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1. 춘추시대 오나라월나라를 합쳐 부르는 용어 오월(吳越)
1.1. 오대십국시대에 있었던 나라 오월(吳越)
1.1.1. 개요
1.1.2. 기타
1.1.3. 역대 국왕
2. 다섯 번째 달 5월(五月)
2.1. 시
2.1.1. 이은봉[1]의 시
2.1.2. 이승철[2]의 시
2.1.4. 이병일의 시[3]
3. 대한민국의 밴드


1. 춘추시대 오나라월나라를 합쳐 부르는 용어 오월(吳越)



춘추시대 이래로 오와 월 지역은 서로 인접해 있었기에 오월이라고 싸잡아 불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로 오월동주(吳越同舟)가 있다.
후대에 '오월' 자체가 한 나라의 이름으로 쓰인 적도 있다. 자세한 건 아래 항목으로.

1.1. 오대십국시대에 있었던 나라 오월(吳越)




[image]
吳越
(907년 ~ 978년)

1.1.1. 개요


전류(錢鏐)가 저장성 일대에 세웠던 왕국으로 중국 오대십국시대 때 10국의 하나이다. 수도는 항주(杭州, 항저우)였고, 제2수도는 월주(越州)[4]였다.
오월의 군주는 황제를 칭하지 않고, 을 칭했지만 처음 3대는 천자처럼 묘호를 올렸다. 단 시호는 5대(五代)의 황제에게서 받은 시호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초대 왕인 전류는 심지어 독자적인 연호능호까지 썼다. 즉 중국 역사에서 독특하게 외왕내제를 했던 사례라고 볼수 있다.
오월은 전류가 5대 왕조 중 첫 번째인 후량에 칭신하여 '오월왕'으로 책봉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이름은 문자 그대로 오나라와 월나라를 한데 합친 것이다. 하지만 옆에 그냥 오나라가 건국되어 오월동주에 실패하였다.[5]
해상 무역을 전개하여 고려, 후백제, 일본 등과도 교역을 하였으며, 견훤에게는 작위를 내려주기도 하였다. 오월의 역대 왕들은 대개 5대 정권에 조공을 바쳐 형식상 그들의 제후라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978년, 송나라와 직접 국경을 맞대게 되자 마지막 왕 전홍숙이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닫고 스스로 나라를 들어 바치면서 멸망하였다. 전홍숙은 송 태종에 의해 '회해국왕'(淮海國王)에 봉해지고 수도 개봉으로 보내져 안락한 말년을 보냈다고 한다.
전홍숙의 정확한 판단으로 인해 오월국은 후세에도 평가가 상당히 좋은 편이고 역사책에도 그다지 나쁜 것들이 기록되지 않았다.

1.1.2. 기타


여담이지만 중국 역사상, 아니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쟁에서 화약을 사용한 나라다. 낭산강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화약에 불을 붙여서 적에게 뿌리는 식의 전술을 썼는데[6], 뒷날 오월을 합병한 송나라에서 이 기록을 참고해서 로켓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송나라의 로켓은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폭죽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지만, 불을 붙여서 쏘는 무기를 난생 처음 봤던 당대인들에게는, 흡사 현대인이 핵무기를 보는 것처럼 충공깽을 선사했다. 낭산강에서의 전투 이전까지 화약이란 그냥 취급하기 까다로운 약재로만 여겨졌을 뿐, 무기로 쓰인다는 발상은 없었다. 화약을 무기로 쓰는 법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이 바로 2대 왕이었던 세종 장목왕인데[7], 당대에 화약이 불 붙으면 폭발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으므로, 임시 방편으로 약재용으로 보관하고 있던 화약을 꺼내서 뿌린 것이다.
이 왕조의 창시자 전류의 후손인 첸쉐썬(전학삼)은 조상의 명성을 뒤이어 중국 로켓-미사일의 아버지가 되었다.

