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즈키 시게루

 


1. 개요
2. 핫피 엔도 합류 전
5. 여담


1. 개요


스즈키 시게루(鈴木茂, 1951~)는 일본의 기타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다.

2. 핫피 엔도 합류 전


스즈키 시게루는 핫피 엔도에 합류하기 전인 스즈키는 하야시 타츠오, 그리고 훗날 사디스틱 미카 밴드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오오하라 레이와 함께 '스카이(スカイ)'라는 밴드에서 활동했다.

3. 핫피 엔도 시절


1969년 호소노 하루오미의 권유로 핫피 엔도에 리드 기타리스트로 합류하게 된다. 1집 はっぴいえんど에서는 연주만을 담당했으나 2집 風街ろまん에서는 작곡을 시도해보라는 멤버들의 권유에 첫 자작곡인 '花いちもんめ(꽃 찾으러 왔단다)'를 자신의 보컬로 선보이게 된다. 이후 3집 HAPPY END에서는 자작곡을 3곡이나 수록하며 성장한 작곡실력을 선보였다. 여러모로 비틀즈조지 해리슨과 유사한 포지션을 담당했다.

4. 핫피 엔도 이후


핫피 엔도가 해체되자, 1973년 스즈키 시게루는 호소노 하루오미와 함께 하야시, 마츠토야 마사타카[1], 사토 히로시와 함께 '카라멜 마마'를 결성한다. 이듬해 밴드는 틴 팬 앨리(ティン・パン・アレー)로 이름을 변경한다. 틴 팬 앨리는 야마시타 타츠로오오누키 타에코 같은 유명 뮤지션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틴 팬 앨리는 1977년에 활동을 중단하게 된다.[2]
1975년에는 로스 엔젤레스에서 산타나,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과 같은 걸출한 뮤지션들과 함께 첫 솔로 앨범 Band Wagon을 녹음해 발표한다. 이 음반은 호소노 하루오미의 Hosono House, 오오타키 에이이치의 A Long Vacation과 함께 핫피 엔도 솔로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나머지 두 멤버 데뷔작이랑 달리 펑크Funk와 서던 록 영향력이 짙다고 평가받는 앨범이다. 2015년에는 솔로 데뷔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노히데 후미와 팀을 이루어 두 번의 콘서트를 가졌다.
이후 1979년까지 자신 명의의 솔로 음반을 활발히 발매하나, 그 이후에는 1985년과 1998년에 발표한 것이 전부이다. 1980년대부터는 주로 세션 연주자로서의 활동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알려져 있는 솔로 음반은 많지 않지만, 호소노 하루오미야마시타 타츠로와 함께 작업한 PACIFIC 앨범은 시티 팝의 고전 명반으로 평가받고 오메가 트라이브 프로젝트에 참여한 음반도 높이 평가 받는 등 참여 음반을 통해서도 음악적 능력을 선보여왔다. 참여 앨범을 카운팅하면 무려 520여장이 넘는다고 한다. 세션 뮤지션으로서 커리어가 매우 탄탄한 편.

5. 여담


  • 2009년 2월 17일, 대마초 통제법을 위반 혐의로 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때 스즈키 시게루는 핫피 엔도 해체 이후부터 2009년까지 꾸준히 대마를 피워왔음을 고백했다. 대마 소지 혐의로 인해 징역 6개월, 집행 유예 3년을 선고 받았고, 포니 캐니언/킹 레코드 등에서 발매된 그의 음반들이 한 동안 판매 중지 처분을 당했다. 음반까지 판매중지할 일인가 싶기도 한데, 마약 문제에 관해 엄격한 일본에서는 차게 앤 아스카의 사례처럼 가혹한 조치가 관행인 듯하다. 당시에는 유료 다운로드도 같이 막혔다. 지금은 금지 조치는 해제되어 음반을 구할 수 있다.
  • 2018년 마츠토야 유미의 백업 세션으로 NHK 홍백가합전에 처음으로 참여했다.

[1] 마츠토야 유미의 남편으로 유명한 뮤지션[2] 스즈키, 호소노, 하야시는 2000년 앨범을 위해 이름에서 "앨리"를 삭제하면서 틴 팬 앨리를 개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