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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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구조
3. 역사
3.1. 조계종 종조 논란
4. 비판
5. 기타
6. 역대 임원
6.1. 종정
6.2. 총무원장
7. 25교구 및 교구별 본사(本寺)
8. 같이보기


1. 개요


한국불교 종단 중 하나로, 한국불교 최대 종단이자 불교 군종장교를 배출하고 있는 종단이다.
공식 명칭은 '''대한불교 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Jogye Order of Korean Buddhism).[1]
대한불교 조계종 홈페이지
수행체계로 간화선 중심의 선종을 표방하고 있으나 아래 역사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조선왕조의 불교 억제 정책에 따라 종파간 강제 통폐합으로 교종, 진언종, 정토종의 교리가 흡수되어 통불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비구, 비구니 승단으로 대처승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 구조


종지는, 석가모니가 주창한 3가지 깨달음인 자각·각타·각행원만을 근본교리로 받들며, 직지인심[2]·견성성불[3]하여 중생을 이끌어 지도함을 목표로 한다. 조계종을 중흥하여 개산조사 다음가는 공로를 세운 중흥조는 고려말 태고보우 국사, 조계종 본거지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있는 조계사다.
불교에서의 분류에서 알 수 있듯 대승불교의 수행체계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첫째는 선종으로 참선이나 묵조선과 같은 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려는 종파인데, 조계종이 대표적이다. 신라의 9산은 모두 선종의 갈래이다. 교종은 소의경전과 교리를 준수함으로써 깨달음에 이르려 한다. 신라시대 5교란 교종을 뜻한다. 교종에선 소의경전을 종파의 이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신라시대 열반종과 화엄종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정토종은 신앙으로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극락에 환생한 뒤, 극락에서 깨달음을 얻으려는 종파로 정토종이 대표적이다. 진언종 또는 밀교는 진언(주문)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는 종파로 티베트 불교가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불교는 조선시대에 선종과 교종이 강제로 통합되어 선교합종의 성격을 띄며 통불교적인 성향을 띈다. 조계종은 중국의 6조 혜능선사가 금강경의 구절을 통해서 깨달음의 계기를 얻었으므로 <금강경>을 소의경전으로 삼는다.[4]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이나 현상은 모두 무상하다는 공 사상이 핵심인 경전이다. 조계종은 이 사상을 바탕으로, 화두[5] 참선을 주요 수행법으로 삼는다.
조계종단은 공식적으로는 1920년부터 현재와 같은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1962년 박정희 정권이 대처승을 포함하여 '대한불교 조계종'을 인정한 것이 종단의 참 시작이라고 해야 한다.[6] 현재 조계종 직무와 조직에는 종단을 대표하는 종정[7]을 비롯하여, 중앙종회, 총무원, 호계원, 교육원, 포교원, 원로회의가 있지만, 실제로는 거의 총무원장[8]이 중심이다.