1.1.3. 역대 국왕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
-
홍승왕(洪勝王)
홍성왕(弘聖王)[8]
전패(錢沛)
-
-
-
-
-
건초왕(建初王)[9]
전주(錢宙)
-
-
-
-
-
영현왕(英顯王)[10]
전관(錢寬)
-
-
-
1대
태조(太祖)[11]
무숙왕(武肅王)[12]
전류(錢鏐)
천보(天寶) 908년 ~ 912년
보대(寶大) 924년 ~ 925년
보정(寶正) 926년 ~ 931년
907년 ~ 932년
평릉(平陵)
2대
세종(世宗)[13]
장목왕(莊穆王)
문목왕(文穆王)[14]
전원관(錢元瓘)
-
932년 ~ 941년
-
3대
성종(成宗)[15]
충헌왕(忠獻王)[16]
전홍좌(錢弘佐)
-
941년 ~ 947년
-
4대
-
충손왕(忠遜王)[17]
전홍종(錢弘倧)
-
947년 ~ 948년
-
5대
-
충의왕(忠懿王)[18]
전홍숙(錢弘俶)
-
948년 ~ 978년
-

2. 다섯 번째 달 5월(五月)



본 위키에서 오월(五月)이 포함돼 있는 문서는 다음과 같다.

2.1. 시


5.18 민주화운동을 은유한 시들이다. 아래의 작품들은 모두 5.18 관련 문학작품 선집인 <5월문학총서>에 실려 있는 시이기도 하다.

2.1.1. 이은봉[19]의 시


2005년 무크 <시경>에 수록.
<오월>
오월이라고 오동 꽃 벙글어진다
아카시아 꽃 하얗게 이빨 드러내고 웃는다
새끼 제비들 벌써 빨랫줄 위에까지 날아와 앉는데
모란꽃 어느새 뚝뚝 떵러진다
한바탕 흙먼지를 날리며 회오리바람 분 뒤
타다다다, 여우비 쏟아진다
지난 1980년대 이후, 꽃 피고 지는 오월
누구도 함부로 노래하지 못했다
최루탄 가스로 가득 찬 역사에 들떠
꽃이나 나무 따위 들여다보지 못했다
오월이라고 눈 들어 숲 바라보니
반갑다고 오동 꽃 눈 찡긋, 윙크한다
어이없다고 아카시아 꽃 킁킁킁, 헛기침한다
이제는 꽃이며 나무와도 좀 친해져야겠다
저것들, 이승 밖에서부터 나를 낳고 키워준 것들
너무 오랫동안 버려두어 엄청 서럽겠다.

2.1.2. 이승철[20]의 시


시집 <당산철교 위에서>(2006년)에 발표.
내 청춘의 가마솥을 달구어내던
오월 생목숨이 다시 왔구나.
다만 성령으로 반짝이던 들녘과
끝없이 어깨동무한 핏빛 스크럼이
차마 눈부셔, 어화둥둥 견딜 수 없고
금남로의 사람들은 무등을 향해 떠났다.
그날 쓰러져 영산강이 된 꽃넋들은
아무 말씀도 없이 천지를 꽉 채우고
살아, 욕된 눈빛만 남은 자들이 모여
팔뚝 없는 주먹으로 저 먼 길을 가리킬 때
누가 지금 오뉴월 보리밭처럼 흔들리는가.
어서 오라, 오월의 젊은 벗들아
우리가 무릎 꿇고 맞이해야 할
오월 생목숨의 날이 바로 오늘이구나.

2.1.3. 김용택의 시


시집 <섬진강>(1985년)에 수록.
사월에 졌던 꽃
오월에 피로 풀어 싸웠다
피로 적신 몸들도
오월에는 이렇게 푸르러지고
강물은 씩씩하게 달리는구나
살 썩은 땅에
풀들은 더욱 우북하게 자라서
꽃들을 피워내며
하늘로 서슴없구나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서
살아생전
저 풀꽃들을 위로하며
꽃 옆에 다정히 앉아볼까
이 강토 어디를 쓰다듬은들
손금마다 피 고여 흐르지 않고
눈동자마다 핏발 서지 않겠느냐
어느 세월 어느 삶에 손 넣은들
쓰라려 목메이지 않겠느냐
죽으면 썩을 삭신
살아 서서
딛은 땅이 흔들리고
여윈 등 뒤 함성도 듣겠구나
이 하늘 아래서
우리가 무엇으로 살아 무엇을 이룰까
죽어 아낌없이 피운 꽃들
살아 못 지킨다면
우리가 죽어
어느 풀잎으로 시신인들 덮겠느냐
오월 하늘 아래서는
땅 위로 진 것 하나 없고
땅속에 귀먹은 것들 하나 없구나
사월에 딛던 맨땅
오월에 딛어 못자리도 푸르르고
보리 속에 깜부기도 눈을 감고 패는구나
무엇을 바라볼까
지게 잡은 놈이
송장짐 지더라고
송장짐이란 송장짐은 다 짊어진 채
목메어 청산을 부르며
슬픔으로 떼는 발길
기쁨으로 얻어 딛고
기쁨으로 딛은 발길
피눈물로 떨어지며
작대기도 없는 논밭두렁
자운영 꽃이 피는구나.

