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언론인)

 

[image] 한국방송공사 사장
제14대
서동구


제15~17대
정연주


제18대
이병순

[image]
1. 개요
2. 생애
3. 편향성과 내로남불
4. KBS 사장 시절
4.1. 노조와의 불화
4.2. 경영 악화
4.3.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개입
4.4. 성우들의 기용 축소
4.4.1. 반론: 그나마 역대 사장중 더빙 편성을 제일 많이했다.
6. 저술활동
7. 수상경력


1. 개요


鄭淵珠
1946년 11월 22일 (77세) ~
대한민국의 언론인으로, 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신문 논설주간, KBS 사장(2003-2008), 건양대학교 총장(2017-2018). 이홍렬과 얼굴이 닮아 '이홍렬'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2014년에 길환영 전 사장이 강제 해임되기 전까지는 KBS 사장 중 유일하게 해임되었던 사장이었다.

2. 생애


1946년 11월 22일 경상북도 경주군(현 경주시)에서 태어났다. 경주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1970년에 동아일보에 기자로 입사했다가 1974년에 자유언론실천선언 운동에 참여했다. 그로 인해 1975년 박정희 정권의 압력으로 동아일보에서 짤렸다. 이후 재야에서 활동을 하면서 때로는 수배자 신세가 되었다. 1977~1978년에 씨알의 소리 편집장을 맡았고, 1982년에 도미한 후 1989년 휴스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땄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에 참여한 후 이듬해부터 워싱턴 특파원직을 맡으면서 칼럼을 썼고, 2000년 귀국 후 논설위원과 논설주간을 역임하며 보수 언론사인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박권상 사장이 퇴임하면서 KBS 노조와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KBS 사장직에 추천되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후보 중의 하나였을 뿐인지라 그리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이전 사장었던 서동구 사장이 임명 9일 만에 낙하산 논란으로 노조가 반발하여 낙마하면서 대체 후보로 나서게 되었다.[1] 이후에 반 정연주 성향의 노조위원장이 선출되면서 적으로 돌아서다시피했지만 당시에는 KBS 노조에서 정연주를 사장으로 내세우는 데 호의적이었고, 노무현 대통령과도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게 있어서 무난하게 KBS 사장에 취임하였다. 그가 사장이던 시절 KBS는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정권에 우호적인 보도들을 쏟아냈다. 한국언론학회는 지상파 3사인 KBS, MBC, SBS의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 보도들을 분석한 뒤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됐고, 이듬해 정권 출범 후 노조가 사퇴를 요구했으며 정권의 사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일단 2000년대 중반부터 한나라당에서 방송을 한번 손봐야한다는 얘기가 있었고 이때는 청와대에서 장관 선임관련해서 홍역을 치르고 있었을 때문에 별 다른 압박을 가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KBS 내에서 일부 직원들이 이명박 정부에 줄을 서는 광경이 벌어지면서 정연주에게 사실상의 사퇴 압박이 가해지기 시작하다시피했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두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정연주가 못 버티고 KBS 사장직에서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2] 정연주 자신은 이전에 KBS 사장으로 재임했던 홍두표[3]박권상과는 다르게 6년 임기를 다 마칠 생각이었다. 2005~2006, 2007~2008년 3월까지 두 차례 한국방송협회 회장도 맡았다.
하지만 결국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시기에 KBS 이사장 강제 교체와 배임혐의 고발[4]등의 과정을 걸쳐서 2008년 9월에 불법적으로 해임되었다. (정연주 사장 강제 해임 사건 문서 참고)
이때 KBS 사장 해임은 법원에서 결국 불법으로 판결이 났다. 정연주 자신도 잔여임기는 수행해야 한다는 의사를 가지고 있는 듯 했으나 생각이 바뀌었는지 정권 교체 이 후 고대영이 해임되었으나 사장직에 복직하지 않고 사장 선임에 있어서도 중립을 지켰고, 그 대신 KBS 새 노조로부터 종신 명예노조원으로 추대되었다.
여하튼 사장 해임 이후 한겨레오마이뉴스 등지에서 칼럼을 내거나 책을 내고 있고, 노무현 재단 이사와 리영희 재단 이사도 맡았다.[5] KBS 재임 당시의 일화나 권력-언론 사이의 관계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다만 동아투위 관련 활동은 하기는 하나 보수언론과의 적대적인 관계인지는 적극적인 활동은 꺼리는 편.

