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육조)

 


'''
'''
'''557년 ~ 589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
''''''
'''별칭'''
남진(南陳)
'''위치'''
중국 남부
'''수도'''
건강(建康)
'''정치 체제'''
전제군주제
'''국성'''
(陳)
'''국가원수'''
황제
'''주요 황제'''
무제 진패선,(557~559),
문제 진천,(559~566),
선제 진욱,(569~582),
장성공 진숙보,(582~589),
'''언어'''
중세 중국어
'''문자'''
한자
'''종교'''
대승 불교, 유교, 도교
'''종족'''
한족
'''통화'''
태화육수(太貨六銖)[1]
'''현재 국가'''
중국
1. 개요
2. 상세
3. 역대 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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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557년에 건국했다가 589년에 멸망한 중국 남북조 시대 왕조로 육조시대의 마지막 왕조다. '''남진(南陳), 진진(陳陳)'''이라고도 부른다. 중국사에 드물게 황족의 성씨랑 국명이 같은 왕조이다.

2. 상세


진나라를 건국한 진패선은 미천한 가문에서 태어난 군인 출신으로 양나라 시대 후경의 난을 진압한 유능한 지휘관이었다. 적국 북제에 동조한 동료 왕승변을 죽이고 후속 반란들을 진압하면서 양나라의 대권을 장악했다가 선양을 받아 황제가 되었다. 황제가 된 것은 좋았지만 남조는 북조에 비해 지나치게 잦은 왕조교체와 연이은 혼란기로 국력 자체가 크게 떨어져있는 상태였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사천 전체와 형주 절반 정도는 북주후량의 손에 넘어갔고, 장강 이북 지방은 북제에게 넘어갔으며 그나마 장강 중하류를 두고 북제와 계속 공방전을 벌이는 상태에 놓였다. 설상가상으로 국가가 창건할 때는 사실상 수도인 건강 주변만 장악한 상태라 양나라의 다른 지역에 웅거한 지방 군벌보다 나은 점이 별로 없었고, 나머지 강남 지역을 통일한 것도 진천의 시대 말에나 가능했다. 그래서 사실상 양나라 때 보다도 영토가 크게 축소하여 남조 왕조 중 가장 국력이 약소했다. 이는 양나라 말기의 대규모 내전으로 인해 건강과 그 주변이 황폐화한 것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그래도 양나라 말기 때보다는 오히려 내부적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 과거 남조의 주요 왕조들은 왕조가 교체되더라도 귀족 계층은 그대로 존속할 뿐더러, 귀족이 되고 안되고는 귀족들이 스스로 결정하지 황제도 간섭하지 못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으나, 양나라 말기의 대규모 내전이 이걸 싹 깨버린 것이다. 실무 능력도 없는 주제에 헛소리만 늘어놓던 위나라 이래의 귀족 집단이 극소수만 남긴 채 죄다 날아간 상태가 되어 있었고, 한인(寒人)이라고 불리며 천대를 받던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정계의 주역으로 당당하게 등장해 있었으며 양무제를 절망시켰던 극심한 빈부격차도 역설적으로 대단히 많이 해소되어 있었다. 또한 양나라 말기에 등장한 각종 양아치 집단들이 진패선의 적극적인 정리 사업 끝에 모조리 다 정리되는 결말을 맞는다. 게다가 아무리 그래도 삼국 시대의 오나라와 비교하면 인구나 경제력은 그보다 강했고 면적도 그다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즉 영토는 많이 줄었지만 사회의 응집력이나 건전한 활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있었고, 마침 창업군주를 제외하면 왕조마다 대부분은 암군이나 폭군이었던 남조의 전통(?)이 일시적으로 끊겨 진패선도 그 이후도 한동안 괜찮게 통치를 했다. 덕택에 진욱 시절에 북제가 막장테크를 탄 틈을 타서 장강 이북의 영토를 일시 수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북제를 병합한 북주의 관롱 집단을 상대하기엔 여러모로 역부족이어서 장강 이북을 다시 빼앗겼고, 망한 북주를 대신해서 나타난 건 희대의 명군 수 문제의 수나라였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도 내치에 능한 군주가 등장해서 어떻게든 이런 유리한 분위기를 이용해서 국력을 끌어올렸다면 남북조가 어찌 유지되었을 진 모르지만, 하필 당대 군주는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진숙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수나라는 진왕 양광을 총지휘관으로 삼아 하약필, 한금호를 선봉으로 강을 건너 건강을 함락하고, 진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로써 400년에 걸쳐 분열되었던 위진남북조시대가 종결되고 중국은 통일되었다.'''

3. 역대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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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태조(陳太祖)[2]
경황제(景皇帝)
진문찬(陳文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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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소열왕(始興昭烈王)[3]
진도담(陳道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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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진 고조(陳高祖)
무황제(武皇帝)
진패선(陳覇先)
영정(永定)557 ~ 559
557 ~ 559
만안릉(萬安陵)
2대
진 세조(陳世祖)
문황제(文皇帝)
진천(陳蒨)
천가(天嘉) 560 ~ 566
천강(天康) 566
559 ~ 566
영녕릉(永寧陵)
3대
-
-
,<폐황제(廢皇帝)>,
,<임해왕(臨海王)>,
진백종(陳伯宗)
광대(光大) 567 ~ 568
566 ~ 568
-
4대
진 고종(陳高宗)
효선황제(孝宣皇帝)
진욱(陳頊)
태건(太建) 569 ~ 582
569 ~ 582
현녕릉(顯寧陵)
5대
-
장성양공(長城煬公)
,<후주(後主)>,
진숙보(陳叔寶)
지덕(至德) 583 ~ 586
정명(禎明) 587 ~ 589
582년 ~ 589
-
[1] 579년 효선제 진욱 때 주조 시작[2] 진 무제 추존.[3] 진 무제 추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