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선(당나라)

 


'''수말당초 군웅
蕭銑 | 소선
'''
'''묘호'''
<colbgcolor=#fff> 없음
'''시호'''
없음
'''연호'''
봉명(鳳鳴, 617년 ~ 621년)
''''''
소(蕭)
''''''
선(銑)
'''생몰 기간'''
583년 ~ 621년
'''재위 기간'''
617년 ~ 621년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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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수말당초의 군웅이자, 단명정권인 후소량의 유일한 군주.

2. 생애


소선은 후량의 황제인 소찰의 증손이자 소암(蕭岩)의 손자로 583년에 태어났다. 소선의 할아버지인 소암은 수나라의 초대 황제인 문제 양견이 후량을 멸망시키려 한다는 소문을 듣고 진나라로 망명했다. 이후 589년에 수나라가 진나라를 멸망시켰고, 소암은 이때 양견에 의해 살해당했다. 소선은 집안이 가난하여 책을 팔며 생계를 도모하였고 어머니를 극진히 섬기며 효성이 있다고 소문이 났다. 이후 양제가 즉위하면서 소선은 양제의 외척이 되어[1] 나천현령으로 발탁되었다.
대업 13년(617년)에 양제의 갖은 실책으로 인해 수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동경진(董景珍), 뇌세맹(雷世猛), 정문수(鄭文秀), 허현철(許玄徹), 만찬(萬瓚), 서덕기(徐德基), 곽화(郭華), 장수(張繡) 등이 함께 모의하여 수나라(隋)를 배반하였다. 이때 동경진의 부하들은 동경진을 맹주로 추대하려고 했지만, 동경진은 소선에게 양무제의 풍모가 있다며 소선을 적임자로 추천했다. 소선은 동경진 등의 추대를 받아 양왕(梁王)을 칭하며 양나라의 부흥을 천명하고 연호를 봉명(鳳鳴)으로 정했다.
이듬해인 618년에는 스스로 황제를 참칭했으며, 후량의 마지막 군주였던 소종(蕭琮)을 공종(恭宗) 효정황제(孝靖皇帝)로 추존하고, 조부인 소암을 하간충렬왕(河間忠烈王)으로 추존하고, 부친인 소선(蕭璇)을 문헌왕(文憲王)으로 추존하였다.
황제를 참칭한 소선은 후량의 옛 수도였던 강릉에 도읍을 세우고 당나라에 계속 대항하다가 결국 621년에 당나라가 후소량을 멸망시키면서 최후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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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양제의 황후인 양민황후가 소선의 친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