3. 편향성과 내로남불


과거 한겨레에서 일하면서 줄곧 조중동을 조폭언론이라며 강하게 비판하였으며 '조중동'이라는 말도 이 사람이 만든 용어다. 한겨레를 그만두고 KBS 사장이 되었는데 이 시절 KBS는 노무현 탄핵 정국에서 정권에 우호적인 보도들을 쏟아냈다. 한국언론학회는 지상파 3사인 KBS, MBC, SBS의 노무현 탄핵 정국 당시 보도들을 분석한 뒤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놨을 정도였다.
2002년 8월에 한겨레에 쓴 자신의 칼럼에서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회창의 아들의 병역 문제를 겨냥하여 "현역 3년을 꼬박 때우는 힘 없고 ‘빽’ 없는 자식들은 ‘어둠의 자식’, 방위로 때우는 사람은 ‘장군의 아들’, 면제자는 ‘신의 아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불리는 수많은 젊은이들은 병적기록부의 확률세계와 거짓 덩어리의 난장판 같은 현실세계를 어떤 심정으로 보고 있을까."라며 이회창을 비방했다. 그러나 정작 정연주 자신의 아들이 본인이 비판한 그 "신의 아들"이다. 아들 2명이 모두 미국 영주권을 받아 병역을 피했다.# 그리고 이회창의 아들의 병역 면제는 의학적으로 정당한 면제였으나 당시 한겨레 같은 언론들과 몇몇 인사들의 이러한 선동으로 이회창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고 결국 대선에서 노무현에게 밀려 떨어졌다. 참고로 이 당시 이회창 아들의 병역과 관련해 거짓 주장을 했던 김대업설훈은 모두 법적으로 처벌받았다.
2020년 4월에는 종편에 족쇄를 채우는 방법에 대한 글을 올릴 정도로 노골적인 정파성을 가진 인물이다.
이렇다보니 2021년 1월 문재인 정권에서 정연주를 차기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내정했다는 설이 나오자 KBS노동조합[6]에서 정연주의 노골적 정치편향성을 비판하면서 "겉으로는 조중동을 비난하지만, 아마도 정연주는 조중동이 없으면 어떻게 살까 싶을 정도로 그의 조중동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고 말하며 "한쪽 정파의 시각만을 대변해왔고, 반대편 시각의 언론에 대해 적대적 감정을 숨기지 않았던 자가 방통심의위 위원장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내정설이 사실이라면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그외에 야당인 국민의힘에서도 문재인 정권이 방송장악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조선일보도 사설로 중립과 공정성이 중요한 방심위원장에 정연주가 임명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4. KBS 사장 시절



4.1. 노조와의 불화


원래 사장에 오른 계기가 계기다 보니 사장 재임 초기에는 노조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2005년을 전후하며 지역방송국의 구조조정 작업을 추진하면서, 이에 반발하는 지역방송국 직원들과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한 지역 엔지니어 출신의 노조 위원장이 선출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반 정연주 성향의 노조위원장이 선출된 이후 노조와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다. 정연주 사장이 해임되는 과정에서 노조가 방관했던 것도 이와 연계가 깊었다.
정연주 사장이 이명박 정권에 의해 강제 해임되는 과정에서 이에 반발하는 직원들이 방관과 사실상 동조하는 노조 집행부에 반발해 사원행동을 결성하였고, 이후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가 탄생하게 된다. 새노조는 PD와 기자 중심으로 구성되었는데, 최근에는 조합원수가 2,000명을 상회하는 과반노조가 되었고, 기존 KBS노조(구노조)는 조합원 이탈이 계속돼 조합원수가 1,000명도 되지 않는 소수노조가 되었다.

4.2. 경영 악화


2004년 북경 내 사랑4월의 키스를 제외한 2TV 평일 드라마가 두자리 시청률을 유지했으나 예상보다 심한 부진으로 인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했다. 특히 4월의 키스조한선, 이정진, 수애 등 인기 스타들을 전면에 내세웠으나, 전형적인 삼각 멜로인데다가, 극을 끌고 가는 캐릭터가 약했던 점, 느슨한 전개 등으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는 데 그쳤다.
2003년과 2004년에는 스펀지상상플러스가 연이어서 대박을치고 2005년과 2006년에 2TV 평일 드라마도 그럭저럭 시청률이 잘 나오면서 경영면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지만, 2007년도에는 2TV 드라마들이 다시 연이어서 부진하는 바람에 광고가 잘 안 팔려서 다시 적자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수목 드라마들이었던 마왕, 경성스캔들, 사육신, 인순이는 예쁘다 등이 모두 한자릿수 시청률로 폭망했다.[7]
여하튼 정연주 자신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지라 취임초기에 무리하게 2TV의 예능컨셉을 변경하기도 했고[8] 이후로 수신료 인상을 몇차례 시도해봤지만 수신료 인상을 시도했을때가 2006년도인지라 당연히 빠꾸가 나버렸다. 결국에는 2008년 상반기에 2007년도의 적자에 못이겨서 기존의 편성조치를 뒤엎고 다시 상업성을 강화하는 개편안을 내놓았고 이 때문에 대하 드라마2TV로 잠깐 이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개편안이 오히려 시청률 더 하락하는 악영향을 끼쳤고 결국 2008년에 KBS는 전년도(영업이익 310억원 적자) 보다 3배 더 큰 무려 935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현재 창사 이래 역대 최고 적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정연주 이후의 사장들 중에서 정연주보다 광고 수익을 잘 냈다고 볼 수 있는 사장이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이란 거다.[9] 그나마 2006년 이후 KBS의 광고액수가 6000억을 넘었을 때가 2012년 뿐이었고, 그 이후에는 5000억대에 머물었고 고대영 때와서는 3000억대로 추락했고 현재 양승동에 와서는 2000억대까지 추락했으니 말 다한 셈.

