈리기도 하는데, # 인터넷 게시판에서는 유승민이 경복고, 이수만이 경북고로 트레이드되는 웃픈 시츄에이션이 펼쳐지기도 한다.[4] 현 대구초등학교[5] 대구 국채보상운동 모금액 중 일부가 설립 자금에 쓰였다.[6] 2015년까지 경북고등학교는 달성학교가 전신이라는 사실을 몰랐으므로 대구고보의 개교년도를 개교기준으로 삼았었다. 그러나 2016년 대구고보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준비하다가 달성학교가 효시였음을 알 수 있는 고문서를 발견하였고, 2017년에 개교년도를 1916년에서 1899년으로 앞당겼다.[7] 1900년 관립중학교로 개교[8] 1909년 관립평양고등학교로 개교, 1911년 평양고등보통학교로 교명 변경. 이후 평양제이중학교로 개명. 6.25 전쟁 이후 폐교된 것으로 추정됨.[9] 폐교된 평양제이중학교를 제외하면 두 번째다.[10] 대명동 교사에는 대구고등학교가 들어왔다.[11] 경운중학교(대구)(1970년 개교)가 경북중 계승[12] 운동장 조회대 쪽에 있는 나무들이 느티나무이다.[13] 다만 과거에는 응원하러 직접 버스를 대여해 갔지만 최근에는 잘 그러지 않는다. 그나마 2012년 전국체전을 경북고 야구장에서 하여 최근에도 전교생이 단체응원할 기회가 있었다.[14] 원래는 현재보다도 넓었지만 동창회관을 개보수하여 교육청이 쓰고, 테니스장을 밀고 황금유치원을 지어 예전보다는 약간 좁아졌다. 또한 학교 담벼락을 허물고 공원화하는 것도 좁아진 원인이다.[15] 아래에 언급되듯 졸업생들이 빵빵하다 보니 학교에 신경을 많이 써줬다.[16] 하지만 2018학년도가 되면서 교실 배치가 달라지면서 이젠 2학년 5반이 아니다.[17] 문과반 소속 해설이 이과반 학생이 공을 차니깐 cos 재고 공을 찬다는 개드립을 시전했다.[18] 류중일(SS), 김성래(2B), 남우식(P)[19]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경맥인 소식, 체육대회 소식 등도 올라 온다. 그런데 관리자가 문제가 있는게, 개인사를 페이지에 올릴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편향된 글을 올릴 때가 잦다. 예를 들어 관리자가 김문수랑 인연이 있어서 그런지 김문수에 관한 글을 자주 올렸는데, 특히 2016년 총선 때 김문수를 지지하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다. 평소같으면 큰 논란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상대후보도 경맥인인 김부겸이었기에 사정이 달랐다. 그리고 2017년 2월 25일 38~55회 동문들이 태극기 집회에 다녀온 동문들의 사진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걍 공신력 전혀 없는 페이지라고 보면 된다.''' 자기 손자 뛰어노는거 올라오는 판에 경북고 페이지 이름 달고있는게 어이없는 수준. 본인 신상도 떡하니 추정가능하게 막 올리고 있다.[20] 친일파로, 학도병 지원을 촉구한 혐의가 있음[21] 가상결혼 상대가 무려 유이!! 심지어 촬영 차 모교를 방문하기도 했다!!![22] 2013년부터 현 규정을 적용했고, 인근의 경신고도 비슷한 시기 두발규정이 완화되었다.[23] 단 2012년에도 단발규정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두발규정이 완화된 뒤에도 학생들이 크게 환호하지 않은 걸 본다면... 단 3학년은 1,2학년들에 비해 교사들의 단속이 까다로웠다. 가끔 머리 긴 1,2학년들이 3학년 교사에게 걸려 혼나기도 했다.[24] 근데 정말 전문적으로 피는 놈들은 딴데서 폈다. 북쪽 담벼락 밑이 전문범들의 주요 접선 및 활동 장소였는데, 바로 뒤에 사는 고층 아파트 주민이 이를 목격하여 학교에 신고하는 바람에 매복한 학주가 일제검거하기도...[25] 당연히 주로 야구부원. 경운중도 야구부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