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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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
'''휘'''
오오히루메(オオヒルメ)
'''생몰 년도'''
? ~ ?
1. 개요
2. 기원과 상세
3. 여신? 남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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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天照大御神'''
'''アマテラスオオミカミ'''
일본 창세신화의 주신으로 태양의 신이다.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이라고도 표기한다. 이자나기의 왼쪽 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주신이라고 하지만 천상계 타카마가하라의 군주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1]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라는 호칭 자체는 '하늘을 비추는 크고 존귀한 신'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아마테라스를 제신으로 모시는 본산은 이세신궁의 내궁이다.
19세기 메이지 시대에 '신불분리령(神佛分理令)'이 내리기 전까지는 신불습합이 되어 대일여래의 현신으로 간주받았다.

2. 기원과 상세


일본에서는 태양신이자 일본 천황가의 시조로서 절대적, 우위적으로 매우 숭앙한다. 하지만 아마테라스의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다. 유력한 설 중에는 고대에는 '아마테라스 오오히루메'[アマテラス オオヒルメ]라고 해서 (지금은 사라진) 남성 태양신을 받들던 신녀였다는 것도 있다. '오오히루메' 시절에 '아마테라스'란 호칭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오오히루메'[オオヒルメ]를 꾸며주는 수식어였다. 즉, 이름은 '오오히루메'지 '아마테라스'가 아니다. 이러던 오오히루메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남성 태양신을 제치고 '아마테라스'라는 이름으로 진정한 태양신으로 숭앙받게 되었고, 반대로 남성 태양신 전승은 흔적으로나 남았다는 것. 각 지역에서 서로 다른 남성 태양신 신앙이 있었으나, 야마토 조정이 아마테라스 여성 태양신 신앙으로 일원화했다고 추정된다. '오카미'란 호칭도 사실 남신에게 어울리는 호칭이라, 남성 태양신 전승의 흔적이 남았다고도 본다. 또한 일본 천황가도 원래는 타카미무스히를 황조신(皇祖神)으로 받들었다가, 언제부터인가 아마테라스를 황조신으로 바꾸었다는 것.
일본서기에는 유래나 출처가 다른 여러 전승(傳承)이 뒤섞였는데, 일본서기의 편집자들은 '본문'을 표준판으로 삼되, 본문과 다른 전승들을 '일서'라는 이름으로 같이 기록해두었다. 일본 신화를 이야기하려면 본문과 일서를 모두 참조하되, 그것을 서로 다른 전승으로 이해해야지 하나의 신화로 맞추려고 우겨넣으면 안 된다.
아마테라스의 손자 '니니기미코토'를 지상으로 내려보낸 주체가 일본서기 본문과 일서에서 서로 다르다. 본문과 일서를 포함하여 가장 오래된 전승(일서에 있다)에는, 천상 타계 '타카마노하라'가 열릴 때 있던 세 신들 중 하나라는 '타카미무스히'가 보냈다. 그보다 덜 오래된 전승이자 본문으로 채택된 전승에 따르면 '타카미무스히와 아마테라스가 공동으로' 보냈다.