3. 역사


중국 선종 불교에서 6번째 조사 조계 혜능 계통이 이어온 선 사상이 우리나라에 활발하게 소개된 때는 신라 후반기다. 1172년에 건립된 단속사 대감국사비에 처음으로 조계종이라는 단어가 나타나므로,[9] 고려 중기에는 조계종이 이미 성립되었다고 추정한다.
고려 중기에 대각국사 의천천태종을 개창했을 때 법안종을 잇는 승려들도 대거 참여했다. 그런데 여기에 혜능 계통 선 사상을 고수하는 승려들이 반대하여 논쟁이 일어났는데, 이들이 천태종에 대응하고자 구성한 종단이 바로 조계종이다. 이로 말미암아 조계종은 화엄종법상종천태종과 함께 고려 불교계를 주도하는 4대 종단이 되었다. 그리고 조계종 스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승과[10]를 별도로 시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 달리 보조국사 지눌이 13세기 초, 조계산 수선사라는 절에서 사상을 크게 일으켜 세운 때부터 조계종이 시작됐다고 보는 학설도 있다. 그래서 조계종 종조는 보조 지눌이라고 주장하는 보조 법통설이 나와, 첨예한 조계종 종조 논란을 일으켰다.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에 조계종 종조 논란 참조.
14세기 중반 무렵에는 태고 보우가 왕으로부터 승려 인사권을 위임받아 불교계를 장악하면서, 사실상 조계종이 불교계를 주도하였으며, 이때 원나라에서 새로 들어온 임제종의 법맥을 이었다고 하는 등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11] 그 후 조선왕조가 숭유억불 정책을 실시하면서 조계종단도 타격을 받아, 세종 6년(1424))에 천태종총남종과 함께 선종으로 강제 통합되었다. 데꿀멍
그 결과 조계종 특성은 희석되었고, 사회 경제 전반으로 기반이 무너지고 박탈당했다. 그리고 연산군중종 대에 이르러서는 연이어 불교가 탄압 받으며 종단 자체가 사실상 해체되는 사태가 일어났고, 승려 대부분이 산속으로 도망쳐 비구계 전승조차 힘든 상황에 처한다.
조선 중기에는 명종대에 문정왕후(섭정)의 주관으로 현 탑골공원 일대에 원각사를 중건하고 원각사 10층석탑을 지어올리는 등 불교 중건이 잠시 이뤄졌으나 문정왕후 사후에는 원각사가 폐지되고 도성내에는 승려 출입을 엄금하고 사찰을 지을 수 없으며 흥인지문 밖 10리 안으로 출입을 엄금하는 정책이 유지 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혼란한 사회상과 구복 신앙적 성격인 관음신앙이 널리 퍼지면서 행상, 상단 즉, 상업의 발달과 함께 부유한 자본 계층이 등장하였고 그들은 자신의 명복과 내세를 위해 전국 곳곳에 거대한 사찰을 짓고 다중탑을 지어 올렸다. 이시기에 지어지는 대표적 사찰로는 법주사를 예로 들수 있고 법주사 5층 목탑을 대표적 조선 후기 목탑으로 볼 수 있다.
경술국치 이후 조선 총독부는 불교계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조계사를 창건한 후 조계사를 조계종 본산으로 두고 그 외 종단을 배척하는 사찰령을 반포하였다. 사찰 문화유산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추진된 정책이었으나 사실상 일제에 항거하는 불교계 인사들을 감시 감독 통제하기 위함이었다. 이후 만해 한용운을 중심으로 불교정화운동이 펼쳐졌고 일 본 만종에 반하여 탄생된 선학원이 주축이 돼 조계종과 대립각을 이루게 되었다. 광복후 이승만 대통령 주도하에 불교계 통합 운동이 이어졌고 선학원은 조계종단으로 귀속되고 여타 다른 종단들도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으나 여전히 왜색불교, 일제청산이 부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행 조계종은 1962년에 박정희 정권이 불교계 전체 통틀어 조계종 하나만을 인정해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권의 조치에 대처승 등이 반발했기 때문에 법정 투정을 벌인 끝에 태고종이나 천태종 등이 설립을 인정받았지만, 대부분은 조계종 산하로 남았다.

3.1. 조계종 종조 논란


그렇다면 과연 누가 조계종 종조일까? 보조 지눌일까, 태고 보우일까.
이 시기에 서산대사 휴정 문하에서는 태고보우 국사를 우리나라 조계종 종조로 보았다. 1625년에 서산대사의 상좌[12] 언기 스님이 태고보우 국사가 종조라는 태고법통설을 제기했다. 1630년에 묘향산금강산, 그 이듬해에는 대흥사에 각각 휴정 비문을 세우면서 태고법통설을 정설로 받들었다. 나아가 휴정대사 상좌들이 조선 중기 이후 불교계를 주도하였으므로 우리나라 불교계 전반에 태고법통설이 정통으로 자리잡는 듯했다. 그런데 구한말 이후 이능화(李能和, 1869-1943)가 최초로 조계종 종조를 언급하며, "보조국사 지눌 이후에 조계종이 성립됐다. 그러므로 조계종 종조는 보조 지눌!"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1918년 조선불교통사)
이에 보태어, 당시 일본에서 유학하며 조계종 연구에 몰두한 불화 이재열은 "태고 보우는 조계종 성립 후 200여 년이 흐른 뒤 활동한 인물이므로, 종조가 될 수 없다." 하며 보조 법통설에 힘을 실었다.
이렇게 태고 VS 보조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와중에, 1970년대 들어 성철 스님의 등장으로 조계종 종조 논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1967년 해인사 초대 방장이 되면서 현대 한국불교를 이끈 성철 스님은 "조계 혜능을 원조로 임제선 계통을 이어 받은 태고가 종조"라고 주장했다. (출처: 한국불교의 법맥)
여기에 당시 동국대 교수이자 훗날 총무원장까지 역임하는 지관 스님도 "보조 종조론은 모든 이가 공감하기 어렵고, 조계종 법통은 이미 오래 전부터 태고→환암→구곡→벽계→부용→서산 등으로 확정했다." 하며 태고 종조설 굳히기에 들어갔다. (출처: 조계종사. 동국역경원. 1976)
당시 성철] 스님과 지관 스님이 종단 내에서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에 조계종 종조 논쟁은 태고 종조설로 기우는 듯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재열ㆍ이종익ㆍ고익진ㆍ최병진 등이 연이어 조계종 종조 문제를 거론하고 연구하며 끊임 없이 의의를 제기했기 때문에 논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처럼 끝이 보이지 않을 듯 보이던 종조 논쟁은 1994년 종단 개혁과 함께 마련된 종헌 종법에서 도의 국사[13]를 종조로 확정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동안 종헌에서 종조는 보조 지눌과 태고 보우가 번갈아 차지했다. 1954년 불교정화 당시 양 종조설이 대립했다. 1962년 2월 불교재건 비상총회에서는 태고를 내세웠으나, 현 조계종단을 세운 비구 측은 보조를 종조로 한 종헌을 단독으로 선포했다. 그러나 80년 10.27 법난 이후 개정된 종헌은 태고를 종조로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1994년 개혁불사 직후 9월 29일에는 새로운 종헌에서 도의 국사를 종조로 내세우면서 태고는 중흥조임을 밝혔다. 그러니까 현 종헌은 도의 종조설과 보조 종조설, 그리고 태고 종조설을 절충한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현행 조계종 종헌 종법에는 도의 국사를 종조로 본다. 그러나 그 규정을 다소 애매하게 정했으므로 논쟁이 다시 일어날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누구를 종조로 보느냐에 따라 조계종 정체성에 큰 변화가 생길 수 있으므로, 이 문제는 종단 내 정치역학 문제와 맞물려 학계에서도 민감한 부분이다.

