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토야 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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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싱어송라이터로 일본 음악계에 한 획을 그은 국민 가수이자 뉴 뮤직의 선구자. 1970년대부터 20세기를 넘어 21세기인 2010년대까지 모든 시대에서 오리콘 차트 1위를 유일하게 기록한 가수이다.
애칭은 유밍(ユーミン)[3] , 작곡시의 예명은 쿠레타 카루호(呉田 軽穂)[4] . 원래의 성은 아라이(荒井)이며 결혼 후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
발매작은 앨범이 밀리온 통산 10작품, 앨범 순위 통산 24작품, 2015년 8월 뮤직 스테이션 발표 기준 총판매량 3912만장으로 역대 6위에 해당하는 기록. 역대 솔로 여가수 중에서는 2위[5] 이다. 2012년 데뷔 40주년으로 발매된 앨범 '일본의 사랑과, 유밍과。'가 솔로 아티스트 및 여성 아티스트 역사상 판매 기록 첫 3000만장 돌파라는 대기록을 남겼으며 2018년 새 앨범 '유밍으로부터, 사랑의 노래'가 발매 첫 주 10만장 돌파로 1위를 차지하여 오리콘 통산 여성 아티스트 최연장자로 64세에 1위를 기록.
매년 겨울 니이가타에서 열리는 콘서트 동원수(여성 아티스트 부분)도 매년마다 갱신하는 하는 등 현재도 매우 건재하게 활동하며 여성 아티스트의 정점에 올라와 있다. 한국 여성 아티스트로 비교하면 이미자, 패티김 같은 엄청난 권위를 일본 가요계에서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으나, 마츠토야 유미는 작사 작곡을 직접 한 곡들로 히트를 많이 치며 일본 대중가요 유행 패러다임까지 바꿔왔던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업적이 워낙 커서, 가수 위주로 활동을 한 그들과는 차이가 나기에 동아시아 여성 대중음악인으로서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일본의 국민 그룹인 사잔 올 스타즈의 쿠와타 케이스케[6] 와 자주 비교되곤 한다.
2. 아라이 유미 시대
1954년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아라이 오복점(기모노를 파는 가게)'에서 태어나 6세에는 피아노, 11세엔 샤미센, 14세엔 베이스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14세에 처음으로 프로로서 데뷔, 15세에는 작사가, 17세 땐 작곡가로 차례차례 데뷔하였다. 중학 시절 부모에게 들키지않게 가면을 만들어, 자는 척하고 밤에는 각 계 각 층의 유명인이 드나드는 미나토구의 이탈리아 레스토랑[7] 에 자주 출입하였는데 그 곳에서 모인 아티스트들과의 인연이 데뷔의 계기가 되었다. 'The Fingers'[8] 의 사생팬이었다고도 한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返事はいらない(답장은 필요없어)'를 발매하며 아라이 유미 이름으로 데뷔. 이 앨범은 300장 밖에 팔리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는 희귀 앨범이 되어있다.
1973년, 현재도 일본 대중음악사의 걸작으로 아직도 회자되는 'ひこうき雲(비행기 구름)'을 발매하였고 1975년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싶어)'가 첫 오리콘차트 1위를 하며 제 1차 붐을 맞는다.
이 시절 아라이 유미는 맑고 고운 캐롤 킹 풍의 맑고 고운 팝 스타일의 음악을 하면서 핫피 엔도의 멤버 호소노 하루오미[9] 의 지원에 힘입어 커다란 인기를 얻었다.
3. 마츠토야 유미 시대
1975년 프로듀서이자 작곡가인 마츠토야 마사타카와 결혼.[10]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매년 2개씩 자신의 앨범을 릴리즈함과 동시에 타 가수들에게도 곡을 제공하며 빠른 페이스로 음악을 만들어 낸다. 또한 리조트 등지에서 여는 콘서트라는 것도 이 시기에 처음 도입. 이 분야에서도 황무지를 개척한 여성 아티스트로 평가받는다. 1980년 이후로는 기타 베이스의 잔잔한 멜로디로 '다다미 4평반(2.25평) 포크'라 불리며 포크송으로 대표되던 일본의 팝을 도회적이고 매우 세련된 '뉴 뮤직'으로 탈바꿈시키게 만든 원조로써 평가받고있다.
