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과 창조의 모임

 

'''선진과 창조의 모임'''
'''결성일'''
2008년 8월 6일
'''해산일'''
2009년 9월 1일
'''교섭단체 대표'''
권선택 자유선진당 원내대표,(2008년),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2009년),
'''국회의원'''
20석[1][2] / 300석
1. 개요
2. 최후
3. 관련 문서


1. 개요


6대 국회의 삼민회에 이은 대한민국 헌정사상 '''두 번째 공동 교섭단체'''.[3]
2008년 8월 자유선진당창조한국당은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라는 공동교섭단체를 출범시켰다. 창조한국당의 비례대표 2번인 이한정 의원은 당내에서 당선 무효 소송을 건 상황이라 참여하지 않았고, 그가 당선 무효 된 후 비례 3번 유원일 의원이 의원직을 승계해서 활동했으나 그 역시 교섭단체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후 유원일 의원이 2012년 연초 자진 탈당하면서 선경식 당 대표가 비례대표를 승계하였다.
원내교섭단체라는 한 배를 타고 있었지만, 사실 남이나 다를 바 없었다. 예를 들어 2008년의 박왕자 씨 피살사건 때 창조한국당은 청와대의 대북 강경책을 비판하는 논평을 내놓았지만, 자유선진당은 이 기회에 북한의 해상에 쳐들어가야 한다고 논평을 내놓았을 정도였다. 이명박 정부가 장관 3명 임명을 강행하자 선진당은 인사청문 시한을 넘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대치를 비난하며 대통령은 할 일을 했다고 두둔했지만 창조한국당은 대통령의 독단이라고 비난했다. KBS 정연주 사장의 해임 문제에 대해서도 선진당은 정사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한 반면, 창조한국당은 대통령을 공격했다. 아프가니스탄 국군 재파병 문제도 선진당은 찬성, 창조한국당은 반대였다. 성향이 전혀 다른 두 당이 머릿수만 간신히 맞춘 교섭단체라 거대양당을 견제하는 제3세력 역할은 고사하고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혼란만 더하는 야합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2. 최후


짝수년은 자유선진당 의원(권선택 의원 4개월)이, 홀수년은 창조한국당 의원(문국현 의원 7개월)이 교섭단체 대표로 활동할 예정이었다. 결국 가까스로 20석으로 유지되다가 2009년 8월 심대평 의원의 탈당에 이어 교섭단체를 탈퇴하며 공중 분해, 심대평 의원이 탈당 된 다음날 유원일을 가입시키려 애썼으나 요구가 맞지않아 그 다음날 결렬됐다.

3. 관련 문서



[1] 자유선진당 18석, 창조한국당 2석.[2] 총 의석수는 3석이었으나, 후술할 교섭단체 합류 거부 문제로 2명의 의원만 참여했다.[3] 사실 정당들끼리 만든 공동교섭단체로야 두번째지, 무소속 의원들이나 서로 다른 정당 소속 의원들끼리 만든 공동교섭단체는 대한민국 역사에 엄청 많았다. 정당 민주주의가 완전히 자리잡기 전인 제1~2공화국 시절에는 신정동지회, 민정구락부, 민우회 등 무소속 의원들이 모여 만든 교섭단체가 셀 수 없었고, 제3~5공화국에서도 있었다. 심지어 제6공화국에서도 있었다. 제17대 국회 때 중도개혁통합신당추진모임, 제20대 국회의 민주통합의원모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