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켈리
1. 소개
Cecil Kelley
미국의 원자력 기술자. 1920년 10월 16일에 태어나 1959년 1월 1일에 사망하였다. 로스 앨러모스에서 원자력 관련 직종에 종사했던 유능한 기술자였다.
하지만 이 사람의 문서가 작성된 이유는 밑에 거론될 원자력 사고(임계사고)로 인해 '''공식적으로 역사상 전세계에서 가장 큰 피폭을 당한 사망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2. 로스 앨러모스 임계사고
1958년 12월 30일 로스 앨러모스 연구소의 플루토늄-239 재회수용 혼합탱크에서 벌어진 초임계 사고로 피폭당했다. 인류 역사상 '''공식적으로''' 가장 높은 수치의 방사선 흡수량인 '''120시버트'''를 상반신에 뒤집어썼고, 그 순간부터 살아있는 원자로나 다름없는 상황에 처했다. 8시버트만으로도 인간은 100% 사망하는데[1] , 그 15배의 수치인 120시버트라면 단 하루도 못 버티는 상황인 것이다. 관련 pdf 문서 영문 위키피디아 세실 켈리 관련 내용
일반인의 1년 허용 기준량이 1밀리시버트임을 생각해보면 켈리는 '''보통 사람이 12만 년 동안 받아야 하는 방사능을 몇 초 만에 받아버린 것'''이 된다.
피폭 직후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으나 바로 착란 상태에 빠져서 "내 몸이 불타고 있어! 내 몸이 불타고 있어!"[2] 를 계속 외쳤다고 한다. 이후 눈이 쌓인 곳 위에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착란 상태가 이어지며 몸이 뜨겁다고 느끼고 계속 눈속을 뒹굴었다고 한다.[3] 당시엔 약간의 화상과 건물 밖으로 뛰어 나왔을 때 입은 상처 외엔 '''외견상 멀쩡해보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피폭만으로 화상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증상이 즉각적으로 나타날 정도로[4] 크게 피폭당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이미 이 시점에서 사망은 확정이었다.
그 후 1시간 40분 동안이나 구토와 착란 증세를 보이다가 페티딘 투여 후 의식을 찾고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등 회복된 모습을 보였으나 정밀검사에서 심박수 '''분당 160회''', 혈압은 '''80/40'''이라는 비정상적인 수치를 보였다.[5] 이것만으로도 그의 몸이 상식을 벗어난 상태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켈리의 몸에서는 엄청난 양의 감마선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으며 대소변에서마저 엄청난 양의 방사선이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결국 켈리는 피폭 35시간 뒤 심부전으로 사망하였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의 피폭 사망자들이나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 피폭 사망자들, 기타 다른 방사선 피폭 사망자들에 비해 비교적 육체가 온전한 상태로 사망했는데, 이는 피해 정도가 약해서가 아니라 피부나 장기 등에 반응이 일어날 틈도 없이 체내의 면역 기능과 신체 기능이 완전히 파괴되어 빠른 시간 내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지만 후일 8~20시버트의 피폭 사망 사례를 보면, 오히려 120시버트라는 엄청난 선량에 피폭된 덕분에 고통이 최소화됐으니 운이 좋았다고 볼 수도 있다. 피폭 약 6시간 만에 림프구가 모두 사라졌으며, 골수는 적혈구를 생성하지 못해 채혈을 하면 혈장 수준의 투명한 혈액이 나왔다고 한다. 더불어 혈액 검사 결과 혈소판이 모두 전멸했다고 한다.
참고로 켈리가 사고를 당하기 13년 전에는 로스 앨러모스에서 핵 물리학자로 일하던 루이스 슬로틴이 21시버트라는 피폭을 당해 고통스런 최후를 맞이했다.
이 당시는 원자력의 위험성이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으므로 치료에 동원된 의료진 역시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피해자 중 하나인 바실리 이그나텐코(15시버트 이상)는 아내인 류드밀라가 직접 수발했는데, 바실리의 피고름을 빨고 뱉는 과정에서 대량의 피폭을 당해 뱃속의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죽었으며 본인도 지금까지 후유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의 피해자 '오우치 히사시'의 경우(20시버트 피폭) 가족들은 접근조차 허가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들이 이 정도인데 무려 120시버트를 받아버린 환자를 치료한 의료진과 의료장비는 엄청난 수치의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중 상당수는 피폭 후유증으로 사망하고도 방사능에 의한 것임은 모르는 상태로 의문의 사망이나 단순 병사로 기록됐을 것이다.
3. 음모론
세실 켈리의 사후, 뇌와 각종 조직들, 장기 모두가 적출되어 어딘가에 보존되어 있음에도 당국은 유족 측에 이 사실을 전혀 알리지 않았다. 애초에 고선량 피폭의 영향을 실험하고자 군과 당국에서 일부러 사고를 유도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사고가 나기 전까지 켈리는 10년 동안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기술자였기 때문이다.
도카이 촌 방사능 누출사고에서 보듯 핵물질 처리는 배합을 조금만 실수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는데, 능숙한 작업자가 늘 하던 대로 하던 중 일어난 사고였기 때문에 미심쩍은 면이 많다.
한편 시신은 다른 피폭자들과 마찬가지로 납과 콘크리트로 만든 관에 밀봉되어 매장되었다.
4. 소송
유족들은 세실 켈리의 사후 부검을 실시한 검시의에 대해 소송을 걸었다. 검시의는 재판에서 시신에서 8파운드 가량의 장기와 조직을 떼어낼 권한을 누가 줬냐는 질문에 "'''신이 내게 그 권리를 줬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법원에 의해 2002년에 950만 달러, 2007년에 다시 80만 달러, 총 1,030만 달러에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피고 중 누구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유족 입장에서는 속 터질 노릇.
5. 관련 링크
[1] 지금까지 8시버트 이상에 피폭되어 살아남은 사람은 전혀 없다. 7시버트에서 한 명 생존했을 뿐이다. 그 사람이 고이아니아 방사능 유출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이긴 하지만...[2] 원문은 "I'm burning up! I'm burning up!"[3] 다만 말이 착란 상태지 피폭 직후부터 체내의 백혈구, 림프구, 적혈구, 혈소판 등 체내의 세포들이 실시간으로 싹 다 죽어나가고 있었으니 실제로 상당한 고통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4] 도카이 촌 방사능 사고 피폭자들도 사고 1주일까지는 멀쩡했다. 그들의 사인도 피폭 자체로 몸이 손상된 것이 아니라, 피폭된 뒤 DNA 설계도를 잃어버린 몸이 새로운 세포를 만들지 못해 서서히 몸이 붕괴되어 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경우는 피폭만으로 몸이 직접 손상될 정도였다. 비유하자면 아주 작은 총알을 발사하는 기관총에 온 몸을 난사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고 보면 된다.[5] 정상 상태의 분당 심박수가 60-100회로, 분당 160회는 마라톤을 해야 나오는 정도의 수치이다. 혈압의 경우 정상은 120/80(수축기/이완기), 저혈압은 100/60 미만이므로 80/40은 엄청난 저혈압이다. 한마디로 '''심장은 미친듯이 뛰는데, 정작 혈압은 낮은 상태'''라는 모순된 수치가 나타났다. 이 미증유의 현상은 혈관이 파괴되어 혈액이 조직으로 마구 누출되면서 혈액 내 수분량이 급격히 감소한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