1981년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 싶어)[11] 가 당시 음반 구매력이 지금보다 강하지 않았던 80년대의 판매량 수치를 강타하는 '''60만 장'''이라는 판매량을 기록하고 제 1회 일본 작곡 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제 2차 붐이 도래. 당시의 일본은 전업 작곡가가 작곡이라는 한 분야만 담당하던 시대로 작사, 작곡, 노래까지 모든 것을 한 명의 가수가 담당하는 '싱어송라이터'라는 구분이 생소했던 시기라 음악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우타다 히카루가 싱어송라이터로써 어린 나이로 데뷔했을 때와 같은 충격이었다고.[12] 이 후의 오리지날 앨범은 17곡 연속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고 1988년 앨범 'Delight Slight Light KISS' 이후엔 8장 연속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등 80년대는 그야말로 '마츠토야 유미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마어마한 히트를 치게 된다. 크리스마스 무드가 한창이었던 1980년12월 발매한 '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13][14][15] 는 신토와 불교의 영향이 매우 강해 그저 산타클로스와 어린애들만의 이벤트나 평범한 종교행사라고 여겨졌던 일본의 크리스마스를 '''연인들의 연애 행사로 변화시킨 곡'''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다. 이 곡은 아직도 일본에서 크리스마스하면 상위권으로 떠오르는 노래 중 하나.
그녀가 처음 선보인 '''보여주는 무대'''는 1978년 자동차를 타고 등장하는 무대를 시작으로 무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 30미터나 되는 용 위에 올라타는 등 갖가지 퍼포먼스로 콘서트라는 영역을 벗어난, 당시로써 획기적인 무대를 보여주며 음악과 무대와 기획력에서 모두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었다. 80년대 후반에는 버블경제의 호황을 타고 마츠토야 유미가 작곡을 주었던 아이돌 하라다 토모요가 주연을 맡은 영화 '나를 스키에 데려가 줘(私をスキーに連れてって)'의 OST가 스키붐을 일으키며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젊은이들의 카리스마', '연애의 교주'라 불렸다. "실연"이라는 소재를 깊은 감정으로 부르며 시대의 파도를 탄 유밍이었으나 1990년대부터는 민속적인 음악에 심취하여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輪舞曲(윤무곡)', 'Weaver of Love~ORIHIME'[16] 등의 음악을 만들어 낸다.
1989년에는 앨범 '天国のドア(천국의 문)'이 전년에 발매한 앨범 'LOVE WARS'와 함께 당시 일본 가요계 역사상 '''첫 더블밀리언을 기록'''하며 일본의 앨범 시장을 개척했다. 다다음해인 1991년 발매한 앨범 'DAWN PURPLE' 역시 일본 팝 역사상 최초로 발매 첫 주 오리콘 밀리언차트를 기록하며 일본의 팝 역사를 써내려갔다. 1998년 발매한 'Neue Musik'는 380만 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대기록을 세웠고 이 앨범은 오리콘 역대 앨범 판매량 15위에 랭크되어있다.
CM, 드라마 주제곡으로 쓰인 곡은 셀 수 없이 많으며 1970년대부터 2010년대인 현재까지 자신의 곡 뿐만 아니라 타 가수들에게 만들어 준 많고 많은 곡들마저도 초히트시킨 천재. 2018년 일본에서 방송된 아라시니시야가레에서 한 출연자는 마츠토야 유미가 처음 '유밍'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작곡을 해낸 연령, 마츠토야의 구 소속사 후배이자 2018년 은퇴한 J-POP 여자 솔로계의 레전드 아무로 나미에가 데뷔한 연령, 우타다 히카루가 첫 작곡, 작사를 한 연령 모두가 14세라는 나이였으므로 '''세상에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14세에 어떤 일을 일으킨다'''고 언급하였다. 특히 80년대 전설의 아이돌 마츠다 세이코에게 곡을 많이 주었는데 그 모든 곡들이 전부 히트를 쳤다.
1989년 지브리 스튜디오의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의 OST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이 또 한번 히트. 2001년 작곡한 한국의 가수인 자우림의 김윤아에게 준 영화 OST '봄날은 간다(일본명:春の日は過ぎゆく)'로도 알려져있다. 2011년 홍백가합전에 출장해 春よ、来い(봄이여, 오라)를 불렀다. 이 무대가 엔딩이 아닌데도 전 출연진이 후반부에 같이 나와 장식해 그녀의 위용이 확인되었다.
2018년 출전한 홍백가합전에서는 '헤이세이 시대의 마지막'이라는 의미로 시청자들의 투표로 선정된 아라이 유미 시대의 'ひこうき雲(비행기구름)'과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인다면)' 두 곡을 함께 불렀다. 동시대에 라이벌로 평가되는 가수가 있다면, 역시 나카지마 미유키이다.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고 실제로도 친한 사이라고 한다.
