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당 전투
1. 개요
프랑스어: Bataille de la Sedan
영어: Battle of Sedan
보불전쟁 시기인 1870년 9월 1일 프로이센군이 뫼즈 강 연안 스당 요새에서 프랑스군을 격파한 전투. 나폴레옹 3세가 프로이센군에게 포로로 잡혔으며, 프로이센 왕국이 보불전쟁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오게 만든 전투였다.
2. 배경
보불전쟁이 시작된 후 프로이센군은 8월 내내 프랑스군을 상대로 뛰어난 전략을 펼쳐 연승을 거두었고, 프랑스는 어지럽게 퇴각했다. 나폴레옹 3세는 노련한 아쉴 바젠 원수를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지만 베젠은 느리고 우유부단했다. 그 결과 바젠이 이끄는 군 전체가 요새 도시 메츠에 포위당하고 말았다. 이는 프랑스군에게 엄청난 타격이었고, 나폴레옹 3세는 그를 구하기 위해 9만 명 이상의 병력을 모아 군을 새로 조직해 막마옹 장군과 함께 진격했다.
프랑스군은 벨기에와의 국경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해 전선의 왼쪽 날개를 공격했지만, 헬무트 폰 몰트케 장군은 프랑스군의 움직임을 간파한 후 프로이센 2개 군이 메츠를 포위하도록 남겨놓은 채 다른 2개 군을 북쪽으로 이동시켰다. 8월 30일 나폴레옹 3세가 이끄는 프랑스군과 조우한 프로이센군은 뷰몽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고, 프랑스는 5,000명의 사상자를 낸 채 스당으로 퇴각했다. 나폴레옹 3세는 이곳에서 탄약과 물자를 보충한 후 다시 공격에 나서려 했지만 프로이센군은 쉴 틈을 주지않고 신속히 스당을 포위했다.
3. 전투경과
9월 1일 새벽 4시 프로이센 사단이 스당 앞의 바제유 마을을 공격하는 것으로 전투가 시작되었다.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져 스당의 시민까지 산탄총을 들고 싸웠으며, 프로이센군은 일시적으로 궁지에 몰렸다. 마을 바깥으로 전투가 확대되어 프로이센군은 바제유 북쪽을 공격하고 프랑스군은 역공하며 그들을 막아냈다. 전투를 지휘하던 막마옹은 자신이 탄 말이 대포에 맞고 본인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전선에서 물러나면서 오귀스트 뒤크로에게 지휘권을 넘겼다. 뒤크로는 퇴각하려고 했지만, 프로이센 군단이 그들의 앞을 막았고, 그들은 꼼짝없이 싸워야만 했다. 오후를 넘기면서 프랑스군은 사실상 궤멸되었고 식량도 물자도 다 바닥났다. 나폴레옹 3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백기를 든 신하를 보내 빌헬름 1세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전달했다."이제 그들을 쥐구멍에 몰아넣었습니다."
빌헬름 1세는 비스마르크와 스당에 모인 외국 관료들. 기자들 앞에서 이 편지를 읽어주며 승리를 자축했다. 프로이센은 프랑스에 가혹한 조건을 내걸었는데, 전군이 항복하고 장교가 아닌 모든 병사는 수용소에 갇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나는 병사들과 함께 죽는 데 실패했소. 이제 남은 선택은 폐하의 손에 내 칼을 맡기는 것 뿐이오"
4. 결과
9월 2일 나폴레옹 3세는 스당에서 나와 오토 폰 비스마르크에게 조건의 완화를 요청했지만, 비스마르크는 단호히 거절했다. 스당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3,000명 전사, 1만 4,000명 부상, 2만 1,000명 실종, 8만 3,000명이 포로로 잡혔고 같은 기간 동안 프로이센군은 겨우 9,000 여명의 사상자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