2.1.4. 이병일의 시[21]


2012년 5.18문학상 당선 작품이다.
누이야, 혁명을 절규나 침묵으로 해석하지 말자 군인들 팔뚝에 돋은 힘줄이 도드라진 오월, 죽음을 탁발하는 누이들의 행렬이 길을 메웠다 그때 나는 돌부리 걸려 넘어지고, 무릎은 깨져 피가 별처럼 고이고, 군화는 내 머리통을 밟고 지나가는데
구름이 해를 가리던 낮에 큰길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목적 없이 와불이 되었다 돌멩이와 풀은 어둠과 햇빛과 상관없이 어둑어둑해지고 죽음은 살덩어리로 발견되었다 커튼이 쳐진 방 안의 귀머거리들은 큰 죽음을 모른다 작은 죽음도 잘 모른다
지평선의 목구멍에 걸린 해는 극락강 수면에 일몰의 저녁을 토해낸다, 알 수 없는 곡소리가 들리고, 구불구불한 강을 따라 노 젓는 시간만이 국화 한 송이를 들고 이름 없는 무덤을 찾아간다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 작은 팽나무 아래의 새들이 퍼덕거리지 않는다 군인들은 계속 행군 중이고, 저녁의 낯이 새파랗게 질려간다
그러나 더 이상 밀려가는 벼랑이 없는 나는, 뱀눈그늘나비의 춤을 빌려와서 꿈을 꾸고 있는 세상이 있다고 믿기로 했다 내 몸에서 그림자가 엎질러진 날이기도 했고 꿈을 벗으려고 하면 총 맞은 자리에서 묽은 피가 왈칵 쏟아지는 오월이기도 했다.

3. 대한민국의 밴드


1990년대 초반에 잠깐 존재했었던 밴드. 대표곡으로는 "종로에서"(1993)가 있다.
[1] 195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84년 창비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좋은 세상>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등이 있다. 한성기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2]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83년 시 전문 무크 <민의> 제2집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월아, 삶아> <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 <당산철교 위에서> 등이 있다. 현재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화남출판사 편집주간.[3] 1981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2007년 계간 '문학수첩' 신인상, 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박사.[4] 현재의 샤오싱(紹興) 시이다.[5] 남오의 양행밀이 먼저 오왕으로 책봉될 때 전류는 월왕이 되었는데 나중에 오왕을 다시 책봉받았다. 오월이라는 봉국은 주전충이 내려준 것이다. 양행밀의 자손들은 '마음대로' 오왕을 습봉한 것이고 정식 책봉을 받은 것은 아니다.[6] 쉽게 말하면, 동시대 동로마 제국에서 개발해서 사용한 그리스의 불 사용법과 비슷했다고 보면 된다.[7] 본명은 전원관으로, 낭산강 전투 당시에는 왕자 신분이었다.[8] 후량주전충이 추증.[9] 후량주전충이 추증.[10] 후량주전충이 추증.[11] 자체 추존.[12] 후당이사원이 추증.[13] 자체 추존.[14] 후진석경당이 추증.[15] 자체 추존.[16] 후한유지원이 추증.[17] 송태조가 추증.[18] 송태종이 추증.[19] 1953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984년 창비 신작시집 <마침내 시인이여>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좋은 세상>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내 몸에는 달이 살고 있다> <길은 당나귀를 타고>등이 있다. 한성기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20] 195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83년 시 전문 무크 <민의> 제2집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세월아, 삶아> <총알택시 안에서의 명상> <당산철교 위에서> 등이 있다. 현재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화남출판사 편집주간.[21] 1981년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2007년 계간 '문학수첩' 신인상, 2010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중앙대 문예창작과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