4. 기행과 망언
전형적으로 괴팍한 예술 천재이다. 일본사회에서는 괴팍한 천재들도 공식석상에서 함부로 망언을 못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사람은 여성 대중음악사 전체에서 1등으로 꼽히는 역대급 천재라 그런지 거친 언행[17] 을 자주 보였다. 그리하여 그 특성답게 파격적이다 못해 무례한 수준의 망언이 많다. 마츠토야 유미의 망언 모음.
- "내 음악은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듣지 말았으면 한다."
- 팬이 아이를 데려와서 "악수해주세요"라고 말하자 "나 애들 진짜 싫어한다고!"
- "내가 팔리지 않는다는 건 은행이 망하는 일만큼 있을 수 없다."
- "저는 천재라구요. 싼 가격으로 내 음반을 살 수 있는 걸 감사히 여기세요."
- "내 음악은 부르주아용 음악. 가난한 사람을 상대로 하지않는다."
- "섹스를 하고 있으면 원시적인 동물이 된 느낌이다."
- "오늘 내 옷은 27만엔이야. 이딴 게 말이지."
- "단기 대학을 다닌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다."(단기대에 다니는 학생이 학교 축제에 출연 요청을 하자 거절한 대답.)
- "학력도 없이 노가다 일을 하고있는 사람이 내 라이브에 오면 질이 떨어진다."
- 점술가에게 코 모양이 부자는 될 수 없는 사주라고 듣자 "벌써 부자거든요!!"
-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팬 여러분 들 덕분이 아니라 "제 재능 덕이에요!"
- 콘서트에서 다른 사람들의 반대로 손을 흔들자 "잠깐만, 다들 오른쪽으로 손 흔드는데 왼쪽으로 흔드는 사람 누구야?지옥으로 떨어져."
- 오자와 켄지[18] 가 싱글 '春よ、来い'의 가격이 왜 500엔인지를 묻자 "이제 돈 따위 필요없어요." [19]
- "아직도 물 안 가져왔어? 빨랑 가져와! 목 마르단 말이야! 진짜 여기 도움 안되는 스탭뿐이구만!"(ANN의 생방송 중 녹음에 목소리가 들어가서 음성이 전국적으로 방송을 탐.)
-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스하는 것도 한물 갔다.
- 야마구치 모모에: 일본의 아이돌 수준이 낮은 걸 느껴버린다.
- 이츠와 마유미[20] : 한번 굴러서 다시 돌아온 얼굴.
- 우타다 히카루: 사무소가 만들어 낸 가짜 우타히메.
- 오기노메 요코: 그 춤 괜찮아? 오카마같은 스텝인데 사기당한 거 아냐?
- 오니츠카 치히로: 당신 리스트컷 할 것 같이 생겼네.
- 와타나베 미사토: 5등신이군요. / 에너지를 밖에 발산시키는 것만으로는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 자이츠 카즈오: 생건조한 오징어채같다.
- 사다 마사시: 촌충?
- 사카모토 큐: 얼굴에 따개비같은 거 붙어있을 것 같아서 기분 나빠.
- 시이나 링고: 당신 얼굴은 각도에 따라 못난이로도 보이고 미인으로도 보이네.
- 안전지대의 타마키 코지: 초등학생 레벨의 작사. 캬바레같다.
- 나카모리 아키나: 가짜 치아(데뷔 전 앞니만 교정)가 예쁜 사람이네.
- 하마사키 아유미: 그 속눈썹 바퀴벌레같아.
- 혼다 미나코: 네가 아티스트라면, 나는 신이야.
- 마츠다 세이코: 인세 돌려줄테니 내 곡 내놔! 그런 이상한 아이돌한테 곡 안 써줬음 좋았어.
- 미소라 히바리: 도쿄돔의 복귀 콘서트를 보면서 미소라 히바리의 피라미드도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 쿠보타 토시노부: (코러스로 참가했을 때)네. 그는 '악기'로써 참가했어요.
- 쿠와타 케이스케: 뭐든 영어 너무 남발해.
- 쿠도 시즈카: 그 병든 것 같은 얼굴…
- 코다 쿠미: 물때.
- 코무로 테츠야: 가녀리고 병약하다.
- 코바야시 마미: 몸은 가녀리나 똥은 두껍다.
- 타케우치 마리야: 하고있는 게 재미가 없다.
- 나카지마 미유키: 억울하면 결혼해!
- 마츠토야 마사타카(자신의 남편): 만약 그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에 이상이 생겨 음악가로서 불능이 되면 나는 그를 버린다.