역시 일서에 기록된 가장 후대의 전승에는 아마테라스가 '단독으로' 보냈다. 이때 아마테라스는 '천양무궁의 신칙'(天陽茂宮ノ神則)을 말했는데, 이는 메이지 덴노 시절 천황의 권위를 재옹립하는 데 중요한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고신도(古神道)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제국주의적인 의미로 왜곡되었다. 천양무궁의 신칙을 요약하면 우리가 아는 그 천황관을 대변한다. "지상은 내 자손 니니기와 그 후손이 영원히 다스릴 땅이다." 니니기에게 들려보냈다는 '''삼종의 신기(三種ノ神器)'''란 용어도 메이지 때부터 나왔다. 고서에는 삼종의 신기라는 용어가 없다. 사실 보물로 여겨진 물건은 칼과 거울뿐으로, 곡옥은 그에 딸린 물건으로 간주되었다. 전후 일본인이나 외국인들 또한 메이지 유신 이후 뇌리에 각인된 천황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참고로, 초기 전승에서는 니니기가 타카미무스히의 명을 받들어 아기의 형태로 강보에 싸인 채 하늘에서 내려왔고 한다. 일본 신화의 원형적 형태가 보인다. 니니기는 본디 농사를 관장하는 곡물신(穀物ノ神)으로 생각된다. 즉, 다카마노하라에 있던 이 '니니기'란 이름으로 지상에 내려와 땅을 풍요롭게 했다는 설이 니니기 천손강림 신화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남동생의 횡포를 못이겨 이를 피해 동굴에 숨어 들어간 태양신을 간곡하게 설득하여 세상을 다시 비추게 하는 에피소드면 일본인 누구나 다 아는 에피소드라 유명하다. 일본서기고사기의 정리가 완료되기 전의 기록에는, 진무 덴노 자신이 동굴로 들어간 듯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신화적인 의미에서 보면, 아마테라스가 니니기이고, 니니기가 진무천황이며, 진무천황이 역대 천황들인 셈이다. '''천황의 계승식(다이조사이大嘗礼)'''이란 '아마테라스이자 니니기이자 진무 덴노이자 선대 천황이었던' 그것이 되는 의식(살아있는 '''현인신''')인 것이다.
일본서기 초기 전승에 타카미무스히가 니니기를 지상으로 내려보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아마테라스가 처음부터 야마토 조정의 초기 황조신은 아니었다. 오히려 타카미무스히가 초기 황조신이었을 확률이 높다. 아니, 애초에 타카미무스히는 일본 신화 내에서 세계를 창조해낸 창조신들인 코토아마츠카미 중 하나다. 야마토 조정이 지배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각 지역의 고유한 태양신 신앙을 없애고 아마테라스 태양신앙으로 일원화했다. 보기 드문 여성 태양신인 아마테라스가 일본 천황가의 황조신(皇祖神)이 된 것도 야마토 조정이 지배권을 넓히는 과정에서 나온 종교적 변화이다. 사실, 이자나기와 이자나미 부부신이 창조했다는 여덟 지역은 일본서기 당시 야마토 조정이 지배하던 지역과 정확히 일치한다.
니니기 강림 신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야마토 조정은 기본적으로 쌀(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성립되었다. 일본 내 민속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일본에서도 곳곳에서 쌀이 아니라 밭작물 문화로부터 기인된 문화가 아직도 남아 있음을 밝혔는데, 오늘날 논에 모를 심어 쌀농사를 짓는 기법이 개발되기 전에 쌀은 밭에다가 심는 밭작물이었고, 고대에는 쌀보다는 조, 수수, 메밀 등과 같은 잡곡이 사람들의 주식이었음을 감안하면, 야마토 정권의 성립은 밭작물이 잡곡에서 쌀이 주를 이루어가던 시점에 성립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여담으로, 일본에서 불교가 크게 흥했을 때는(물론 지금도 일본의 가장 유력한 종교는 불교지만) 대일여래(비로자나불)의 화신 혹은 신중 정도로 격하당한 전력도 있다.[2]

3. 여신? 남신?


오늘날 아마테라스는 여신의 이미지로 고정되었지만, 아마테라스가 여신이라고 확고해진 것은 무척 최근의 일이다. 에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림에서 아마테라스를 동자(어린 소년)의 형상으로 그렸으므로, 아마테라스를 남신으로 이미지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라는 신명만으로는 남신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일본의 역사학자 사토 히로(佐藤弘夫)는 저서 ≪아마테라스의 변모: 중세 신불 교섭사의 관점≫[3]에서, 에도시대까지만 해도 아마테라스는 동자로 이미지된 사례가 더 많다고 지적했다. 아마테라스를 우호 동자(雨宝童子)의 형상으로 받든 것이다.
또한 간지(寛治) 4년(1093)에 이세신궁의 아마테라스에게 남성용 복장을 바쳤다는 기록도 있고, 에도시대에도 남성용 복장을 이세신궁의 내궁에 마쳤다는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 근대화 이전의 옛 일본에서 아마테라스를 '외모가 뛰어난 미남'으로 묘사했다는 기록이나 유물들이 있다. 심지어 가마쿠라 시대에 쓰인 일본서기의 주석서 <석일본기>에서도 그렇다.