4.3. 프로그램 제작에 대한 개입


1980년 8월부터 1985년 2월까지 KBS 사장을 지냈던 이원홍과 함께 역대 KBS 사장들 중 '왕PD' 양대산맥으로 통했다. # 사장이면 사장답게 경영에만 힘써야 하는데, 프로그램 제작에 깊이 관여하며 PD 지휘까지 하려 했다는 것.
일단 정연주가 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한 일은 예능에 공영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일요일, 나아가 주말 대표 예능이였던 일요일은 즐거워를 폐지한 후 일요일은 101%를 편성했다는 것이다. 당시 1998년 IMF 사태 이후로 KBS 일요일 예능은 2006년까지 긴 침체기에 빠지고 대중들로부터 큰 지지를 못받고 욕먹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101%는 일요일은 즐거워의 문제점을 그대로 가져왔으며, 안 그래도 한참 방영할 때 가학성 논란으로 말이 많았는데도 끝까지 개선하지 않고 계속 방치했다. 결국 골목의 제왕에 출연한 장정진 성우를 사고로 사망하게 만들었고 장정진 성우 사망 이후에 여론에게 큰 비난을 받자 곧바로 골목의 제왕을 완전 종영했으며, 3주 후에 일요일은 101%도 완전 종영한 다음, 해피선데이로 개편했다. 이후 국정감사에서도 101% 관련 건이 당연히 언급되었고 KBS 운영을 전면 재검토 해야한다고 지적받았다.
특히 문제가 불거진 것은 2008년의 인기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의 연장 방영과 제작비 증가분 협상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었다. 이때 해당 드라마 외주제작사 대표와 직접 만났는데, 그 직후 드라마 제작비가 당초 2100만원에서 2600만원으로 늘어났다. 당시 K모 제작본부장이 팀장회의에서 정 사장이 상대 외주 제작사 대표를 만났다는 사실을 암시하면서 인상폭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당시 KBS 노조는 이에 대해 2008년 5월 15일자 노보에서 "계약 대상자와 만난 후 일방적으로 지침을 내린 것은 윤리를 뛰어넘어 정 사장이 과연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최소한의 도덕성과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고 밝혔다. 그리고 5월 22일자 '정연주와 K 본부장은 진상을 밝히라'는 내용의 제2탄 성명서에서는 "실무진이 한창 힘겨운 협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공영방송의 사장이 상대 외주 제작사 대표를 만난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비도덕적인 행동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며 정사장이 외주제작사 대표와 왜 만났는지를 물었다.
여담이지만, 무인시대를 끝으로 고려사 계획을 끝낸 게 정연주 자신의 성향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돌아다닌다. 원래는 '북벌영웅', '무인시대2', '삼별초', '망국'까지 고려시대를 무대로 한 정통사극이 계속 이어질 계획이었는데, 정연주 사장 시절 그 계획이 갑자기 중단되었다는 것. 심지어 <역사스페셜> 종영 후 <인물현대사> 편성 때 정치 논란도 따라붙었으며 새 MC를 문성근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그러했다.
결국 고려사 프로젝트를 일방적으로 폐기시키고 탄생한 사극이 《불멸의 이순신》이다. 드라마 자체는 상당한 인기를 누렸지만, 불멸의 이순신이 자칭 원작으로 삼았다는 것이 김훈의 《칼의 노래》이고, 당시 대통령인 노무현이 가장 감명깊게 읽었다는 책이 하필 《칼의 노래》였다는 걸 생각하면 다소 거시기한 감이 있다. 참고로 이 《불멸의 이순신》을 기점으로 KBS에서 방영된 제대로 된 정통사극은 단 한 편도 없다.[10]
다만, 2004년 당시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KBS가 700억원대 적자를 봐서 정연주 자신의 입지에 큰 타격을 입은데다가[11], 무인시대의 시청률이 호평에도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았다는 점[12][13]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역사스폐셜도 2000년대 초반부터 PD들로부터 프로그램 포맷 변경 요구가 많았고, 문성근 MC 선정도 정치성향보다 진행능력을 중점으로 한 것이다.
오히려 시사 프로그램과 보도 프로그램의 자율성은 정연주 사장 치하에서 더 잘 보장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KBS 전직 보도국장이었던 김시곤도 보도국장에서 해임당한 후에 9시 뉴스의 큐시트를 안 본 사람은 정연주와 이병순[14] 단 둘 뿐이라고 얘기했다.[15] 여타 직원들의 증언에서도 KBS 뉴스 9의 큐시트를 처음 한 두 번만 보고나서는 아예 큐시트 자체를 올려놓지말라는 지시를 내려서 아예 보지 않았다는 일화가 나오며,[16] 그 만큼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에 있어서는 간섭을 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17] 또한 탐사보도팀을 신설해서 KBS의 취재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보강하는 작업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2TV의 보도 프로그램이 상당한 수준으로 강화되었던것도 바로 정연주 사장 재임시기였는데 90년대 중반부터 저녁 8시 뉴스에 대대적인 보강에 나섰고[18] 2TV 평일 아침 시간대에도 KBS 아침뉴스타임이라는 나름대로 규모있는 뉴스 프로그램이 신설되었고[19] 또한 심야 시간대에 편성했던 기존의 "생방송 세계는 지금'을 확대해서 편성한 시사프로그램 '생방송 시사투나잇'은 경쟁프로그램이 MBC 뉴스 24SBS 나이트라인 같은 마감뉴스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KBS 뉴스라인에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또 <인물현대사> 같은 현대사 재조명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그 밖에 프로그램 아이템 선정이나 편성에 대해서도 대체로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편이었던지라 정연주 퇴임 후 KBS 내 보도국 기자들이나 일선 PD들 가운데서 정연주를 그리워하는 목소리가 꽤 높다는 후문도 있는데 이러한 이유는 정연주 이후의 사장의 경영수완이 정연주 사장보다도 오히려 좋지 않은 데다가[20] 그러면서도 자기 자신의 안전빵에나 신경쓴다는 점도 한 몫한다. KBS 드라마 PD들과 예능 PD들이 상당수가 JTBCCJ E&M로 이직할 정도면 말 다한 셈. 실제로 2008년 9월에 정연주가 불법적으로 해임되었을 때 KBS 노조에서 철저하게 방관하는 입장으로 시위대를 막을려햇던 행동을 보였던 데 반해서 KBS 기자협회와 PD협회에서는 정연주의 강제해임만은 어떻게든 막을려고 했고 이 때의 갈등으로 인해 기자와 PD를 중심으로 KBS 제2노조(KBS 새노조)가 창설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제1노조에서는 여전히 정연주를 까대기는 한다.

