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홍
1. 소개
오호십육국시대 후조(後趙)의 제2대 황제. 석륵(石勒)의 차남으로 석륵의 조카 석호(石虎)에 의해 폐위되어 묘호와 시호를 받지 못하였으며, 폐위된 후 해양왕(海陽王)에 봉해졌다.
2. 생애
석홍은 정씨 소생으로 330년에 황태자로 책봉되었다. 학문에 뛰어나 국가를 안정시킬 인재로 인정받았으나, 심약하고 군사적 재능이 떨어졌다고 평가되었다. 실제로 '''치세에는 명군이 될 것이지만 난세에는 암군이 될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당시 시대가 다름아닌 난세였다.
당시 중산왕(中山王) 석호는 강대한 무력을 가지고 있었는데, 석륵과 후조의 대신들은 석홍이 석호를 통제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였다. 신하들은 석륵이 죽기 전까지 계속 석호에 대한 처리를 하게 했지만, 석륵은 계속 망설이며 미뤘다. 역시나 석홍은 심약했고, 석호의 세력이 강대했기 때문에 석호를 견제하지 못하였다.
333년에 석륵이 병환으로 몸져 눕자, 석호는 궁궐을 장악하고 조서를 마음대로 고치는 등 전횡을 부렸다. 그리고 7월 석륵은 결국 석호를 처리하지 못하고 사망하고, 석호는 망설이는 석홍을 황제에 즉위시켰다. 석홍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는지 석호에게 황위를 양보하려 하였으나, 석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석홍을 제위에 올려 놓은 다음 모든 실권은 자신이 장악하였다. 석홍은 석호의 훌륭한 꼭두각시, 허수아비 괴뢰 황제가 되었다. 석호는 황제가 되려는 야망에 불타 있어서 먼저 여러 왕으로 책봉되어 있던 석륵의 아들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결국 석홍을 제외하면 모두 죽었으며 어린 애들은 모두 거세당했다. 대신 공석이 된 왕 자리들에는 모두 석호의 자식들이 차지했다. 이에 반대하여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으나, 석호는 이를 모두 격파하였다.
8월에 석호를 승상, 위왕, 대선우로 삼으면서 구석을 덧붙여주고 위군 등 13개 군으로 국을 만들어 백관을 총체적으로 관장하게 하고 석호의 자식들을 왕으로 임명고 석호의 부하들도 각기 관직을 임명했다.
334년에 연호를 연희(延熙)라 고쳤고 4월에 석홍은 석호에게 제위를 물려주겠다고 제안하였으나, 석호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렇게 세 번째로 조정 대신들이 선위할 것을 권하자, 석호는 석홍을 폐위시키고 자신은 황제가 아닌 '천왕(天王)'의 지위에 올라 섭정하였다. 11월에 폐위되어 석홍은 해양왕에 봉해졌고 태후 정씨, 석굉, 석회 등과 함께 숭훈궁에 유폐되었다가 곧 살해당했다. 석호는 그 후에도 천왕의 지위에 있었으나, 사실상 황제였고, 석호는 말년에야 황제로 정식으로 즉위한다.
3. 둘러보기
[1] 북위를 다룬 역사서인 위서에서는 현조 탁발홍의 휘를 피휘하여 석대아(石大雅)로 표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