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신라)

 

1. 개요
2. 상세


1. 개요


'''박금천'''(朴金川, ? - 675년)은 삼국통일전쟁 시기 신라의 장수이다. 삼국사기에 '''소나'''(素那; 훈독) 또는 '''금천'''(金川; 음독)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2. 상세


삼국사기에 '素那或云金川白城郡蛇山人也'라는 구절이 나온다. 素那(소나) 혹은 金川(금천=쇠내)이란 사람이 백성군 사산(현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출신이라는 뜻으로, 고대 국어를 표기할 때는 마치 오늘날의 일본어처럼 한자를 음차, 훈차하여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국어는 관련 자료가 적은데, 그 중에서도 옛날이라서 잘 등장하지 않는 고유명사 표기의 몇 안 되는 예시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굉장히 많이 출연한다. 이 사람의 진짜 이름은 소나, 소내, 쇠내, 쇠나 등으로 추정된다. 소나의 아버지는 심나(沈那, 또는 황천(煌川))이다.[1]
소나는 신라의 변방 출신으로, 아버지 심나는 선덕여왕 시절 백제군과 용맹하게 싸워 비장(飛將), 즉 날아다니는 장수라 불릴 정도였다. "심나가 아직 살았으니 백성 땅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이 사람들 사이에 돌았다고 할 정도였으니.
심나의 아들 소나도 무인이 되어 신라 북쪽 국경 지대인 아달성[2]에 배치되었는데, 아직 나당전쟁이 끝나지 않은 시기인 675년, 사람들이 일제히 삼(麻)을 심으러 밭에 나간 사이에 말갈[3]이 기습해 들어왔다. 장정들은 대부분 밖에 나가 있어 아달성에는 노인과 어린이뿐이었고 당연히 혼란에 빠졌는데, 소나가 이 때 칼을 빼들고 외쳤다.

너희들은 신라에 심나의 아들 소나가 있는 줄을 아느냐? 나는 진실로 죽음을 두려워하여 살길을 찾는 사람이 아니다. 싸우고자 하는 자는 어찌 나오지 않느냐!

삼국사기》 소나 열전

그리고 말갈군과 '''홀로''' 맞서 싸우다가[4] 말갈인들이 그의 기개에 눌려 감히 접근조차 못하고 화살만 쏘아대서, 진시(아침 7시~9시) 부터 유시(오후 5시~7시)까지(!) 막아내다가[5] 끝내 고슴도치마냥 온몸에 화살이 꽂혀 전사했다고 한다. 당시 국왕 문무왕이 크게 감명받아 3급 잡찬 관등을 추서했다. 이게 정말 대단한 게, 잡찬은 원래 '''경주 진골 귀족만이 받을 수 있는 관등이다.''' 현대 군 계급으로는 '소장' 에 해당되며, 진골이 아닌 사람 중 유일하게 장성이 된 인물이다. 지역 및 계급 차별이 극심한 골품제를 운영한 신라 사회에서! 저 혼자서 싸운 게 과장인 것 같아도 일개 지방 출신 무인에 불과한 그가 3급 특별 대우를 받고 수백년 이후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삼국사기에까지 열전으로 수록될 정도이니 당시 말갈을 상대로 무쌍을 찍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사실 신라는 전장에서 장수들이 임전무퇴로 용맹히 싸우도록, 명예롭게 전사한 자와 그 가족은 고대 국가치고는 파격적으로 보상하는 편이었다. 비슷하게 공을 세우고 죽은 인물로 야이차, 찬덕 등이 있다. 그러나 보통 일반적으로 전사한 자에게 급찬(제9등급 - 소령), 특별히 높이 주어야 사찬(제8등급 - 중령)으로 올려 주는 정도였으니...
자세한 사항은 네이버 사전 삼국사기 열전 소나를 참조.
[1] 이전 문서에선 심나의 성이 박씨라고 쓰여있었는데 정작 삼국사기 열전엔 심나의 성씨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2] 현재는 북한에 속하는 강원도 이천군.[3] 말갈 하면 만주, 연해주 지역의 종족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국시대에 말갈인들은 강원 북부 및 함경도 남부에도 살았던 적이 있다. 만주의 말갈과 한반도의 말갈이 사실 말갈이라고 싸잡아 부른 거지 사실은 다른 종족이란 설도 있다.[4] 삼국사기 원문 어디를 찾아봐도 다른 병력이 성에 쳐들어온 말갈과 싸웠다는 내용이 없다![5] 생각해보면 '''최소 9시간~최대 12시간'''동안 계속 싸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