4.4. 성우들의 기용 축소


1990년대 중반부터 전국 학부모들 사이에서 영어조기교육 붐이 불고, 영어에 친숙한 세대들이 나고 자라면서 방송계에서는 점점 성우라는 직업의 필요성이 줄어들기 시작한다. 시청자들이 외화의 더빙본보다 원어 자막본을 선호하게 되면서 자연히 더빙 위주의 업무를 하던 방송계 성우들이 설 자리는 줄어들게 된 것. 이는 이미 정연주 사장의 임기 전인 홍두표 때 1987년부터 매주 일요일 아침에 방영하던 영화 더빙 코너 일요특선을 1996년에 폐지한 것이나 박권상 사장 시절에 해외 애니메이션 편성을 줄이기 시작하는 등에서 성우들의 인원 감축 양상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이 본격화되면서 클럽박스, 프루나, eDonkey 2000, 피디박스 등 다운로드 서비스들이 생겨나자 시청자들은 인기작 동영상을 다운받아 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TV프로그램 본방송의 위상이 예전과 달리 떨어지게 되자 방송국 차원에서도 외화/애니메이션을 편성할 시간에 드라마/예능의 편성을 늘이는 것이 주효해져 성우들이 활약할 프로그램들이 찬밥신세가 되었다.[21] 게다가 애니메이션 분야는 주연령층이 유소년이다보니 사실상 학부모 시청자들의 입김이 강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들이 같은 애니메이션이더라도 국산보다는 해외 만화를 선호하면서 자연히 KBS에서 국산 애니메이션들의 입지가 감소하게 되었다.
이를 반영하듯 1988년에 방영한 달려라 하니부터 시작으로 15년 동안 꾸준히 국내 애니메이션을 편성하던 금요일 시간대는 2003년 수호요정 미셸을 끝으로 완전히 자리를 잃었다. 이 시간대는 디즈니 만화동산이 옮겨와 대체되었고 해당 프로그램이 종영할 때까지 이 시간을 유지했다.
게다가 해외 애니메이션도 방송법 개정에 따라 2005년부터 시행된 애니메이션 쿼터제의 영향으로 많이 줄어 원피스, 마하특급 델타트레인, 고스트 바둑왕, 은하공주 디지캐럿, 말괄량이 삼총사, 용의 전설 드래곤 부스터[22], 아기곰 루비딕[23], 얼음소년 잭 이야기[24], 내사랑 미운오리새끼[25] 등 총 9개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 방영작들 중에서 내사랑 미운오리새끼, 아기곰 루비딕, 얼음소년 잭 이야기는 분량이 엄청 짧은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사실상 조기종영되지 않고 끝까지 방영한건 마하특급 델타트레인 하나 밖에 없었다. 이는 KBS만의 흐름이 아니라 다른 타방송사들도 마찬가지였으며 특히 MBC는 2005년에 방영한 스파이더맨 NAS[26] 이후로 해외 애니메이션 방영을 포기했을 정도다. 마침 케이블 만화전문채널인 투니버스의 인지도 상승으로 지상파 애니 편성 메리트가 매우 감소한 것도 있어[27], 2008년까지 해외 애니메이션을 최소 10개 이상 방영한 SBS가 별난 케이스로 보아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 현재도 계속 조기교육/사교육 열풍으로 애니메이션을 많이 송출해봐야 반길 사람은 그걸 시청하는 어린 아이들밖에 없는데, 동시기 만화 전반을 검열하려든 여성·청소년계 단체들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 아무도 애니메이션의 편성 감축 따위에 반대하지 않는 수준이었으니... 국내/해외 애니메이션의 편성 감축이 그대로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 성우계 입장에선 시대의 변화가 억울하게 느껴질 지 몰라도 별 명분도, 실익도 없는 '애니메이션 편성 비중 유지'를 위해 정연주 사장이 힘쓰지 않았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수신료를 받고 있는 공영방송이라면 어렵게 수입한 해외 애니메이션을 어떻게 해서라도 끝까지 해줘야 하는데 하지 않은 것은 비난받을 만하다.[28]
이어 2005년에는 토요명화을 종영하고 그 자리에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치며 한류열풍의 포문을 연 겨울연가를 갑자기 재방편성했다. 이에 대해 인터넷에서도 볼 수 있는 드라마를 왜 굳이 편성하냐는 시청자들의 비난과 졸지에 일자리가 줄어든 자사 성우들의 시위에 직면하자, 겨울연가의 재방 종영 후 토요명화를 재개하였고 동시에 이후 유럽이나 제3세계 나라의 영화 등 상영된 적이 없는 영화를 수입하여 극장과 TV에서 동시 상영하는 KBS 프리미어 영화 페스티벌을 개최하여 더빙 편성이 잠시나마 늘어나게 된다.
반면 KBS 1TV에서 당시 밤 11시 30분 전후에 방영하던 명화극장이 이 시점(2005년)부터 방영시간이 점점 암흑 시간대로 밀리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2005년 6월에 영국 BBC 드라마 닥터후 방영 시작부터 고정 편성되었던 일요 외화시리즈와 방영시간이 겹치기도 하였다. 결국 정연주 사장의 임기 후반인 2008년에는 이 명화극장의 편성시간대가 일요일밤 00시 50분[29]까지 밀리게 되었다. 후임 사장 이병순이 취임 3개월 후에 이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금요일밤 시간대로 옮긴 것과는 대조적. 하지만 이병순는 임기 최후반부에 KBS 프리미어를 폐지하였고 닥터후 방영 시작으로 2회 연속으로 방영했던 일요 외화시리즈를 1회 편성으로 축소 시켰다.
2006년에는 14년 동안 방영한 디즈니 만화동산를 폐지하였고, 2007년에는 토요명화를 완전 폐지하여 KBS 프리미어로 대체하였다. 이후 영국 BBC 드라마 로빈후드 시즌 1 끝으로 토요 외화시리즈까지 폐지 절차를 진행하여, 지속적으로 성우들이 기용될 법한 프로그램들을 줄이는 행보를 보였다. 정연주 사장이 개인적으로 성우들을 싫어한 것인지, 별 쓸모가 없는 직업군이라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순수하게 시청률이나 이슈 면에서 부진한 프로그램을 정리하다 보니 성우들이 활약할 프로그램 위주로 줄은 것인지는 정연주 사장 본인만 알 수 있는 부분이겠으나, 성우들의 설 자리가 시대의 흐름 등으로 계속 줄어갔고 KBS 성우들의 노력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30] 결국 최후반부인 2008년 봄개편(4월 이후) 이후에 방영된 특선영화는 원초적 본능 2밖에 없었다.

