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덕
1. 개요
삼국시대 신라의 정치인, 군인.
신라 상대 사회의 계율 세속오계 중 임전무퇴를 실천한 인물이다.
2. 생애
서라벌의 모량부 출신으로, 용맹과 절개를 갖추고 있어 당시에 유명했다고 한다. 진평왕에 의해 발탁되어 백제와의 국경에서 가까운 가잠성[1] 현령으로 부임했는데, 바로 다음 해인 611년 겨울 10월에 백제의 무왕이 대군을 일으켜 가점성을 공격했다.
3. 가잠성 전투와 죽음
진평왕은 상주(上州,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하주(下州, 경상남도 창녕군), 신주(新州, 경기도 광주시) 3주의 병력으로 원군을 보냈지만 백제군에 의해 패퇴하게 된다.
100여일 동안 포위된 상태로 싸우면서 가잠성의 군량과 식수가 바닥나 시체를 뜯어먹고 오줌을 받아 마시면서까지 버티며 지옥 같은 공성전이 계속되었다. 612년 정월에 들어 결국 병사는 지치고 물자가 완전히 바닥나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고 찬덕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부르짖었다.세 주의 장수들이 적이 강한 것을 보고 진격하지 않고, 성이 위급한데도 구원하지 않으니 이는 의리가 없는 것이다. 의리 없이 사는 것보다는 의리를 지켜 죽는 것이 낫다
이는 곧 찬덕의 유언이 되었고 찬덕은 이내 팔을 걷고 눈을 부릅뜨고 느티나무에 부딪혀 자결했다. 가잠성은 함락되고 살아남은 병사는 모두 항복하였다.우리 임금이 나에게 하나의 성을 맡겼으나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고 적에게 패하게 되니, 원컨대 죽어서 큰 귀신이 되어 백제인을 다 물어 죽이고 이 성을 되찾겠다!
삼국사기 해론 열전
비록 찬덕은 전장에서 죽음을 맞았지만 명예를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아들 해론은 20세의 젊은 나이에 대나마[2] 라는 높은 관등을 하사받게 된다. 당시 신라는 장수들이 용맹하게 전쟁에서 싸울 수 있도록 장려하기 위해, 공을 세운 인물은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남은 가족은 큰 보상과 명예를 받을 수 있었는데 비슷하게 큰 보상을 받은 인물로 소나, 야이차 등이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들 해론 역시 훗날 아버지가 죽은 가잠성에서 똑같이 죽음을 맞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