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 대사
1. 개요
일본 나가노현에 위치한 신사. 스와 호수를 중심으로 남쪽에 위치한 카미샤-혼미야(上社本宮, 스와시 소재), 카미샤-마에미야(上社前宮, 치노시 소재) 그리고 북쪽(시모스와마치)에 위치한 시모샤-하루미야(下社春宮), 시모샤-아키미야(下社秋宮) 네 곳을 아울러 스와 대사(諏訪大社)라 부른다. 카미샤에선 타케미나카타노미코토(建御名方命), 야사카토메노미코토(八坂刀売命), 시모샤에선 카미샤의 두 신과 함께 야에코토시로누시노카미(八重事代主神)를 모신다.
2. 상세
일본에도 몇 안 되는 대사(大社)라 불리는 곳이며, 일본 전국에 걸쳐 말사(末社) 수만여 곳을 거느린다. 이를 비유하자면 조계종의 조계사라고 생각하면 된다.
본래의 제신은 이즈모계의 타케미나카타가 아니라 미샤구지신, 뱀신 소소우신, 수렵의 신 치카토신, 석목의 신 모레야 등의 스와 지방 토착신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신성이 절충되었기에 미샤구지가 타케미나카타와 동일하게 여기며, 따로 구별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제사 등 행사 또한 대부분이 토착신앙과 관계된다고 한다.
고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타케미카즈치(武甕槌命)에게 명하기를 손자인 니니기노미코토(瓊瓊杵尊)가 강림하기 전에 이즈모(出雲)를 지배하는 '천하를 만든 대신' 오오쿠니누시(大国主命)가 천손에게 지배권을 넘기게 하라고 했다. 이에 타케미카즈치가 명을 받들어 아메노토리후네(天鳥船神)와 함께 내려갔다. 두 신은 이즈모의 바닷가에 내려와 칼을 거꾸로 꽂고 그 위에 좌정하여, 오오쿠니누시에게 지배권을 천손에게 넘기라고 하였다.
오오쿠니누시는 내 아들의 뜻을 물어보겠다고 하면서, 먼저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에게 물어보자, 코토시로누시는 마땅히 지배권을 바치겠다고 하였다. 오오쿠니누시가 또다른 아들에게도 물어보겠다고 하면서 타케미나카타(建御名方神)를 불러왔다.
타케미나카타는 천 명이 겨우 들어올릴 만한 바위를 들고 와서 타케미카즈치와 싸웠으나 패배하자 스와 호수까지 도망쳤지만 붙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지배권을 넘기는 데에 동의했다고 한다.
같은 부분을 다룬 일본서기외 비교하면 내용이 몇 가지가 다르다. 첫째, 일본서기에서는 이즈모로 먼저 파견하도록 명령한 신이 아마테라스가 아니라 다카미무스히 신이다. 둘째, 일본서기에서는 이즈모로 파견한 신이 후츠누시(經津主神)와 타케미카즈치이다. 둘 다 도검(刀劍)신의 속성이 있다. 셋째, 일본서기에서는 타케미나카타와 싸우는 부분이 없다. 코토시로누시의 의견을 들은 뒤 바로 결판이 난다.[1] 또한 이즈모노쿠니노미야츠코(出雲国造) 집안의 조상신 아메노호히(天穗日命)가 이즈모를 굴복시키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오오쿠니누시에게 붙어버린 배신자라고 묘사한 것도, 자기 집안 조상신을 치켜세우는 과정에서 나온 왜곡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즈모 지방의 호족 이즈모노쿠니노미야츠코 가문(이하 이즈모국조)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에서 자기 조상신이 오오쿠니누시에게 붙은 배신자로 묘사된 것을 부정하고 다른 신화를 적어 천황에게 바쳤는데 그 내용이 전한다.이즈모국조 집안에서 바친 문서에 따르면, 자기네 조상신인 아메노호히가 천신들의 명을 받들어 아들 아메노히나토리와 함께 일본 땅을 널리 돌아다니고 상태를 보고했다. 그리고 아메노호히는 아메노히나토리에게 후츠누시와 함께 이즈모로 가서 오오쿠니누시를 설득하도록 하였으며, 또한 성공했다. 이즈모국조 집안의 주장에 따르면 국토양도신화에서 진짜 공로자는 자기네 집안의 조상신들이라는 것인데, 일본서기 일서에도 이즈모국조 집안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있으므로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이후 스와 대사에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타케미나카타는 스와 지방까지 도주한 뒤, 그곳의 토착신인 미샤구지 등과 싸워 이겨 복속시켰으며, 그 곳에 왕국을 건설했다고 한다. 스와 대사의 기원은 이 신화에 있다.
각각의 제신을 따로 의식하는 경우는 드물고, 한 데 묶어 ‘스와대명신(諏訪大明神)’으로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은 ‘스와 님(お諏訪様)’, ‘스와 대신(諏訪大神)’으로 불리기도 한다.
타케미나카타노미코토의 후손으로 칭송받던 스와 씨(氏)의 가계가 대대로 스와대사에서 가장 높은 직책인 '오오호리(大祝)'를 담당해왔으나, 메이지 시대 이후 신직을 세습함이 금지되면서 오오호리는 소멸하고 만다. 또한 스와 씨의 후손으로 추측되던 인물들조차 2000년대를 전후하여 모두 사망하며 대가 완전히 끊긴 상태. 모리야(모레야) 신의 후손이라는 모리야 가계는 아직도 신장관을 담당하며 남아있으나(현 신장관은 모리야 사나에가 맡고 있다.), 이쪽도 대대로 내려오던 비술은 대가 끊겨버렸다.