4.4.1. 반론: 그나마 역대 사장중 더빙 편성을 제일 많이했다.


그 이전 어떤 지상파 방송사 사장들이나 심지어 정연주 이전 어떤 전임 KBS 사장들도 최신 외화를 방영하지 않았으며 최신 외화를 방영한다는 것도 꿈꾸기도 어려웠으나 정연주 사장은 이 불가능한 것을 해냈다.[31]
임기 첫해(2003년)부터 취임 5개월만에 동년 추석에 개봉한지 2년도 채 안 된 뉴라인 시네마의 판타지 블록버스터 영화 반지의 제왕 1: 반지의 원정대가 방영되었으며 이후 11월에는 당시 최신작 홍콩 영화 무간도가 방영되었다. 국내 개봉 기준 9개월,홍콩 본국 개봉 기준 11개월. 즉 1년도 안 된 최신작을 방영한 것이다. 인기가 좋았는지 2년(2004~2005년)을 거쳐 무간도 2~3편까지 연이어 방영되었고 급기야 무간도 제작진이 제작한 일본 레이싱 만화 원작 영화 이니셜 D까지 방영했다.
이외에 다음 해(2004년) 명절과 연말에 소니 픽처스 엔터테인먼트 영화 스파이더맨 1편레지던트 이블 1편 등이 방영되었으며 2005년에 토요명화 방영이 중단되고 방영 재개되기 전에 특선영화 11개(대표적으로 블랙 호크 다운맨 인 블랙 2)[32]가 방영되었으며 2006년 추석 연휴와 다음 해(2007년) 설날 연휴에 거쳐 스타워즈 시리즈(에피소드 3 제외)가 방영되었으며 특히 에피소드 2: 클론의 습격은 지상파 방송국 중에서 제일 먼저 더빙 방영했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외 영화는 거의 대부분 미국, 중국, 홍콩 영화 위주였는데[33] 정연주 임기 이후부터는 국적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방영했으며 특히 유럽 영화 편성이 많이 늘어나 외화 편성을 완전 뒤바꾸었다.
외화시리즈도 2003년에 당시 토요 외화시리즈 투명인간 후속으로 탐정 몽크가 방영되었는데 당시 미국 본국 방영 1년도 안 된 11개월만에 방영 한것이다. 이는 CSI 라스베가스 시즌 1의 14개월 보다도 빠르며 X파일을 포함한 이전 외화시리즈들는 거의 몇 년이 지나서 하거나 아무리 빨라도 1년 조금 넘어서 방영되는 게 대부분였는데 탐정 몽크는 거의 지상파에서 최초로 1년 이내에 방영 한 것이다. 반응도 좋았는지 시즌 2도 연속 방영되었으나 어떻게 된 일인지 9화까지만 하고 조기종영되었다가 다음 해(2004년)에 미방영 7편 에피소드가 모두 무사히 방영하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체 시즌 8 중에서 시즌 3까지만 하고 조기종영하였다. 이후 방영되는 외화시리즈들는 거의 본국에서 방영한지 1년 이내가 되는 시리즈들로 방영하기 시작한다.
대표적으로 다음 해(2004년) 크리스마스에 배우 김윤진이 처음으로 미국 드라마에 출연한 미국 ABC 드라마 로스트가 방영했는데 당시 로스트는 미국 본국 기준 전체 25화 중 본국에서 절반도 방영하지 않는 11화까지 방영한 상태에 수입 방영했으며 다음 해(2005년) 여름에는 공사창립특선으로 일요일 심야에 방영한 영국 BBC 드라마 닥터후는 첫 방영 할때 영국 본국에서 전체 13화 중 11화까지 방영했으며 로스트처럼 본국에서 한참 방영할 때 수입 방영 한것이다. 