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노 하루오미

 


'''호소노 하루오미
細野晴臣 | Haruomi Hosono
'''

[image]
''' 본명 '''
'''호소노 하루오미 | 細野晴臣 | Haruomi Hosono'''
''' 출생 '''
1947년 7월 9일 (76세)
일본 도쿄도 [image] 미나토구
''' 국적 '''
일본 [image]
''' 직업 '''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편곡가, 프로듀서, 베이시스트, 키보디스트
''' 학력'''
릿쿄대학 학사
''' 레이블 '''
알파 레코드
1. 개요
2. 생애
2.1. 어린 시절
2.3. 틴 팬 앨리, 솔로 시절
2.4. YMO 시절
2.5. 이후
3. 음악 스타일
4. 디스코그래피
5. 기타


1. 개요


일본의 전설적인 음악가. 일본 음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이 양반의 커리어만 되짚어봐도 21세기 이전 일본 대중음악의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을 정도.
일본 외에서는 '해리 호소노'(Harry Hosono)라고도 알려져 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947년 7월 9일 도쿄도 미나토구 출생. 친할아버지타이타닉호 침몰 사고의 생존자인 공무원 출신의 호소노 마사부미[1]이다. 외할아버지 나카타니 타카오는 피아노 조율사로 유명했다. 이외 이모가 외국계 영화 회사에서 일하는 등 예술과 관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15살 때부터 수많은 밴드를 거치다 1969년에 Apryl Fool이라는 밴드에서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그 해 같은 밴드 출신인 마츠모토 타카시, 스즈키 시게루, 오오타키 에이치와 같이 뭉쳐서 나온 밴드가 바로 그 핫피 엔도.

2.2. 핫피 엔도 시절


[image]
포크 활동 시절 장발 + 수염의 모습. 이후 YMO로 활동하기 이전까진 사진 속 비주얼을 유지했다.
핫피 엔도 참조

2.3. 틴 팬 앨리, 솔로 시절


핫피 엔도가 72년 말 해체하면서 호소노는 73년부터 핫피 엔도의 멤버였던 스즈키 시게루 등등과 함께 틴 팬 앨리에 들어갔다. 틴 팬 앨리는 야마시타 타츠로오오누키 타에코 같은 유명 뮤지션들을 배출하기도 했다. 이 밴드는 77년에 활동이 중단된다.
1973년 앨범 <HOSONO HOUSE>를 시작으로 솔로 활동도 열심히 했다. 1977년에는 이시다 아유미와 함께 아워 커넥션이라는 앨범을 작업하고, 1978년에는 스즈키 시게루, 야마시타 타츠로와 함께 <PACIFIC>이라는 앨범을 작업하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일렉트로닉에 빠져든 끝에 사디스틱 미카 밴드 출신 드러머 타카하시 유키히로, 키보디스트 사카모토 류이치를 모아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줄여서 YMO를 결성한다.

2.4. YMO 시절


YMO 참조

2.5. 이후


1983년 YMO의 활동정지 이후엔 주로 작곡가, 프로듀서로 활동했는데 마츠토야 유미, 마츠다 세이코,나카모리 아키나, 토가와 준, 마츠바라 미키, 모리타카 치사토 등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굵직한 히트곡들을 작곡했고 또 프로듀서로도 많이 관여했다.
이마와노 키요시로, 사카모토 후유미와 같이 프로젝트 그룹인 HIS로 잠시 활동한 적도 있다.
그 외에는 영화 음악도 간간히 제작하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스기이 기사부로, 이누도 잇신 감독의 영화나 어느 가족,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엔딩 크레딧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 노르웨이의 숲 영화판처럼 아예 카메오로 출연한 적도 있다. 키테레츠 대백과의 스페셜판 오프닝과 엔딩도 작곡했다. 게임 음악 쪽에서도 제비우스의 BGM을 편곡해서 음반에 수록하여 발매한 적이 있다. 그리고 가끔 신곡도 발표한다.

3. 음악 스타일


핫피 엔도 시절엔 버즈(미국 밴드)리틀 피트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컨트리/포크 록을 했다. 1973년에는 포크, 보사노바 앨범인 <HOSONO HOUSE>[2]를 발표하고 이후 나온 <トロピカル・ダンディー>(TROPICAL DANDY), <泰安洋行>(Bon Voyage co.), <はらいそ>(PARAISO) 앨범에는 당시 유행하던 트로피컬 사운드를 접목시켰다. YMO 결성 이후에는 전자음악으로 많이 기울어 현재는 앰비언트, 포크 쪽 성향으로 굳어진 편.

4. 디스코그래피


S · F · X (1984年 12月 16日)

5. 기타


  • 핫피 엔도, 틴 팬 엘리 시절에는 베이스 기타를 맡았고 YMO 시절에는 신디사이저도 같이 담당했다. 그 밖에도 가야금 등등 할 수 있는 악기가 많다고.
  • 할아버지 때문에 호소노 본인도 타이타닉호 사건 관련인으로 간간이 등장하는 편.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가 사망해 실제로 만난 적은 없지만 어쨌든 유족이므로 2012년 사건 100주년 당시 피해자 위령비가 있는 핼리팩스에 가서 행사에 참석했다고 한다.
  • 나이가 일흔이 넘었는데도 가끔씩 예능에 출연한다. 개그나 콩트를 선보일 땐 최연자인 경우에도 은근 하찮은 포지션을 잘 맡는다.
  • 개그 속성이 강하고 권위의식이 없는 편이라 호시노 겐이나 오야마다 케이고 등의 후배 뮤지션들과도 친분이 깊다. 최근엔 호시노 겐과 교류가 많고, 음악적 멘토 역할을 맡고 있다. 호시노 겐의 첫 솔로 앨범은 호소노의 권유로 만들어졌기도 하다.
  • 밴드 동료 마츠모토 타카시 못지 않게 이분도 한국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다. 앞에서 말했듯이 가야금을 배운적이 있고 한국 느와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김재중이 사진을 부탁하자 같이 찍어준적도 있다고.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원래 음악 담당이었다. 그러나 관계자 측에서 호소노를 거부하고 당시 무명이었던 히사이시 조를 기용했고, 이는 성공적이었다. 대신 호소노는 야스다 나루미가 부른 엔딩곡을 작곡하였다.
  • 캔(밴드)의 다모 스즈키하고는 사이가 안 좋다는 루머가 있다. 라디오 생방송에서 싸웠다고 일본 위키에도 등재되어 있으나, 카더라성이 강해 일웹에서도 긴가민가하는 모양.


[1] 타이타닉호의 유일한 일본인 승객이자 생존자이다. 항해사가 자리가 남으니 타라고 권유해 탑승했는데, 혼자 살아남으려 여성과 아이 먼저 원칙을 어기고 구명정에 탑승하였다는 낭설이 퍼져 죽은 이후에도 엄청나게 욕을 먹었었다. 1997년에서야 진실이 겨우 드러나 명예를 회복했다.[2] 싱글로 나온 恋は桃色(사랑은 복숭앗빛) 라는 곡이 아주 유명하다.