4. 비판




5. 기타


  • 육식에 대해 크게 제한하지는 않는 듯하다.[14] 직접 잡아죽인 고기나 먹는 자를 위해 잡은 고기를 제외하면 먹어도 된다고 한다. [15] 동국대학교 학생식당이나 근처 식당에서 육식을 하는 조계종 스님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미성년자 법회[16], 청년부 등 신행단체를 이끄는 스님들은 재가불자와의 소통 과정에서 반강제적으로 육식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정확히는 '대비원력의 발심과 실천을 위한 승가 청규[17]'에서 규정된 바로는 강제성은 없지만 질병과 요양 등의 이유가 아니면 육식을 가까이하지는 않는다.
  • 조계종에서는 탁발을 공식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조계종에 속한 승려는 탁발을 할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탁발 문서 참조.
  •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에서는 2017년부터 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하는 등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 함양에 힘쓰고 있다. 종교계가 반동성애라는 기치로 똘똘 뭉쳤을 거라는 편견은 퀴어문화축제에서 춤추는 스님들을 보면 싹 박살난다.
  • 2020년 3월 17일 대한불교조계종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은 코로나 19 대응에 앞장선 의료인과 관련 공무원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 '토닥토닥 템플스테이'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3월 2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전국 15개 사찰에서 의료인과 관련 공무원 2천 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
  • 조계종이 불교계에서 세력이 큰 만큼 유사 조계종도 존재한다. 유사 조계종이란 대한불교 조계종이 아닌 대한불교를 떼고 조계종 앞에 OO불교 조계종 또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아닌 이름으로 말장난을 해놓은 종단을 이야기한다. 대한불교 조계종은 석가모니 부처님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혼인을 금지하는 제도를 행하는데 유사조계종은 이 틀 밖에서 벗어난다. 즉 대부분이 대처승을 인정하는 종단이 되는 셈이다. 이와 더불어 이런 유사 조계종은 절대로 정법이라 할 수 없는 게 사미계도 받지 않은 승려들이 종정을 자처하고 나서는 경우도 보이며, 대한불교 조계종(정법)은 미래예측, 점술 등 무당들이 행하는 행위는 금지시킨다. 어느 유사 조계종의 경우 박수무당이 머리깎고 종정이 된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이며, 불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무당집, 굿당 등에서도 유사 조계종에 등록을 하고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보인다. 대부분 조계종의 탈을 쓴 불교와는 전혀 관련없지만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주의하도록 하자.[18] 사실 조계종과 천태종에서는 출가한 독신주의자가 아니라면 승려/스님이라 하지 않고 신도/서포터로 간주한다.
  • 조계종이 한국의 불교종단중 세력이 가장 큰 만큼 유사 조계종도 존재하지만 또 대한불교 조계종 명칭을 무단으로 사용한 사찰들도 존재한다. 우보살로 유명한 사천 백천사, 노인들 대상으로 포교당 사기로 한때 논란이 된 보성 일월사, 납골당 사업체 의령 용국사등은 지금 유사 조계종 명칭을 사용하지만 한때는 무단으로 대한불교 조계종 명칭을 사용했었다.