이후 예상보다 큰 인기를 얻자 후속 시즌이 계속 방영되는 동시에 닥터후 방영 직후부터 지금 현재도 영국 드라마(특히 영국 BBC 드라마들)가 매년 마다 지속적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일요일 심야 시리즈를 고정 편성을 결정하여 위기의 주부들, 그레이 아나토미 등 인기작이 한동안 방영되었다. 그리고 이전까지만 해도 주로 미국 드라마가 많이 편성했던 외화시리즈가 점차 영국 드라마 위주로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TV 방영판 해외 애니메이션는 많이 줄어진 반면 해외 극장용 애니메이션는 임기 동안 총 17개[34]로 많이 방영되었다. TV 방영까지는 안했으나 극장으로 상영되었던 원피스 극장판 7기: 기계태엽성의 메카 거병까지 포함하면 극장용 해외 애니메이션 총 18개를 수입했다. 전임 사장 박권상 취임 후 방영된 해외 극장용 애니메이션는 1998년 6월 5일 환경의 날에 특선으로 방영된 마더 최후의 소녀 이브와 1999년 2월 14일 설특선으로 방영된 공룡 타임머신을 타다[35], 2001년 10월 3일 개천절(당시 추석 연휴와 겹침)에 방영한 20세기 폭스 애니메이션 아나스타샤(재더빙)를 제외하면 사실상 없었는데 정연주가 취임한 후 동년 5월에 방영한 치킨 런(재더빙) 방영 시작으로 KBS에서 다시 극장용 해외 애니메이션이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만 대부분 재더빙 위주작들이 많았으며 재더빙을 제외한 순수 방영작으로 보면 총 8개가 방영되었고 원피스 극장판 7기: 기계태엽성의 메카 거병까지 포함하면 극장용 해외 애니메이션 총 9개를 수입했다. 특히 원피스 극장판는 KBS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일본 TV 애니메이션의 극장판을 더빙하여 극장에 상영하기도 했다.[36] 이후 해외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후임 이병순때 방영한 아쥐르와 아스마르(재더빙)[37] 끝으로 방영되지 않고 있다.
결국 정연주는 역대 KBS 사장에서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의 역대 사장 중에서 최신작 및 인기작을 많이 방영하였으며 2005년 토요명화를 중단할 때 다른 사장들 같았으면 그냥 무시하거나 자사 성우들을 버린 자식으로 취급하여 완전 방치할 수도 있었을 부분에서 최소한 타협점을 도출하는 등 짧게는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안소니 짐머가 방영했던 2007년 9월까지 길게는 2008년 4월(봄개편 이전) 이전까지는 인기작 및 최신작이 최대한 많이 방영해주는 노력을 하긴 했다.[38] 이후 후임 부역사장현재 사장이 성우들 뿐만 아니라 현재 KBS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연이은 삽질들을 계속 내고 있어서 도리어 재평가 받고 있다.

5. 정연주 사장 강제 해임 사건




6. 저술활동


  • 저서
    • 민중과 자유언론(송건호 등 9명과 공저) - 아침. 1984.
    • 서울-워싱턴-평양 - 비봉출판사. 2002.
    • 정연주 칼럼집: 기자인 것이 부끄럽다 - 비봉출판사. 2002.
    • 정연주의 증언 - 오마이북. 2011.