우타다 히카루에게 또한 '지켜주고 싶은 목소리. 이건 천성적인 재능이다'라고 칭찬하였으며, 마츠다 세이코의 2015년 데뷔 35주년을 기념해 31년만에 신곡을 만들어주거나, 이전에 무시했던 프로듀서를 통해 만들어진 '아이돌'이란 존재에게도 좋은 얘길 건내거나, 과거에 독설을 날렸던 인물들과도 친근하게 대담을 펼치는 등 현재는 나이를 먹으며 매우 둥글어졌다. 모모이로클로버는 최근에 특히 팬이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벤트에서 대담했을 때 모모클로풍의 캐치프레이즈로 자신을 '태어날 때부터 오카마 목소리, 마음은 때때로 오카마입니다. 마츠토야 유미!'라고 소개했다.
여담으로 마츠토야 유미와 친분이 깊은 오다 카즈마사는 마츠토야 유미의 정면에서 "여전히 노래 못부르는구나"라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사실 보컬 자체는 음색이 좋긴 하지만, 기교 자체는 특출나진 않다. 작사, 작곡 능력이 워낙 천재적이여서 뜬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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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방송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존졸리나 알리'라고 말하는 스푸너리즘도 구사했다고 고백했다
[22]
2020년에는 아베 전 총리의 사임 뉴스를 보고 울었다는 발언을 해 주목받았다. 이에 대해 모 정치학자가 '빨리 죽는 게 낫다'는 반응을 해 더욱 화제.
5. 히트곡
- 1974.04.20. やさしさに包まれたなら(상냥함에 감싸이면) 마녀 배달부 키키의 주제가
- 1975.02.20. ルージュの伝言(루즈의 전언) - 마녀 배달부 키키의 삽입곡.
- 1975.08.01. 『いちご白書』をもう一度('딸기백서'를 다시 한번)
- 1976.10.05.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싶어)
- 1977.05.05. 潮風にちぎれて(갯바람에 부딪혀서)
- 1979.12.01. 悲しいほどお天気(슬플 만큼 밝음)
- 1980.12.01. 恋人がサンタクロース(연인이 산타클로스)
- 1981.11.01. 守ってあげたい(지켜주고싶어) - 80년대 유밍 최대의 히트곡.
- 1983.12.01. ガールフレンズ(걸 프렌즈)/時をかける少女(시간을 달리는 소녀) - 하라다 토모요에게 제공.
- 1984.12.01. NO SIDE/DOWNTOWN BOY
- 1985.08.01. 今だから(지금이니까) <오다 카즈마사, 자이츠 카즈오와의 콜라보>
- 1987.12.05. 月曜日のロボット(월요일의 로봇)/ダイアモンドダストが消えぬまに(다이아몬드 더스트가 사라지기 전에)
- 1988.11.30. リフレインが叫んでる(리플레인이 소리치고있어) - 유밍의 곡중에서도 영향력이 강렬한 곡이라 일컬어짐.[23]
- 1989.11.25. LOVE WARS/ANNIVERSARY
- 1992.11.27. Carry on
- 1993.11.27. 真夏の夜の夢(한 여름 밤의 꿈) - TBS드라마 '誰にも言えない(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의 주제곡으로 사용. JASRAC상 금상을 수상한 유명한 곡.
- 1994.11.25. 春よ、来い(봄이여, 오라) - 하마사키 아유미, 마키하라 노리유키, aiko, 한국에서 임형주, MC 스나이퍼 등이 커버.
6. 타 아티스트에게 제공한 히트곡 목록
참고로 아래에 취소선이 쳐진 것은 작사만 해준 것이다.
- 1975년 아그네스 창 - 白いくつ下は似合わない, 愛を告げて
- 1976년 미키 세이코 - まちぶせ - 이시카와 히토미가 81년 커버하여 히트함.