6. 역대 임원



6.1. 종정


대한불교 조계종
  • 효봉 (1962~1966)
  • 청담 (1966~1967)
  • 고암 (1967~1974/1978(대행))
  • 서옹 (1974~1978)
  • 벽암 종정대행 (1978)
  • 성철 (1981~1993)
  • 서암 (1993~1994)
  • 월하 (1994~1999)
  • 혜암 (1999~2001)
  • 법전 (2002~2011)
  • 진제 (2011~2021(예정))

6.2. 총무원장


  • 석진 (1962)
  • 법용 (1962~1966)
  • 경산 (1966~1967)
  • 임성 (1967~1969)
  • 월산 (1969~1970)
  • 순호 (1970~1971)
  • 석주 (1971~1973)
  • 경산 (1973~1975)
  • 홍근 (1975)
  • 임성 (1975~1976)
  • 경덕 (1976)
  • 자운 (1976~1977)
  • 혜정 (1977~1978)
  • 석주 (1978)
  • 월하 (1978~1980)
  • 월주 (1980/1994~1998)
  • 탄성 (1980~1981(대행)/1994)
  • 성수 (1981)
  • 덕진 (1981~1982)
  • 법전 (1982)
  • 진경 (1982~1983)
  • 서운 (1983~1984)
  • 녹원 (1984~1986)
  • 의현 (1986~1994)
  • 도법 권한대행 (1998)
  • 혜원 (1998~1999)
  • 원택 권한대행 (1999)
  • 정대 (1999~2003)
  • 선용 권한대행 (2003)
  • 법장 (2003~2005)
  • 현고 권한대행 (2005)
  • 지관 (2005~2009)
  • 자승 (2009~2017)
  • 설정 (2017~2018)
조계종 역사상 처음으로 불신임안이 가결되었으며 # 불신임안이 인준되기 하루 전인 2018년 8월 21일 스스로 자진 사퇴하였다. 사퇴한 다음날 원로회의에서 불신임안이 정식 인준됨으로서 조계종 역사상 최초로 중도 퇴출되었다.
  • 진우 권한대행 (2018)
  • 원행 (2018~)

7. 25교구 및 교구별 본사(本寺)




8. 같이보기


[1] 한국불교조계종, 대한전통불교조계종, 대한불교통합조계종, 대한불교조계종삼화불교, 현대불교조계종, 세계불교조계종, 근본불교조계종 등은 모두 이름을 비슷하게 지은 종파인데, '''헷갈리지 않게 조심하자.''' 유사 조계종 명칭을 사용하는 곳이 무려 30여 곳이 넘는다.[2] 교리를 캐거나 계행을 닦지 않고, 직접 사람 마음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하여 번뇌를 떠난 깨달음에 이름.[3] 자기 본성을 깨달아 부처가 됨[4] 어느 종단이든 그곳이 지향하는 바를 알아보려면 중시하는 경전(소의경전)이 무엇인지 살피면 된다. 불경이 6500여 권이 넘다 보니, 어느 경전에 중점을 두는가에 따라 종단의 특징이 드러난다.[5] 참선하는 자가 깨달음에 이르고자 답을 구하려 애쓰는 문제[6] 종단이 없어 사설 사찰이나 땡중이 넘쳐나니 통합종단을 하나 인정해주고 이 종단이 사찰과 승려들을 관리감독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박정희 정권이 이때 대처승까지 통합종단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대처승들이 '우리들도 별개의 종단으로 인정해주세요.' 하고 법정투쟁을 벌여 태고종이 나왔다.[7] 조계종을 의원내각제 국가와 비교하면 종정은 실권 없이 상징적인 역할을 하는 대통령인 셈이다.[8] 총무원장은 중앙종회 의원 78명과 전국 24개 교구 본사에서 각각 10명씩 선출한 선거인단에서 뽑힌다. 의원내각제 국가로 따지자면 총리(?)라고 볼 수 있다.[9] 참고자료: 한국불교와 조계종 - 동국대학교 불교학술원[10] 고려·조선 시대에 승려에게 시험을 보여 뽑던 과거 시험[11] 수정 전에는 표절이라는 표현이 있었는데, 당시 스님들 중에는 실제로 중국에 유학가서 임제종 법맥을 받아온 승려들이 있었고, 그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 근세불교의 틀이 마련되었다. 표절이란 말은 적절치 못하다.[12] 上佐. 원래는 '윗사람을 보좌한다.'는 뜻이지만, 불교에서는 고승의 제자를 뜻하는 말로 쓴다.[13] 道義, 783-821. 통일신라 성덕왕시대에 당나라로 가 조사((祖師)가 되어 신라로 돌아온, 중국으로 치면 선종의 시조 달마대사 같은 인물.[14] 사실 불교가 육식을 금지한다는 건 엄연히 오해이다. 석가모니는 조건부로 육식을 허용하였다.[15] 예를들어 단체식사, 즉석/간편식, 피자의 토핑 등[16] 초등부, 중/고등부 법회를 말한다.[17] 淸規. 불교 승려도교 도사로서 지켜야 할 계율[18] 대표적인 사례로 충주에서 일어난 소가죽을 벗긴 사건은 충주에 본거지를 두고 있는 일광조계종이라는 무속인 단체가 물불 안 가리고 무속인들을 받다가 발생한 사건이다. 절대로 바깥에 무속인들에게 맡겨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