7. 수상경력


  • 통일언론상 대상 (1995)
  • 신문칼럼상 (1999)


[1] 엄밀히 말하자면 KBS 노조와 시민단체들이 정연주를 단독으로 추천한건 아니고 이형모, 성유보와 동시 추천된 형태였다.[2]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정권교체되면 한나라당에서 방송을 손봐줘야 한다느니 했다는 썰이 흘러나왔고,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MBC 민영화론이나 KBS 2TV 재분리론이 펼쳐지기도 했다. 실제로 KBS 2TV의 재분리나 MBC의 재민영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KBS와 MBC, YTN 이사진 교체와 사장해임, 종편 설립으로 어느정도 현실화 되었다.[3] 다만 홍두표는 사장직을 사퇴했다기보다는 한국관광공사로 자리를 옮겼다고 보는것이 더 맞는편이다. 물론 1년만에 비리혐의가 밝혀지는 바람에 콩밥먹는 신세가 되었기는 해서 경력상으로 흑역사로 남게 되었지만.[4] 세금을 탈세해서가 아니라 세금을 잘내서 KBS에 손해를 끼쳤다는 명목으로 검찰에서 고발한것이다. 당연하게도 세금을 성실납부했다고 고발까지하는 건 아무리봐도 이상한 일수밖에 없기에 법원에서 무죄판결 받았다. 부연 설명하자면 KBS는 그간 환급받을 수 있는 세금을 착오로 더 내고있다가 2005년경 인지하여 국세청을 상대로 세금 환급소송을 진행한다. 이에 법원에서 조정 권고했고 국세청과 KBS는 법원을 뜻을 받아들여 합의한다. 그런데 검찰에 이를두고 소송을 끝까지 했다면 더 돌려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지않았다며 정연주 사장을 배임으로 엮은 것이다. 그리고 KBS 이사회가 사장 해임을 결의할 수 있도록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된 이사를 해임시키기도 한다. 이때도 해괴한 일이 벌어진다. 사장 해임에 반대입장이던 신태섭 이사(겸 동의대 교수)를 갑작스레 동의대가 신 교수의 겸직활동이 학부·대학원 수업에 지장을 초래한다며 교수직에서 해직시키고 다시 교수직 상실을 이유로 방통위는 신 교수의 KBS 이사직을 해임시킨다. 이게 말도 안되는게 KBS 이사는 비상근직이며 신 교수는 이사회에 출석할 때마다 휴가서 제출해면서 지장을 최소화했다. 더군다나 이미 2년째 KBS 이사를 해오던 것을 동의대가 이제와서 문제를 삼은 것이다. 이후에 신 교수는 1,2,3심 모두 승소하여 동의대 교수로 복직한다.[5] 정작 노무현을 만난적은 몇번 없다고 한다. 노무현이 대통령 되기전에 정연주 칼럼을 꽤 봤다지만 그와 별개로 사적인 친분은 없다시피 했다. 다만 사장 해임후에 동질감이 들다보니 노무현 재단 이사를 맡게 된것이라고 한다. #[6] 소위 구노조, 3개 노조 중 조합원수 2번째[7] 망했다고는 하지만, 마왕이나 경성스캔들은 매니아 층도 많았고 후에 DVD가 매진될 정도로 숨은 명작 취급 받았다. 게다가 길환영 - 조대현 - 고대영 - 양승동 사장 임기 때로 와서는 이보다 더 심하게 주말 드라마를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이 대부분 시청률이 부진에 빠지게 된다. 특히 월화 드라마동네변호사 조들호, 구르미 그린 달빛, 쌈, 마이웨이, 마녀의 법정, 우리가 만난 기적 등 일부을 제외한 나머지들은 평균 10%에도 한참 못 미치는 한자리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예능 프로그램1박 2일슈퍼맨이 돌아왔다 2개를 제외한 전부 다 한자리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8] 이때는 광고 6: 수신료 4 구도에서 점차 수신료 6: 광고 4로 재원구조를 바꿀 예정이었다고 한다. 물론 이후로 계획을 말아먹었기는 했지만...[9] 그나마 경영 잘 했다고 볼 수가 있는 사장이라면 김인규 정도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잘 했다해도 정연주 때 만큼은 못했고 임기 초반에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 흑자였지만 후반에는 모두 적자로 전환 되었다.[10] 흔히 정통사극으로 인식되는 《정도전》 마저도 등장인물들의 대사 곳곳에 작가의 개인적 생각을 지나치게 주입시키며 마치 시청자들을 가르치듯 하여 정통사극으로서의 가치를 손상시켰다는 평을 받는다.[11] 한창 시청료 거부운동으로 시청료 징수율이 40-50%대에 불과했던 시절에도 수백억대 적자를 본일이 없었다.[12] 다만, 이건 공익성을 강화하겠다고 원래 대하사극 뒷 부분에 편성되었던 시사 프로그램을 9시 뉴스 뒷시간대에 편성하고, 대하사극 시간대를 10시대로 잠깐 옮긴 것도 영향이 꽤 크다.[13] 물론 2010년대 기준으로 본다면 넘사벽급으로 잘 나온 거지만 용의 눈물 방영시기부터 대왕 세종 방영 초기까지는 기본 20%는 넘게 나오던게 보통이었다.[14] 다만, 이병순 때 통제가 강화되었다는 얘기가 있고 실제 편집면에서 정연주 시절에 비해 딱딱해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건 중간간부들이 알아서 충성(...)을 해댄 결과라고 보여진다.[15] 현재 사장인 양승동 사장도 본인 말로는 9시 뉴스의 큐시트을 보고 있지 않다고 하고 있다.