- 1977년 카하시 카츠미 - 愛は突然に
- 마츠다 세이코 - 赤いスイートピー, 制服, 秘密の花園, 瞳はダイアモンド, 蒼いフォトグラフ, Rock'n Rouge
- 1980년 사카키바라 이쿠에[24] - イエ!イエ!お嬢さん
- 1983년 하라다 토모요 - 時をかける少女
- 1984년 야쿠시마루 히로코 - Woman "Wの悲劇"より
- [25]
- 1985년 타하라 토시히코 - 銀河の神話
- 1986년 야마세 마미 - メロンのためいき
- 1993년 미즈키 아리사 - 今年いちばん風の強い午後, 君が好きだから
- 1998년 사이조 히데키 - 2Rから始めよう
- 2001년 김윤아 - 봄날은 간다[26]
- 2006년 하지메 치토세 - 春のかたみ
- 2010년 아야세 하루카 - マーガレット
7. 기타
- 2003년 HMV가 선정한 역대 일본 아티스트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녀 뒤에 있는 여가수는 미소라 히바리(5위), 야마구치 모모에(7위), 마츠다 세이코(10위). 가히 일본 음악계의 남을 역대급 전설 중 한 명이다.#
[1] 결혼 전 본명은 '''아라이 유미'''. 활동명 또한 '''아라이 유미'''였으나, 결혼 후 '''마츠토야 유미'''로 활동 중이다.[2] 남편 마츠토야 마사타카와 함께 소속된 둘의 개인사무소.[3] 유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무민과 데뷔 전 청소년기에 친분이 깊었던 중국계 일본인 사업가 'Sy Chen'의 이름에서 따왔다.[4] 왕년의 헐리웃 여배우인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에서 따옴.[5] 위 발표 기준으로 1위는 하마사키 아유미인데 오리콘 발표와는 너무 차이가 커서 신빙성이 애매하다. 오리콘 발표로는 마츠토야 유미가 1위, 하마사키 아유미는 200만장정도 뒤진 2위.[6] 두사람은 2018 홍백가합전에서 충격적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즉흥적으로 일어난 일인데, 마지막 무대에서 "마음대로 신밧드"를 부르던 쿠와타 케이스케의 불장난 댄스를 받아줄 사람이 없자 선배로서 받아 주었다. 참고로 이 사람이 쿠와타보다 선배이자 2살 누나이다.[7] 'キャンティ'라는 가게로, 1960년부터 현재도 운영 중.[8] 60년대 일본에서 인기있던 밴드[9] 훗날 사카모토 류이치, 타카하시 유키히로와 함께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라는 전설적인 일렉트로니카 밴드를 만들게 된다.[10] 마츠토야 마사타카는 현재도 마츠토야 유미의 조력자이며, 사실 이 때 은퇴하려고 했으나 전업주부로 살기 싫어 결혼 후의 이름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기로 결심했다고.[11] 표적이 된 학원(ねらわれた学園)의 1981년 실사판 주제가이다.[12] 우타다 히카루와는 생일이 같다.[13] 남편인 마츠토야 마사타카가 편곡.[14] 해당 곡은 마츠다 세이코도 불렀다.#[15] 또한 나카모리아키나와 체커즈 등 많이 커버했다[16] 1996년에 제작된 극장판 애니메이션 녹색나라 삐삐의 모험의 OST로 쓰였다.[17] 물론 언행만 심할뿐, 오히려 순수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 연예인들이 음주운전, 마약, 불륜, 도박, 불법적 사업 등에 손대다가 망한 수많은 케이스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 언행에서 주는 느낌과 달리 50년의 롱런을 이룬만큼 스캔들이나 사생활 문제 없이 깨끗하여, 사적으로는 오히려 모범적 사생활을 가진 연예인이다. [18] 1990년대에 활동한 뮤지션으로, 시부야계의 대표 그룹 플리퍼즈 기타의 멤버.[19] 근데 이 싱글. 발매 첫주에 1위를 찍고 밀리언을 달성했다.[20] 한국에서도 '고이비토요(恋人よ)'로 유명한 가수.[21] 미소라 히바리같은 경우만 하더라도 본인보다 훨씬 대선배이며 파급력과 영향력도 유키보다 훨씬 막강하고쇼와 시대의 가희라고 불렸는데다가 역사에 한 축을 그을 정도였으니 실제로 저런말을 했을지는 의문이다[22] 해석: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라디오에서 안젤리나 졸리를 존졸리나 알리라고 말했다[23] 여담이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단편소설집 '교통경찰의 밤'의 '천사의 귀'에서 진나이 슌스케 형사가 이 노래를 듣고 좋아하는 장면이 소설 도입부에 나온다.[24] 일본의 옛날 아이돌[25] 참고로 이 곡은 이탈로 디스코 그룹 Gazebo의 I like Chopin의 리메이크다.[26] 1976년 발표한 あの日にかえりたい(그 날로 돌아가고 싶어)를 리메이크 했다는 설이 잘못 퍼지기도 했다. '봄날은 간다'는 OST를 위해 유밍이 새로 쓴 곡이다.[27] 기모노는 한 벌에 몇 백만에서 비싸게는 몇 천만엔에 달하는 굉장히 비싼 품목이다. 평범한 일본인들은 보통 부모로부터 기모노를 물려받거나 아예 기모노를 사기 위한 적금을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