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창

 

徐載昌
1866년 10월 29일 ~ 1884년 12월 13일
조선 말기의 무신이자 개화파이며 서재필의 동생이다.
그는 먼 친척 서광래의 양자로 입양갔다. 일본 토야마 육군 유년학교(戶山陸軍學校)에서 신식 군사 훈련을 받은 뒤 정6품의 품계를 받고 무위영 별기군 작전관에 임명되었고 우정국 개국 2개월 전에 우정국 사사(司事)에 임명되어 우정국 개설 업무에도 관여하였다.
그는 형인 서재필과 함께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의 영향을 받아 개화 사상을 갖게 되었으며 개화당에 들어갔다.
1884년 서재필, 서광범, 박영효, 이규완, 홍영식, 유혁로, 정난교,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켜 수구파 대신들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삼일 천하로 끝나자 홍영식, 박영교는 죽고 그는 도망쳤다. 그러다가 결국 관군에게 붙잡혀 사형당하고 만다. 이때의 서재창의 나이는 고작 만으로 '''18세'''였다.
유복자가 한 명 있는데 서자다. 그래서 서재창의 명목상 후사는 사촌 동생 서재영의 아들 서호석이 사후 입양되어 이었다. 이름은 서O석으로, 자세한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前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였던 서희원의 아버지로 최순천의 남편 서동범의 할아버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