[16]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9시 뉴스 큐시트를 미리 챙겨보는 것은 관행이었다. 자유언론의 수호자이자 대표적인 진보언론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박권상도 KBS 사장으로 재직했을 때는 9시 뉴스 큐시트를 챙겨볼 지경이고 그 이전으로 가면 말 그대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한 수준이다.[17] 실제 한미 FTA 관련해서 KBS 프로그램에서 한미 FTA에 대해 대놓고 까댄 덕에 참여정부 인사들이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고...[18] 사실 이미 90년대 초반부터 수시로 평일 오후뉴스에 대해서 수시로 보강작업에 들어갔던 것이 일이기는 했다. 9시 뉴스와의 차별점을 내세우기도 어려워서 시청률이 잘 나오지도 않았고 시간대와 타이틀이 수시로 바뀌어서 문제였지만.[19] 그 이전에도 뉴스가 편성되지 않았던건 아니지만 10 ~ 20분 정도 편성되거나 아침교양 프로그램의 코너 정도로 편성된 편.[20] 물론 이건 미디어 환경의 변화도 감안해야 하긴 할 것이다.[21] 하지만 예능/드라마도 경쟁사 포맷을 베낀 저질프로까지 양산해내 방송사 재정상태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22] 2004년에 제작된 캐나다 방송사 CBC의 SF 애니메이션.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총 3개 시즌에 총 39부작을 방영했으나 KBS에서는 시즌 2까지만 방영하고 마지막 시즌을 방영하지 않았다.[23] 원제는 Ludovic. 캐나다 국립영화 위원회(NFB)에서 제작한 4부작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2001년과 2002년에 걸쳐 각각 10분 분량의 에피소드 2편씩 제작되었으며 2005년 1월 2일에 신년특선으로 4부작 모두 연속 방영.해당 사이트에 가면 영어판을 볼수 있다.[24] 원제는 The Tale of Jack Frost. 2004년에 영국 BBC에서 제작된 30분 분량 3D 애니메이션이며 2006년 1월 20일 디즈니 만화동산의 마지막 회가 방영하던 날에 뒤에 이어 방영되었다.[25] 원제는 The Ugly Duckling & Me. 2005년에 프랑스에서 제작된 26부작 3D 애니메이션.[26] 2003년에 3D로 제작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 총 13부작으로 방영.[27] 그런데 투니버스도 전성기를 오래 유지 못하고 2010년 이후로 암흑기에 빠진다.[28] 특히 말괄량이 삼총사는 당시 프랑스 본국에서 시즌 3가 방영 하던 중이었고 한 시즌 당 26부작이었는데 정작 KBS에서는 시즌 1 13화 끝으로 중단하면서 시즌 1 조차도 끝까지 방영하지 않고 조기종영했다.[29] 방송계에서는 일요일 자정이 넘어 월요일에 해당하더라도 일요일로 표기한다.[30] 노력은 아예 안한것은 아니다. 이정구 성우가 더빙의 신에서 말하길 영화채널 캐치온이 생길때 영화를 자막으로 편성한다고 하자 일부 방영작이라도 더빙 편성을 할려는 노력을 했고 KBS 프리미어 영화 페스티벌때는 성우들이 행사에 참여했으며 2007년 9월(실질적으로 토요명화의 마지막 방영작인 소피 마르소 주연의 프랑스 영화 안소니 짐머가 방영할 때 까지.)까지는 인기작 및 최신작이 최대한 많이 방영되었다. 그리고 현재 더빙 의무화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31] 그나마 정연주 사장 이전에 방영된 외화 중에서 그나마 빨리 방영한것이 MBC에서 방영했던 CSI 라스베가스CSI 마이애미하고 SBS에서 방영했던 배트맨 1매트릭스 1 정도 밖에 없었다.[32] 정확히는 지옥의 묵시록까지 포함하면 총 12편이 방영되었다. 이때는 150분 분량의 일반판이 아닌 2001년에 나온 200분 분량의 감독판(리덕스)이 방영되었다. 다만 이미 한참 전인 1990년에 일반판이 방영된 적이 있었으며 감독판도 이미 설 특선으로 방영되기 반년 전인 2004년 7월 10일에 이미 방영되었기 때문에 논외. 일반판이 아닌 감독판이었던 만큼 당연히 재더빙되어 방영되었다.[33] 물론 그 이전 사장들 임기 때도 007 시리즈, 그랑블루, 라스트 콘서트, 레옹, 시네마 천국 같은 미국/중국/홍콩 외의 해외 영화도 방영하기는 했으나 이외에는 아주 드물었다.[34] 2003년 5월에 방영한 치킨 런부터 2008년 5월에 방영된 헷지까지. 해외 애니메이션 방영작은 해당 항목 참고.[35] 원제는 We're Back! A Dinosaur's Story. 1993년에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36] 하지만 나몰라 패밀리(김경욱,김재우, 김태완)가 악역 3인방을 더빙하면서 반 연예인 더빙작이 되었다.[37] 원제는 Azur Et Asmar. 2006년 제작된 프랑스,스폐인,벨기에,이탈리아 4개국 합작 애니메이션. 이 작품 끝으로 KBS를 포함한 지상파에서 해외 극장용 애니메이션이 방영되지 않고 있다.[38] 정연주 이후의 사장들 중에서 더빙작이 많이 편성했을 때는 김인규 때 밖에 없다. 물론 정연주 임기 때와 그 이전 사장들 임기 때을 비교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