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오월)

 


'''묘호'''
'''세종(世宗)'''
'''시호'''
문목왕(文穆王)
'''연호'''
없음[1]
''''''
전(錢)
''''''
원관(元瓘)
''''''
명보(明寶)
'''생몰 연대'''
887년 ~ 941년
'''재위 기간'''
932년[2] ~ 941년
1. 개요
2. 생애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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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대십국시대 오월의 제2대 군주이다.

2. 생애


전원관은 오월의 초대 군주인 태조 전류의 다섯째 아들[3]로 887년에 태어났다. 본명은 전전관(錢傳瓘)이었다가, 즉위하면서 전원관으로 개명하였다.
전원관은 932년에 전류가 죽은 이후 즉위하긴 했지만, 오대 조정으로부터 한동안 책봉을 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오월의 국왕으로 책봉되었다. 940년 민나라에 큰 혼란이 일어나자, 전원관은 민나라를 공격했지만 실패한다. 이후 941년 항주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는데, 전원관은 이때 일어난 화재로 인해 사망하였다. 전원관은 오대 왕조들에 의해 문목왕으로 추시되었으며, 이후에 즉위한 오월의 군주들은 모두 전원관의 아들들이었다.

3. 기타


전원관은 성품이 총명했지만 사치스러운 면도 있어서 궁궐을 호화롭게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화약을 사용한 사람이다. 낭산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화약에 불을 붙여서 적에게 뿌리는 식의 전술을 썼는데[4], 뒷날 오월을 합병한 송나라에서 이 기록을 참고해서 로켓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송나라의 로켓은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폭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불을 붙여서 쏘는 무기를 난생 처음 봤던 당대인들에게는, 흡사 현대인이 핵무기를 보는 것처럼 충공깽을 선사했다. 낭산강에서의 전투 이전까지 화약이란 그냥 취급하기 까다로운 약재로만 여겨졌을 뿐, 무기로 쓰인다는 발상은 없었다. 선술한대로, 화약을 무기로 쓰는 법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전원관인데, 당대에 화약이 불 붙으면 폭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으므로, 임시 방편으로 약재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화약을 꺼내서 뿌린 것이다.

[1] 오대의 연호를 습용하였다.[2] 즉위는 932년이지만, 책봉을 받은 것은 나중의 시기이다.[3] 십국춘추에서는 일곱째 아들로 나온다.[4] 쉽게 말하면, 동시대 동로마 제국에서 개발해서 사용한 그리스의 불 사용법과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