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무제

 


영정 없음
'''묘호'''
'''문종(文宗)'''
'''시호'''
정천응도소숭영문굉무달인성선민효절황제
(貞天應道昭崇寧文宏武達仁成宣閔孝節皇帝)
'''연호'''
소무(紹武)
'''성'''
주(朱)
'''휘'''
율오(聿𨮁)
'''생몰 기간'''
1605년 ~ 1647년
'''재위 기간'''
1646년 ~ 1647년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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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남명의 황제. 묘호는 문종(文宗), 시호는 정천응도소숭영문굉무달인성선민효절황제(貞天應道昭崇寧文宏武達仁成宣閔孝節皇帝)이다. 휘는 율오(聿𨮁). 연호가 소무(紹武)라 소무제(紹武帝)라고 부른다. 융무제 주율건의 동생이자 왕 주기성(朱器墭)의 3남이다.

2. 생애


1646년 8월, 주율건이 복건성에서 청나라 군대에 사로잡혀 체포되자 11월, 광주에서 즉위했다. 그런데 같은 달에 영명왕(永明王) 주유랑도 조경(肇慶)에서 즉위하니 그가 영력제이다. 그런데 두 세력은 똑같이 청군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서로의 존재를 양보하지 않았다. [1] 강력한 청군을 두고 연합해도 시원찮을 판에 오히려 한심하게도 광주 삼천에서 교전했다. 이 전투에서 주율오는 대승을 거두고 기뻐했으나, 기쁨은 잠시 뿐이었다. 이 틈을 타 12월 말, 청군이 광주로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원래 세력이 미약했고 주유랑과의 싸움으로 약화되어 있던 그의 군대는 손쉽게 청군에 패배했고, 주율오는 광주가 함락되자 자살했다. 그는 후사가 없었으므로 주상청이 뒤를 이었다.
[1] 굳이 보면 주유랑의 정통성은 넘사벽급이다. 주유랑은 만력제의 손자이지만 주율오는 주원장의 23남 당왕 주경의 후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