기기신화의 원전인 고사기일본서기는 아마테라스의 탄생 장면에서 각각 '천조대어신(天祖大御神)', '일신(日神)'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탄생 장면에서 아마테라스가 정확히 여신인지 아닌지는 명시하지 않았으나, 일본서기에서는 탄생 장면에 일서(一書)에서 '일신(日神)'에 대해 '아마테라스 오카미', '오히루메무치(大日孁貴)' 등이라고 하였다고 하였다. 여기서 쓰인 '영(孁)' 자는 '영(靈)' 자에서 여(女)를 추가하여 '여성신' 혹은 '여성 무당'을 나타낸 글자이며, 그 독음인 '메' 또한 '여(女)'의 독음이므로 사료를 연속적으로 읽는다면 여신임이 분명하다.
혹자는 이에 대해 본문이 아닌 '일서'의 기록이라고 하여 가치를 낮추어 보지만, 이후 스사노오가 지상의 공물을 바치는 장면과 천손강림의 장면에서 정본에서도 일서의 신명으로 나타나는 '아마테라스 오오카미'가 쓰일 뿐만 아니라, 천손강림 장면의 정본에서도 '오히루메노 미코토(大日孁尊)'가 신명으로 등장하므로 '일서'를 비정통 기록만으로 보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다.
일본서기의 편찬 과정에서 여러 판본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정본과 이본이 완전히 구분된 것이 아니라, 다중적으로 얽혀 있었으며 상충하는 내용이 아닌 이상 서로 보완적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마테라스가 숨어 태양빛이 사라지는 이유 또한 아마타레스가 베를 짜던 중 스사노오에게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하므로, 직분에서도 동아시아 세계에서 여성의 역할로 규정되었던 방직을 아마테라스가 담당하였다.
고사기에서 아마테라스가 이자나기의 왼쪽 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 점과 일본서기 일서에서도 이자나기가 왼손에 백동경을 들었을 때 아마테라스가 태어났다고 하는 점에 대해 왼쪽은 음양의 양, 남성적인 것과 연결되는 방향이란 점이라고 하여 남성신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오른쪽 눈에서 태어난 츠쿠요미가 여신이 되어야 함에도 이에 대해서는 아마테라스가 여신이라는 것보다도 확증이 없다.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와 천계의 강가에서 만날 때 남장을 했다는 점도 근거가 되지만, 그 과정을 '머리를 틀어 상투머리로 하고 치맛자락을 잡아매어 바지로 하였다.'고 하였으므로 임시로 남장한 것으로 보는 설이 우세하다.
다만 아마테라스 오오카미 이외의 태양신으로서 <이즈모 국 풍토기>의 사타노 오오카미, 천손강림 장면에서(일본서기에서는 일서로 처리) 등장하는 사루타히코노 오오카미 등의 남성 신도 있었고, 일본서기의 일서에 '아마테라스를 불러낼 때 쓰인 거울'로 나타난 이세대신 등 사물 신도 있었다. 그보다 이전 시점의 기록인 <수서> 왜국전에서는 왜왕이 '하늘을 형으로, 태양을 남동생으로' 한다고 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관찬 사서와는 달리 민간에서는 남성/중성 태양신이 계속 섬겨졌을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아마테라스와 혼합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서기고사기의 필자들이 아마테라스를 어떤 성별로 상상했든, 최소한 11세기 헤이안 시대로부터 19세기 에도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아마테라스를 소년의 형상으로 이미지한 사람들이 많았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확고하게 여신의 이미지로 굳어진 것은 근대화 이후부터이다.
[1] 일본 신화에 나오는 창조신으로 일컬어지는 코토아마츠카미 중 하나라고 알려진 아메노미나카누시노카미도 타카마가하라 자체를 주재하는 것은 물론 수많은 혹은 팔백만 신들의 선구자이자 그 정점에 군림하는 신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처음부터 아마테라스가 천상계 타카마가하라의 군주였던 것은 아닌 듯하다.[2] 대부분의 신토 신들이 다 그런 경력(?)이 있다.[3] 원제: アマテラスの変貌 中世神仏交渉史の視座, (2000, 法藏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