일본의 3대 기제(奇祭: 기이한 축제)로 유명한 온바시라마츠리[2] 가 7년에 한 번[3] 한달 가까이 열린다. 열 때마다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터프하기 그지없는 축제로 유명. 2010년 행사[4] 나 2016년 행사 때에도 역시 사망자가 나왔다.
3. 구성
3.1. 가미샤(上社)
스와 호의 남쪽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혼미야가 본사, 마에미야가 섭사(摂社)였으나 지금은 구분하지 않는 듯.
3.1.1. 혼미야(本宮)
건물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중요문화재 건조물 제2151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 폐전(幣殿; 헤이덴)
- 배전(拝殿; 하이덴)
- 배소(拝所; 하이조)
- 좌우편배전(左右片拝殿; 사유카타하이덴) : 좌편배전과 우편배전으로 나뉘어 있다.
- 액편배전(脇片拝殿; 와키카타하이덴)
- 칙원전(勅願殿; 조쿠간덴)
- 사각문(四脚門; 시캬쿠몬)
- 서보전(西宝殿; 니시호덴)
- 동보전(東宝殿; 히가시호덴)
- 상사보물전(上社宝物殿; 가미샤 호모쓰덴)
- 포교(布橋; 누노바시)
- 입구어문(入口御門; 이리구치 고몬)
- 액당(額堂; 가쿠도) : 에마당(絵馬堂)으로도 부른다. 중요문화재의 부지정(附指定).
- 신마사(神馬舎; 신메샤)
- 오간랑(五間廊; 고켄로)
- 칙사전(勅使殿; 조쿠시덴)
- 신악전(神楽殿; 가구라덴)
- 천류수사(天流水舎; 덴류스이샤)
- 문고(文庫; 분코)
- 섭말사 요배소(摂末社遙拝所; 세쓰마쓰샤 요하이조)
3.1.2. 마에미야(前宮)
건물 구성은 다음과 같다.
- 본전(本殿; 혼덴)
- 배소(拝所; 하이조)
- 십간랑(十間廊; 짓켄로)
- 내어옥전(内御玉殿; 우치미타마덴)
- 약어자사(若御子社; 와카미코샤)
- 신전(神殿; 고도노) 터
- 어실사(御室社; 오무로샤)
- 계관사(鶏冠社; 게이칸샤)
3.2. 시모샤(下社)
스와 호의 북쪽에 위치한다. 두 미야(宮)의 지위는 같으며, 신령이 붙은 대상인 요리시로(依り代)가 2월과 8월에 양사 간을 천좌(遷座)한다.
3.2.1. 아키미야(秋宮)
건물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중요문화재 건조물 제2152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 폐배전(幣拝殿; 헤이하이덴)
- 좌우편배전(左右片拝殿; 사유카타하이덴) : 좌편배전과 우편배전으로 나뉘어 있다.
- 신악전(神楽殿; 가구라덴)
- 보물전(宝物殿; 호모쓰덴)
3.2.2. 하루미야(春宮)
건물 구성은 다음과 같다. '''굵은 글씨'''는 중요문화재 건조물 제2152호로 지정되어 있는 건물이다.
- 폐배전(幣拝殿; 헤이하이덴)
- 좌우편배전(左右片拝殿; 사유카타하이덴) : 좌편배전과 우편배전으로 나뉘어 있다.
- 신악전(神楽殿; 가구라덴)
- 하마교(下馬橋; 게바노하시)
- 통죽전(筒粥殿, 쓰쓰가유덴)
4. 서브컬처
4.1. 동방 프로젝트와의 관계
동방풍신록의 백스토리를 비롯한 여러 요소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풍신록 발매 이후 성지순례가 시작되어 방문객이 늘고 동방 프로젝트 관련 이타에마들이 걸리기 시작했다. 나가노 현의 지역신문에 관련 기사까지 나오기도(해당기사).
ZUN은 스와대사에 가거든 '이타에마에다 「왔다」라고 써놓거나 소란을 부리는 등, 현지인에게 미움받을 짓은 자제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으며, 덕분인지 현재까지는 이타에마 외에 별다른 사건은 터지지 않았다.
나가노 지방에서 열린 동방풍신록 온리 이벤트인 '미샤구지사이(御射宮司祭)'는 나가노 현지인들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참신하다는 평을 받으며 지역 이벤트로서는 대성공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벤트 참가자들을 상대로 스와 대사 투어까지 계획될 정도였으나, 의외로 지원자가 많지 않아 취소됐다고.
2010년 온바시라마츠리에도 동방 코스프레를 한 덕후들이 우글우글 몰려오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기도 했지만, 딱히 그런 사람은 없었다. 동방팬들끼리 모여 간단한 뒤풀이 정도만 한 모양.
한국인 동방 팬이 작성한 성지순례기도 어느정도 있다.
[1] 원래 타케미카즈치는 나카토미(中臣) 집안의 조상신이고, 타케미나카타는 이즈모와 아무련 연관이 없다. 기기신화에서 타케미카즈치가 활약한 것, 그리고 타케미나카타가 패배한 것은 나카토미 집안의 입김이 들어간 개작일 가능성이 높다.[2] 참고로 온바시라와 이에 관련된 축제 자체는 스와 지역 신사들의 공통적인 풍습. 딱히 스와 대사 고유의 것은 아니다.[3] 정확하게는 호랑이(寅)해와 원숭이(申)해에, 즉 만 6년마다 한 번씩 한다[4] 스와대사에서는 부상자만 나왔지만, 스와지방 북부의 온바시라 축제에서는 온바시라 꼭대기에서 사람이 머리부터 떨어져 사망자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